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지워버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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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ra96
작품등록일 :
2024.05.10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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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9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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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2부 프롤로그(3)

DUMMY

작년 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내게 있어서 어머니는 무척이나 소중한 존재였지만 신기하게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슬프다는 감정이 하나도 들지가 않았다. 그것은 분명 평온한 얼굴로 미소지으시며 눈을 감으신 어머니의 임종을 앞에 둔 내게 어머니를 향한 단 하나의 후회도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조금 공허함이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어머니의 자리가 빈 내 일상이 다른 누군가가 스며들기 쉬워진 상태라는 것을 당시의 나는 의식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건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던 사실이기도 했다.

공허함은 있었지만 슬픔은 없었다. 나는 그저 언제나처럼 내 일을 할 뿐이었다. 가게를 돌아다니며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 분위기를 띄워주는 일이다. 주점의 분위기는 매출과 관련이 있다. 분위기를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은 내게 즐기는 법을 배워 가게의 고객이 된다. 이들이 느낀 경험은 소문이 되어 새로운 고객을 모은다. 가게 안에서 내가 하는 일은 그런 일이었다.

나도 그 열기를 즐기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일이기도 했다. 낮에는 가게의 내실 관리, 영업 시간에는 그런 접객. 당연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을 맞대는 일이다.

그런 삶을 사는 동안, 내가 내 일에 전념하는 동안 내게 관심을 표현하던 남자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단지 그동안 내가 그 관심에 응답하지 않았을 뿐. 뭐랄까, 연애라는 행위에 관심 자체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살면서 그런 고민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것은 아마도 아닐 거다. 나도 사람인데 관심을 가졌던 순간 자체는 있겠지 그런데 기억엔 없다. 기억 속을 뒤져본다면 찾을 수는 있겠지만 그럴 필요성을 느껴본 적은 없다. 그리고 그건 가게에서의 내가 일에 충실히 살았던 것처럼, 에덴에서의 내가 역할에 충실하고 싶었던 것처럼 내 인생이 다른 일들로 가득 찼었다는 이야기겠지.

그런데 그랬던 내가 관심이라는 걸 가지게 된 일이 있었다. 아니, 그걸 관심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일’을 겪게 될 일이 있었다. 어머니의 빈자리가 만들어낸 공허함이 그 일을 겪은 계기였다. 그 상대인 남자는 전부터 내 가게를 자주 찾아왔던 제법 잘생긴 청년이었다.

내 일의 특성 상 내 손님들은 내 술친구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남자도 다르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 남자는 눈치가 좋았던 편이었던 것 같다. 내가 남자에게 관심이 없었을 무렵엔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했었던 그 남자는 내가 어머니를 떠나보낸 이후에 나와의 거리를 좁히려 했으니. 내 태도에서 무언가 변화를 눈치챘을지도 모르고 단순히 마음의 빈틈을 노려보려는 전략이었을지도 모른다.

일하는 동안 손님으로 찾아왔었던 그 남자와 어울리던 것은 꽤나 즐거웠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당시의 내가 제법 즐거운 마음으로 그 남자와 어울렸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다.

‘기억’을 다루는 권능을 지닌 내가 오래되지도 않은 ‘내 기억’을 이야기하는데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는 이유. 그건 내가 그 일을 ‘기억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그 남자와 어울렸던 기억을 내 기억속에서 모두 ‘지웠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그 남자와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저 소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말할 수밖에 없다. 제3자 시점에서 바라보는 남일 같은 이야기다. 그 일은 분명 내 피와 살이 된, ‘내 경험’이 맞지만 지금의 나는 내게 그 경험을 안겨준 남자의 이름조차도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그런 선택’을 하는 인간이라는 것. 이 이야기를 통해 헤라클레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단지 그것뿐이다.


***


매일같이 그 남자와 나는 가까워졌었다. 정신차려보니 그 남자는 자연스레 내게 구애를 하고 있었고 그것이 싫다고 생각되지 않았던 나는 그와의 교제 관계를 수락했었다. 나는 그 일 자체에 불만이 없었지만 그 이후의 내 삶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는 게 그 남자 입장에서는 문제였던 것이다.

내 일상은 바뀌지 않았다. 낮에는 가게의 내실 관리를 하고 밤에는 접객을 하며 술판을 즐겼다. 그것도 매일같이. 그는 용기있게 내게 고백했고 나는 그것을 수락했지만 내가 그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은 손에 꼽을만큼 적었던 것이다.

그것이 쌓이고 쌓인 어느날 나는 그와 다툴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싸운 게 아니라 호소에 응했다고 해야 하나. 나와의 시간을 갖고 싶다던 그의 말에 응해 일을 조금 줄였던 것이다. 그것을 계기로 원만한 사이로 돌아가는 것에는 성공했다. 다만 내 마음 속엔 한 가지 의문이 자라나고 있었다. 당시엔 그 의문을 나는 정의내릴 수 없었다. 살면서 처음 겪어본 종류의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것이 무잇인지 나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자라나기 시작한 의문의 씨앗이 꽃봉오리를 피우는 건 그렇게 먼 날의 일이 아니었다.

그 남자의 불만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내가 스킨쉽에 인색했던 것에 아쉬워하는 눈치였긴 했지만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나는 내가 왜 그 남자와의 스킨십에 인색했는지 생각하지 않았었다. 애당초 경험도 없었던 터라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뭔지 모를 불편함이 계속되던 나날, 나는 그 남자가 자신의 친구들과 하는 대화를 엿들을 수가 있었다. 정말이지 우연한 기회였다. 때는 그 남자의 생일, 저녁 시간대에 그 남자의 집에서 주변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기에 빠른 퇴근을 하고 남자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평범한 인간이 아닌 내 감각이 집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소리를 내 귀에 들려준 순간, 그 화제를 인식한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멈춰 서서 그 대화를 엿듣기 시작했다.

남자는 자기가 그리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와의 사이에 아이를 가지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오늘은 나와 더 깊은 관계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조금 부끄럽다는 듯이 하기도 했다.

그 이야기가 내게 단 하나도 와닿지가 않았다는 걸 그 자리에서 깨달은 나는, 내 마음속에서 자라나던 씨앗의 정체를 깨닫는다.

‘미래’라, 나도 분명히 그런 걸 생각하며 살았던 시기가 있었다. 당장 자유가 되었을 무렵만 해도 앞으로의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하며 즐거워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일까. 내가 미래를 그리지 않게 되었던 것은. 그저 하루하루 충실하게 사는 것에 집중해 매일 매일을 즐기는 것에 최선이었던 나. 나는 왜 그렇게 살았을까?

그렇게 사는 게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이 순간 내가 깨달은 몇 가지 사실 중에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들어있었을 뿐이다. 나는 미래를 그리지 않았던 게 아니다. 미래를 그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당장에 아무런 걱정도 없었기에, 남들보다 수 배는 긴 미래를 지금부터 생각할 이유가 없었기에. 나는 오로지 순수하게 현실에만 집중했고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것에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걸 깨달을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그 날 그 남자가 했던 말 속에 있었다. 그 남자가 그리던 미래, 그 남자가 하고 싶어하던 것,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것들 중 어느 것 하나도 내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이야기가 없었다. 내가 그 남자와의 스킨십에 인색했던 이유는 연애가 처음이라 부끄러워서 같은 이유가 아니었다. 그냥 그러고 싶지 않았으니까 안 했었다는 뿐인, 지극히도 간단한 이유였다.

나는 그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분명히 그와 교제하던 기간동안 그가 뭘 하고 있는지 신경을 써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식한 순간에 내 마음속에서 발아했던 의문의 씨앗에 한 송이 꽃봉오리가 맺히고 만다. 나는 그동안 하고 싶지도 않았던 일을 싫은지도 모르고 했었다는 걸 깨달았다. 꽃봉오리의 정체는 거기서 태어난 ‘불편함’이라는 감정이었다.

그런데 정말이지 인생이란 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의문의 꽃봉오리가 가져온 산물이 ‘초월’이라는 열매가 될 줄이야. 나라는 인간에 대한 내 작은 깨달음은 나를 초월하게 만들었고 초월한 내가 그 초월을 통해 무슨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 깨달았을 때, 나는 그 남자의 집에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발길을 돌려 우리 집으로 향했다. 그 남자에 대한 모든 감정이 식어버려 차분해진 마음으로 생각 정리를 했다. 그리고 다음날 나를 찾아와 잔뜩 기분이 상한 채로 화내던 그 남자를 보자마자 내가 한 일은 그 남자의 화를 들어주는 게 아니라 그 입을 막아버린 것이다. 새로이 초월한 권능, ‘망각’을 사용해서.

그 남자에게 쓸 에너지가 더는 없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새, 그 남자와 어울리는 동안 그 남자에게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쏟았으니까. 내 일을 줄이고 그와 어울리던 일은 싫지도 않았지만 즐겁지도 않았었다. 어젯밤 그 사실을 깨닫고 마음이 떠나버렸던 내가, ‘망각’을 통해 남의 기억을 지울 수 있게 된 내가 그 남자와 말다툼을 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그와 어울렸다는 사실을 ‘없었던 일’로 드는 편이 내 발품을 좀 더 팔더라도 더 편한 일이었다.

나는 그 남자에게서 나와 관련된 기억을 모두 지우고, 그 남자의 기억 속에서 나와 그 남자의 관계를 아는 모든 이들을 알아내 그들 역시 찾아다니며 기억을 지웠다. 그들 중 그들의 지인에게 이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다면 그들 역시 찾아가서 기억을 지웠다. 내 주변 인물들 중에서도 이 관계를 아는 인물들의 기억을 지웠다. 가게를 방문하던 손님들의 9할 이상이 알고 있는 일, 나는 장기 휴가를 내고 하루에도 수십명씩, 많으면 백 명 이상의 사람들의 기억을 지웠다. 결과적으로 나는 수백 수천명의 기억을 지워야만 했지만 이 일은 은근히 보람찬 일이기도 했다. 그야 확신할 수 있었던 걸. 이 일이 끝나면 이 일로 나를 귀찮게 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 것이란 걸.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난 마지막, 나는 마지막으로 내 기억을 지웠다. 내 머릿속에서 그와 있었던 일들 중 즐거웠던 일들을 모두 지우고 그의 이름 역시 지웠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 깨닫게 된 계기들과 그 계기를 통해 내 마음 속에 자라난 의문의 꽃 한송이, 나는 내 머릿속에 그것들만 남긴 채 내 기억 속에서 그 무렵의 일들을 모두 지워버리고 말았다.

그 남자가 나를 바라보며 그렸던 미래는 모두 ‘오지 않는 일’이 되었다. ‘오지 않는 일’이 되었던 것뿐만이 아니라 그 남자에게 있어선 ‘온다는 생각조차 한 적 없었던 일’이 되기도 했다. 그 남자가 나를 보며 그린 미래뿐만이 아니라 그 남자가 그런 미래를 그렸다는 과거 자체도 없었던 일이 된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 남자는 종종 가게에 찾아와 나와 어울리기 전처럼 나를 대한다. 나 역시 같다. 여전히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만 가게에서 그와 눈을 마주쳤을 때 다른 손님에게 건네는 것과 같은 미소를 짓는다. 그는 이제 내게 한명의 손님일 뿐이니까.

이상이 이웃들을 등쳐먹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장사하는 데 권능을 쓰지 않았던 내가 수백 수천명의 이웃들에게 권능을 휘둘렀던 이유다. 나는 내가 편할 수 있다면 남들 따위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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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63화. 바벨 006. 마인의 행방 24.09.09 4 0 14쪽
63 62화. 바벨 005. 정산(2) 24.09.06 8 0 12쪽
62 61화. 바벨 005. 정산(1) 24.09.02 7 0 13쪽
61 60화. 바벨 004. 시련(4) 24.08.30 13 0 12쪽
60 59화. 바벨 004. 시련(3) 24.08.26 10 0 13쪽
59 58화. 바벨 004. 시련(2) 24.08.23 12 0 16쪽
58 57화. 바벨 004. 시련(1) 24.08.19 9 0 13쪽
57 56화. 바벨 003. 잠입 준비(3) 24.08.16 12 0 15쪽
56 55화. 바벨 003. 잠입 준비(2) 24.08.12 12 0 12쪽
55 54화. 바벨 003. 잠입 준비(1) 24.08.09 12 0 12쪽
54 53화. 바벨 002. 그 날의 기억 24.08.05 12 0 12쪽
53 52화. 바벨 001. 폭풍의 전조(3) 24.08.02 12 0 12쪽
52 51화. 바벨 001. 폭풍의 전조(2) 24.07.30 12 0 11쪽
51 50화. 바벨 001. 폭풍의 전조(1) 24.07.25 12 0 12쪽
50 49화. 2부 프롤로그(4) 24.07.22 14 0 13쪽
» 48화. 2부 프롤로그(3) 24.07.19 11 0 12쪽
48 47화. 2부 프롤로그(2) 24.07.15 11 0 12쪽
47 46화. 2부 프롤로그(1) 24.07.12 11 0 12쪽
46 45화. 2부 프롤로그(0) + 짧은 공지 24.07.08 14 0 15쪽
45 44화. 1부 마지막화 24.07.06 12 0 11쪽
44 43화. 1부 에필로그 (3) 24.07.04 12 0 12쪽
43 42화. 1부 에필로그 (2) 24.07.03 15 0 15쪽
42 41화. 1부 에필로그 (1) 24.07.02 12 0 13쪽
41 40화. 올림포스 015. 최종장 마지막(투지) 24.07.01 13 0 14쪽
40 39화. 올림포스 015. 최종장 일곱째(최종 국면) 24.06.28 13 0 15쪽
39 38화. 올림포스 015. 최종장 여섯째(역습의 전조) 24.06.27 12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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