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처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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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우우우른
작품등록일 :
2024.06.1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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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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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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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도마뱀

DUMMY

칼이 녹색의 제복을 차려입고 문 앞에 섰다. 오랫동안 방치했던 터라 옷을 털어도 먼지가 계속 나온다. 그렇다 보니 그가 신경 쓰지 않은 옷의 구석구석에는 뿌연 먼지가 남아있다. 칼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눈에 보이는 먼지를 털어내다 못해 손톱으로 긁으며 먼지를 떼어낸다.

칼은 2층 계단 너머를 슬며시 살핀다. 아직 아이들이 잠에 빠져 있을 것이다. 루나도 역시 그럴 것이다. 1층에는 오랜만에 지인을 만난 사람들이 긴 밤 동안 회포를 풀고는 잠들어있다. 마넬리와 와그너는 물론 파토스와 호크 그리고 그의 마을 사람들까지 바닥이나 가구 위에 섬을 이루어 잠들어있다.

이른 새벽 칼은 잠들어있는 그들 몰래 슬그머니 집을 나선다. 조심스레 문을 열다 나무로 만들어진 탓에 습기와 바람에 변형된 문이 눈치 없이 요란하게 소리를 낸다. 다행히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문밖으로 나오니 밤새 식어버린 새벽 공기가 코끝에 닿으며 간담이 서늘해진다. 눈앞의 모든 것들은 아직 파란색의 새벽이 물들어 있다.

아주 작은 돌들이 깔린 바닥을 밟을 때마다 귀를 간질이는 소리를 낸다. 칼은 혹여나 사람들이 깨지 않았을까 염려하며 잠깐 가만히 서서 닫혀있는 문을 지긋이 바라본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칼은 곧바로 거대한 통나무집에 가려진 집의 뒤뜰로 향한다. 집 바로 뒤에는 집을 지은 것과 동일한 통나무로 된 작은 창고가 있다. 칼은 창고 앞에서 문고리를 잡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뱉는다. 이내 문고리를 돌리며 창고 안으로 들어선다.

창고 안에는 칼이 배급받은 여러 물품이 존재했다. 그가 입은 것과 같은 제복, 배낭, 텐트, 침낭, 식기, 식료품, 램프, 파이어스일, 등유,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계들과 방사능 수치를 확인하기 위한 측정기 등이 있다. 칼은 그 중 배낭과 침낭, 텐트, 램프와 약간의 등유 그리고 기계와 측정기를 챙겼다.

-나도 두고 가시려고요?

짐을 챙기고 있는 칼의 뒤에서 AI가 등장하며 말했다. 칼의 등이 움찔거린다. 그리고 분주히 짐을 챙기던 손을 멈추고 돌아본다.

-네가 남으면 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등을 돌린 채 마저 짐을 싸기 시작한다.

-저랑 떨어지면 위법입니다. 즉결 처분입니다!

칼은 다시 손을 멈춘다. 망설이듯 고개를 한 번 젓고는 이번에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짐을 챙긴다.

-상관없다.

-네? 상관없다고요? 이건 칼, 당신의 일입니다. 게다가 지하도시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해야죠! 당신의 행동에 따라 그들의 생사도 결정된-!

칼이 배낭의 덮개를 세차게 닿는다. 배낭의 버클이 부딪치며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지금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와그너 씨의 이야기를 듣고 나선 내가 하는 일이 정말로 옳은지 모르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귀환시킨 생존자들로 여러 명이다. 와그너의 말이 맞다면 내가 그들을 죽인 것이다. 번견들은 가차 없이 사람들을 살육했어. 이제는 지상으로 올라와 사람들을···.

칼은 AI를 돌아보며 말을 잇는다.

-어째서 번견들은 지상의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지? 번견들이 지하 귀족의 사병들이라면 그들의 행동은 곧 지하 귀족의 뜻, 어찌 보면 지하도시의 사람들도 그들과 생각이 같거나 그들에게 세뇌되었겠지. 정녕 그들의 뜻대로 행동하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인가?

그리고 칼은 배낭끈 하나를 오른쪽 어깨에 건다. 거칠게 배낭을 들어 올렸던 탓에 배낭 안에서 물건들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내 가족들도 이미 그들과 같은 이념을 가졌을 수도 있어. 그렇다면, 난···. 난···. 그들을 내 가족이라 부르지 않겠어.

AI는 칼에게 무슨 미친 소리냐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의 확고한 의지를 돌리기는 가망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분명 말했죠. 당신이 저 사람들이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이렇게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지는 게 도와주는 겁니까?

-그래.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야.

칼이 단호하게 말했다. 가족을 지켜줄 집, 풍부한 먹을거리, 아이들이 뛰어놀며 자랄 수 있는 환경. 이 정도의 조건이면 황무지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살아남은 저 사람들은 아주 평안하고 풍족하게 살아갈 것이다. 게다가 다른 마을 사람들도 함께한다면 더 쉽게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아이는? 루나는요?

-루나···.

칼은 루나의 이름에 칼은 잠시 혼이 빠져나간 듯 시선을 어느 한 곳에 고정되어 미동이 없다.

-갑자기 사라지면 루나는 어떻게 하라고? 루나는 생각도 안 해? 당신을 믿고 따랐는데 갑자기 사라져 버리면···.

칼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AI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AI가 이상한 낌새 뒤를 돌았을 때 그들이 대화를 이미 루나가 듣고 있었다.

칼이 루나에게 한 걸음 다가가 손을 뻗으며 말했다. 루나는 멍하니 칼을 올려다본다. 주위에는 목을 조르는 정적이 흐른다. 칼은 어째선지 방금까지 아무렇지 않았던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루나, 그게 아니라···.

칼이 루나에게 변명한다. 이제는 볼 수 없을 거로 생각했던 그 얼굴이 다시금 떠오른다. 루나의 눈동자 속에서부터 어두운 우울함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그러다 갑자기 그 우울함이 아이의 얼굴에서 싹 사라진다. 아이는 눈을 번쩍 뜨며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숲속을 바라본다.

칼이 한 걸음 더 다가가자, 발소리가 정적을 깬다. 그 소리를 신호탄 삼아 루나가 숲속으로 달려간다.

칼과 AI가 아이를 따라 숲속으로 들어간다.


-’이건!‘

작은 도마뱀이 고목에 거꾸로 매달려있다. 자세히 보니 머리에는 머리 앞으로 향한 2개의 날카로운 뿔이 달려 있으며 하얀 털로 덮여 있다.

-’그 사람 냄새야!‘

그 도마뱀은 나무를 타고 올라 나뭇가지 끝으로 달려가더니 그대로 점프한다. 땅바닥에 부딪히기 전 그것의 몸을 덮은 털들이 급속도로 자라며 그것의 몸을 둘러싼다. 마치 공처럼 변한 그것은 땅바닥을 몇 번 튕기고 때굴때굴 굴러가 다른 나무에 부딪히며 멈춘다. 그리고 털의 길이가 다시 짧아지며 도마뱀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잠시만···. 설마 또 그 녀석은 아니겠지?‘

그것은 눈을 감고 머리를 들어 올린 채 생각에 빠진다. 이럴 때마다 자신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아닌 다른 녀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그것은 머리를 털며 그 생각을 떨쳐내고 무작정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 하얀 것은 자그마한 다리를 분주하게 움직이며 땅바닥을 기어간다. 작고 짧은 다리로 얼마나 능숙하게 장애물을 피해서 가는 지 놀라울 따름이다. 바위를 넘고 나무를 지나치며 아슬아슬하게 부딪힐 뻔한 큰 바위를 획 하니 피한다.

하지만 의지와 달리 몸은 좀처럼 마음에 따라주지 않는다. 오랜 기간 제대로 식사하지 못한 탓에 몸에 남아있는 힘이 얼마 없다. 도마뱀은 이번이 생의 마지막 도박이라 여기며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얼마 안 가 혼자서 숲속을 헤매고 있는 사람을 발견한다.

-’그 사람인가?‘

하얀 도마뱀은 숲속을 거닐고 있는 사람을 발견한다. 대충 보았을 때 ‘그 녀석’은 아니다. 이번에는 정말로 그 사람이 온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 생각은 그에게 점점 다가갈수록 의심이 가기 시작한다.

-’그 녀석이 아니야! 그런데···. 저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가 아닌데···. 몰라! 그냥 확인해 보자‘

그 사람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을 때 자신의 의심이 맞다는 것을 깨닫는다.

-’저건 그 사람이 아니-!‘

-뭐야 이건?

도마뱀은 그 사람의 발길에 차여 멀리 날아간다. 결국 나무에 부딪혀 땅바닥에 나동그라진다.

도마뱀을 찬 사람은 검은 제복을 입고 있다.

-아씨!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해?


-루나!

칼과 AI는 숲속으로 도망간 루나를 찾느라 여념이 없다. 그 어린 것이 이 미로 같은 숲속에서 길을 잃는다면 정말 끔찍할 것이다. 칼은 머릿속으로 상상하기도 싫은 장면을 떠올리며 다급히 루나를 찾는다.

더욱이 안개가 피어오른 탓에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다. 루나를 부르는 소리는 멀리 퍼지지 않고 주위를 맴돌 뿐이다. 칼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진다. 지금은 아이가 정신없이 달리고 있지만 어딘지도 모를 곳에서 멈추어 선다면 패닉에 빠질 수도 있다.

그때 AI가 말했다.

-칼! 저기 봐요.

AI가 칼의 시선을 끌며 어딘가로 향했다. 뿌연 안개 때문에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무언가 움직이는 실루엣이 보인다. 아이다. 아이가 나무 아래 서서 아래의 무언가를 보고 있다.

아이는 자세를 낮추고 바닥에 있는 무언가를 두 손으로 살포시 감싸 소중히 들고 일어선다.

칼과 AI는 조심스럽게 아이 옆으로 다가간다. 아이는 칼과 AI를 보고 놀라며 두 손에 쥔 것을 뒤로 감춘다. 혹여나 눈앞에 나타난 것이 칼과 AI가 아닌 이 작은 것을 헤친 사람이라는 생각에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행동이었다.

아이는 다른 이들이 아닌 칼과 AI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칼과 AI에 그것을 보여준다.

칼은 아이의 얼굴을 슬쩍 보고 아이의 손에 올려진 것을 보았다. 어째서 아이가 이곳으로 달려와 다친 동물을 찾은 건지 신경 쓰지 않는다. 지금 그것보다도 조금 전에 있던 일들을 새까맣게 잊어버린 듯한 아이의 태도에 안도감을 느끼는 칼이었다.

-이게 뭐지?

AI가 말했다.

하얀 도마뱀이다. 방금 해리슨의 발길질에 매몰차게 날아가 버린 그 도마뱀이다. 그 도마뱀이 아이의 손 위에서 눈을 감은 채 고통스러워한다.

하얀 도마뱀은 아직 미약하게 숨이 붙어있지만, 다시 활기차게 기운을 차릴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었다. 칼이 아이에게 도마뱀을 건네받았을 때 매우 가벼웠다. 복슬복슬한 털 때문에 몰랐지만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탓에 몸이 많이 야위어 있었다.

-하얀 털에 뿔이 달린 도마뱀이라···. AI, 이 동물 명칭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

AI는 하얀 도마뱀 위로 빔을 쏘며 말했다. AI는 도마뱀의 상태를 스캔하며 속속히 들여보고 있다.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봐도 돌연변이가 맞습니다. 그나저나 지금 이 녀석의 상태가 아주 좋지 않네요. 영양실조에 외부 충격 때문에 내장이 파열된 상태입니다. 아주 세게 부딪혔나 본데요.

루나는 안쓰럽게 도마뱀을 내려보았다. 칼은 아이의 모습을 보고 AI가 닦달하듯 묻는다.

-진짜 다른 방법은 없나?

AI는 말없이 사람이 고개를 내젓듯이 좌우로 움직인다.

-’킁, 킁, 그 사람이야!‘

칼의 손 위에서 도마뱀이 눈을 번쩍 뜨더니 마지막 생을 태우듯 재빨리 탈의 팔을 타고 올랐다. 잡으려 드는 칼의 손을 순식간에 피한다. 그의 손을 피해 칼의 몸을 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다리 사이로 기어들거나 벌어진 옷 틈 사이로 들어가 도망친다. 덕분에 칼은 온몸이 경직된 듯한 부자연스러운 춤을 추며 몸 구석구석을 뒤지고 몸을 마구 털어낸다. 결국 그것이 칼의 목에 도달한다. 도마뱀은 칼의 목을 타고 작은 입을 쩍 벌리더니 그의 목을 문다.

-’앙~‘

-칼! 괜찮습니까?

도마뱀이 물고 있는 부위로 녹색의 빛이 모여든다. 그 녹색의 빛은 도마뱀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양이다. 그 기세는 점점 더 커진다.

동시에 도마뱀의 모습도 달라진다. 곯아떨어진 배는 다시 차오르고 손상된 내장도 회복된다. 정돈되지 못한 털들은 다시 윤기가 흐르기 시작하며 눈빛이 한층 더 총명해진다.

그 도마뱀이 칼의 몸에 저장된 에너지를 빨아들이며 점점 빨아들이는 세기가 강해지는 것을 느낀 칼은 도마뱀을 때어내려 노력했다. 그러나 칼의 바람과 달리 그것은 어떤 방법을 써도 떨어지지 않는다. 도마뱀의 입과 칼의 목이 연결이라도 된 것처럼 들러붙어 있다.

-’꺽~ 잘 먹었다. 이게 얼마만의 포식인지~‘

충분한 식사를 한 도마뱀의 입이 칼의 목에서 떨어진다. 그 도마뱀은 식사에 만족스러웠는지 행복한 표정을 짓소 칼의 목을 끌어안았다.

-’정말 오랜만이야~ 아저씨!‘

-이 무슨···.

AI가 도마뱀을 유심히 관찰한다. 그제야 AI의 존재를 알아차린 도마뱀은 얼어붙는다.

-’이게 뭐야?!‘

그리고 도마뱀은 칼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놀라서 칼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다. 그리고 땅바닥에 떨어져 그들과 거리를 두고 대치한다.

-’이번에도 네 녀석이냐? 왜 아저씨 냄새가 너한테 나는 거냐고?‘

도마뱀이 츠~ 츠~ 소리를 내며 경계하니 칼과 AI도 도마뱀을 예의주시한다. 이미 그것에 물린 자국이 사라졌지만, 칼은 그 부위를 어루만지며 긴장한다. 칼은 자칫하면 그것에 당해 에너지를 다 빼앗길 것으로 생각했다.

-우아우아우~

-’응?‘

루나가 웅얼거리며 도마뱀에게 다가간다.

-’뭐라고? 네 이름이 루나라고? 뭐야 지금 말이 통하는 거야?‘

도마뱀도 경계를 풀고 루나에게 다가간다.

-루나! 위험해!

칼이 루나에게 외친다. 반면에 그들을 자세히 지켜보던 AI가 칼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둘이 대화하는 모양입니다.

어느새 그 도마뱀은 루나의 다리를 타고 올라가 루나의 손 위에 안착한다. 그리고 루나와 시선을 맞추고 다시 츠~ 츠~ 소리를 낸다.

-’내 이름은 퓨리! 멋지지!‘

칼의 에너지를 빼앗아 기운을 차린 도마뱀은 루나의 손 위를 무대 삼아 온갖 재롱을 부리고 있다.

-’어때? 어때? 나 멋있지? 최고지?‘

그때 칼이 엄지와 검지로 그것의 털을 잡고 들어 올렸다. 그것은 놀란 표정으로 들려져 칼의 눈과 맞추자, 칼에게 덤빌 듯이 달려든다.

-우아우아아!

-’뭐? 싸우면 안 된다고?‘

루나의 말에 도마뱀은 홀린 듯 행동을 멈추었다. 아이의 말을 듣고 나니 칼에게 호전적으로 달려들었던 마음이 사그라진다.

-’알겠어.‘

-우아우아아우?

-’응? 왜 칼의 목을 물었느냐고? 아~ 이 사람이 칼이야?‘

도마뱀은 칼을 한 번 쓱 보고 아이에게 고개를 돌리고 츠~ 츠~ 소리를 낸다.

-’내가 아는 아저씨인 줄 알았어. 그 아저씨 냄새가 났거든. 그 아저씨가 이런 식으로 밥을 줬어!‘

-아우우아?

-’정말이라니까. 내가 배고플 때마다 아저씨가 목을 내어주셨어!‘

루나는 이상한 표정으로 도마뱀을 바라본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도마뱀에게 타이르듯 말한다.

-아아우우아 우우아오!

-’그래 네 말이 맞아. 이 사람은 그 아저씨가 아니지. 그건 내가 잘못했어. 그런데 나도 억울하다니까. 갑자기 아저씨 냄새가 나면 항상 이 녀석이-‘

-우우우!

-’그래그래 칼이 있었어. 그런데 내 입장에서 보면 정말 짜증난다니까! 정작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있으니까 내가 얼마나 허망하겠어?‘

아이는 도마뱀의 말에 공감하듯 아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아아아아우아아우?

-’그 아저씨가 누구냐고? 음···.‘

도마뱀은 눈을 감고 머릿속에 그 사람의 얼굴을 그려보지만, 도저히 그릴 수가 없다. 그 얼굴이 이제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

-’몰라 나도 기억이 안 나. 안 본 지 오래되었거든···.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어‘

루나는 안타까워하며 칼의 손에 붙들려진 도마뱀을 두 손으로 받아 도마뱀을 측은하게 바라본다.

-우우아우우아우오?

-’왜 기다리냐고? 그 아저씨가 여기서 숲을 만들고 지키고 있으면 언젠가 찾아온다고 했어. 그래서 나는 이 숲에서 지내며 아저씨를 기다리고 있지‘

-아아아우오아?

-’당연하지, 이 숲을 만든 건 나라고! 내 머리의 뿔 보이지?‘

도마뱀은 루나의 손 위에서 두 손을 들고 미어캣처럼 자세를 취한다.

-’내 뿔은 나무로 변할 수 있거든. 나무로 변한 뿔을 뽑아 땅에 심으면 나무가 되지. 내 몸을 긁으면 씨앗들이 나오고 그 씨앗들이 싹을 피워내지. 지금까지 에너지가 다 떨어져서 방전 상태로 있었지만, 지금은 가능해! 보여줄까?‘

-우아!

-’알겠어‘

도마뱀은 루나의 손을 타고 바닥으로 내려간다. 그러자 그것의 몸집이 커지기 시작하며 칼보다 더 커진다.

이제는 츠~ 츠~ 소리가 아닌 짐승이 포효하는 듯한 소리로 말한다.

-’잘 봐‘

거대해진 도마뱀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짓는다.


작가의말

도마뱀의 대사 부분은 작은 따옴표의 위치를 달리해서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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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검은 옷의 사람들 24.07.15 22 0 16쪽
30 아저씨 24.07.11 25 0 16쪽
29 마넬리와 와그너 24.07.08 23 0 15쪽
28 발각 24.07.04 24 0 14쪽
27 집으로 24.07.01 2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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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지켜야 할 사람들 24.06.24 24 1 13쪽
24 샛별 24.06.20 2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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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살아남은 자들 24.06.13 27 0 14쪽
21 파피(1) 24.06.13 27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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