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지워버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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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ra96
작품등록일 :
2024.05.10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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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2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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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2부 프롤로그(1)

DUMMY

상쾌한 아침이다. 아무도 없는 넓은 집에서 홀로 눈을 뜬 나는 창틈으로 들어오는 아침햇살을 맞으며 집구석의 욕실로 걸어가 개운하게 몸을 씼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나지만 혼자 보내는 시간도 좋아한다. 작년, 일반 사람의 몸으로 제법 오래 살아오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고 나서 혼자 있게 되는 시간이 늘어났었는데, 조용한 곳에서 홀로 가만히 생각에 빠져 시간을 보내는 일이 제법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었다.

물기를 털어내고 가볍게 걸쳐입은 나는 바깥 풍경이 잘 보이는 창가에 걸터앉아 과일 주스를 마시며 바다 풍경을 바라본다. 기분을 환기시키며 오늘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한다. 하루를 개운하게 보내기 위한 일종의 루틴이 되어버린 일이다.

어디 보자, 오늘 할 일이······. ‘가게’ 일이야 평소랑 똑같을 테고, 슬슬 ‘손님’이 올 시기가 되었으니 일단은 그 쪽에 집중해봐야 하려나? 정확한 날짜는 알기 어려우니까 미리미리 준비를 해 두어야만 하겠지. 이번 손님에겐 어떤 대접을 해볼지가 조금 고민이네. 뭐, 그건 천천히 고민해 보도록 하고 일단은 출근 시간이다. 오늘 하루도 부지런하게 보내 볼까나.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나는 본격적으로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움직였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어부들과 인사를 나누고 시가지에 들어서며 마을 사람들과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내게 있어선 꽤나 의미 있는 장소인 ‘가게’. 내가 이 도시, 아테네에 처음 와서 처음 방문했던 가게인 술집이자 지금은 내 가게가 된 아테네 최대 규모의 요식업소다.

원래 이렇게까지 크진 않았는데, 제우스에게 받은 돈 중 집을 마련하고 남은 돈으로 인수한 뒤 이런저런 방법으로 머리를 좀 써서 굴려봤는데, 이전보다 장사가 수 배는 잘 되었던 바람에 덩치가 그때보다 상당히 커져버렸던 것이다.

아, 안심하시길. 내 ‘권능’을 써먹어서 가게를 키운 건 아니다. 권능을 쓰면 썼다는 걸 들키기 때문은 아니다. 써본 적이 없던 건 아니라 아는데, 각성하지 못한 일반인들은 내 권능에 당해도 당했다는 걸 모르더라. 그럼에도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던 건, 단지 이웃을 등쳐먹는 것에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네메시스의 입에서 들었던 언젠가 이브가 했었다던 그 말. ‘사람은 서로가 어울리기 위해 도덕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는, 뭐 정확히는 이것과 의미가 통하는 다른 말이긴 하지만 그 의견에 나 역시 이견이 없기에, 내 이웃들을 상대로 권능을 써먹지 않았던 것뿐인 이야기다.

아침해가 천천히 중천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지금, 점심 장사부터 시작하는 우리 가게에 출근한 나. 이른 출근이라면 이른 출근일 수도 있겠지만 덩치가 불어난 만큼 이른 아침부터 출근해 장사를 준비해주는 직원들이 그런 나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또, 의외의 인물이 한 명. 직원들의 인사에 답해주며 가게 내부를 한번 둘러본 내 시야 한구석에 검은 머리의 미소년이 한 명 들어왔다. 단정하게 정돈한 검은 생머리에 새하얗고 고운 피부, 앉아 있음에도 제법 체격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덩치가 크다는 말이 또 어울리지는 않았다. 체격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소년의 키가 제법 컸기 때문이다.

제법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기에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와 인상이 조금 달라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낯선 얼굴은 아니다. 보고 있으면 눈을 뗄 수 없는 미형의 얼굴, 그래, 누가 보더라도 자기 아버지보다 자기 어머니의 얼굴을 더 닮은 저 아이는 바로 ‘헤라클레스’, 네메시스와 제우스의 아들이다.

“아프······.”

“쉬잇.”

날 발견한 헤라클레스가 내게 인사를 건네려 했다. 내가 조용히 제스쳐를 보내자 헤라클레스는 실언했다는 걸 깨달은 듯 흠칫하며 정정해왔다.

“아피 님!”

“오랜만이네, 헤라클레스. 이렇게 보는 거 1년 만인가?”

“아피 님은 역시 그대로시네요.”

“그러는, 너는. 못 알아볼 뻔했어. 성장기 애들은 다르구나? 정말 쑥쑥 큰다니까?”

내게 다가온 헤라클레스를 이제는 올려다봐야 할 지경이다. 작년엔 나랑 키가 비슷했는데. 지금은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크다.

헤라클레스가 머쓱해하는 것 같아 보였기에 나는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아직 오픈 안 했는데, 잘도 들어왔다?”

“아, 저번에 왔을 때 계셨던 분이 들여보내주셨어요.”

그 말에 내가 고개를 돌리자 나와 눈이 마주친 직원 한 명이 엄지를 치켜세워 보였다. 나 역시 엄지를 치켜세워 준 뒤 그대로 직원들을 향해 외쳤다.

“여러분! 미안한데, 이 애랑 얘기 좀 할게!”

“네!”

“그래!”

“쥬스 내 드릴게요!”

“고마워!”

나는 그렇게 헤라클레스의 손을 잡아끌고 손님 응접용 객실로 향했다. 인사 정도야 가볍게 나눌 수 있어도 이 아이가 ‘손님’으로 온 이상 사람 많은 곳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만은 없으니까.


***


“슬슬 손님이 올 무렵이겠구나 하긴 했는데, 벌써 올 줄은 몰랐네.”

올림포스에선 세달에 한번 꼴로 아이들을 아테네에 보낸다. 보내지는 아이들은 매번 다르다. 그럴 때면 나는 직원들에게 그 아이들을 ‘위그디아에서 찾아온 친척’이라고만 소개하고 가게 일을 경험하게 하거나 사람들과 어울리게 하거나, 내가 알고 있는 지식들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헤라클레스가 직원과 안면이 있었던 것도 그것 덕이었다. 그런데 이번 방문엔 무언가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헤라클레스야. 이번엔 혼자네? 다른 애들은 안 온 거니?”

바로 헤라클레스 혼자 왔다는 것. 누가 같이 왔다 하면 헤라클레스를 이렇게 놔두고 혼자 돌아다닐 리가 없다. ‘수확’당했던 다른 아이들과 달리 나이를 계속 먹고 있었던 헤라클레스는 올림포스의 아이들 중에서도 나이가 많은 편에 속했으니까. 자기 삼촌들보다도 나이가 많아졌다. 그냥 어이가 없는 개족보다. 이런 상황에서 인솔 역을 맡았을 헤라클레스가 누가 혼자 돌아다니겠다고 한다면 그걸 두고 봤을 리 없겠지.

“아, 하하······.”

근데, 얘, 반응이 뭔가 이상한데? 방금 했던 생각을 철회해야 하나?

“사실 온 건 저 혼자예요.”

“혼자 왔다고?”

나는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냥, 무슨 사정인지 모를 뿐이니 그렇게 물어볼 뿐이었다.

“아피 님을 한번 뵙고 하고싶은 얘기가 있어서요.”

“오, 그래?”

이야, 뭔가 대견하달까? 얼마 전에 봤을 때만 해도 아이같았던 면이 있었는데, 이제 스스로 하고싶은 일도 할 줄 알고. 다 컸구나?

내가 그런 감상을 담은 눈으로 뿌듯하게 헤라클레스를 바라보자 헤라클레스는 머쓱하게 시선을 돌리며 이야기를 이었다.

“네, 뭐······. 그래서, 금방 돌아가 볼 생각이긴 해요. 자리를 오래 비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런 말 하지 마. 섭섭하게. 먼 길 왔는데, 조금 놀다 가야지 안 그래?”

나는 장난스레 헤라클레스를 부추켰다. 이래뵈도 헤라클레스는 잘 생겼다. 애 티가 조금 났던 작년보다도 지금이 더 늠름해졌다. 여전히 아기사슴 같은 인상은 있지만 그래도 체격이라는 게 있다. 나보다 머리 하나 더 큰 이 소년을 이제 누가 그저 소년으로 볼까? 이런 애를 밤 장사할 때 불러다가 놀게 할 생각을 하면 그런 생각만으로도 흥미가 돋는 법이다.

“알았어요. 그럼 그렇게 할 게요.”

헤라클레스는 못 이기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착하기도 하지.

“좋아, 그럼 슬슬 나한테 할 말이라는 걸 들어볼까?”

“네!”

나는 가볍게 물어봤을 뿐인데 헤라클레스는 어째선지 기합을 잔뜩 담아 대답했다. 뭔가 싶었기에 듣는 분위기가 살짝 놀란 분위기로 바뀌었지만 헤라클레스는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고 뭔가 비장한 각오라도 한 듯, 무슨 결투라도 신청하듯이, 무슨 구애라도 하듯이. 진중하게 말해왔다.

“올림포스의 ‘주신’이 되어주세요!”

그리고 그 내용은 내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 내용이었기에 나는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주신?”

내가 되묻자 헤라클레스는 설명을 시작했다.

“네, 아버지께서는 국력을 강화하기 위해 가문에서 12명의 수호자를 뽑아 ‘12주신’으로 삼으려는 계획을 세우시고 계세요. 올림포스의 다른 분들은 아직 어린 분들이 많아서 지금 ‘주신’의 직위를 정식으로 하사받으신 건 ‘헤스티아’님 뿐이지만요.”

“헤스티아는 영리하니까.”

크로노스와의 일전이 끝나고 올림포스에서 뒷수습을 할 때, 우리들의 대화에 끼어들 수 있는 유일한 아이가 헤스티아였다. 제우스의 친누이이자 크로노스의 첫째 딸. 각성한 능력은 아직 모르지만 ‘주신’의 직위를 받았다는 건 각성했다는 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그것도 그건데, 아마도 지금의 이야기는 제우스의 생각이 아니라 헤라클레스 본인의 생각일 것이다. 저 말을 하기 위해 각오를 했다는 듯 진중한 태도에서 그런 분위기가 엿보였다. 애당초 내가 여기서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은 제우스의 동의를 구했기 때문인데, 그 제우스가 내 도움이 필요해질 사정이 생겼다면 이렇게 헤라클레스를 보내는 게 아니라 자기가 직접 왔겠지.

그래서였다. 살짝 가벼운 태도로 대답하기 시작한 건.

“그나저나, 그런 걸 생각하고 있을 줄이야. 제우스도 참. 아직 애들도 다 안 컸는데, 시기상조라면 시기상조잖아.”

“하지만 아버지는 염려하고 계셨어요. 언제 이 국면이 변할지 모른다고.”

“그렇긴 하지. 우라노스, 내 아버지와 크로노스가 없다는 걸 외세에 들켰다간 이 땅은 순식간에 전쟁터가 될 테니까 말이야.”

그래, 제우스가 염려하는 건 사실 이해가 간다. 이쪽의 상황이 못 받혀줄 뿐이지. 게다가 외압.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신경쓰이는 게 하나 더 있다.

“그리고 최근엔 에데니아의 동향을 주시하고 계세요. 아무래도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모양이라서요.”

헤라클레스의 입에서 듣게 될 줄을 몰랐지만 신경쓰인다는 점은 그래, 에덴의 상황이다. 첩보원을 굴릴 수 없는 우리들의 형편에 제우스가 그 정보를 얻었다는 것은 제우스는 역시 만난 거겠지. 나처럼.

나는 조금 낮은 톤으로, 내가 신경쓰고 있던, 헤라클레스가 언급한 문제를 화제삼았다.

“바벨 탑.”

내가 그 단어를 입에 담자 헤라클레스는 놀란 듯 중얼거렸다.

“알고 계셨네요······.”

“은근히 소문이 모이는 동네니까. 여기, 이 가게가 그 중심에 있기도 하고.”

사실 거짓말이다. 둘러댄 변명이다. 내게 ‘바벨 탑’ 이야기를 해준 인물은 따로 있다.

“아무튼 그런 형편이라, 조금이라도 더 힘을 얻었으면 했던 거예요.”

“그래서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네.”

나는 조용히 생각에 빠졌다. 생각에 빠졌다기보단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내가 그동안 아테네에서 장사하는 것에 신경을 쓰느라 내던져두고 있었던 이 세력의 객관적인 상황이 눈앞에 문제로 떠오른 기분이다. 제우스가 이 문제들을 잘 해결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건 둘째치고 만약 그게 염려가 된다 한들, 내가 이 문제에 손을 쓸 수 있을까? 모르겠다. 당장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제우스, 제우스 역시 지금 내가 하는 고민을 염두하고 있지 않았을까? 제우스 혼자만이었다면 신경쓰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 레아 씨가 보조해주고 있으니 이 문제에 신경 쓸 여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랬다면 분명 느끼고 있었을 터, 지금의 올림포스의 전력부족을. 사실 제우스는 내가 필요한 게 아닐까? 내게 도움을 요청하러 오진 못하더라도 내가 도와줬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여기에 신경을 집중하려는 찰나 나는 지금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내 생활에 내 스스로가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올림포스의 일을 직접 돕는 일과 지금의 내 일상을 유지하는 일. 평범하게 생각해 보았을 때 이 일들은 양립할 수 없는 일이라 일순간 기분을 잡쳐버리고 말았다. 뭘까. 나는 아직 올림포스에 가기 싫었던 걸까?

더는 생각할 기분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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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63화. 바벨 006. 마인의 행방 24.09.09 4 0 14쪽
63 62화. 바벨 005. 정산(2) 24.09.06 7 0 12쪽
62 61화. 바벨 005. 정산(1) 24.09.02 6 0 13쪽
61 60화. 바벨 004. 시련(4) 24.08.30 13 0 12쪽
60 59화. 바벨 004. 시련(3) 24.08.26 10 0 13쪽
59 58화. 바벨 004. 시련(2) 24.08.23 11 0 16쪽
58 57화. 바벨 004. 시련(1) 24.08.19 8 0 13쪽
57 56화. 바벨 003. 잠입 준비(3) 24.08.16 11 0 15쪽
56 55화. 바벨 003. 잠입 준비(2) 24.08.12 11 0 12쪽
55 54화. 바벨 003. 잠입 준비(1) 24.08.09 11 0 12쪽
54 53화. 바벨 002. 그 날의 기억 24.08.05 11 0 12쪽
53 52화. 바벨 001. 폭풍의 전조(3) 24.08.02 11 0 12쪽
52 51화. 바벨 001. 폭풍의 전조(2) 24.07.30 11 0 11쪽
51 50화. 바벨 001. 폭풍의 전조(1) 24.07.25 11 0 12쪽
50 49화. 2부 프롤로그(4) 24.07.22 13 0 13쪽
49 48화. 2부 프롤로그(3) 24.07.19 10 0 12쪽
48 47화. 2부 프롤로그(2) 24.07.15 11 0 12쪽
» 46화. 2부 프롤로그(1) 24.07.12 11 0 12쪽
46 45화. 2부 프롤로그(0) + 짧은 공지 24.07.08 14 0 15쪽
45 44화. 1부 마지막화 24.07.06 11 0 11쪽
44 43화. 1부 에필로그 (3) 24.07.04 12 0 12쪽
43 42화. 1부 에필로그 (2) 24.07.03 14 0 15쪽
42 41화. 1부 에필로그 (1) 24.07.02 11 0 13쪽
41 40화. 올림포스 015. 최종장 마지막(투지) 24.07.01 13 0 14쪽
40 39화. 올림포스 015. 최종장 일곱째(최종 국면) 24.06.28 12 0 15쪽
39 38화. 올림포스 015. 최종장 여섯째(역습의 전조) 24.06.27 11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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