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지워버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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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ra96
작품등록일 :
2024.05.10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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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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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2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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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바벨 001. 폭풍의 전조(3)

DUMMY

‘마인’의 개입, 만약 정신을 조작하는 계열의 능력을 지닌 마인이 있다면 그 남자의 그런 행동들이 앞뒤가 맞아 떨어지게 돼. 그 남자가 벌이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돼. 남자는 자신의 이득이 없는 일을 타의에 의해서 강제로 해왔던 것이고 그걸 강제하던 사람이 ‘정신조작 계열 권능을 지닌 마인’이었기 때문에 이 강제를 거스를 수 없었던 것이야.

만약, 이 마인이 지금까지 나나 다른 천사들이 해치웠던 다른 임무에도 개입했었다고 한다면, 전국적으로 트러블을 일으키는 거대 집단의 꼬리를 잡을 수 없었던 이유 역시 설명할 수 있어.

문제들을 일으켰던 사람들이 모두 이 남자처럼 권능에 당했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켰던 것이라면, 애당초 내 상정을 바탕으로 내가 추적했던 조직적인 흐름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포착할 수 없었던 게 당연해.

이들 사이에 의사소통 따위는 필요가 없으니까 꼬리를 잡을래야 잡을 수 없는 게 당연하지. 그들 꼭두각시들은 모두 권능의 시전자인 한명의 ‘마인’, 그 마인의 의지대로 움직였을 뿐이니까.

나는 단순히 문제를 틀리고 있었던 거야. 문제의 답이 나오지 않는 게 문제를 푸는 방법이 틀렸다는 것이었던 거야. 그런데 그런 줄도 모르고 답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그 풀이를 붙잡고 있었으니 제대로 된 정답을 도출해낼 수 없었던 게 당연했지. 결국 하던 풀이를 완전히 집어던지고 새 풀이를 작성하는 게 정답이었다는 이야기.

마을에서의 임무를 마친 나는 그 다음 임무부터 ‘권능에 당한 사람’을 찾기 시작했어. 그때 봤던 그 남자 같은 행동을 하며, 그 남자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들을 찾았어. 정답을 찾아내는 풀이 방식을 찾아내고 나면 문제의 난이도가 내려가는 건 당연지사.

아니나 다를까, 몇몇 임무들에서 넓은 시각으로 시간을 쏟으니 그런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었고 그런 사람들이 하던 행동들 역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행동들이 쌓이면 이상한 곳에서 이상한 문제가 터지기 충분해 보이는 일들이었어.

이 일의 흑막인 마인은, 4년간 쭉 여럿 사람들을 조종해 이런 일을 벌여왔던 거야. 그게 아니라면 우리들이 4년간 겪어왔던 격무의 이유를 설명할 수 없어. 도대체 어디서부터 뭘 위해 이런 일을 꾸몄는지는 모르겠지만 4년동안이나 그 흑막의 손에서 놀아났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절로 돋았지.

과연 그 마인이 이 모든 인과를 예상하고 이런 일을 벌였을까? 어떤 일을 반복적으로 시키면 어떤 문제가 생길 지 예상하고 이런 계획을 세웠을까? 아니, 단언할 수 있어. 절대로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어. 4년간 4명의 천사들이 해치웠던 수십 건의 임무들, 흑막의 개입 없이 자연 발생했을 임무들을 제외해도 여전히 수십 건의 임무들, 이 임무들의 인과를 한 사람의 마인이 설계했다는 건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일이야.

그럼에도 그 현상은 실제로 일어났지. 그렇다는 건, 단지 그 마인이 알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야. 사소한 일이라도,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실행하면 언젠가 그것이 문제가 되어 다른 문제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어떤 문제가 일어나는지는 그 마인의 입장에서 알 바가 아니었던 거야. 단지 어떤 문제든 문제가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그 마인에게 중요했던 거야. 그러니까 이런 식의 일을 저지른 것이야. 자신도 예상할 수 없는 문제의 씨앗을 그저 마구잡이로 뿌리고 다니기만 한 거야.

이 일은 그랬으니까 일어난 일인 거야.

그런데말이야, 그럼 뭘 위해서?

그 마인은 도대체 왜 이런 귀찮은 일을 벌인 것일까? 마구잡이로 뿌린 문제의 씨앗들 사이에, 자신이 원하는 진정한 문제를 심기 위해서? 정세를 혼란하게 하고 무언가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 아니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목적을 위해서?

그렇게 흑막의 의도를 헤아리려던 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한 가지 의문. 스쳐 지나간 순간 이게 너무나도 치명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생기는 바람에 이것 의외의 다른 걸 생각할 수조차 없었던 의문.

과연 성녀님은 4년간 이어진 이 상황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4년동안 수십 건의 임무를 끝없이 천사들에게 내렸던 성녀님이, 이 현상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던 걸까?

우리들이 이 현상에서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던 이유는 말했듯 두가지, 하나는 성녀님의 명령을 받아서 움직인다는 과정 탓에 성녀님을 향한 우리들의 경의가 임무 자체에 사명감을 주었다는 거야. 우리는 이 임무들을 ‘해결’하는 것에만 집중했지 임무 그 자체에 의문을 가진다는 생각을 하질 못했어.

그리고 두 번째, 임무 외에 다른 것들에 신경을 쓸 수 없었을 정도로 바빴다는 것, 여유가 없었다는 것. 그런데 이 애로사항들은 임무를 수행하는 입장인 우리들이기 때문에 생겼던 애로사항이지 성녀님의 입장에선 전혀 겪을 일이 없는 애로사항이라는 거야.

한마디로 성녀님은 4년간 만전의 상태였을 게 분명했다는 거야. 그런데 이 꼴이야. 내가 아는 성녀님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 도대체 성녀님이 4년동안 뭘 한 건지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었어. 그리고 성녀님이 이 4년간 한 것은 의외로 단순한 일이었지. 우르크 시가지에 매일같이 ‘어떤 탑’을 쌓아 올리는 일을······.

매일같이 무의미한 일을 반복적으로, 그것도 평소의 내가 알던 총기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나나 다른 천사들처럼 어리석은 노예들이 눈치채지 못했던 점을 잡아내는 일 없이. 그래, 논할 것도 없이 성녀님은 내가 여러 곳에서 봐왔던 흑막의 꼭두각시들과 같은 행동들을 하고 있으셨던 거야.

‘아,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내 가슴은 강하게 이 생각을 부정했지. 하지만 ‘이게 말이 되는 일이다.’ 내 머리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어. 성녀님은 우리들이 4년간이나 격무를 이어가는 걸 부자연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던 게 아니야.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던 거야.

성녀님에게 ‘의지’가 있다면 성녀님은 그걸 부자연스럽게 생각하지 않으실 위인이 아니니까. 지금까지 이 일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으셨다는 건 바꿔 말하면 성녀님 역시 ‘타의’로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 돼. 설마, 설마, 설마······. 설마! 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었어.

직감의 레벨이야. 확신할 수 있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어. 이 직감이 맞아떨어진다면 우리 천사들의 충심은 충직하다는 것을 넘어 어리석음이었음이 분명해. 방금 전에 말한대로 우리들은 그저 어리석은 노예였을 뿐이야. 성녀님의 완전무결함을 의심하지 않았던 어리석음, 그 어리석음이 성녀님을 4년 동안이나 흑막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게 했다는 사실. 눈앞에 닥친 그 사실이 내 가슴을 짓눌렀지.

에덴으로 돌아가 확인해야만 했어. 성녀님의 모습에서 다른 꼭두각시들과 마찬가지로 ‘조종당하는 것만 같은 위화감’이 느껴지는지 확인해야만 했어. 심증으로 느낀 위화감으로 단정짓는 게 아니라, 직접 대면해서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건, 나는 내 직감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몰라.

그 전에, 만약 이 직감이 사실이라고 가정했을 때, 그렇다면 흑막은 누구인가? 그것을 정의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어. 그리고 내가 루시퍼를 범인으로 지목했던 이유, 나는 그 이유들을 생각해낼 수 있었지.

모든 것들의 앞뒤가 맞아떨어지고 말았어. 가장 오랫동안 살아온 천사인 루시퍼라면 누군가가 의미 없이 어떤 행동을 반복했을 때, 그것이 쌓이고 쌓여 다른 문제를 야기할 것이란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

흑막이 루시퍼라고 한다면 흑막이 그런 문제의 씨앗을 마구잡이로 뿌리고 다녔던 이유 역시 납득이 가능했어.

루시퍼의 본 목적은 ‘성녀님을 지배해서 탑을 올리는 것’이었고 그것에 방해가 될 우리들을 성녀님에게서 떼어놓기 위해서 그런 문제들을 뿌리고 다닌 거야.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정말로 중요하지 않았던 거야. 어려운 일이 벌어진다면 오히려 좋았어. 그 임무 때문에 우리들의 시간이 더 낭비되는 셈이니까.

루시퍼가 그 탑을 올려서 무엇을 하려는지까진 명확히 알 수가 없었지만 적어도 이전과 같은, 결과 따위 생각하지 않은 막무가내 파종이 아니라는 것 하나는 확실해. 루시퍼가 ‘그 탑’에 심은 씨앗이 한낱 잡초 씨앗이 아니라는 건 분명해.

‘그 탑’을 통해 이루려고 하는 것에는 분명한 목적, 흑막인 루시퍼가 원하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결과’가 있을 게 분명해. 에데니아 곳곳에 문제를 일으키고 성녀님에게 권능을 사용하면서까지 이루려는 목적이야. 루시퍼가 그렇게까지 해서 원하는 결과는, 결코 좋은 결과라곤 할 수가 없겠지.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루시퍼의 눈에 띄지 않게 다른 천사들과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어. 미카엘, 라파엘, 우리엘. 격무에 시달렸던 세 명의 천사들과 전언을 주고받는 식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어. 격무에 시달리지 않았던 메타트론은 정보를 공유하는 대상에서 제외했지, 격무에 시달리지 않았다는 것은 흑막과 한 패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존재한다는 것이니까. 애초에 그 아이가 루시퍼와 같이 다니는 모습을 제법 보기도 했었고 그 아이도 용의선상에 올리기 충분하다고 생각했어.

나는 내가 파악한 현 상황을 다른 천사들에게 설명했고 아니나다를까, 다른 천사들의 임무에서도 내 임무와 마찬가지로, 조종당하는 듯한 사람들을 찾을 수 있었다는 연락을 받을 수 있었지.

내 추측에 더 확신을 가지게 된 나는 우선 미카엘과 우리엘이 에덴에 가까이 오는 걸 차단했어. 둔한 면이 있는 미카엘과 아직 경험이 모자란 우리엘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태연히 있는 게 어려웠으니까 둘에겐 평소와 다름없이 격무에 힘써달라는 이야기를 했어.

우리들의 태도가 변한 걸 흑막에게 들킨다면 형세가 변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야. 최악의 경우 성녀님이 당한 것처럼 우리들 중 누군가가 추가로 당하게 된다면, 그건 정말,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최악의 일이겠지. 정말 최악인 일은 따로 있었지만······.

아무튼, 그것이 2주 전의 일, 그리고 그 무렵, 미리 연락을 주고받던 나와 라파엘이 임무 복귀 시기를 조절해 동시에 에덴으로 돌아왔을 때, 임무 보고를 하며 마주한 성녀님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을 때, 그 모습에서 다른 꼭두각시들과 같던 ‘위화감’을 포착했을 때, 속으로는 절망했지만 겉으로는 차분히, 타개책을 고심해보려던 무렵에 라파엘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버리고 만 거야.

루시퍼가 흑막이라는 확증을 잡겠다며, 또 그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보겠다며 별개 행동을 떠났던 라파엘이 돌아와 내 눈앞에서 한 줌의 재가 되어버렸을 때, 내 마음 속 꾸준히 타오르고 있던 한 줌의 투지가 빛을 잃어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내 마음이 꺾일 뻔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어. 라파엘이 죽었다는 건 너무나도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라파엘이 ‘그런 형태’, ‘재’로 변하며 죽었다는 게 내 머릿속에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오르게 만들었던 거야. 그래, 내가 보여줬던 것. 물질을 창조하는 권능의 소유자가 자신의 힘으로 창조했던 물질을 무로 돌릴 때 일어나는 현상. 그것이 라파엘에게서 나타났다는 건······.

나는 지금까지 내가 성녀님의 피를 이은 자식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었어. 그런데, 아니었던 거야. 우리들은 성녀님에게 무엇이었던 것일까. 아마 아피, 너라면 알고 있겠지.



작가의말

20240829수정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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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63화. 바벨 006. 마인의 행방 24.09.09 4 0 14쪽
63 62화. 바벨 005. 정산(2) 24.09.06 8 0 12쪽
62 61화. 바벨 005. 정산(1) 24.09.02 7 0 13쪽
61 60화. 바벨 004. 시련(4) 24.08.30 13 0 12쪽
60 59화. 바벨 004. 시련(3) 24.08.26 10 0 13쪽
59 58화. 바벨 004. 시련(2) 24.08.23 12 0 16쪽
58 57화. 바벨 004. 시련(1) 24.08.19 9 0 13쪽
57 56화. 바벨 003. 잠입 준비(3) 24.08.16 12 0 15쪽
56 55화. 바벨 003. 잠입 준비(2) 24.08.12 12 0 12쪽
55 54화. 바벨 003. 잠입 준비(1) 24.08.09 12 0 12쪽
54 53화. 바벨 002. 그 날의 기억 24.08.05 12 0 12쪽
» 52화. 바벨 001. 폭풍의 전조(3) 24.08.02 12 0 12쪽
52 51화. 바벨 001. 폭풍의 전조(2) 24.07.30 12 0 11쪽
51 50화. 바벨 001. 폭풍의 전조(1) 24.07.25 12 0 12쪽
50 49화. 2부 프롤로그(4) 24.07.22 14 0 13쪽
49 48화. 2부 프롤로그(3) 24.07.19 10 0 12쪽
48 47화. 2부 프롤로그(2) 24.07.15 11 0 12쪽
47 46화. 2부 프롤로그(1) 24.07.12 11 0 12쪽
46 45화. 2부 프롤로그(0) + 짧은 공지 24.07.08 14 0 15쪽
45 44화. 1부 마지막화 24.07.06 12 0 11쪽
44 43화. 1부 에필로그 (3) 24.07.04 12 0 12쪽
43 42화. 1부 에필로그 (2) 24.07.03 14 0 15쪽
42 41화. 1부 에필로그 (1) 24.07.02 12 0 13쪽
41 40화. 올림포스 015. 최종장 마지막(투지) 24.07.01 13 0 14쪽
40 39화. 올림포스 015. 최종장 일곱째(최종 국면) 24.06.28 12 0 15쪽
39 38화. 올림포스 015. 최종장 여섯째(역습의 전조) 24.06.27 12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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