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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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기리른
작품등록일 :
2024.07.1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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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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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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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위험(2)

DUMMY

“어···? 뭐야. 이 차 왜 움직여?”


갑작스럽게 출발한 차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


“흐하하! 중심은 꽤 잘 잡는군. 운동이라도 배웠나?”

“그리핀··· 씨? 어디 있으십니까!”


주변에서 그리핀의 목소리가 들려 돌아봤지만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되어서야 나는 깨달았다.

함정이었구나.


그의 목소리는 어제 봤던 것처럼 술에 취해 있는 듯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차 안의 공기가 차가워 술 냄새는 거의 나지 않았다.

냄새로 위치를 파악할 수도 없는 것이다.


대비할 틈도 없이 그리핀은 공격해왔다.

시간이 멈추고 난 다시 생각해야 한다.

저번에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 누군가 있다는 걸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이번은 다르다.


멈춘 시간 속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급출발로 여러 상자에서 떨어진 채소가 발에 밟힌 듯 반쯤 으스러져 있는 게 보였다.

그 위로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는데 판단할 근거가 그거밖에 없었다.


시간이 돌아오며 나는 최대한 몸을 뒤로 뺐다.

힘을 너무 줘서 등이 벽에 부딪혀 몸에 충격이 전해져왔다.


“호오. 어떻게 피한 거지? 저번에도 그렇고, 보이지 않는 내 공격을 피하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는 화가 나는지 바닥을 몇 번이나 발로 내리쳤다.

물론 시간이 멈춰있는 동안 생각할 시간이 남들보다 많기에 더 최적의 판단을 내릴 수는 있다.

그렇다고 이런 공격을 다 피할 수 있지는 않다.

어제와 오늘 공격을 피한 건 운의 영역이 훨씬 더 컸다.

몇 번이고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결국 피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까.


‘다시 온다···.’


또다시 시간이 멈췄다.

아까처럼 바닥에 떨어진 채소들을 보며 위치를 찾아가며 간신히 몸을 날려 피했다.

몇 번이나 이런 상황이 계속되며 나는 다시 벽으로 몰렸다.


쏟아지는 공격 속에서 돌아다니며 떨어진 채소들은 다 밟혀 짓이겨졌다.

이제는 저걸로 위치를 판별하기도 어려워졌다.


그래도 등과 벽이 맞닿은 이 상황은 어제와 같다.

아까도 이런 상황을 마주했는데 아래로 피해서 도망칠 수 있었다.

술을 마신 탓인지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집요하게 노리는 듯했다.


이번에도 나는 아래로 몸을 숙였다.


“커헉···!”

“그래! 이 맛이지.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 줄 알았나!”


예상과 달리 아래에서 공격이 날아왔다.

발로 나를 차버린 것 같다.

그리핀의 발은 내가 몸을 숙여버리는 탓에 심장을 직격했다.

숨을 쉬기가 힘들다.


삼 년 전 사고에서 외상은 거의 없이 살아남았지만, 이상하게 심장에 큰 충격을 받았다.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심장 근육을 대신할 보조 인공심장이 몸속에 들어있다.

아무래도 이 공격으로 장치에 충격이 가해지며 작동을 멈춘 것 같다.


난 그대로 심장을 부여잡고 자리에 쓰러졌다.


“한 대 맞고 이렇게 쓰러진다고? 날랜 것에 비해 맷집이 형편없군. 이제야 좀 흥이 올랐는데 다시 좀 일어나 보라고.”

“이, 개··· 같은 자식···.”

“하하!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지. 벌레 같은 놈이 감히 우리 조직을 속이려고 들다니. 연기라도 더 배우고 오지 그랬나?”


처음부터 내가 접근했던 목적을 알고 농락했다.

묘하게 내 신경을 긁고 떠보는 그 장난을 친 이유도 이제 납득이 갔다.


이것도 충격지었지만 지금 나는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심장이 움직이지 않으면 정말로 죽는다.

공포에 사로잡힌 나는 주먹으로 심장을 때리며 장치가 다시 움직이길 바랐다.


“뭐 하는 거지? 자책이라도 하는 거냐?”

“닥···쳐···.”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운지 그리핀은 웃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는지 능력을 풀어버렸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심장은 움직이지 않았다.

서서히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 난 모든 걸 포기하고 그대로 드러누웠다.


“드디어 포기한 건가. 그러면 이제 그 경찰이 어디 있는지 불어라.”

“···.”

“아직 더 맞아야 정신을 차리나.”


지겹다는 듯 그리핀은 한숨을 내쉬며 내게로 다가왔다.

정신을 차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미 숨도 꺼져가는 마당에 굳이 저놈들에게 정보를 주고 갈 이유는 없다.

어떻게 되든 나는 이제 곧 죽는다.


모든 걸 포기하고 눈을 감았을 때, 앞쪽에서 큰 소리와 함께 충격이 다가왔다.

겪어봤기에 알고 있다.

이건 차가 부딪치는 소리다.


이내 시간이 멈추고 끔찍했던 옛날의 기억이 악몽처럼 머릿속에 재생됐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어···?”


분명 시간이 멈췄는데 몸이 움직였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기 위해 본능적으로 움직여졌다.

그리고 나는 떠올렸다.


멈춰진 시간 속에서 나는 원래 움직일 수 있었다.

부모님과의 사고가 있던 그날, 난 모두가 정지된 상태에서 어떻게든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애썼다.

현실 시간으로 따진다면 몇 시간도, 며칠도, 몇 달도 더 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시간 동안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아봤지만, 나 이외에 다른 사람이나 물체를 움직일 수는 없었다.

절망에 빠져 언제 시간이 풀려 일어날지 모르는 끔찍한 참사를 대비해야 하는 나는, 결국 모든 걸 포기해버렸었다.


움직일 수 없는 것이라고, 움직여도 변하는 건 없었기에 이내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사고를 피해 다른 곳으로 피했을 수도 있지만 이때의 나는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


다시 찾아온 그때와 같은 위기에 나는 그날의 모든 기억이 떠올랐다.


멈춘 시간 속에서 내 몸은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나만 시간이 흐르는 건 아니다.

지금 움직이지 않는 심장으로 일어나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걸 보면.

이 상황을 나는 기회로 다시 한번 살아보기로 했다.


내 등에 있는 벽, 그러니까 운전자가 있는 차 전면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벽에 바로 내 앞까지 찌그러진 이 금속 벽을 보면 확실하다.


앞에 누워있던 나와, 그런 나를 바라보며 비웃던 그리핀은 어느새 당황한 듯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굳어있었다.

자신이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깔보던 사람의 표정이 참 우스꽝스러웠다.

얼굴 앞에 손을 흔들어봐도, 건드려 봐도 돌처럼 딱딱해진 그리핀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모든 게 예전 기억 속의 내 능력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달라진 게 딱 하나 있다.

내 손에 닿은 게 인간이 아니면 그 물체가 움직여졌다.


이렇게 되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게 늘어난다.

난 구석에 놓여 있던 모스파우더의 원액, 피로 추정되는 비닐팩을 하나 손에 들어 그리핀의 입에 쑤셔 넣었다.

놀라서 입을 벌리고 있어 아주 쉬운 일이었다.


이제 밖으로 나갈 방법이 없는지 찾아봤다.

후면에 있는 큰 문을 열어보려 했지만 밖에서 잠금장치가 되어있어 열리지 않았다.

열릴 가능성이 있는 건 옆에 달린 작은 문이었다.


전면이 찌그러지면서 옆문도 찌그러져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체중을 실어 문을 열어보니 우지끈 소리를 내며 열렸다.


“오, 이게 열리네···.”


나와보니 모든 게 멈춰선 세상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실 몇 번이나 봐온 풍경이지만, 여유롭게 이걸 느껴볼 시간은 없었다.

내 능력은 위험한 상황에만 발동되니까.


지금도 정말 위험한 상황이지만, 움직일 수 있어 쉽게 피할 수 있게 됐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시간이 돌아오면 충돌 사고는 피하겠지만 내가 곧 죽을 수도 있다는 거다.


감상에 젖을 시간도 없이 시간은 곧 돌아오려 하고 있다.

시간이 돌아오기 전에 최대한 차에서 멀리 떨어졌다.


콰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고, 단단한 차체가 찢어지고 구겨지며 끔찍한 소리를 냈다.


눈을 감고 다가올 내 마지막을 대비했는데, 나에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충돌한 차에서 날아온 조그마한 파편과 바람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뭐지. 왜 아무렇지 않지···?”


방금까지만 해도 심장을 부여잡고 고통에 몸부림쳤는데,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심장에 손을 올려보니 정상적으로 뛰는 박동이 느껴졌다.


“일단··· 다행이네.”


여기까지가 마지막이라 생각해 다음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하나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황할 틈도 없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도로 위에 강하진 형사가 쓰러져 있는 것이었다.


“혀, 형사님!”

“재윤··· 씨. 무사하셨군요.”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형사를 부축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며 물었다.

그는 오늘 내가 차를 살펴보는 것과 별개로 이동 경로를 추적해 볼 생각이었다고 했다.

내가 차에 타는 것까지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차가 출발하는 걸 보고 급하게 따라왔다고 한다.


“그렇다고 저렇게 무리한 짓을 한 거예요···?”

“저건 제가 한 게 아닙니다.”

“그럼 누가 저런 짓을···.”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역주행을 해오더니 저 차와 부딪쳤습니다.”


강하진 형사는 역주행 해오던 차를 피해 핸들을 꺾다 이미 사고가 난 다른 차와 부딪치기 전에 차에서 뛰어내린 거라고 한다.


화물차로 역주행 해오던 차가 의도적인 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물론 나를 위험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줬기 때문에 도움을 받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저런 위험한 행동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와 별개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화물차 안에서 쿵쿵 소리가 들리더니 그리핀이 문을 열고 나왔다.

피로 얼굴이 범벅되어 있고 팔이 한쪽 부러졌는데도 저 난리 속을 뚫고 밖으로 나왔다.

고통스러울 법도 한데, 그는 입을 활짝 벌려 웃고 있었다.


“아, 맞다. 저건 내가···.”

“네? 저거라는 건 무슨 말입니까.”


마지막이라 생각했을 때, 저 사람이라도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입에 원액을 처박아버렸다.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면 죄책감도 들었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저 차에 쓰임새를 알 수 없는 피가 박스에 들어있었어요. 그걸 저 남자의 입에 넣어두고 탈출했더니, 저런 표정을 짓고 있네요.”

“그런···. 그렇다면 저 안에는 제 딸의 피가 있었던 건 명확하군요.”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큰 사고가 났으니 경찰과 구급대원이 오고 있을 것이다.

강하진 형사는 그들이 오기 전에 얼른 몸을 숨기자고 했는데, 그 전에 나는 그리핀에게 한 가지 확인해볼 것이 있었다.


“잠시만요···. 그리핀이 지금 저런 상태라면 뭘 물어도 대답해 줄 것 같지 않아요?”

“가능성이 있겠습니다. 저는 도망칠 곳을 찾아보고 있을 테니 한번 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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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가짜 친구 24.07.31 1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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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친구를 찾아서(4) 24.07.29 14 0 12쪽
9 친구를 찾아서(3) 24.07.26 1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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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친구를 찾아서 24.07.24 1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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