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처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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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우우우른
작품등록일 :
2024.06.1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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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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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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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집으로

DUMMY

-꼴이 영~ 아니군.

검은색 제복 차림의 남자가 반쯤 타버린 얼굴을 감싼 채 괴로워하고 있는 파피에게 말했다.

그들의 접선 장소는 어딘지 모를 숲속. 이제 아침 해가 떠오르지만, 그 숲에는 아직 빛이 들지 않아 아직 숨을 곳을 찾지 못한 어둠이 남아있었다.

뜨거운 에너지 광선을 방출하는 칼에게 접근하였던 파피는 전신이 거의 숯검정처럼 변해버렸다. 왼쪽 팔과 어깨가 거의 소실되었고 그 여파가 하반신까지 퍼져있었다. 오로지 그녀의 오른쪽 팔이 여전히 파란색을 띠고 있다.

파피는 덜덜 떨리는 오른팔로 검게 타버린 왼쪽 어깨에 손을 올렸다. 분명 본인의 몸을 만지는 것이지만 거친 표면의 나무를 만지는 촉각이 느껴진다. 그리고 파피는 여차 없이 타버린 피부를 뜯어낸다.

-으으아아아아!

검게 타버린 피부만 떼어냈건만 생살까지 뜯겨나가는 그 고통은 평소 광기에 물들어 뇌까지 망가져 버린 파피가 기절할 정도로 아프다. 떼어낸 피부 아래에는 붉은 피를 내며 새살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아직 제거하지 못한 탄 피부가 남아 있으니, 벼락을 맞은 고목에 싹이 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싹처럼 자라난 살들이 서로 달라붙어 상처를 에워싸고 출혈을 막은 뒤 그곳에서 팔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윽! 지금 꼭 그래야 하나? 너무 흉측한데···. 으~

검은 제복의 사람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때 파피의 곁에 서서 그녀 쪽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검은 물체가 검은 제복의 사람 쪽으로 얼굴을 확 돌린다.

그 검은 물체는 광택이 나는 검은색의 유동성 액체가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 같다. 작은 얼굴에 팔다리가 유난히 가늘고 중성적인 체형을 가진 그것은 인중이라 여겨지는 부위부터 목까지 덮는 거대한 흰점이 있다. 그 흰점은 자세히 보면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닌 조금씩 꿈틀거리며 모양이 변하고 있다. 앞서 인중이라 여겨지는 부위라 표현한 것은 그것이 얼굴을 가지고 있어도 눈, 코, 입과 같은 다른 감각기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눈도 없는 것이 획하고 쳐다보니 제복의 사람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보이긴 하나?

그리고 그것의 얼굴 앞에 손을 흔든다.

-어이구!

제복의 남자는 능청스럽게 말하며 뒤로 물러선다.

그 검은 것이 자신의 손가락을 길게 늘여 채찍처럼 휘둘러 제복의 남자에게 공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아~ 보이는구나~.

제복의 사람은 비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자 다시 검은 것이 손가락을 휘두르며 공격한다.

-그만!

고통스러운 얼굴의 파피가 겨우 남은 힘을 짜내 말했다.

-몰더! 그만!

그 검은 것은 다시 파피를 내려보고는 길게 늘인 손가락을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린 뒤 파피 옆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파피, 괜찮습니까?

그 목소리는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소년의 목소리다. 그것이 말할 때 얼굴에서 어떤 움직임이나 떨림은 없었다.

-얼씨구~ 말도 하네.

제복의 사람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 이번에 진짜 놀란 모양이다. 그리고 파피의 고통스러운 비명에 한 번 더 놀란다.

-아아아아악!

파피가 한 번 더 검게 타버린 피부를 뜯어내며 비명을 외친다. 다행히 검게 타버린 피부만 떼어내면 될 뿐 화상을 입더라도 타지 않은 부위는 치유되고 있었기에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단순히 화상을 입은 부위는 안에서부터 진피가 차올라 이전의 피부는 허물처럼 벗겨졌다.

-악! 제발 좀! 내가 가고 나서 해도 되잖아!

제복의 사람이 투정을 부리듯 말했다.

그의 날 선 어조에 다시 ‘몰더’라 불리는 검은 것이 공격 태세를 취하지만 파피가 다시 말린다.

-몰더!

몰더가 주인에게 혼난 강아지처럼 굴자, 제복의 남자는 몰더를 보며 작게 콧바람을 일며 피식 웃는다. 그리고 몰더를 향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목을 쭉 앞으로 빼고 거만하게 어깨를 한 번 돌리고 건들거리며 파피에게 말한다.

-뭐···. 축사를 치운다더니 아주! 깔끔하게 치웠더군. 어우 솜씨 좋던데~

제복의 사람은 과장되게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양손으로 엄지를 세우며 말했다. 그리고 파피의 근처에 쪼그려 앉아 그녀의 가죽 머플러의 끝을 집게손가락으로 슬며시 잡고 떨어뜨리며 말한다.

-누구 솜씨야?

장난스러운 말투가 아닌 진지한 어조다. 마치 취조하려는 듯하다.

-어차피 그 축사, 이용 가치가 다 떨어져서 제거하려 예정했으니, 이유도 묻지 않고 군말 없이 네 말에 동의했지만···. 이건 네가 한 일이 아닌 거 같은데. 보통은 괴물들을 부리며 지저분하게 놀았잖아. 이번은 너무 깔끔해. 너무···.

제복의 남자는 파피의 노란 눈을 매섭게 바라보며 말했다.

-누구야? 이렇게 만든 사람···. 아니, 사람이 맞긴 하는가?

제복의 남자가 파피를 닦달하며 몰아붙이자 몰더는 그에게 달려든다. 제복의 남자는 몰더를 향해 손바닥을 펴고 들어 올린다.

-안돼!

파피가 외친다. 몰더의 몸은 공중에 띄워져 쥐어짜진 걸레처럼 몸이 뒤틀려 있다.

-가만히 있어.

제복의 남자가 차가운 눈초리로 몰더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다시 파피를 내려보며 말한다.

-말해.

몰더의 몸이 더 쪼여진다.

-파피! 난 괜찮아-

이번에 몰더의 몸이 공처럼 말려 들어간다.

-어우 신기한 걸~ 어디까지 되나 한 번 해볼까?

그 공이 점점 작아진다.

-파피, 난 저것이 평생 저 상태로 살게 할 수 있어. 어때 저러니까 귀엽고 아담하니~ 좋지?

-안돼! 말할게! 그만해!

거의 점처럼 작아진 공이 다시 원래의 몰더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몰더의 몸은 경련을 일으키며 바닥에 나동그라진다.

-자.

제복의 사람이 사람 좋은 표정으로 파피를 보며 말했다.

-방사능 처리반.

제복을 입은 사람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방사능 처리반이 있었어!

제복의 사람은 순식간에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아직 몸이 성치 않은 파피의 목을 잡고 들어 올린다.

-이 머저리들이! 이 근방에 배치된 방사능 처리반은 없다. 그것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단 걸 알고 있을 텐데 감히 날 속이려 들어? 그리고 뭐? 방사능 처리반 때문이라고? 설령 그게 진짜라 해도 정당한 이유가 될 거로 생각했나?

파피는 나오지 않은 목소리로 겨우 대답한다.

-진... 진짜다!

파피는 숨이 넘어가는 도중에도 제복을 입은 사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제복의 사람은 흔들림 없는 그 눈을 보고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그리고 그녀를 바닥에 던지며 말한다.

-이름은.

파피는 겨우 몸을 추스르고 말했다.

-칼. 칼이었다.

제복의 사람은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읊조린다.

-칼이라···.

그리고 파피에게 호통을 치듯 말한다.

-고작 방사능 처리반 하나 때문이라니 말도 안 돼. 이유가 뭐야?

-그···. 그건···.

파피는 자신의 치부를 그자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말을 꺼내는 것도 싫을뿐더러 생각만 해도 그 기억이 떠오르게 때문에 생각하기도 싫었다.

-아니지, 아니야. 내가 네 놈의 의향까지 알 필요는 없지. 보나 마나 하찮은 것일 테니. 난 이만 가볼게.

갑작스러운 감정 기복을 보이던 제복의 사람은 다시 능청스럽게 말하며 뒤돌아 가버린다.

파피는 입을 꼭 다문 채 바닥을 짚고 있던 두 손을 꼭 쥐었다.


-마넬리! 여보!

와그너가 떠오르는 아침 해를 등지고 마을을 아련한 눈빛으로 살펴보고 있는 마넬리를 불렀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마넬리의 뒤에서 바람이 불어오면서 그녀의 머리칼을 흩날리며 지나간다. 마넬리는 눈을 감고 바람을 느낀다. 바람이 그녀의 얼굴에 남은 눈물 자국에 닿자 쓰라림을 느껴진다. 이 쓰라림은 눈물 자국이 있는 피부에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 한편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마넬리가 숨을 크게 들이쉰다. 그때 바람이 그녀의 귓가를 지나가자, 말소리가 들린다.

-괜찮아.

마넬리는 눈을 번쩍 뜬다. 그리고 뒤돌아 와그너를 본다.

와그너는 갑자기 왜 그러냐는 식으로 어깨를 으쓱인다. 그리고 말한다.

-마넬리 이제 가자. 다들 떠났어.

마넬리는 그 목소리가 와그너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마넬리는 침을 한 번 꼴깍 삼키고 환청을 들은 것이라 여긴다. 그리고 해를 마주하고 와그너와 함께 일행을 따라간다.

그때 알 수 없는 곳에서 불어온 바람이 하늘 위로 올라간다.


지금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마을을 뒤로 하고 떠난 칼과 사람들은 무사히 마차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머지 일행들과 만났다.

칸나와 한나, 맥스가 아이들을 재우고 있었다. 아이 돌보는 것에 익숙한 칸나와 달리 한나와 맥스는 애를 먹은 모양이다. 일행이 돌아왔을 때 그들의 얼굴이 더욱 초췌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의 행방을 계속 그들에게 물으며 애타게 찾았다. 결국 하나둘 울음이 터져버렸고 아이들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거의 탈진하기 직전까지 울었다. 다행히 꾸물거리던 늑대 새끼를 챙긴 파토스가 아이들에게 늑대 새끼를 보여주며 환심을 사 그나마 달랠 수 있었다. 우느라 힘을 거의 소모한 아이들은 지쳐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후~ 진짜 큰일 나는 줄 알았어. 아이들이 악을 쓰며 우니까 못 말리겠더라.

한나가 퀭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맥스는 일행이 돌아오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뒤로 누워버렸다.

칸나는 애달픈 눈빛으로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파토스는 쓰러진 말 곁에서 말을 돌보고 있다가 돌아오는 일행을 맞이했다. 그나마 마차에 남아있던 일행 중 얼굴이 밝아 보이지만 그의 슬픈 감정은 어렴풋이 느껴졌다.

-무사히 돌아왔구나.

칸나가 돌아온 사람들을 보고 말했다. 칸나는 그 일행 사이에서 누구를 찾는 모양인지 사람들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네.

혜가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한다. 혜는 그녀가 찾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칸나는 애써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어서 와. 고생했어.

혜가 칸나에게 다가가 포근히 안아준다. 뒤이어 마넬리가 그들을 감싸며 안는다. 와그너는 뒤돌아 눈물을 훔친다. 파토스는 쓰러진 말들의 곁에서 흐느낀다. 한나는 어느새 잠에 빠져버린 맥스의 옆에 누워 마차의 둥근 지붕을 바라본다.

칼과 AI는 그 광경을 지켜본다. 루나는 칼의 손을 잡고 칼의 얼굴만 빤히 바라본다.

-이제 저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AI가 칼에게 묻는다. AI는 지금부터 살아남은 생을 이어갈 사람들의 모습이 궁금했다. AI가 생각하기엔 비극을 겪고 슬픔에 빠진 저들이 다시 웃는 삶을 찾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저들이 다시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AI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니.

그에 칼은 반박한다. AI가 의아한 어조로 묻는다.

-네?

칼은 그들이 지낸 추모제를 떠올린다. 그때 그들의 모습도 이렇게 슬픔에 빠져 있었다. 분명 잊지 못할 사람은 떠나보내는 그들의 모습은 깊은 절망과 좌절에 빠져 있었다. ‘추모’라는 행위를 이해할 수 없었던 칼은 그들이 평생 그렇게 살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그다음 날 그의 생각과 달리 마을 사람들은 다시 웃으며 본래의 삶을 이어갔다. 그 당시 그들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던 칼은 지금은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느낀다.

-다시 그들은 살아갈 것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그 대답의 근거가 어딨습니까?

칼은 AI의 대답에 확실히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일단 내뱉는다.

-될 거다. 아니 내가 되도록 만든다.

AI는 그 대답에 찜찜한 목소리로 되묻는다.

-어떻게 하시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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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천혜의 영토 24.07.18 24 0 15쪽
31 검은 옷의 사람들 24.07.15 22 0 16쪽
30 아저씨 24.07.11 25 0 16쪽
29 마넬리와 와그너 24.07.08 23 0 15쪽
28 발각 24.07.04 24 0 14쪽
» 집으로 24.07.01 26 0 12쪽
26 아침. 24.06.27 25 0 14쪽
25 지켜야 할 사람들 24.06.24 25 1 13쪽
24 샛별 24.06.20 25 0 12쪽
23 파피(2) 24.06.17 25 0 16쪽
22 살아남은 자들 24.06.13 28 0 14쪽
21 파피(1) 24.06.13 2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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