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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기리른
작품등록일 :
2024.07.11 23:08
최근연재일 :
2024.08.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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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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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어디에

DUMMY

그 후 의준은 가끔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고, 작은 충격에도 엄청 괴로워 하는 모습을 보이게 됐다.


강선우는 몇 주 뒤, 조용히 학교로 복귀했다.

사건이 있고 그는 학교에서 아무 일도 벌이지 않았다.

엎드려 자거나,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 게 전부였다.


끔찍했던 괴롭힘이 그대로 끝났다는 걸 믿을 수 없다.

기쁜 마음이 들 줄 알았는데 그런 건 느껴지지 않는다.


그동안 의준은 아닌 척하며 괴로움을 참아왔지만, 어느 날 나에게 한 가지 말을 털어놓았다.


“그때 기억나니. 강선우가 우리 쫓아왔던 날.”

“응. 잊을 수가 없는 날이지.”

“그날 걔가 나한테 꽂은 주사기가 뭘지, 이후로 날 괴롭게 하는 이 환각과 고통, 불안감이 뭔지 궁금해서 찾아봤어.”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말없이 고통스러워하는 친구를 가만히 둘 수는 없으니까.


“아마도 마약이었던 것 같아. 다른 걸 해본 적은 없지만, 상당히 강한 마약. 단 한 번이었지만 일상 생활도 이어가기 점점 힘들어지고 있어.”

“···. 병원 같은 곳을 가보는 건 어떻게 생각해?”

“그렇다고 해도 이미 망가진 이 삶을 돌이키긴 어려울 것 같아.”

“아냐. 나도, 너희 가족들도, 다른 친구들도 다 응원하고 도와줄 거야. 포기하지 마.”

“내게 남은 건 복수뿐이야.”


이미 그의 눈에 생기가 없어 보였다.

단 한 번의 투약으로 사람을 이렇게 피폐하게 만드는 약물은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내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너한테도 도움을 받고 싶어. 그동안 네가 강선우한테 고통받으며 겪은 그 감정, 나한테 넘겨줄 수 있어?”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어, 의준아.”


감정을 넘겨달라는 게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제 의준이 강선우와 엮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위험한 약은 분명 그가 엮인 조직에서 가져온 것이다.


섣부르게 복수한다고 나섰다가는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

우리에겐 더 긴 시간과 큰 힘이 필요했다.

얼마가 됐든, 나도 그 긴 시간을 쏟아 의준의 복수를 도울 거다.


“부탁이야. 너에게만큼은 허락받고 쓰고 싶어.”

“뭔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안 돼···. 조금만 기다려줘. 나도 무조건 너의 그 복수에 함께할 거야.”

“지금이 아니면 안 돼···.”

“너무 위험해. 지금 너는 너무 판단력이 흐려져 있어. 데려다줄 테니까 얼른 집에 가서 쉬어.”


가슴 아프지만 이게 맞다고 판단했다.



다음 날, 3교시가 다 되었는데 의준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아 수업이 다 끝나고 바로 찾아가려 했다.


4교시, 찾으러 가기 전에 의준이 뒷문을 열고 나타났다.

모두의 시선은 신경도 쓰지 않고 그는 곧바로 엎드려 있는 강선우에게 다가갔다.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비몽사몽 눈을 뜬 강선우가 자신의 앞에 선 사람이 누구인지 떠올리는 것 같았다.


“응? 너 거기서 뭐···”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의준은 강선우의 머리를 잡았다.


“으아악! 씨발, 이거 뭐야!”


그러자 강선우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발악하다 이내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뒤늦게 선생님이 말리러 왔는데, 할 일을 끝낸 의준은 밖으로 뛰어갔다.


어떤 상황인지도 모른 채 나는 그를 따라나섰다.

계단을 보니 위로 올라가는 그의 다리가 보였다.


어찌나 빠르던지 따라잡을 수는 없었지만, 쾅, 하며 닫히는 옥상 문소리로 그의 목적지는 알 수 있었다.


철컥.


“허억···. 의준아, 이게 무슨 일이야!”


내 말을 들을 틈도 없이 의준은 이미 난간에서 손을 놓은 상태였다.


***


“이렇게 된 겁니다. 의준이가 부탁하던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그걸 들어줬다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의준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어떻게 그 선택까지 이어졌는지의 이야기는 정말 끔찍했다.

현실 같지 않은 그 이야기에 소하와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소하는 얘기를 듣는 내내 겨우 눈물을 참았는데, 이내 눈물을 쏟아냈다.


동요하던 마음을 소하의 모습으로 오히려 안정시킬 수 있었다.

지금은 내가 정신을 차리고 더 많은 정보를 알아내야 한다.


먼저 들었던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의준은 친구를 돕다가 강선우라는 놈에게 이상한 약을 투여 당했다.

괴로워하다가 강선우에게 자신의 초능력을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의준이 초능력을 썼다고 생각한 이유는 그는 상대방의 감정이나 기억을 받거나, 주기 위해서는 신체 접촉이 필요하다.

머리를 잡았던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강선우가 괴로워했던 건 수첩에 적힌 다섯 명의 이름과 연관 있을 것이다.

딱 한 명, 지워지지 않은 이름인 김성진은 의준에게 자신의 기억을 공유하지 않았다.

의준은 허락 없이도 그의 감정을 가져갈 수 있지만, 친구였기에 허락 없이 그 기억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에게도 항상 그런 신중한 모습을 보여줬기에 알 수 있다.


어떤 사연을 가진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목록에 있던 사람들에게 어떤 괴롭고 무서운 감정과 기억을 공유받아 강선우도 느끼게 해준 것이다.


이야기를 들으며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세 가지 정도였다.

난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강선우라는 사람은 지금 어떻게 됐나요?”

“그 후부터 학교도 나오지 않고, 몇 년 동안 집에서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집이 어디인지는··· 알 방법이 없겠죠?”

“동네에서 유명했어요. 그놈이 여기저기 사고를 많이 치고 다녀서. 아직도 거기에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알려주세요.”


첫 질문은 소득이 있었다.

다음엔 강선우라는 놈의 집에 찾아가 보자.

의준에게 악의를 가질 사람은 분명 저 강선우라는 사람밖에 없다.

만약 아직 적어준 주소에 살고 있다면, 어떤 정보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이거다.


“강선우가 교류했다는 그 조직···? 거기에 대한 정보는 더 알 수 없을까요?”


출처를 알 수 없는 마약.

나에게 일어났던 사건과 함께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던 그 약은 아닐까.


“강선우는 주기적으로 어떤 클럽에 가서 그 사람들을 만났어요. 가끔 절 데리고 가서 이상한 짓을 시키기도 했죠···. 거기서 딱 한 번, 조직 이름을 말한 적이 있어요.”

“그게 뭐였죠?”

“브라운 테일이라고 했어요. 아직도 확실히 기억해요.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마약 같은 걸 사고파는 곳이겠죠···.”


모스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예상과 다르게 그건 아니었다.

관련이 없는 다른 곳인가.


“아. 그때, 의준이가 맞았던 주사기를 가져왔어요.”

“그, 그걸 가지고 있어요?”

“네···. 처음 발견했을 때,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집으로 가져갔는데, 버리면 안 될 것 같아 계속 가지고 있었어요.”

“혹시 그거 제가 가져갈 수 있을까요?”


모스가 만든 거라면, 이 주사기에도 그들의 문양이 있을 수 있다.


“이거예요.”


봉투에 밀봉하여 넣어둔 주사기를 내밀었다.

자세히 살펴봤지만, 아쉽게도 모스의 문양은 보이지 않았다.

모스와 관련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더 커져갔다.


그래도 아직 약 성분을 모르니까 이 주사기와 브라운 테일에 대해서 하진 형사에게 전해줘야겠다.


***


암울한 기분으로 겨우 소하를 달래 집으로 보냈다.

나도 지치고 힘이 없지만, 아직 할 일일 남아있다.

오늘 들은 이야기가 있으면 분명 의준에게 가까워질 수 있다.


강하진 형사에게 문자를 남겨 잠시 뒤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공원으로 걸어가면서 이미 의자에 앉아 날 기다리는 형사의 모습이 보였다.


“형사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그나저나 전해줄게 있다고요. 그게 뭐죠?”

“일단 이 주사기 받으세요.”


주사기를 넘겨주며 브라운테일이라는 이름과 정체 모를 마약인 것 같은데, 모스에서 뿌리는 그것이 아닐까 의심된다고 말했다.


“이, 이럴 수가···. 방금 브라운테일이라고 하셨습니까? 이런 정보를 도대체 어디서 알아내셨죠?”

“오늘 그 고등학생 연쇄살인 사건 관련해서, 의준이 친구에게 여러 이야기를 듣고 왔어요. 그때 강선우라는 학생이 그 조직에서 마약을 가져왔다는 얘길 들었어요.”

“아직 조사 중이지만, 모스 파우더를 밀매하는 여러 조직 중 한 곳입니다.”

“그놈들이랑 연관이 있는 곳이었군요···?”

“네. 음지에서 여러 조직이 그들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관련은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형사에게 얘기하자마자 모스와의 연결점을 찾을 수 있다니.

이렇게 협력할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나 감사했다.


“다만··· 이런 조직들은 점조직으로 운영되어 주요한 정보나 인물을 잡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럼 혹시···. 그 사람이 엘바프라는 클럽에서 이 정보를 얻었다는데, 이것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국내 여러 클럽에서 판매상이 돌아다니며 약을 파는 상황이라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그곳도 찾아보겠습니다.”


우리는 정보만 교환하고 곧바로 헤어졌다.

나는 강하진 형사에게 들은 이야기에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오늘 오전에, 또다시 살해된 고등학생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현장엔 범인의 증거로 볼 수 있는 건 전혀 없었고, 한 장의 카드만이 남겨져 있어 이전 사건과 연결됐다고 경찰 쪽에서 판단 중이라고 한다.


점점 범인의 살인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더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겠다.


***


다음 날이 밝자마자, 나는 건네받은 강선우의 주소로 향했다.

사린 고등학교에서 걸어서 삼십 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만약 이 연쇄 사건의 범인이 강선우라면, 근처에 있는 사린 고등학교의 학생들에게만 사건이 일어나는 것도 얼추 맞아떨어진다.

단지 내 감이 뿐이니까 진실은 아직 모르지만 말이다.


주소로 가보니, 이층으로 된 주택이 있었다.

주변이 모두 단독 주택이 이루어진 동네였다.


띵동-.

“누구세요?”


인터폰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강선우의 목소리일까.


“잠시 물을 게 찾아왔습니다. 잠깐 얘기할 수 있을까요?”

“무슨 얘긴데요? 물건 안 사고, 종교 관심 없어요.”

“그런 거 아닙니다. 그, 혹시. 강선우라는 사람 아시나요?”

“누구요? 잠시만, 야. 네가 내려가 봐. 지금 나갈 테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강선우의 이름이 나오자 선뜻 나와서 이야기를 해주려는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긴장감과 기대가 점점 커졌다.


“강선우인가, 그 사람 때문에 왔다고요?”

“네···.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밖으로 나온 건 노란색으로 탈색한 긴 머리를 가진 여자였다.


“뭐, 괜찮아요. 그 사람 얘기로 종종 사람이 찾아오더라고요. 뭔 짓을 했길래 그래요?”

“아···. 별 얘기는 아닙니다. 여기에 안 살고 있나 보군요?”

“네. 작년에 저희가 이사 왔는데, 그런 사람 이름은 못 봤어요. 두 번 정도 찾아온 사람들 있는데, 저희도 그때 들었거든요.”

“그랬군요···. 근데 혹시, 아까 그 남성분은 바쁘신가요? 다른 분이 나와서 놀랐어요.”


나름의 승부수를 던졌다.

인터폰은 남자가 받았는데, 굳이 본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보냈는지 의문스러웠다.

김성진에게 강선우의 옛날 사진도 확인했다.

삼 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얼굴을 본다면 그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네? 아···. 거실에서 드라마 보고 있어서요. 뭐 불러드려야 해요?”


내 질문에 경계하는 듯 태도가 조금 바뀌었다.

갑자기 찾아와 얼굴 보여달라는 게 기분 나쁠 만하다.

그래도 나는 확인해 봐야겠다.


“이런 사람은 또 처음이네. 그럼 기다려요. 그 사람 나오라 할 테니까. 여보~! 여기 이 사람이 나와보래.”


복도를 지나 거실로 들어가며 불러내는 소리가 들렸다.

안에서 둘이 뭐라 하는 듯 웅성거리는 소리가 잠깐 들리더니, 남자가 나왔다.


“저를 찾았다고요? 아니, 우리 집에 그 강선우인지 뭔지 하는 사람 없다니까요. 왜 자꾸 찾아와서 이렇게 사람을 괴롭혀요.”

“아, 죄송합니다. 꼭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 앞으로는 귀찮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허탕이다.

얼굴의 어디에도 강선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이도 삼십 대 정도로 보이고, 키도 들었던 것보다 훨씬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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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가짜 친구 24.07.31 1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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