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급 자동전투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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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지구온난화
작품등록일 :
2024.06.07 18:51
최근연재일 :
2024.09.13 22:00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14,118
추천수 :
288
글자수 :
273,335

작성
24.07.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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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추천
3
글자
11쪽

탑 (3)

DUMMY

*


아까 뜰에 나와서 날 막았던 병사들이 전부였던 건지, 성 내부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고요했다.

황제가 지나갔을 법한 복도를 따라 걸었다.

역시 오래된 성을 제멋대로 점거하고 있었던 게 맞는 것 같다.

불에 타서 얼굴 부분이 소실된 황제와 황후의 초상화하며, 파괴되어 간신히 버티고 있는 기둥하며,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골동품들이 증거였다.


복도에 끝에 도달하자, 과연 예전에는 황제의 위엄을 천하에 보여줬을 법한 웅장한 문이 있었다.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이음새 부분이 녹슬어서 문이 제대로 닫히지도 못한 채, 스산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어차피 불법 점거한 성, 조심히 다룰 이유는 없었다.

발로 문을 박차고 황제의 알현실에 입장했다.


황제의 자리에는 고블린이 점잖게 앉아 있었다.

아까와는 영 딴판이었다.

고블린은 나를 보자마자 반색했다.


“오, 위대한 용사여. 10층의 퀘스트를 받으러 온 것인가?”


이건 또 왜 이럴까.

살고 싶어서 이러는 것인가.

나는 아까와 똑같이 불퉁한 표정과 자세를 유지했다.

고블린은 개의치 않고 질문을 이어갔다.


“용사여. 10층의 퀘스트는 그리 어렵지 않다. 온갖 것들이 도사리는 정글로 가서 아나콘다의 이빨 100개, 살인 모기의 날개 100개···”

“왜 자꾸 헛소리를 하는 거냐?”

“이해가 어려운 건가, 용사여. 다시 한 번 말하겠다. 아나콘다···”

“나는 널 죽이러 왔다.”


곧바로 인상이 험악해질 줄 알았지만, 고블린은 순진한 눈을 껌뻑였다.

도저히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는 얼굴이었다.


“장난하자는 건가? 나는 황자와 황녀를 구하러 왔다.”

“황자와 황녀?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이곳에는 내 충성스러운 병사들과 나 뿐일세.”

“말이 안 통하는 군.”


벽에 대고 말해도 이것보다는 답답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위협적인 자세로 황제 고블린에게 다가갔다.

황좌 바로 앞까지 갔음에도 황제는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자, 귓가에 알림이 반복되었다.


‘사용자 김수한은 일반 유저들과 다른 접근을 했습니다.’

‘A급 고블린 황제 (Lv.30)은 퀘스트를 주는 일반 npc입니다.‘

‘이번 목표 달성 조건은 히든 루트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제야 고블린의 반응이 이해가 갔다.

그러니까 아까 내가 성에 침입했던 건 비정상적인 접근법이어서 고블린이 그렇게 화를 내며 날 제거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말이 안 되는 건 내가 병사 npc들을 전부 죽이고 왔는데, 황제가 이를 모를 리 없다.


“황제 폐하! 용사에게 어서 명령을 하달하십시오!“


갑자기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들어올 때는 아무도 없었던 알현실에 고블린 병사들이 뻣뻣한 자세로 고개를 치켜들고 서 있었다.

관통되어 피를 토해냈던 목이 멀쩡했고, 싸움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하. 이해했다. 내가 아무리 너네를 죽여도 히든 루트로 가지 않는 한, 계속해서 살아나고 일반적인 npc처럼 행동하는군?“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용사여. 퀘스트를···“

“그렇다면 바로 히든 루트로 간다.“


길안내가 아까부터 가리키던 곳.

황제의 뒷편에 있는 휘장에 가리어진 작은 문으로 직진했다.


“용사여-! 거긴-”


황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제야 나를 제지하려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힘차게 방문을 돌려 찼다.

오늘로 3개째 문을 부시는 중이다.


쾅!


“콜록! 황녀, 황자 어디에 있냐?“


먼지가 자욱해서 처음에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차차 시야가 확보되었다.

주변에 다 먹은 쑥과 마늘의 잔해가 널부러져 있었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방에 알현실 샹들리에의 빛이 스며들기 시작하자, 구석에웅크리고 있는 그림자가 보였다.

나는 아이들을 대할 때처럼 조심스레 다가갔다.


“애들아,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착한 아저씨란다. 너희를 구하러 왔어.“


애석하게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지금까지 이런 곳에 갇혀있었으니 경계하는 것도 당연했다.

나는 아예 벽을 통째로 잡아 뜯어서 빛이 더 많이 들어오게 했다.

드디어 황녀와 황자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곰? 호랑이?”

“···크릉···쿨쩍.“


작은 곰과 호랑이가 서로를 부둥켜 안고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러니까 황자와 황녀가 고블린이 아니라 호랑이와 곰이었다.

고블린에게서 곰과 호랑이가 나올 리···이거 족보가 심히 잘못되었는데.

이전 황제의 자식들인가?


“크아아! 네놈-!”


황제 고블린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다.

분노한 녀석은 병사의 뒤에 숨었다.

비겁한 자식.


‘히든 루트를 찾았습니다. npc인 황제 고블린이 BOSS!로 변경됩니다.’

‘BOSS! A급 황제 고블린 (Lv.30)이 분노합니다. 속도가 2배 더 빨라집니다.‘


나는 아기곰과 호랑이를 잡아 대충 양 옆구리에 끼웠다.


“간다. 꽉 잡아라.”

“크릉?!“

“꾸웅!“


‘자동 모드 활성화. 민첩을 극대화합니다.‘


샹들리에 위로 피하자마자, 내가 있던 자리에 온갖 병기가 날아와 꽃혔다.

1초만 늦었어도 참사가 벌어졌을 테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그럴 일은 없으니까.


대신 어린 남매는 사시나무처럼 온몸을 떨고 있었다.

안색이 새파란게 조금 있으면 기절할 얼굴이었다.


“괜찮다. 꼭 구해줄 테니까 눈 감고 있어.“


내 말을 알아들은 건지, 두 녀석들은 눈을 꼭 잡고 양손을 꼭 모았다.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어릴 적 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아이도 겁이 많아서 항상 내 뒤에 숨고는 했다.

나는 아이들을 감싼 손을 단단히 고쳐 잡았다.


“인간이 황자와 황녀를 데리고 위에 있다!”

“쏴라!”


고블린 병사들의 창이 샹들리에 쪽으로 날아왔다.

나는 그대로 지붕을 뚫고 밖으로 나갔다.

실내는 공간이 한정되어 있기에 아이들을 지키면서 싸우기 어려웠다.


처음 들어왔던 입구에 착지했다.

근처에 있는 나무 뒤에 두 녀석을 조심스레 놓았다.


“지금부터 술래잡기를 할 거다. 너네가 술래야. 60초 다 세면 날 찾으러 와라.“

“꿍?” “크릉?”

“알아들었지? 눈 감고 시작해.“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곰과 호랑이는 서로를 마주 보더니 까르르 웃었다.

그리고는 바닥에 풀썩 엎드려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대충 옆에 있던 나무들을 조심히 꺾어 고블린들이 두 녀석을 알아채기 어렵게 했다.


“이 정도면 됐겠지.“


완벽한 은신술이다.

나는 다시 성 안뜰에 들어갔다.

처음처럼 잔뜩 성이 난 고블린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성에서 뛰쳐나와 대열을 갖추었다.

맨 뒤의 황제는 펄쩍 뛰며 소리 지르고 있었다.


“아이들을 내놓아라! 인간!“

“데자뷰인가. 처음과 똑같은 광경이군. 싫다면 어쩔 건데?”

“죽여라!“


나는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은 채, 녀석들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가장 앞에서 용감하게 전진하는 병사의 창이 나를 관통하기 직전, 손을 들어 병사의 이마에 댔다.

단 한 마디면 충분했다.


“발동.”

“인-------간!”


‘A급 무한의 창을 사용합니다.’

‘영원한 죽음을 적에게 선사합니다.’


작은 바늘 하나가 공중에 소환되었다.


콰직!


맨 앞에 있던 고블린 병사가 악을 쓰던 얼굴 그대로 쓰러지자, 옆에 있던 놈들이 주춤거렸다.


콰짓!

푹!

푸슉!


연이어 전열의 앞에 있던 수십 마리가 한 마리씩 맥없이 쓰러졌다.

놈들은 눈 하나 감지 못한 채 최후를 맞이했다.

쓰러진 병사들의 이마 중앙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피가 꿀럭거리며 흘렀다.

어느새 작은 바늘은 황궁의 기둥만한 크기로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30여 마리 남짓 남은 고블린 병사들은 돌진을 멈췄다.

서서히 놈들의 면상에 공포가 스며들었다.

한 놈이 뒤를 돌아 달아나기 시작하자, 다른 놈들도 서로를 밀쳐가며 도망갔다.

황제는 당황하며 병사들을 막았지만 역부족이었다.


“다들 왜 이리로, 끄악! 황제를 치다니, 고작 병사가!”

“후,후퇴하라!“

“인간이 너무, 강ㅎ, 컥!“


허둥지둥 꽁무니를 빼려면 진작에 했어야지.

어느덧 무한의 창은 성 한 채만큼의 크기로 변모했다.

도망치던 놈들은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진 것이 의아했던지 위를 올려다봤다.

놈들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졌다.


고블린 병사 한 명이 나직한 한 마디를 뱉었다.


“우, 우린 끝났···”


콰가가가가각-!


끝이었다.

무한의 창은 그대로 놈들이 있는 자리로 파고들었다.


‘A급 병사 고블린 (Lv.10) 100마리를 처치했습니다.’

‘BOSS! A급 황제 고블린 (Lv.30)의 HP가 30% 남았습니다.’


20초가 경과되었다.

앞으로 남은 건 40초.


황제는 간신히 제 몸 하나 챙기고 피한 것 같다.

끝까지 황제는 무슨, 얍삽하고 음침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고블린다웠다.

그래봤자 길안내로-


‘B급 동물의 감각 (Lv.20)을 활성화 중입니다.‘


길안내가 없어도 놈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방향을 틀어 수풀로 향했다.

놈이 급하게 몸을 피한 곳은 아이들이 있는 방향이었다!


“꿍!” “크릉!”


때마침 녀석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미 늦었다.

황제 고블린이 만신창이가 된 얼굴로 비열하게 웃고 있었다.

아이들은 뒷덜미가 잡혀서 공중에 들어올려진 채 버둥거렸다.


“킬킬! 이 아이들을 구하고 싶다면 얌전히 목숨을 내놓아라!”


나는 다시 팔짱을 끼고 놈을 바라봤다.

내가 눈썹 한 쪽을 까닥이자,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다시 눈을 가리고 웅얼거렸다.

황제 고블린은 자기가 생각한 시나리오대로 굴러가지 않아서 크게 당황했다.


“이, 이익! 황제가 명하면-!”

“명하면?”

“···어?“


황제 고블린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이마 정중앙에 구멍이 뚫렸기 때문이다.

놈은 입을 벌린 채 뒤로 쓰러졌다.


“그 스킬 크기가 자유자재로 조정 가능하거든. 잘 가라.“


나는 황제가 놓친 아이들을 받아서 바닥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녀석들은 아직도 앞발로 눈을 가리고 숫자를 세고 있었다.

마침내 60을 다 세었는지 곰과 호랑이는 기운차게 벌떡 일어났다.


“꿍!” “크릉!”


바로 앞에 있는 내 배에 자신들의 앞발을 짚은 채, 의기양양하게 웃는 얼굴이 꼭 ‘잡았다!’고 외치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한국어 패치되었을텐데, 왜 인간의 말로 안 들리지?


“아하. 그렇군. 너네 아직 사람이 아니구나.”


아까 쑥과 마늘이 널부러져 있던 것이 생각났다.

당연히 고블린과 다른 애들도 인간은 아니지만, 음···

탑의 기준은 알 수 없다.


-

축하합니다!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쑥x2, 마늘x2를 드립니다.

-


손에 쑥과 마늘이 두 개씩 드랍되었다.


이걸로 뭘 하라고?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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