신화를 지워버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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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ra96
작품등록일 :
2024.05.10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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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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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6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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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1부 마지막화

DUMMY

그렇게 되었었던 건가.

전투는 결국 우리들이 승리하게 되었고 그 자리의 모두가 그 승리를 순수히 기뻐했지만 애송이 계집이 봤다는 기억, 나는 그것이 신경쓰였다. 아무도 신경쓰는 사람이 없었다지만 나는 그 계집이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태도를 보였을 때 그것이 신경쓰이지 않을 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전장에서 벗어나기 직전 한쪽 귀를 완전 영체화 시켜 애송이 계집에게 붙여놓았었다. 덩치 놈이라면 눈치 챌 수도 있었겠지만 미리 함구령을 내려놓은 덕에 애송이 계집에게 들키지 않았던 모양이다.

감상이랄 건도 딱히 없다. 우연인지, 애송이 계집의 감상과 상당히 비슷하니까 말이야. 다만 내게는 조금 아쉬운 일일 뿐이다. 그래봐야 과거형인 이야기일 뿐이지만.

그리고 지금, 그 내막을 모두 들었으니 귀를 회수한 나는 지금 할멈의 부름에 응해 매번 밀회할 때 쓰던 오두막에 향하려는 길이다. 이리 될 것 정도는 예상했다. 애송이 계집의 말대로라면 기억을 읽힌 인간은 어떤 기억을 읽혔는지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는 모양이니 그 계집이 할멈의 기억 속에서 내 거처를 봤다는 건 할멈도 알고 있을 터, 할멈이라면 자신에게서 그 정보를 빼내간 애송이 계집이 날 찾아왔을 것이란 생각을 분명히 했을 게다.

오라는 연락을 받은 지는 3일이나 지났지만 나는 일부러 시간을 끌며 오늘에 와서야 답장을 했었다. 칼날 계집을 감싸기 위해서다. 크로노스와의 혈전이 지금 막 끝난 것처럼 위장할 속셈이다. 3일 전에 복귀한 칼날 계집이 그동안 에덴에서 활동을 해 왔을 테니, 할멈에게 결전의 일자를 착각하게 하면 할멈이 칼날 계집의 배신가능성을 고려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포탈을 열고 느긋하게 넘어가니 이브 에데니아, 이 교활한 할망구는 불편한 심기를 숨길 생각이 없다는 듯 썩어빠진 표정으로 턱을 괸 채 노는 손가락으로는 신경질적으로 테이블을 두드리고 있었다.

“네가 드디어 정신이 나가버린 게로구나, 나를 이리 기다리게 만들다니.”

“그럴 만한 일이 있었다는 것쯤은, 할멈이라면 눈치챌 법하지 않아?”

“그것 참, 숨길 생각도 없어 보이는구나.”

“그래, 할멈 생각대로야. 하투사의 계집, 그 계집이 나를 찾아왔다. 제우스와 함께 말이지.”

“그 계집이 네게 직접 부탁했겠지? 크로노스를 죽이는 걸 도와달라고 말이야.”

“역시 할멈이야,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 좋다니까?”

내가 농담조로 웃어넘기자 할멈은 기분이 나쁘다는 듯 미간을 구겼다.

“그 계집, 정체가 뭐냐.”

“’우라노스의 마지막 유산’ 이라고 하면 믿을 거야?”

“하!”

할멈은 어이없다는 듯 웃어재꼈다.

“못 믿을 게 또 뭐가 있지?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는 게 가장 자연스러워. 그냥 어이가 없을 뿐이다. 주워온 게 하필이면 그런 거였다니. 운도 참 지지리도 없구나.”

할멈은 대놓고 골치 아프다는 태도를 드러내보였다.

“그래서? 네 년이 이리 여유롭게 기어 나온 걸 보니, 일은 제대로 처리했다는 거겠지?”

“당연하지. 오늘 막 끝났어. 그게 실패했다면 내가 답장을 하는 일조차 없었을 거야.”

“고작 셋이서 그게 가능했다고? 거짓말하지 마라.”

할멈은 분명 내가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크로노스를 처리했을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나와 덩치, 애송이. 이 셋의 조합으론 이기는 그림이 그려지지가 않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나는 그걸 부정할 필요가 없다. 내가 누구의 도움을 받았는지만 모르게 하면 될 일이다. 이렇게 보는 입장에서 기분 나쁠 법한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면.

“하! 진짜 짜증나는 꼬맹이 같으니!”

할멈은 그 상대를 특정지을 수 없어 화만 날 뿐이다. 설마 에덴의 천사가 그 일을 도왔으리란 생각은 죽어도 하지 못하겠지. 할멈은 언제나 최악을 대비하는 인간이다. 그런 인간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최악의 그림이란, 내가 ‘오딘’의 손을 빌려 크로노스를 해치웠다는 것. 심지어 그 편이 일을 성사시킬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선택지이기도 하니 그 편이 가장 말이 된다고 여길 터.

“할멈, 올림피아는 이제 섣불리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당연하지만 이 할망구는 우라노스와 오딘이 친분이 있었다는 걸 안다. 할멈의 착각을 유도한 지금 내 허세는 할멈이 착각하게 될 또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우라노스와 친했던 오딘이 우라노스의 원수를 갚은 것. 오딘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줄거리다. 물론 그 줄거리를 실현시키기 위한 난이도가 높을 것이란 인식이 할멈의 머릿속에 있겠지만 내가 지금 이런 태도로 나온다는 건 어떻게든 그 과정을 해결한 결과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올림피아의 배후에 누군가 있는 듯한 이야기를 한다면 이 할망구는 그 늪에 빠질 수밖에 없지.

“네 년, 이 따위로 행동할 거였다면 애초에 내게 이 일을 들이밀지 말았어야지.”

“할멈이 우라노스의 딸래미를 주워 갈 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그 계집이 할멈의 계획을 망쳐놨으니 나는 크로노스를 죽이기 위해서 다른 수를 쓸 수밖에 없었어. 할멈도 알잖아? 내게도 사활이 걸린 일이라는 걸. 새로운 변수가 눈에 들어온다면 언제나 그걸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한 건 할멈이기도 했고.”

“하, 진짜로 짜증나는군. 이러면 그 계집을 잡으러 가는 것도 일이잖느냐.”

“애당초 놓치지를 말았어야지. 지하에 감금해 두었다면서 어떻게 탈출한 것인지 알아는 본 거야?”

“그 계집이 거기까지 이야기했던 것이냐?”

“그래, 탈출 방법은 알려주지 않았지만 말이야.”

“미심쩍은 부분은 있다.”

“말 해 보지 않을래? 지금은 좀 여유롭거든. 할멈 이야기 못 들어줄 정도는 아니야.”

내가 능청스레 이야기하자 할멈은 혀를 한번 차고는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아프로디테가 그 감옥에 수감된 걸 아는 인간은 둘, 많아 봐야 셋이다. 감옥의 총 책임자이자 성 내 보안 책임자인 ‘쟈쿤’, 아프로디테를 감옥까지 옮긴 ‘루시퍼’, 그리고 눈치 챌 가능성이 있다면 당일 내 시중을 들던 ‘메타트론’정도겠지.”

“그래서? 내가 보기엔 할멈이라면 그것만 알아도 상황 증거들을 찾는 걸로 손쉽게 답을 얻어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래, 그 말대로다. 내심 답은 이미 내려져 있어. 다만 확신이 안 들 뿐이다.”

“확신이 들지 않아?”

“그 아이가 그럴 이유를 모르겠다.”

“범인이 누구길래 그래?”

“루시퍼, 내 생각이 맞다면 이 일들이 가능한 사람은 루시퍼 밖에 없어.”

“헤에, 부모를 배신하는 자식이라 이건가? 우라노스를 보는 것 같군 그래? 그래서, 그 루시퍼에겐 무슨 처벌을 내렸지?”

“아직 내리지 않았다. 의도를 모르겠으니까. 지금은 그 아이가 원하는 대로 맞장구를 쳐 준 상태지.”

“그래도 ‘진짜 자식’이라 그건가? 내가 아는 할멈이라면 피도 눈물도 없이 벌했을 거라 생각 했는데.”

“나를 무슨 수라나 악귀로 보는 것이냐?”

“나도 부모 잘 만났더라면 이러고 살지 않았을텐데 말이야.”

내 부모 되는 인간들은 너무나도 연약한 인간이었다.

할멈은 내 투정은 무시한 채 무언가 생각에라도 빠진 듯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단 저 상태가 되면 내가 뭐라 한 들 대답을 해 주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나도 생각에 빠졌다.

일단 이대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면 할멈이 올림포스를 섣불리 건드리지 못하는 상황은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여기서 할멈이 지금 내가 오인시킨 국면을 파훼하고자 강력한 한 수를 던진다는 가능성은 제법 높다. 아마 지금 그 궁리를 하고 있을 게 뻔했다. 그러니 나는 그 수에 미리 대응할 생각을 해 두어야만 하지.

우선 단시간에 간단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수는 ‘라’와 연계한다던가, ‘오딘’에게 진위를 묻는다던가. 그런 얕은 수를 쓸 거란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일단은 범주에 넣고 고민을 해 보긴 해야 한다. 고민이라는 건 항상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 진행해야 정확한 답이 나오기 마련이니까.

내가 그리 생각하며 고민에 빠졌을 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마 그리 많이 흐르진 않았던 것 같다. 내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약아 빠진 할망구가 하던 생각이 끝난 것인지 돌연 태도를 바꾸었다.

에덴의 성녀, 이브 에데니아는 고개를 반쯤 숙인 채 콧등에 엄지를 얹어 눈 아래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 각도 그대로 날카로운 눈매를 보이며 나를 쏘아보았다.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사냥감을 바라보는 맹수의 눈을 하며 내게 물어왔다.

“야, 사르디스의 집에 있던 꼬맹이는 뭐냐?”

헤라클레스······.

지금 시점에 느닷없이 저걸 물어온다는 건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 게 절대로 아니다. 이미 자신의 안에 어느 정도 정답을 그려놓고 그게 맞는지 떠보기 위해 물어보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야말로 예상하지도 못했던 질문에 내가 당황한 한 순간. 입가를 가린 손을 치운 이브 에데니아의 얼굴에 드러난 그 악마 같은 미소가 내가 그녀에게 정답을 주었다는 걸 내게 알려주고 있었다.

“아, 이 빌어먹을 꼬맹이가. 날 이겨먹으려 해? 안타깝지만 이번엔 내가 이긴 모양이구나.”

도망가려 했지만 때는 늦었다. 오두막의 벽과 지붕이 이미 밝게 타오르는 푸른 빛의 화염으로 변한 뒤였고, 마찬가지로 눈부시게 빛나는 푸른 빛의 화염을 두른 할멈의 오른손이 내 목덜미를 낚아채 조이고 있었으니까.

괴물 같은 할망구, 아마 지금 전심전력이다. 이 저항을 뚫고 탈출하려는 데에 나 역시 사력을 다하고 있지만 도저히 이 속박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 푸른 화염, 보통의 화염과는 다르다. 확실하게 내 극상성이다. 마치 ‘라’의 빛을 마주했었던 때와 같은 감각. 이 망할 할망구가, 날 상대할 비책을 이미 준비해 둔 상태였구나!

우라노스의 벼락에 대응하기 위해서 칼날 계집의 능력의 기반이 된 금속을 ‘창조’했던 이 인간이라면 그러고도 남는데, 왜 생각을 못 했지?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이 여자를 너무 친근하게 대하고 있었던 걸까?

“말해라, 네메시스. 오늘 여기서 네가 내게 했던 말 중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 게냐?”

이 인간이 내가 이번에 제우스를 도왔던 ‘진짜 이유’를 눈치채 버린 모양이다. 처음에 제우스에게 흥미를 보였던 건 쓸쓸함과 아쉬움이 이유였지만 그로 인해 탄생한 ‘또다른 이유’를. 그리고 그 이유가 나를 아직까지도 제우스를 돕게 만든다는 걸 저 여자라면 모를 리가 없다. 서슴없이 있었던 일들을 떠들며 중립인 척해왔던 내 가면이 벗겨졌다는 이야기다. 지금 이 순간, 틀림없이 나는 이 여자의 적이다.

아, 글러먹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당장 이 마귀할멈에게서 벗어날 수가 도저히 그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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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63화. 바벨 006. 마인의 행방 24.09.09 4 0 14쪽
63 62화. 바벨 005. 정산(2) 24.09.06 8 0 12쪽
62 61화. 바벨 005. 정산(1) 24.09.02 7 0 13쪽
61 60화. 바벨 004. 시련(4) 24.08.30 13 0 12쪽
60 59화. 바벨 004. 시련(3) 24.08.26 10 0 13쪽
59 58화. 바벨 004. 시련(2) 24.08.23 12 0 16쪽
58 57화. 바벨 004. 시련(1) 24.08.19 8 0 13쪽
57 56화. 바벨 003. 잠입 준비(3) 24.08.16 12 0 15쪽
56 55화. 바벨 003. 잠입 준비(2) 24.08.12 11 0 12쪽
55 54화. 바벨 003. 잠입 준비(1) 24.08.09 11 0 12쪽
54 53화. 바벨 002. 그 날의 기억 24.08.05 11 0 12쪽
53 52화. 바벨 001. 폭풍의 전조(3) 24.08.02 11 0 12쪽
52 51화. 바벨 001. 폭풍의 전조(2) 24.07.30 11 0 11쪽
51 50화. 바벨 001. 폭풍의 전조(1) 24.07.25 11 0 12쪽
50 49화. 2부 프롤로그(4) 24.07.22 13 0 13쪽
49 48화. 2부 프롤로그(3) 24.07.19 10 0 12쪽
48 47화. 2부 프롤로그(2) 24.07.15 11 0 12쪽
47 46화. 2부 프롤로그(1) 24.07.12 11 0 12쪽
46 45화. 2부 프롤로그(0) + 짧은 공지 24.07.08 14 0 15쪽
» 44화. 1부 마지막화 24.07.06 12 0 11쪽
44 43화. 1부 에필로그 (3) 24.07.04 12 0 12쪽
43 42화. 1부 에필로그 (2) 24.07.03 14 0 15쪽
42 41화. 1부 에필로그 (1) 24.07.02 11 0 13쪽
41 40화. 올림포스 015. 최종장 마지막(투지) 24.07.01 13 0 14쪽
40 39화. 올림포스 015. 최종장 일곱째(최종 국면) 24.06.28 12 0 15쪽
39 38화. 올림포스 015. 최종장 여섯째(역습의 전조) 24.06.27 11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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