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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우우우른
작품등록일 :
2024.06.1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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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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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 할 사람들

DUMMY

짙푸른 녹색의 빛기둥이 하늘을 향해 그 위용을 펼치자, 그 빛에 닿은 괴물들은 형체도 없이 사라진다. 어마어마한 열량을 내뿜는 빛기둥이 사방으로 그 뜨거움을 과시하며 괴물들을 쫓아내었다.

그 빛기둥은 순간 모습을 감추더니 주위에 적막을 남겼다. 모든 것이 멈춘, 심지어 시간마저 정지된 장면 속에서 갑자기 흉포한 굉음이 일어나며 빛기둥이 나타난 곳을 중심으로 거대한 에너지 파장이 퍼져 나온다.

그 에너지 파장은 지상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듯 땅을 거칠게 할퀴고 하늘을 뜨겁게 달구었으며 괴물들은 사정없이 찢어발겨 놓는다. 괴물들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방사형의 에너지 파동을 고스란히 맞으며 세포 단위로 조각조각 분해되어 흔적도 남지 않는다.

그와 중에 혜의 모습을 하고 있던 파피는 겨우 살아남았다. 파피는 칼의 몸에서 녹색 빛이 퍼져 나오는 순간 재빨리 잔해들을 모아 벽을 세운 뒤, 다시 원래의 혐오스러운 모습으로 돌아와 땅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머플러 같은 가죽들이 땅을 파는 속도는 매우 빨랐다.

그녀가 땅속에서 나왔을 때 괴물로 만들어진 벽은 거의 사라졌다. 만약 그녀가 재빨리 땅속으로 숨어들지 않았다면 그녀까지 같은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파피는 동그란 노란 눈동자를 크게 치켜뜬 채 주위를 살폈다.

한바탕 뒤집어진 땅에는 모든 것을 증오하는 열기가 남아 그 어떤 생명의 존재를 거부하고 있었다. 땅과 만나는 공기들은 족족 아지랑이를 피우며 다시 하늘로 향했다.

녹아내린 땅 위로 모든 것이 깔끔히 사라졌다. 주위에 있던 괴물들의 흔적은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의 시체, 그들이 살던 마을의 형체까지 다 사라졌다. 전기가 흐르던 높은 외벽과 괴물의 사체와 함께 널브러진 후안의 다리도 함께 말이다.

그 여파의 중심, 분화구처럼 헤집어진 땅의 중심에는 칼이 그 여파로 인한 부담을 삭히려 숨을 몰아쉬며 겨우 서서 버티고 있다. 거의 잘려 나간 팔 대신 녹색의 빛들이 모여들어 팔의 형체를 유지하고 있다. 그 빛이 팔이 시작되는 부분부터 옅어지며 사라지더니 온전한 팔이 나타난다.

-아직···. 아직 끝나지 않았어···.

칼은 갑자기 별이 사라졌을 때 보았다. 밝은 빛이 하늘로 쏘아 올려진 것을. 칼은 잠시 그 존재에 대해 까먹은 채 파피가 주는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그 백색의 빛이 반짝 어둠을 밝히자, 그의 머릿속에서 번쩍 떠올랐다.


-AI, 사람들을 데리고 온전히 대피하면 하늘로 섬광탄을 쏘아 올려줘.

칼이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탈출 계획을 세우던 칼이 AI에게 말했다.

-칼! 같이 탈출해야죠.

AI가 칼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아니 난 여기 남는다. 여기서 돌연변이들을 제거한다.

-안 돼요. 물론 돌연변이를 제거해야 하지만 저 정도의 수를 혼자서 감당할 수 없다고요!

비장하게 말하는 칼을 AI가 말린다.

-그렇지 않으면 탈출하던 사람들도 돌연변이에게 당할 수 있어. 내가 여기서 그것들을 붙잡고 있어야 해.

칼은 AI를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한다. AI는 칼을 이해할 수 없다.

-아니 도대체 왜 그래요? 일단 살고 봐야죠.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

-네?

-언젠가 지하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아니 이 행성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지상에서 살기 위해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니까. 그동안 혼자 돌아다니며 내가 하는 일들이 정말로 의미가 있는지 몰랐다. 때론 야생을 떠도는 짐승들과 돌연변이들의 존재를 눈으로 보았지만, 실감이 나지 않더군. 그러나 이번에 느꼈어. 이 땅 위에 두발로 밝고 살아가는 저 사람들. 뭔가···. 뭔가 이전에 봐왔던 것들과 다르더군···. 저 사람들을 봐라. 이렇게 땅에서 즐기고 슬퍼하며 살아가고 있잖아. 바로 저 모습이 지금까지 내가 해오던 일들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거다. 난 저 모습들을 보기 위해 지금까진 모진 일들을 버틴 거야. 난···. 이들을 지켜야 해.

AI는 질린다는 의미의 표정을 내비치며 한숨을 쉰다.

-후, 알겠어요. 어떻게 할 작정이에요.

-능력을 쓴다.

-능력이요? 그렇다면 이 일대가 다시···. 그럼, 말짱 도루묵이잖아요!!

AI가 놀란 표정을 보이며 칼에게 가까이 날아든다.

-그래, 다시 오염이 되겠지. 다시 이곳에서 그들이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비록 이곳이 아니더라도 목숨만 남아있다면 다른 곳에서 다시 살아가면 돼.

칼은 잠시 뜸을 들인 후 다시 말을 잇는다.

-그러니 마을에서부터 멀리 떨어졌을 때 섬광탄을 올려. 그다음···.

칼이 잠시 말을 머뭇거린 후 다시 말한다.

-다시 뒤도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가 그리고 돌아오지 마.


-그래···.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어.

칼은 뜨거운 열기를 피해 어느새 분화구 밖으로 나온 후 분화구 안을 내려다보며 상황을 살피고 있던 파피의 눈을 정확히 바라보았다. 칼은 그 노란색의 두 눈을 증오스럽게 바라보며 다가갔다. 칼은 그저 강렬한 눈빛으로 목표를 바라보며 성큼성큼 발을 내디뎠다.

에너지 파동으로 인해 폐허가 된 땅은 칼의 피부마저 녹아내릴 정도로 뜨거웠다. 그가 지나간 땅에는 그의 발자국과 함께 그의 살점과 피가 남는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그런 상처들은 가벼운 생채기에 불과했고 그의 피부는 금방 원래의 모습을 찾는다. 역시 칼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멀쩡히 발걸음을 옮겼다.

뜨거운 땅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형성된 상승기류는 하늘을 채우던 검은 연기를 날려버려 청아한 밤하늘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제 모습을 숨겼던 달과 별들이 하늘을 채우고 있다.

-이건 좀 위험하겠군···.

파피가 속삭이듯 말한다.

그녀는 본인의 피를 이용하여 보인자와 돌연변이로 만들어 부릴 수 있다. 그녀가 만든 돌연변이들은 방사능에 의해 만들어진 돌연변이들과 달리 느린 변화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닌 급격한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녀가 만들어낸 돌연변이들은 일반적인 것들과 다른 변태 과정을 거치며 그렇게 만들어진 돌연변이들은 사고를 거의 할 수 없고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 파피가 보내는 신호에 맞춰 움직일 뿐이다.

파피가 칼이 죽여 놓은 돌연변이의 사체를 조종할 수 있었던 것 또한 파피의 능력에 의한 것으로 파피의 힘으로 만들어진 돌연변이들의 떨어진 살점이라도 조종할 수 있다.

파피는 그런 자신의 힘으로 칼을 끝장낼 계획이었다. 그 많은 수의 괴물이 끝없이 살아나 죽일 듯이 달려들면 방사능 처리반도 뼈를 추리지 못할 것이다. 파피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랐다.

이제 그녀가 이용할 수 있는 괴물이나 사체는 남아있지 않다.

다가오던 칼은 잠시 멈춰 선다. 그리고 배에서부터 힘을 주며 소리를 내지른다.

-으아아아아아!

거대한 포효는 분화구 안에서 울려 퍼지며 주위를 흔든다.

칼의 배에서부터 형성된 녹색의 빛줄기 여러 개가 그의 흉통을 지나 목으로 모여든다. 모여든 빛은 칼의 입 주변과 눈가에 모여든다. 그의 회색빛 눈동자는 녹색 빛을 발광하며 파피를 노려본다. 그가 입을 벌리니 녹색의 형광이 새어 나온다. 녹색의 빛줄기들은 그 굵기와 밝기가 점점 커지며 칼의 몸을 뒤덮는다. 그 빛은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며 이미 뜨거운 땅과 공기를 더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제는 칼의 손끝과 발끝에서부터 빛줄기가 차오르며 입가로 모여든다. 그의 얼굴은 이제 녹색의 불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그의 몸 주변으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그가 서 있는 땅은 메말라 비틀리다 못해 녹아내리고 있다. 그가 하반신에 두르고 있던 거적때기는 다 타버려 없어진 지 오래다.

파피는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떤지 알고 있다. 지금 눈앞에 있는 거대한 에너지를 직격으로 맞게 된다면 다른 괴물들처럼 자신의 존재까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파피는 덤덤하다. 그녀에게도 대비책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대비책으로 저 거대한 존재에게서 여유 떨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그녀가 이렇게 담담한 이유에는 다른 것이 있었다.

흥미가 떨어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그를 절망의 늪으로 밀어 넣으며 쾌락을 느꼈지만, 다시 일어선 그의 모습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아니 오히려 기분이 더러워진다.

될 수 있다면 눈앞에 있는 모든 것들을 찢어버리고 때려 부수고 처참히 밟아 놓고 싶다. 그러나 파피는 그렇다고 해서 이 분이 풀릴 것 같지 않았다. 특히 그가 내뱉은 말 ‘지켜야 할 사람들이 남아있다!’ 그 말에 파피는 갑자기 배알이 꼴린다.

-이런 썅! 아아아아아!

주체가 되지 않는 분노에 파피는 부들부들 떨며 소리를 지른다. 허공을 향해 손짓, 발짓 해가며 자신의 울분을 토해낸다. 그 불경스러운 목소리로 목이 나갈 정도로 소리를 질렀지만 식지 않는 화는 그녀를 더욱 불태운다.

-카라.

갑자기 파피가 허공을 멍하니 바라본다. 분명 그때 그 목소리다. 영원히 함께 하자 맹세하던 그 목소리.

그 목소리가 머리를 땡하고 울리자, 그녀의 얼굴은 한층 더 일그러지며 눈앞의 존재에 대해 더 원망하고 멸시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분노가 모두 그녀에게로 모이는 모양이다. 파피는 도저히 이 기분을 참고 견디기에는 어려웠다. 결국 그녀는 불 속에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칼에게 다가간다. 직접 저것을 망가뜨릴 것이다.

온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은 적응할 수 없다. 살이 터지고 뜨거운 진물이 새어 나오며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뜨거워지는 몸은 칼에게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말하지만, 칼은 손끝과 발끝에서부터 끓어오르고 있는 배속까지 에너지를 쥐어짜고 있다.

칼 역시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있다. 분노는 칼이 충동을 억제할 수 없게 뇌를 망가뜨린다. 그렇게 눈앞에 있는 목표에 집중하던 칼은 고통을 잊어버리고 희열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 희열이 임계점에 달했을 때 칼은 목구멍에서부터 거대한 에너지 광선을 분출한다.

그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들은 칼은 몸에 갇혀있던 것이 불만을 표출하듯 쾌속으로 뿜어져 나왔다. 칼은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해 목표물인 파피를 바로 맞추지 못했다.

칼은 점차 파피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점차 돌린다. 점점 에너지 광선이 천천히 방향을 틀며 파피를 덮치기 직전이다.

-안 돼요. 파피.

그때 파피 주위로 검은 막이 둘리더니 파피를 데리고 사라져 버렸다. 칼은 그 사실을 모른 채 파피가 있던 곳에 울분을 토해내듯 광선을 내뿜었다.

문득 칼은 루나, 혜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 특히 후안이 떠오른다.


-저길 봐요!

한나가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밤하늘을 밝히는 녹색의 밝은 빛이 마을 쪽에서 나타난다. 그 빛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던 화염마저 집어삼키며 하늘을 향해 치솟는다. 가까이서 봤다면 눈이 멀어버릴 그 빛은 멀리 떨어져 있던 마차가 있는 숲길까지 번졌다. 강렬하게 어둠을 삼키던 그 빛은 한동안 그렇게 유지되는가 싶더니 갑자기 자취를 감춘다.

잠시뿐이지만 강한 여파를 남길 정도로 그 빛은 거대하고 불길했다. 사람들은 그 빛이 또 다른 위협이 되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지켜보았다. 오직 마차 안에 다른 아이들과 함께 모여 있던 루나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일어선 채 그 빛을 아무렇지 않게 똑바로 바라보았다.

순간 거대한 바람이 일행을 덮친다. 다행히 마을에서부터 꽤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거센 바람이 그들을 몰아칠 뿐 다른 피해는 없었다. 조금이라도 마을 가까이 있었다면 저 바람에 날아갈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하늘을 가로질러 산을 날려버린 녹색의 섬광을 본다. 그 섬광은 일행이 있는 곳에서 반대편을 향해 나아갔다.

놀란 사람들은 저 빛이 무엇인지 AI에게 물었다.

-뭐···. 뭐야···. 몰라···. 무서워···.


분화구의 중심에서 온몸이 새까맣게 타들어 간 칼이 무릎을 꿇은 채 가만히 있다. 그의 얼굴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고 그의 팔, 다리는 녹아서 달라붙었다. 그의 피부는 애써 재생되고 있었지만 타들어 가는 속도가 재생속도보다 더 빨랐다. 몸에 붙은 불들은 전혀 줄어들 기미가 없었고 뜨거워진 대지는 식지 않는다. 그에게 가망이 없어 보인다.

그때 거대한 에너지 흐름이 일며 검게 타버린 몸 위로 녹색의 빛줄기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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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천혜의 영토 24.07.18 23 0 15쪽
31 검은 옷의 사람들 24.07.15 22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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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마넬리와 와그너 24.07.08 23 0 15쪽
28 발각 24.07.04 24 0 14쪽
27 집으로 24.07.01 25 0 12쪽
26 아침. 24.06.27 25 0 14쪽
» 지켜야 할 사람들 24.06.24 25 1 13쪽
24 샛별 24.06.20 25 0 12쪽
23 파피(2) 24.06.17 25 0 16쪽
22 살아남은 자들 24.06.13 28 0 14쪽
21 파피(1) 24.06.13 2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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