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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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기리른
작품등록일 :
2024.07.11 23:08
최근연재일 :
2024.08.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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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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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사람(2)

DUMMY

“어우씨! 이게 뭐야. 저기요! 괜찮아요? 김 순경. 얼른 구급차 불러.”


1층에 다다라 열린 엘리베이터 안을 본 경찰 두 명은 바닥을 적신 피와 함께 현장을 발견했다.


‘다행이다···. 죽지는 않겠어.’


피를 계속 흘려서 그런지 정신이 멍해지는 것 같았다.

경찰은 내 위에 쓰러진 여자를 옆으로 치워둔 뒤 날 조심스럽게 건드리며 의식을 확인했다.

대답할 기운은 없어 눈만 몇 번 깜빡였다.


이후에는 중간중간 기억이 끊겨 있다.

구급 대원들이 달라붙어 병원으로 옮기며 응급 처치를 했고, 병원 수술실로 들어가던 것만 기억이 났다.


***


“으음···. 뭐지.”


TV 소리에 깨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여섯 개의 침상이 있고, 그중 세 개의 침대에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제각기 누워 벽에 붙은 TV를 보고 있었다.


[최근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묻지마 살인 범죄가···]


“에휴. 세상 말세다, 말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학생들 상대로. 저런 쓰레기 같은 놈.”


내 침상 위에 앉아 사과를 깎아 먹고 있던 사람이 진지하게 뉴스를 보며 혼잣말을 했다.


“그러게.”

“으악! 깜짝이야. 야! 너 일어났어? 괜찮냐?”

“뭐···. 어떻게 알고 왔냐. 김시현.”


내 학창 시절을 함께한 두 명의 친구 중 한 명, 김시현이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과일까지 사 들고 병문안을 온 모양이다.


“너 보호자, 임마. 나라도 있어서 다행이지. 어쩔 뻔했냐? 연락처도 지운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고맙다···. 오랜만이야.”

“됐고 과일이나 처먹어.”


시현은 깎아놓은 사과를 내 입에 쑤셔 넣었다.

몇 년 동안 연락도 다 씹었는데,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찾아와 간호도 해주고 친근하게 장난치는 모습을 보니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다.


“맛있네.”

“다친 건 괜찮냐?”

“윽! 잠깐만. 생각 안 하고 있었는데 말하니까 아프잖아.”


등 쪽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에휴. 야. 너는 죽으면 안 된다.”

“···.”


시현과 나는 다른 한 명을 포함해 중고등학생 때 서로의 유일한 친구였다.

학교도 달랐고, 성격도 너무 제각각이었지만, 우리를 묶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그건 우리 세 명이 모두 크게 쓸모도 없는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이제는 두 명이 됐지만.


“저, 저기. 안녕하세요···.”


회상에 잠겨 있던 때, 누군가 음료 상자를 들고 앞으로 다가왔다.

얼굴을 보니 유나리였다.

태평하게 환자의 침대를 점령해 누워있던 시현은 낯선 여자의 등장에 깜짝 놀라 내게 속삭였다.


“야, 야. 누구야. 여자친구셔?”

“뭐래. 이웃 주민이야. 아, 안녕하세요. 그, 나리 씨는 어디 다치신 곳 없죠?”

“네. 그,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이상한 일에 엮이신 것 같아서···.”


확실히 이상한 일에 엮이긴 했다.


“혹시 경찰 쪽에서 소식 들으셨나요?”

“어···. 제가 방금 깨어나서 뭐 아직 듣거나 그런 건 없어요.”


유나리는 경찰들이 찾아와 현장을 수습하고, 자신을 포함해 조사를 진행했다는 얘기를 전해줬다.


“그리고 그 여자, 이름은 구지윤이라고 하던데. 며칠째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네? 갑자기요···?”


너무나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기가 찼다.

사람 죽일 듯 칼까지 휘둘러 놓고 왜 자기가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걸까.


“아무튼 감사 인사라도 전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들렸어요. 덕분에 악몽도 꾸지 않게 됐어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 유나리는 병실을 떠났다.

숨죽이고 기다리던 시현은 그 모습을 보고 바로 질문을 쏟아부었다.


“와, 뭐냐. 엄청 예쁘신데. 여자친구라고 하면 진짜 배 아플 뻔했어.”

“뭐라냐. 이제 두 번 본 사람이고, 관심도 없어.”

“크크. 새끼 감정이 없네.”


그 후 깨어난 소식을 들은 경찰이 찾아와 유나리가 말해준 상황을 그대로 전해줬다.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혹시 재윤 씨도 악몽을 꾸셨나요?”


전혀 알 수 없는 질문이다.

가끔 악몽을 꾸긴 하지만, 최근엔 거의 그런 적이 없었다.

아까 유나리도 악몽 얘기를 하던데.


“하, 다 모르겠고 이제 지치네.”


의사와 경찰이 계속 찾아오고, 시현도 옆에서 깐죽대면서 피로가 너무 쌓였다.

일어나자마자 이게 무슨 일인지.

그나마 해가 지고 시현이 집으로 돌아가서 다행이다.


‘일단 잠이나 자자···.’



***


“엄마! 우리 내일 어디 가는 거예요?”

“바다 보고 싶다며, 아들.”

“엥. 그냥 TV 보다가 나오길래 한번 말해본 거야. 진짜 가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중학교 마지막 겨울 방학에도 나는 집에서 밀린 드라마를 정주행하고 있었다.

막상 친구들을 만나면 잘 놀지만, 밖에 나가는 건 항상 피곤한 내향적인 사람이라 거의 집에 박혀 있었다.


“아빠랑 같이 겨우 시간 냈어. 우리 가족여행 한 번도 안 가봤잖아.”

“엄마 아빠 둘 다 바쁘잖아. 나도 밖에 나가는 거 별로 안 좋아하니까 별로 신경 안 써. 뭐, 가면 좋긴 하지.”

“그럼 얼른 짐이나 챙겨.”


솔직히 좋았다.

학교에서 가는 수련회나 수학여행 말고는 어딘가 멀리 가본 적이 별로 없다.

거기다가 가족들과 어디를 가는 건 초등학생 때 이후로 처음이다.


“아들. 일어나! 한 시간 뒤에 출발할 거야.”

“음···. 알겠어.”


졸린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가 빠르게 씻고 나왔다.


“나 준비 완료! 차에 옮겨놓을 짐 없어? 내가 지금 가져다 놓을게.”

“아빠가 너 씻을 때 다 가져다 놨어. 너 짐만 챙기면 돼.”


짐을 차에 싣고 온 아빠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준비 다 끝난 거야? 이제 갈까?”

“아빠, 좋은 아침.”

“그래. 아들 오늘 기분 좋은가 본데? 아빠한테 그런 말도 다 해주고.”

“뭐, 뭐래. 예전에도 몇 번 했잖아.”


마지막으로 놓고 온 짐은 없는지 확인을 마친 우리는 남은 짐을 가지고 내려갔다.

오랜만에 세 명이 다 올라탄 차는 북적였다.


“다들 안전벨트 잘 착용하고, 출발합니다~.”

“출발!!”


차에서 흘러나오는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빠르게 지나가는 창밖 풍경을 바라봤다.

평소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평범한 거리의 모습인데, 오늘따라 더 활기차고 화사해 보였다.


“엄마 아빠는 겨울 바다 가봤어?”

“음. 연애할 때 한번 가봤나? 네 아빠가 그렇게 가자고 꼬셔서 갔었지.”

“크크. 맞아. 거기서 아빠가 네 엄마랑 결혼할 마음을 굳힌 거야. 자기도 좋았잖아. 그치?”

“그래. 좋았지, 아주. 그 후로 결혼도 하고 우리 아들도 얻고. 참 행복해.”


갑자기 내 얘기까지 이어져 뻘쭘했다.


“거기서 내 얘기는 왜 나와. 뭐, 나도 덕분에 행복하긴 해요···.”

“엄마가 미안해. 우리 아들 더 잘 챙겨줘야 하는데, 둘 다 너무 바빠서 잘 못 챙겨준 것 같아.”

“에이. 뭐가 미안해. 그럴 거 전혀 없는데?”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나중엔 우리끼리 여행도 많이 다니자. 맛있는 것도 많이 사줄게.”


몇 년 전, 급격하게 건강이 나빠진 할아버지의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부모님은 더욱 바쁘게 일을 해왔다.

그렇게 바쁘게 일해오던 부모님이 얼마 전, 늦은 밤 흐느껴 울며 하는 얘기를 몰래 들었다.

할아버지의 건강이 더 나빠져서, 치료도 불가능해졌다는 거다.

그 후 엄마는 무기력하게 얼빠진 모습을 가끔 보였다.


“엄마 아빠는 괜찮지?”

“응? 뭐가? 우리가 안 괜찮을 게 어디 있어. 우리 아들만 잘 크면 됐지.”

“그게 뭐야. 난 우리 부모님이 건강하고 행복한 게 더 좋은데?”


힘들어하던 엄마는, 얼마 전부터 마음을 정리한 모양이다.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가끔 일찍 집에 와 저녁을 해주기도 하고, 같이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기도 했다.


“자. 이제 고속도로 들어간다. 두 시간 정도 걸릴 테니까 두 분은 좀 자고 있으세요. 일어나면 깨워드릴게.”

“푸흡. 자기 뭐 기사야? 나는 잠 안 오니까, 재윤이만 좀 자고 있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피곤하겠다.”

“아냐. 나도 잠 안 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상하게 차에 타면 어느새 잠이 쏟아져 기절해 버린다.

오늘도 버티려 했는데 고속도로에 들어오고 십 분이나 지났을까, 눈이 점점 감겨왔다.


‘조금만, 조금만 자고 일어나자.’


창밖을 보며 눈을 감았다.



“···아! 재윤아! 일어나!”


얼마나 지났을까.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조금씩 잠에서 깼다.


“응? 왜 그러···”


방금 깬 몽롱한 기분에 난 잘못 보고 있는 줄 알았다.

거대한 화물 차량에서 쏘아지는 경적 소리와 모습은 너무나 압도적이었다.

중앙분리대를 부수고 나타난 그 차량은 곧장 우리 차의 옆면을 가격했다.


콰앙-!

화물차가 부딪치며 큰 소리가 전해졌다.

난 깜짝 놀라 눈을 감고 다음 일어날 충격에 대비했다.


‘뭐, 뭐지···?’


몇 분이 지나고 나서야 이상함을 눈치챘다.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

방금 느꼈던 충격적인 소리는 마치 폭탄이 터지는 것 같았다.


‘감각을 느낄 새도 없이 죽어버린 걸까.’


혼란스러워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떴다.

눈앞에 보인 풍경은 거짓말 같았다.


트럭과 부딪치며 깨진 유리 조각, 떨어져 나간 철판, 시트 안에 있던 스펀지 등 별별 것이 공중에 흩어져 있었다.

그와 함께 공포에 질린 모습으로 트럭을 쳐다본 채로 멈춘 엄마.

몸이 반쯤 트럭이 닿아 고통스러워하는 찰나의 아빠.


두 사람의 모습을 보자 충격에 휩싸여 몸을 움직이려 했는데,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걸까, 아마 몇 시간은 지난 느낌이었다.

그제야 나는 지금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시간이 멈춘 거구나···.’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눈 외에는 움직일 수 내 몸도 움직일 수 없었고, 세상 어떤 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와 함께 방금까지 있었던 폭발과 같은 굉음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게 멈춘 그 적막은 소름 돋을 만큼 고요했다.


사실 내 이런 체질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친구랑 싸울 때, 길에서 넘어질 때도 잠깐 멈추는 순간들로 이미 이런 시간 정지를 경험했다.

분명 그랬는데, 오늘과 같은 상황은 처음이었다.


가족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니.

고문에 가까운 시간이다.

그리고 위기의 정도가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이 커서 그런지, 멈춘 시간이 상당히 길었다.


체감상 벌써 한 시간 이상은 지난 느낌이다.

무력함에 몸부림치던 나는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도대체 어떤 새끼가 이런 짓을 벌인 거야.’


시선을 부딪친 트럭 안으로 옮겼다.

그 안에는 빨개진 얼굴로 세상을 다 가진 듯 눈물을 흘리며 웃고 있는 중년 남성이 있었다.

얼굴에 쏟아진 유리 조각으로 여기저기가 찢어지면서도 보이는 그 광적인 미소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


“헉! 허억···. 또 이딴 개 같은 꿈을···.”


몇 년이나 지나 이제 좀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다시 이 꿈이 찾아왔다.

이건 꿈이라기보단 내 기억에 가깝긴 하지만.

잊을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이면서, 마지막으로 담을 수 있었던 부모님의 모습.


온몸에 흐른 식은땀에 불쾌함을 느끼며 그날은 다시 잠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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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가짜 친구 24.07.31 1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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