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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우우우른
작품등록일 :
2024.06.10 18:50
최근연재일 :
2024.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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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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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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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의지

DUMMY

콜록!


이번에 거친 숨소리와 함께 들린다.

해리슨은 다시 공포에 물들어 입을 꼭 다물고 침을 꼴깍 삼킨다. 그는 돌아볼 수 없다. 그의 몸은 떨리기 시작했고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힌다. 콧물이 흘러내리고 입가에 침을 흘린다.


그는 고개를 떨며 뒤를 돌아보았다.


바닥에 엎드린 채 쓰러져 있는 마넬리와 허리까지 나무에 깔린 와그너를 발견한다. 와그너를 짓누르고 있는 나무 밑으로 와그너의 피가 흘러나온다. 땅은 붉게 물들어 굳어간다.

언 듯 보기에는 부서진 나무가 와그너의 몸을 꿰뚫었다.


콜록!


그 기침 소리는 와그너의 것이다. 마넬리는 기절한 채 쓰러져 있다.

와그너의 입에서 피가 튀어나온다. 목구멍에서 차오른 피 때문에 숨을 쉬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그···. 그···. 그럴 줄 알···. 앗, 어! 너···. 너···. 너, 너희···. 가 나···. 날 이길 수 있을 거 같아!


해리슨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더듬거리다 끝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러나 그가 내뱉는 말과 달리 해리슨은 뒤로 물러난다.


-키긱.


와그너가 해리슨을 비웃는다. 피를 흘리며 냉소를 짓는 그의 얼굴은 점점 새하얗게 질려간다.


-뭐···. 뭐야?


해리슨은 와그너의 웃음소리에 자지러지며 말했다. 와그너의 얼굴 역시 낯빛이 좋지 않다.


-어째서! 어째서 아···. 아직 사, 살아 있는 거야!


해리슨의 다리는 스르륵 풀려 뒤로 넘어진다. 그는 아직 살아있는 와그너를 보며 경악한다.


-으하하하!


와그너는 있는 힘껏 웃는다. 폐까지 물이 차올라 괴롭지만 경쾌하게 웃는다.


-한심한 새끼. 결국···. 히끅-! 네 놈도 별거 아닌 거야.


입에서 흘러넘치는 피 때문에 ‘블거 아닐 거야’라고 발음한다. 와그너의 표정은 한편으로 후련해 보인다.


-아, 아니야! 난 너희들과 달라!

-그래 네 말이 맞아. 쿨럭!


와그너는 말하던 중 기침을 한다. 그의 입에서 핏물이 터져 나온다.


-너는 인간이 아니니까.


해리슨은 눈으로 보이는 현실과 머릿속으로 믿고 있는 사실에 혼동이 생긴다. 저것은 죽은 것인가? 살아있는 것인가?


-넌 그저 아무것도 아니야.


와그너는 죽어가는 동안에도 생기가 가득한 눈으로 해리슨을 노려보았다. 오히려 공포에 물들어있는 해리슨의 눈동자가 죽음을 앞둔 사람의 것으로 보인다.


해리슨은 그 눈동자가 숨이 막힐 정도로 무섭게 다가온다. 그 눈동자는 그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가 알고 있는 인간의 눈동자는 절규와 좌절, 원망이 섞인 무기력한 눈동자. 눈앞에 강대한 힘에 굴복하는 눈동자니까.


와그너의 눈은 거기에 속하지 않았다. 인간을 초월한 듯한 그 눈동자에서 그동안 해리슨이 느껴보지 못한 거대한 힘과 기운이 실려 있다.

해리슨이 절대로 가질 수 없는 힘이 와그너의 눈동자에 담겨 있었다.


-아니야! 말도 안 돼! 어째서, 어째서···.해리슨은 눈앞의 모든 것들을 부정한다. 그러나 버젓이 그의 눈앞에 존재한다.

-네 눈에 인간들은 나약하겠지. 허, 헉, 헉.


숨쉬기도 힘든 와그너는 힘을 쥐어짜며 말을 이어간다. 입에 가득 머금고 있던 피를 토해내고 말을 잇는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우리 인간에게도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그는 마지막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는 말을 힘껏 내뱉고 나서 다시 피를 토해내고 신음한다. 이제 그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한다.


해리슨은 인지가 불가능한 존재를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두려움에 떨고 있다. 눈을 감아도 와그너의 불타는 눈빛이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았고 귀를 막아도 와그너가 한 말들이 울려 퍼진다. 그 자리에서 해리슨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 힘은 너희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로 가질 수 없는 힘이지.


말을 끝으로 와그너는 힘차게 웃었다. 그 웃음은 숲에 울려 퍼질 정도로 우렁차고 하늘에 닿을 정도로 드높았다.


귀를 막아도 헤집고 들어오는 그 웃음소리에 해리슨은 결국 귀를 잡아 뜯는다. 와그너의 눈빛에 눈을 파낸다. 그러나 그렇게 한들 다시 재생되는 눈과 귀 덕분에 그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으아아아아악! 그럴 리 없어! 말도 안 돼!


좌절하는 해리슨을 바라보는 와그너의 눈은 스르륵 감긴다. 고개를 바닥에 떨구고 반쯤 감긴 눈으로 와그너는 애타게 무언가를 찾는다. 그리고 그것을 찾은 와그너는 평온하게 눈을 감는다.


-하···. 하···. 하···. 죽은 거야? 죽은 거지? 어? 죽은 거 맞지! 거봐 내가 말했잖아!


해리슨은 눈을 감은 와그너를 보며 악을 지른다.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목에 핏대가 설 정도로 온몸에 힘을 주며 말했다. 흰자 위로 핏줄이 터져 새빨개진다.


-으흐흐 아아 아하하 끄끄끅···. 역시···. 역시···. 억!


갑자기 해리슨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광기가 가득한 웃음기는 사라져 버린다.


와그너가 쥐고 있던 쇠뇌에서 화살이 발사되어 해리슨의 왼쪽 뺨을 스친 것이다. 화살이 지나간 자국에는 붉은 선이 생기며 피가 흘러내린다.


해리슨은 와그너와 마넬리를 남겨두고 도망친다. 멀리, 그들에게서 최대한 멀리. 남은 한쪽 발로 뒤뚱거리며 사라진다. 도망치는 내내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숲에서 무슨 소리가 들릴 때마다 해리슨은 어깨를 움찔거리며 앞만 보고 내달린다. 도망치는 자의 남루한 모습을 보며 숲은 그를 향해 비난한다.


흥분한 동물의 울음소리와 목이 터지라 울어대는 새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의 소리도 모두 그를 비난하고 매섭게 몰아낸다.


해리슨이 도망가고 난 자리에는 하늘을 향해 끝도 없이 자라난 나무들이 사라진 덕분에 가려졌던 햇살이 내린다.


햇살 아래에는 손을 잡고 있는 마넬리와 와그너가 있다. 와그너는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다.



-마넬리!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여전히 마넬리는 눈을 뜨지 못한다.

마넬리는 동굴에서 울리는 듯한 그 목소리가 와그너의 것으로 느껴진다.


-‘와그너’


겨우 눈을 떴을 때 흐릿한 시야로 와그너가 보인다. 그가 나의 손을 잡고 있다. 하지만 이내 곧 다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살며시 미소를 짓는다.


-마넬리!


나를 부르는 소리가 한 번 더 울린다.


-마넬-!


점점 희미해져 간다.


그들 사이로 바람에 날아가 버렸던 손수건이 사뿐히 내려앉는다.



마넬리가 눈을 뜬 곳은 칼의 오두막이다.

처음 마넬리는 슬며시 눈을 뜨며 이리저리 둘러보며 주변을 살핀다. 칼의 오두막이라는 것을 알고 지긋이 천장을 바라본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의 시선에 칸나가 나타난다.

-마넬리! 마넬리! 마넬리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어?

마넬리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인다. 게슴츠레 뜬 눈을 칸나에게 맞춘다.

-다행이다. 칼이 루나와 너를 업고 왔어. 맥스는 아주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왔고.

마넬리는 다시 눈을 감는다. 기운이 쫙 빠진 그녀는 눈을 뜰 힘도 없다.

큰 충격에 잠시 정신을 잃은 마넬리는 그 여파로 잠시 잊고 있던 존재가 떠오른다.

-와그너는?

칸나가 말이 없다. 마넬리는 칸나가 자신이 깨어나는 것을 보고 바로 자리를 뜬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확인차 다시 눈을 떴을 때 칸나는 그 자리 그대로 있다. 그녀는 작은 의자를 가져와 마넬리의 옆에 앉아 있다.

마넬리는 힘겹게 일어나 소파의 등받이에 기대어 앉는다. 그리고 칸나에게 다시 묻는다.

-와그너는?

칸나는 마넬리를 조용히 안아준다.

통나무집 안에는 칸나와 마넬리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다. 다른 이들은 통나무집 밖에서 마넬리가 깨어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 사이에는 서로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아직 철이 없는 아이들도, 한나의 곁에서 피로를 달래고 있는 맥스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 파토스도, 얼굴을 무릎에 묻은 채 나무에 기대어 있는 혜도, 루나를 안고 있는 칼 역시 말이 없다.

호크는 문 앞을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습관적으로 총알을 꼼지락꼼지락 만지며 불안을 가라앉히고 있다.

호크는 안에서 들려오는 마넬리의 음성을 듣고 문에 다가가 귀를 갖다 댄다.

마넬리가 깨어났음을 알고 문을 열려는 찰나 그의 손이 멈춘다.

문 너머로부터 한이 맺힌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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