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급 자동전투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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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지구온난화
작품등록일 :
2024.06.07 18:51
최근연재일 :
2024.09.13 22:00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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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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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탑 (2)

DUMMY

*


계속해서 걸었다.

오랜만에 천천히, 주변을 구경하며 걸었다.

숲의 쌉싸름한 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산새가 지저귀고 사슴이 가벼운 걸음으로 숲을 누볐다.


이런, 자유로운 영혼의 사슴은 안타깝게도 배가 고픈 멧돼지에 의해 최후를 맞이했다.


“멧돼지 구이도 맛있을 것 같은데···”

“?!”


내 기척을 눈치 챈 멧돼지는 펄쩍 놀라 저 멀리 달아났다.

보통 인간에게 달려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왜 도망갔을까.


‘여왕벌의 가호: 포식자의 공포를 발동 중입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마저 걸었다.

EX급 자동전투를 얻은지 고작 2주밖에 안되었지만 지쳤다.

일이 급속도로 몰아친 탓일까.


‘피라미드의 무덤의 경험치와 보상을 정산 중입니다···.’


아직도 정산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여전히 A급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시선을 돌려 빼곡한 나무들 사이로 지는 해를 바라봤다.

붉은 석양이 하늘을 가득 메우다가 이내 어둠이 찾아왔다.

귀뚜라미 소리가 숲에 울리고 공기가 차가워졌다.

나는 개의치 않고 걸었다.


동이 트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대충 쓰러져 잠에 들었다.

다시 일어나 걸었다.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달이 지고 해가 뜨고···

나는 여전히 숲 속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실을 마주했다.


퉁!


숲의 끝에 다다랐다.

다만 투명한 벽에 가로막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벽 너머의 숲은 끝없이 펼쳐져 있는데 갈 수 없는 게 아쉬웠다.


‘해당 권역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1층의 끝에 도달했습니다.’


확실히 현실은 아니다.

지금 나는 빈사 상태고 사실 내 뇌가 멋대로 꿈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잠시 고민하다 털어냈다.

그만두자.


이런 진지하고 심오한 고찰, 어울리지 않는다.

언제나 그랬듯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땅을 긁던 나뭇가지를 대충 내팽겨쳤다.

왔던 길을 되돌아갈 것이다.


“자동 모드 활성화.“


‘자동 모드를 활성화합니다. 길안내를 시작합니다.’

‘목적지: 초심자의 광장의 베르만 상인’


새벽의 정제된 공기를 힘껏 들이마쉬며 달렸다.

주변의 풍경이 달리는 기차에 탄 것처럼 빠르게 변했다.

5분도 안 되어 며칠 전에 떠났던 마을이 보였다.

며칠 거리를 5분 만에 주파한 내 스킬이 새삼 대단하게 다가온다.


광장에 들어서자마자 골목으로 들어갔다.

시간은 새벽 6시.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가 대다수였다.

그런데 이 시간에 환하게 불을 밝힌 채 문을 연 가게가 있었다.


내 목적지였다.


딸랑-


“계십니까?“


작은 무기 상점.

조금 낡은 것 빼고는 평범했다.

물론 현실에 있을 것 같지는 않고, 중세 시대 게임에나 나올 법한 분위기와 인테리어였다.


“이 시간에 누구쇼?“


-

열람 권한 허용

이름: 베르만

종족: 크툴루와 마족의 혼혈

등급: C

레벨:20

-


크툴루와 마족의 혼혈치고는 멀쩡하게 생겼다.

마족 유전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았다.


“원래 아침 일찍 문을 여나요?“

“그럼. 난 아침 잠이 없수.“

“무기를 사려고 왔습니다. 철갑옷 10개, 이가 나간 검 10개, 드래곤의 배설물 10개, 독거미의 실 10개 주십시오.“


베르만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무기 상점이라 드래곤이랑 독거미 뭐시기는 없다네.”

“주십시오.”

“···”


막무가내로 우기는 것처럼 보여도 다 이러는 이유가 있다.


-

목표 달성 조건

첫 번째. 무기 상점의 베르만에게 다음의 항목들을 각각 10개씩 구매하시오.

-

-

개당 적정가: 철갑옷 3000원 / 이가 나간 검 500원 / 드래곤의 배설물 100원 / 독거미의 실 10원

-


베르만은 철 갑옷과 이가 나간 검 10개를 자루 째로 내밀었다.

내가 받아 들자, 그는 다시 창고로 사라졌다.

잠시 후, 베르만은 검은 자루를 두 개 가지고 나왔다.


“자. 여기 있수. 이게 있는 건 어떻게 알고 달라고 한 건지···총 10만원이요.“

“3만원.“

“엉터리구만. 가쇼.“

“시세 다 알고 있습니다. 3만원.“

“끙···“


나는 즐겁게 어깨에 자루를 짊어지고 가게를 나왔다.

이제 이걸 가지고 뭘 해야 하지?


‘첫 번째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다음 목표를 공개합니다.’

‘켈빈 5번가의 대장장이 수에게 가시오. 500m 남았습니다.‘


대장간으로 향했다.

장인들은 보통 새벽부터 나와서 일한다던데, 내 생각처럼 대장간은 영업 중이었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뜨거운 열기가 새어나왔다.

안에서는 철을 다듬는 거친 소리가 들려왔다.


캉! 캉! 카앙!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더운 공기가 훅 끼쳐왔다.

열심히 용광로 앞에서 망치로 새빨간 철을 두들기던 대장장이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자루 4개를 내밀었다.


“오마카세로 부탁드립니다. 느낌 가는 대로 만들어주십시오.“


생전 처음 듣는 주문에 당황하던 것도 잠시, 대장장이 드워프 수는 이내 자루들을 들고 가서 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열기를 피하기 위해 밖에 나가서 기다렸다.

1시간 후, 대장장이는 쭈뼛거리며 나를 불렀다.

그가 내민 것은 까만 잿더미였다.


“실패했다. 돈은 안 받는다. 미안하다.”

“대작입니다. 감사합니다.”

“?”


이미 목표는 달성되었다.


‘신묘한 가루 10kg를 획득했습니다. 두 번째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나는 결단코 돈을 받을 수 없다는 대장장이의 손을 억지로 벌려 1000원을 쥐어주었다.

위협적으로 망치를 휘두르며 이건 장인의 수치라며 외치는 수를 뒤로 하고 잿더미를 자루에 고이 담아 나왔다.



‘세 번째 목표를 공개합니다.’

‘초심자의 탑 진입 퀘스트: 훈련소장 실버의 퀘스트를 받으십시오.‘


길안내는 나에게 아까 지나가며 봤던 훈련장으로 안내했다.

훈련용 나무 인형이 여기 저기에 널려있었다.

낡은 목검이 구석에 잘 정돈되어 있었다.


“하나! 둘!“


익숙한 인영 하나가 검을 열심히 휘두르고 있었다.

처음 왔을 때, 오크에게 혐오를 표하던 엘프였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열중하던 그는 잠시 행동을 멈추고 땀을 닦았다.


“퀘스트를 받으러 온 건가?”

“네.”

“알겠다. 퀘스트는 신묘한 가루 10g을 가져오는 것이다. 조합은 알아서 하고···”

“여기 있습니다.”


나는 10kg짜리 자루를 내밀었다.

엘프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자루를 받았다.

그는 자루를 열어보더니 놀라서 눈이 동그래졌다.


“10, 10kg? 어떻게 이렇게 많이···”

“빨리 2층으로 올려주시죠.”

“아니, 그럴 수 없다.”

“네?”


엘프는 굳은 결심을 한 듯, 콧김을 내뿜었다.

그는 가루를 한 움큼 집더니 바닥에 뿌렸다.

나는 옷에 묻지 않기 위해 뒤로 물러났다.


“네 녀석은 고작 2층에 머물 수준이 아니다. 그 이상으로 가야 한다.”


엘프는 10kg에 큰 감명을 받은 듯 싶었다.

그리고는 손으로 이상한 동작을 반복하며 주문을 외웠다.


“···권한으로 인간 한 명을 탑의 권한으로 위로 올리기를 원하노니···“


바닥에 퍼져있던 잿더미가 갑자기 마법진의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이름처럼 신묘한 가루는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근데 그 빛이 정도가 과했다.

범위가 점점 넓어지더니 내 주위를 감싼 빛이 새벽의 하늘을 환하게 밝혔다.


“이게 맞습니까?“

“행운을 빈다.”


엘프의 인삿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빛에 휩싸여 새로운 층으로 이동했다.


‘10층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울창한 수풀을 손으로 걷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주변에 있는 가장 큰 나무 위로 올라갔다.

탁 트인 시야에 들어온 것은 끝없는 정글이었다.

특이한 점은 중간 지점 즈음에 성이 있었고, 생명체가 사는 것처럼 보였다.


‘목적지: 고블린 성으로 이동합니다.’


중세 시대 왕족이 살 법한 고성은 고블린의 거주지였다.

아마도 인간이 살던 옛성을 탈취하거나, 아니면 살고 있는 인간들을 몰아내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닌지 추측된다.

밑에서 힘들게 빡빡한 수풀을 하나하나 베어가며 이동하는 것보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점프해가며 이동하니 속도가 훨씬 빨랐다.


탁-


성문 앞에 도착했다.

나는 정중하게 다가가 문을 두드리기로 결심했다.


‘근력을 10으로 조정합니다.’


콰-앙!


굳건한 철문은 산산조각난 채 종이조각처럼 이리저리 휘날렸다.

이 정도면 과하게 신사적인데, 고블린들이 나를 너무 환대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인간이 왔다!”

“인간놈이 왔어!”


의외로 멀쩡하게 사람 말을···아, 한국어 패치 중이었구나.

고블린들은 금새 대열을 갖추고 내 앞을 막아섰다.


-

A급 병사 고블린 (Lv.10)

개체 수: 100마리

-


고블린 병사들은 방어구도 잘 착용했고, 무기도 세심히 관리한 게 티나는 모양새였다.

내가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서 고블린을 과소평가한 것일까.


“황제 폐하 납시오!”


자신의 몸보다 큰 북을 친 고블린이 크게 소리쳤다.

그 소리에 고블린 무리가 양 옆으로 갈라지며 길이 만들어졌다.

오호라? 고블린 황제도 있어?

정말 자기가 인간 황제라도 되는 것처럼 복식을 갖추고, 관을 쓴 고블린이 나타났다.


그러자 모든 고블린들이 황제에게 고개를 숙였다.

황제는 과장된 걸음걸이로 턱턱 오더니 내 앞에 우뚝 섰다.


“흠! 감히 인간이 나의 허락도 맡지 않고 멋대로 성에 침입하다니!”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몰라 나는 떨떠름한 표정 그대로 있었다.

상황극에는 면역이 없었다.

정적이 지속되자 당황한 고블린 황제는 얼굴이 붉어지며 콧김을 내뿜었다.


“인간! 인간이 감히 황제의 말을 무시해?! 여봐라, 인간을 처참하게 도륙내 죽여라-!”


내가 그 정도로 잘못한 건가?

황제는 더러운 가래침을 내 발 앞에 뱉고는 짧은 다리를 방정맞게 흔들며 성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새 고블린 병사들의 얼굴이 사람 한 명 죽일 정도의 살기를 띠고 있었다.

그 때 반가운 알림이 들렸다.


‘목표 달성 조건이 생성됩니다. 고블린 성 내부에 갇힌 황녀와 황자를 구하시오.’


황녀와 황자?

고블린 황제의 자식들을 내가 왜 구해야 하는,


“학대인가.”


그렇다면 말이 바뀐다.

눈 앞의 간교한 고블린 자식들을 1분 컷하고 가서 구해준다.

덤으로 이 성과 성의 재물도 차지한다.

고블린 병사들이 병기를 들고 전진했다.


“전진----!”


‘A급 무한의 창을 사용합니다.’


나는 제자리에 서서 손을 천천히 위로 들었다.

내가 손을 올리는 것 외에 별다른 반격 자세를 취하지 않자, 고블린들은 당황한 듯 눈을 껌뻑였다.


“힘 빼지 말라니까.”


쉬익-

콰가가가가가각!


고블린들의 목이 하나 둘 궤뚫리며 울컥, 피를 쏟아냈다.

아직 자신의 차례가 오지 않은 녀석들은 보이지 않는 것에 두려워하며 몸을 벌벌 떨었다.


콰직!

털썩!


규칙적인 파격음과 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몇 차례 반복하니 모든 것이 끝나있었다.


‘전투 결과: A급 병사 고블린 (Lv.10) 100마리를 처치했습니다.’

‘소요 시간: 00:00:20’


나는 고블린 시체 사이를 지나갔다.

위기에 처한 이들을 구하러 백마 탄 왕자님이 등장할 시간이었다.

물론 왕자는 아니고, 돈에 미친 놈이 구하러 간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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