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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기리른
작품등록일 :
2024.07.11 23:08
최근연재일 :
2024.08.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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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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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친구를 찾아서

DUMMY

수첩은 의준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적은 듯한 일기였다.

하루에 짧게 몇 줄씩 있었던 일이나, 기분이 정리되어 있었다.


[3월 2일]

[오늘은 입학식이었다.]

[새로운 환경은 항상 떨린다. 여기에서도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3월 3일]

[뒷자리에 앉은 친구가 같은 중학교에서 온 듯한 친구를 괴롭힌다.]

[나설까 말까, 고민하다가 하지 말라고 얘기했다.]

[이제 고등학생인데 아직도 저러고 싶을까.]


[3월 4일]

[어제 그놈이 친구들을 데려와 나대지 말라고 한다.]

[딱히 나댄 적은 없는데. 나쁜 짓 하지 말라는 게 뭐가 잘못됐어.]


[3월 7일]

[첫날 말을 붙인 친구가 갑자기 아는 척을 안 한다.]

[서랍에 쪽지가 하나 있었는데, 내가 건드린 놈이 잘나가는 놈이란다.]

[학교에서나 좀 나가라.]


[3월 8일]

[끌려가서 맞았다.]

[아프네.]

[내가 잘못한 거야? 친구들 보고 싶네.]


학기 초에 있었던 일만 적혀있었고, 다음 글은 날짜가 훌쩍 지나가 있다.


[5월 24일]

[오늘 재윤이가 문을 열어줬다.]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

[내 일은 재윤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잘 버텨보자.]


내가 친구들에게 문을 열어준 날이었다.

본인도 힘들면서, 이런 날 살리기 위해 힘쓰고 있던 것이다.


‘왜 우리한테 얘기를 안 한 거야···.’


이런 의문은 다음 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6월 2일]

[그냥 친구들한테 털어놓을까 싶다.]

[아냐. 안 그래도 힘든 애한테 이런 얘기를 해서 뭐해. 아직은 아니야.]


[6월 11일]

[동생한테 멍든 걸 들켰다.]

[부모님한테 말하겠다고 난리 치는 걸 겨우 막았다.]

[쪽팔리네.]


이 글 밑에 줄을 무시하고 쓰인 다섯 명의 이름을 제외하면 아무런 내용도 남아있지 않았다.


[백민우]

[정대현]

[이연구]

[김성진]

[박가진]


무언가 확인한 듯, 글자를 가로지르는 세로선이 네 명의 이름에만 그어져 있었다.

중요한 정보일 수도 있다.

찍어가자.


지잉-.

그 사이 충전기에 연결해 놓은 의준의 핸드폰에 불이 들어오며 전원이 켜졌다.

핸드폰을 확인하기 위해 손에 쥐었을 때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당황해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수첩은 서랍에 넣었다.


“와서 밥 먹으렴. 좋아할진 모르겠는데 맛있게 먹어주면 좋겠구나.”

“가, 감사합니다!”


열린 문으로 어머니를 따라 곧바로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어버렸어···.’


사실 핸드폰도 충분히 서랍에 넣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무의식중에 나는 핸드폰을 확인해 어떻게든 범인을 잡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식탁으로 가보니 잡채와 불고기, 각종 반찬이 가득했다.

이렇게 푸짐한 한 상을 보는 게 너무 오랜만이었다.


잡채와 불고기.

의준이 제일 좋아했고, 자신의 어머니가 누구보다 잘한다고 자랑하던 음식이다.


“잘··· 먹겠습니다.”

“많이 먹어. 너도 밥 잘 먹고 좀 다녀. 그렇게 야위어서 어쩌려고 그래. 영 못 챙기겠으면 여기가 우리 집이다, 생각하고 자주 와.”


어머니의 따스한 온기가 스며든 밥상.

난 눈앞에 놓인 음식들을 빠르게 입속으로 욱여넣었다.

배가 불러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어머. 이렇게 잘 먹으면서···. 밥 더 줄까?”

“괜찮아요! 너무 배부르게 잘 먹었어요. 감사합니다.”


집을 나서기 전엔 거절해도 계속 내 손에 쥐어준 과일과 반찬통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지고, 어머니가 싸준 음식을 모두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의준이가 정말 살아있는 거라면, 어떻게든 그런 짓을 그만두고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을 만나게 해드리자.’


결의에 찬 눈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얼른 확인해 보고 싶은데 의준의 핸드폰 배터리가 그리 많지 않았고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하. 핸드폰이 잠겨 있잖아.”


대부분 패턴으로 잠금 설정하는데, 의준은 숫자 비밀번호로 등록을 해둔 것 같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

최소 여섯 자리부터 시작인데, 시도해 보다가 핸드폰이 잠기면 어떡하지.


간단한 000000이라든지, 123456 같은 번호들은 모두 아니었다.

세 번 정도 실패하니까 번호판 위로 ‘힌트’라는 글자가 떴다.

도움이 되는 걸 적어놓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눌러서 힌트를 확인해 봤다.


[있겠냐. 훔쳐볼 생각 ㄴㄴ]


그렇다.

원래부터 개인적인 이야기는 잘 안 하고, 개인 정보를 보여주는 걸 좋아하지 않던 사람이 의준이었다.

비밀번호를 알 수도 있는 힌트를 남겨둘 리가 없지.


핸드폰은 몇 번 정도 더 시도해 보고, 못 찾으면 의준이네 어머니가 주신 반찬통을 돌려주며 어떻게 다시 잘 가져다 놓아야겠다.


“오늘은 일단 이 정도구나. 일단 눈여겨봐야 할 건 수첩 마지막에 적힌 이름들이겠다.”


외워둔 이름을 메모장에 옮겨 적었다.

누구인지 전혀 들어본 적은 없는데 아마 당시 같은 학교 사람일 것 같다.


지금 이 이름에 대해 찾아볼 방법은 인터넷밖에 없다.

한 번도 사용해 본 적 없는 SNS 계정을 만들어 검색창에 하나씩 이름을 검색했다.


수많은 사람의 계정이 떴는데, 한 시간 정도 하나씩 들어가 보며 확인하다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많잖아···. 이름이랑 고등학교만 알면 어떻게 금방 찾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어렵네.”


본명을 설정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나처럼 SNS를 하지 않는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일단 여기까지 하자. 우선 내일 해보려던 게 있잖아. 그러면 고등학생 때 얼굴 정도는 알 수 있을 거야.”


***


오늘 해보려 한 건 의준이 다녔던 사린 고등학교에 잠입하는 것이다.

이걸 위해 어제 중고 거래로 고등학교 교복을 구입했다.


판매자가 무슨 이유로 구매하려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까 했는데, 아직은 학생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중고 거래로 사려는 그 절약 정신이 마음에 든다며 통 크게 오천 원이나 깎아줬다.


조금 큰 감이 있지만 오늘 말고는 더 입을 일 없을 테니까 참자.


몇 주 전의 사건과 이번 사건 모두 사린고 학생이니, 학교에서 여러 소문이 돌아다닌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확인할 건 졸업앨범이다.

몇몇 학교에서는 도서관이 이전 졸업앨범을 가져다 두는 모양이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도 그랬고.


비록 학생 때의 모습이지만, 이름과 얼굴까지 알게 된다면 인터넷에서 찾아보는 것도 조금은 수월해질 것이다.


11시 20분.

이제 출발해야겠다.


처음엔 등교 시간에 맞춰 들어가려 생각했지만, 수업 시간에 숨어있다가 걸려 쫓겨날 걸 우려해 점심시간으로 목표를 바꿨다.

학생들이 여기저기 퍼져 돌아다니는 그때라면 교복만 입고 있으면 외부인처럼 보일 일은 없을 것이다.


교복을 입고 밖으로 나오니 기분이 이상했다.

주변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것 같고 벌써 내가 학생이 아닌 걸 다 알고 있을 것만 같았다.


버스에 올라타 금세 학교 앞 정류장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며 학교 주변을 살폈다.

어느 쪽으로 들어가야 좋을까.


들어가는 문이 두 개가 있었는데, 주차장과 연결된 후문이 사람이 적어 몰래 들어가기 좋을 것 같다.


딩동댕동-.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학교 밖까지 울려 퍼졌다

대부분 학생이 식당으로 달려가는데, 몇몇 학생은 주위를 살피며 후문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잠시 몸을 숨겼는데 그 학생들은 담을 넘어 학교 맞은편에 있는 분식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저기로 가면 되겠군.’


이미 몇 년이나 학교에 다닌 학생들이라면 밖으로 나가기 좋은 위치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학생들이 넘어온 담을 넘어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못 봤겠지···?’


학생 때도 안 해봤던 짓을 하려니 무척이나 긴장됐다.


“야! 너 이리 와봐.”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던 차에, 자동차에서 내린 사람이 찡그린 얼굴로 손짓하며 날 불러세웠다.


“저, 저요?”

“새끼 이거. 거기 너 말고 누가 있다고. 너 점심 안 먹고 어디 갔다 왔어.”


이 상황을 어떻게 넘겨야 할까.

아마 선생님인 모양인데, 잘 빠져나갈 방법이 뭐가 있을까.


“그··· 슬리퍼!”

“슬리퍼?”

“친구들이랑 놀다가 슬리퍼가 저 밖으로 날아가서 주워 왔어요···.”


최대한 학생 느낌을 내기 위해 슬리퍼도 신고 나온 게 천만다행이라고 느껴졌다.


“아이, 미친놈들아. 좀 얌전히 놀아. 넌 거짓말은 아닌 것 같으니까 한 번만 넘어가 준다. 가봐.”

“감사합니다! 조심하겠습니다!”


선생님은 내 등을 몇 번 두드리며 무심하게 가라고 했다.

그러고선 차 뒷좌석에서 배드민턴 라켓을 꺼내 어딘가로 걸어갔다.

체육관 쪽으로 가는 모양이다.


‘하···. 진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들어오자마자 선생님에게 걸려 추궁당하다 경찰서까지 가는 상상을 했다.

다행히 만난 사람이 편의를 봐주는 사람이라 다행이다.


식은땀을 흘리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학교 홈페이지를 찾아봤을 때, 도서관은 4층에 있는 걸 미리 확인했다.


점심시간엔 아마 모든 학생한테 도서관이 개방되어 있을 테니 자연스럽게 들어가서 앨범을 확인해 보면 된다.


목표는 대부분 점심을 먹고 있을 30분 동안 앨범을 찾아보고, 이후엔 복도나 운동장 같은 곳을 돌아다니며 학생들의 얘기에 귀 기울여보자.


4층에 올라 유리문 사이로 도서관 안을 살펴보니 학생 몇몇이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다행이다. 몇 명 있구나. 혼자만 있으면 눈치 보였을 것 같은데.’


도서관에서 졸업앨범을 찾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책상과 의자가 놓인 중앙 벽에 앨범처럼 보이는 크고 두꺼운 책이 여러 개 꽂혀 있었다.


‘저기 있다. 2019년 8기 졸업앨범.’


다른 사람들의 추억이 담긴 앨범을 확인한다는 게 뭔가 기분이 이상했지만, 그런 건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1반부터 차근차근 살펴보자.

옆에 확인할 이름이 적힌 메모장을 두고 일치하는 이름을 찾았다.


‘정대현, 백민우, 박가진, 이연구···’


네 명의 이름과 얼굴을 확인했지만 모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내 예상과 다른 건가···.’


만약 이 네 명이 모두 모르는 얼굴이라면, 앨범을 찾아보는 건 그렇게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SNS에 이 사람 중에 얼굴을 올린 사람이 있다면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만.


“이, 이 사람이야!”


김성진이라는 이름 위에 박힌 사진을 보고 난 기억 속에 있는 그 사람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사람이 의준의 장례식장에서 봤던, 내게 의준 얘기를 해주고 눈물을 흘리던 그 남자.

자신이 돕지 못한 걸 후회하는 모습이 너무나 보였던 사람이다.


‘근데 왜 수첩에 이 사람 이름에만 줄이 안 그어져 있었지?’


결론을 내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시간은 12시 20분.


도서관 밖으로 나오니 벌써 복도에 많은 학생이 보였다.

여기저기 모여 서로 장난을 치고 웃고 떠드는 모습이 시끌벅적했다.


학생들 틈을 지나다니며 살인 사건 얘기가 나오지는 않을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이런 짓을 한다는 게 뭔가 죄책감이 들 찰나, 멀리서 소리 지르며 교실로 들어가는 학생이 등장했다.


“속보! 속보! 그저께 사건 뉴스 탔다! 범인 얼굴 찍혔대! 시발, 특종이다. 다 모여봐!”


재밌다는 듯,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핸드폰을 손에 들고 교실로 들어갔다.

저기서 얘기를 들어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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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가짜 친구(2) 24.08.01 10 0 12쪽
12 가짜 친구 24.07.31 1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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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친구를 찾아서(4) 24.07.29 15 0 12쪽
9 친구를 찾아서(3) 24.07.26 11 0 12쪽
8 친구를 찾아서(2) 24.07.25 12 0 13쪽
» 친구를 찾아서 24.07.24 1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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