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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우우우른
작품등록일 :
2024.06.10 18:50
최근연재일 :
2024.09.19 00: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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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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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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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야.

DUMMY

동굴 천장에 맺힌 물방울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 호수 위로 떨어진다. 빛이 들지 않아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호수가 낙숫물에 철렁이며 움직인다.

그 작은 울림이 어둠 속으로 퍼져가자, 짙은 푸른색의 물속에서 검은 꿈틀거림이 일어난다.

그 꿈틀거림은 보기만 하는 것으로 소름이 끼칠 정도로 괴이하다. 여러 촉수가 아무런 규칙 없이 난잡하게 움직이는 모양이다. 그 움직임은 마치 물 밖의 존재를 노리는 듯하다. 수면 아래 모습을 숨긴 채 미세한 파동에 반응하고 있다.

호수의 중심에는 성인 2명이 누울법한 작은 섬이 있다.

그 섬은 수면이 낮아져서 드러난 땅이 아닌, 호수 밑바닥에서부터 융기되어 올라온 듯한 형상이다. 그 섬은 수면으로부터 약 20cm 정도 높았고 가장자리는 깎아지른 절벽처럼 되어있다. 잔잔한 파도가 철썩이며 섬의 가장자리에 부딪혀 사라진다.

그 작은 섬과 연결된 다리가 호수의 가장자리까지 이어져 있다.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는 겉으로는 허름하고 어떤 설계 없이 대충 만들어진 듯하다. 나무를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의 나뭇가지나 통나무를 이용하여 비버의 댐처럼 쌓아 올린 모양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끼처럼 생긴 생물들이 나무를 견고하게 잡아주고 있다.

다리의 양쪽 끝과 호수의 가장자리에는 횃불이 어둠을 밝혀주고 있다.

특이하게도 그 횃불은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체로 만들어진 것처럼 표면에는 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리고 혈관처럼 보이는 붉은 선들이 드러나 있다.

끈적이는 액체는 그것의 가장 윗부분, 정중앙에 위치한 구멍에서부터 흘러내린다.

그 구멍에는 가스가 새어 나온다. 불은 그 가스를 연료 삼아 꺼지지 않고 그 빛을 유지할 수 있다.

그 횃불이 호수와 뭍을 가르는 경계선이 되어 준다. 뒤틀린 듯한 소름 끼치는 꿀렁임도 횃불의 빛이 비치는 곳에는 닿지 않는다. 아주 작은 빛이라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여 철저하게 어둠 속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차가운 동굴 외벽을 타고 발소리가 들린다. 절뚝이며 걸어오는지 발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들린다.

파피가 호수 가장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호수 가장자리에 있는 횃불을 하나 잡고 땅에서 뜯어낸다. 땅에 박아놓은 꼬리가 뜯겨나가니 그것은 지나가다 밟은 지렁이처럼 꿈틀댄다. 그러나 금방 힘을 다하고 다시 잠잠해진다.

움직임이 잠잠해지며 그것의 생이 다하는 줄 알았지만, 여전히 불은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올랐다. 더 이상 구멍에서 가스와 액체가 나오지 않았지만, 불이 가스를 대신하여 그것의 살점을 이용해서 몸을 태우고 있다.

파피는 횃불을 들고 다리를 건너기 시작한다. 그녀는 다리를 절고 있다. 절뚝이는 발소리는 파피의 것이었다.

그날의 여파로 다친 다리 덕분에 아직 그녀는 제대로 걸을 수 없다.

칼의 공격을 받고 무시 못 할 상처를 입은 파피는 어느덧 몸이 회복되었다. 새로 돋아난 새살과 팔은 기존에 다치지 않았던 다른 신체 부위보다 색이 연한 느낌이다. 하지만 여전히 푸른색을 띠고 있다.

그녀의 뒤로 어두운 형체가 꾸물거리며 그녀를 따라 움직인다. 몰더다. 몰더는 횃불로 인해 늘어져 있는 파피의 그림자 속에서 그녀를 뒤따른다.

여전히 몰더는 검은 유동성의 신체를 꿀렁거리며 움직인다. 마치 물속에서 헤엄치듯이 걷고 있다.

그것의 움직임은 너무 가벼워 심지어 하늘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파피가 다리로 발길을 옮겼다.

콰지직!

다리를 밟을 때마다 나무가 갈라지는 소리가 나지만, 다리는 무너지지 않고 여전히 견고하다.

무너질 리가 없다고 믿는 파피는 처연하게 다리를 건넌다. 몰더가 그녀의 뒤를 따라 다리에 오르지만, 그가 가벼운 탓에 다리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다.

빛을 비추는 수면 아래로 이상하게 생긴 물고기들이 따라붙는다. 그것들은 어둠 속에 숨어있는 꺼림칙한 것과 달리 파피가 들고 있는 횃불에 따라 움직였다.

그것은 물고기라고 하기엔 기형적으로 생긴 지느러미가 달려 있는데 마치 사람의 팔다리와 비슷하게 생겼다. 날카롭고 번쩍이는 비늘에 빛이 그것의 표면에 닿을 때마다 소름 끼치는 광택이 흐른다.

그것들의 눈은 하나같이 파피의 손에 들고 있는 횃대를 닮은 생명체를 바라보고 있다. 하얗게 질려버린 동공들이 빛이 반사되며 반짝인다.

파피가 다리를 건너 작은 섬에 오른다. 몰더 역시 그녀를 따라 섬에 오른다.

빛을 따라 이동하던 물고기를 닮은 생명체들은 파피가 작은 섬에 도착하자마자 자취를 감춘다. 그것들은 작은 섬에 존재하는 무언가에 겁에 질려 도망쳐버린 것이다.

섬의 중앙에는 알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다. 흉물스럽게 생긴 그것은 자세히 보니 누군가 무릎을 꿇은 채 그대로 굳어

바위가 되어버린 것과 같다. 고치다.

보인자가 굳어버린 고치. 이제 저 안에서 파피와 같은 돌연변이가 나올 것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습하고 불쾌한 악취가 몸을 타고 오른다. 썩어 녹아내리는 시체 냄새가 자욱하다.

파피가 만져보니 그것의 겉은 바위처럼 거칠거칠하고 단단하다. 손으로 두드려 보았을 때 물이 채워져 있는 물통을 두드리는 것처럼 진동이 전해진다.

파피가 불을 가까이 대자, 반투명한 막을 통해 빛이 투과하여 흐릿하게나마 그 속을 볼 수 있다.

그 안에서 태동이 보인다.

무언가 그 안에서 계속 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발버둥 친다. 파피가 불을 비추고 있는 부분에 방금 사람의 눈과 같은 형체가 쓱 지나간다.

그것의 발버둥은 점점 더 강해진다. 정적이던 알이 조금씩 움직인다.

심지어 알을 채우고 있는 액체 위로 공기 방울이 부글거리며 올라간다. 발버둥이 강해질수록 기포가 더 많아지고 알이 점점 부풀어 오른다. 폭발할 것처럼 군다.

몰더는 폭발을 예상하며 뒷걸음질 친다. 파피의 팔을 잡아 뒤로 당기지만, 파피는 몰더를 향해 돌아보고 흉측한 얼굴로 최대한 인자한 표정을 짓는다.

다른 이였다면 제자리에서 실례를 저질러도 이해하고 넘어갈 법한 상황인데 몰더는 파피의 얼굴을 보며 오히려 안도감을 느낀다. 몰더는 파피 옆에 선다.

파피는 알고 있었을까? 고치가 폭발할 줄 알았으나 살짝 금이 가며 불쾌한 냄새와 끈적이는 액체가 흘러나온다.

딱딱한 고치는 액체로 인해 흐물거리더니 금이 난 부분이 찢어지며 구멍이 생긴다. 그 구멍을 통해 사람을 닮은 듯한 형체가 미끄러져 내린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린 탓에 옆으로 누워 있는 그것은 남루한 팔다리와 달리 거대한 머리를 가지고 있다. 왼쪽 눈이 있을 자리에는 진피가 드러난 상처만 남아있고 눈이 존재하지 않았다. 바로 그 위로 반구형의 머리가 있고 4분의 1 정도가 절단되어 뇌를 둘러싼 뼈와 그 속의 뇌가 모습을 드러낸다. 드러난 뇌의 중앙에는 뽀글거리며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겨우 남아있는 오른쪽 눈에는 눈꺼풀이 남아있지 않아 핏줄이 가득한 눈이 얼굴에 박혀있다. 코는 콧대도 없이 달랑 숨구멍 2개가 뚫려 있고 입은 왼쪽 눈이 그러했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살갗이 까진 흔적만 남아있다.

파피가 끈적거리는 액체가 둘러싸인 그것을 발로 차서 호수로 던져넣는다.

그것은 아무런 저항 없이 물에 빠져 깊이 가라앉는다.

횃불이 닿지 않는 깊은 곳, 그곳에는 소리도 빛도 들리지 않는다. 물이 짓누르는 압력에 팔다리를 휘저을 수 없다.

때를 기다린 검은 무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너무 오래 기다렸다. 그것의 움직임에는 약간의 흥이 묻어있다.

뱀 아니면 흐르는 물에 흔들리는 해초 같은 그것의 움직임은 천천히 고치에서 튀어나온 돌연변이의 주변으로 모여든다.

그 시간을 만끽하려는 듯 꽤 오랜 시간을 들여 돌연변이의 주위를 맴돈다. 돌연변이를 파악하며 조여오기 시작한다.

조금씩 조금씩 돌연변이의 팔과 다리를 타고 올라 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돌연변이라 할지라도 피부로 느껴지는 검은 움직임에 반사적으로 반응한다. 그것의 발가락과 손가락이 살짝 움직인다.

검은 움직임이 결국 그것의 온몸을 두른다. 구석구석 훑으며 나지막하게 뚫려있는 콧구멍을 타고 몸속으로 들어간다. 심지어 절단된 머리를 통해 드러난 뇌 속까지 침투한다.

-몰더, 라키의 살점 가지고 왔지?

몰더는 자기 복부에 손을 찔러 넣어 한 번 휘젓는다. 자신이 찾고자 하는 물건이 촉수처럼 가느다란 손끝에 닿자, 그것을 낚아채어 몸속에서 꺼낸다.

그것은 선홍빛의 살점에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 눈동자가 하나 있다. 그 눈동자는 동굴 이곳저곳을 바라보다 파피와 시선이 맞는다.

파피는 눈을 파내 잡아당겨 뜯어내고 곧바로 물속으로 던진다.

눈과 연결된 신경이 떨어지며 선홍빛의 살점은 눈이 있던 위치를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수축하기 시작한다.

물속에서 아주 밝은 섬광과 함께 폭발이 발생한다. 후안의 작업장을 날려 보냈던 폭발과 같다.

잔잔한 수면이 폭발하며 거대한 물기둥이 솟아오른다. 폭발의 진동이 동굴 외벽으로 전해지며 동굴이 울린다.

천장에 매달린 종유석이 호수로 떨어진다. 잔잔하던 호수의 모습은 순식간에 전쟁이 벌어지는 현장처럼 변해버렸다.

몰더는 몸을 팽창시켜 파피의 머리 위로 우산처럼 몸을 펼친다. 하마터면 파피의 머리가 종유석에 의해 갈라질 뻔했다.

종유석은 몰더의 몸 위로 떨어졌다.

얇고 가느다란 그의 몸을 관통할 만큼 긴 종유석이지만, 종유석이 박힌 그의 몸 어디에도 관통되어 튀어나온 종유석이 보이지 않는다.

몰더의 몸에 박힌 종유석은 늪지에 빠진 죽음을 앞둔 처량한 동물처럼 그의 몸속으로 빠져든다.

이는 몰더의 능력에서 기인한 현상으로 몰더는 자기 몸에 어떤 물건이라도 저장할 수 있다. 물건의 수, 크기, 무게와 상관없이 저장하고 옮길 수 있다.

그의 몸속으로 들어간 물체들은 일반적인 물리법칙에서 벗어나 몰더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지금 움직임이 가벼워 보이는 몰더의 몸속에는 아직도 수없이 많은 물건이 존재하고 있다. 너무 많은 탓에 자신도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다.

-꽤 오래 걸리는군.

파피가 불경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몰더는 유연성의 몸을 축 늘어뜨리며 말한다.

-역시 쓸모가 없을까요?

약간 실망한 듯한 목소리다.

파피는 몰더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한다.

-괜찮아. 그 속에서 나를 위해 저것을 끌고 왔잖니?

파피가 마넬리의 마을을 습격했을 당시 몰더 또한 그녀를 돕기 위해 마을에 잠입했었다. 혼란스러운 상황 탓에 마을에 쉽게 들어설 수 있었다. 그때 몰더는 그녀에게 선물이 될 만한 것을 찾았고 그것을 그녀에게 선물했다.

파피와 몰더가 대화하는 사이 물을 헤치는 소리가 난다.

수면 위로 물결이 일어난다.

손이 수면위로 튀어 오른다. 떨리는 손을 작은 섬 위로 올리며 무언가 물에서 빠져나와 섬 위로 오른다.

방금 고치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그것은 물속에서 쉬지 못했던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엎드린다.

파피는 몰더에게 횃불을 맡기고 천천히 그것에 다가간다. 그리고 그 앞에 쪼그려 앉은 채 그것을 향해 말했다.

-안녕 빌리. 오랜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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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샛별 24.06.20 2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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