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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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기리른
작품등록일 :
2024.07.1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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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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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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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찾아서(4)

DUMMY

오늘도 어제처럼 평화롭게 하루가 지나가길 바랐다.

아침에 강선우가 일찍 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첫날만 일찍 온 것 같다.


오전 수업 동안, 강선우는 어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친구들과 장난치며 놀고 있다.

어쩌면 정말 나에게 관심을 끈 것일까?


일이 터진 건 점심시간이었다.

모두 점심을 먹고 돌아와 웃고 떠들던 중, 강선우가 다른 반 친구 여럿을 이끌고 교실로 찾아왔다.


“야, 찐! 따라와라. 오늘 오랜만에 한 번 맞자.”

“···어?”


갑작스러운 강선우의 외침에 교실이 조용해졌다.

이렇게 대놓고 나를 부를지는 몰라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모두가 서로를 쳐다보며 눈치를 봤고, 잠시 고민하던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뒷문으로 향했다.

그때 나선 건 의준이었다.


“성진아, 가지 마. 네가 저런 말을 들을 필요가 어디있어. 휘둘릴 필요 없어.”


한쪽 팔로 나를 막아섰다.

지난 삼 년 동안, 난 강선우를 옆에서 봐왔다.

그는 처음부터 나같은 건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시선은 계속 의준을 향해 있었다.

처음부터 그가 나서길 기다린 거다.


“푸흡. 그냥 우리 중학교 때부터 하던 놀이 하려던 거야. 넌 빠지지?”

“이딴 게 놀이야? 다른 사람 상처 주면서 그딴 말 내뱉지 마. 그리고 교실 분위기 흐리지 말고 가.”

“다 같이 놀려고 친구도 데려왔는데, 분위기 존나 망치네. 가기 싫다면 어쩔 건데?”

“선생님 불러야지.”

“그딴 걸로 해결이 되겠냐? 선생들은 학생 못 건드려. 그리고 누가 나가게 둔다고 했어.”


강선우가 뒤에 서 있는 사람에게 눈짓을 보내자, 앞문으로 가서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막아섰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다.

대치가 길어지며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졌다.


의준은 강선우의 의도를 어느 정도 눈치챈 것 같다.


“원하는 게 뭔데.”

“쟤 보내기 싫으면 네가 따라와. 그럼 그냥 조용히 갈게.”

“하···. 그러든가.”

“화끈하네. 좋아. 그럼 가자.”


강선우는 그렇게 옆에 선 의준에게 어깨동무하고 어딘가로 데려가 버렸다.

의준은 저 일행과 가기 전에 뒤로 돌아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 어떤 단어를 말하고 갔다.

어제 의준과 같이 밥을 먹은 우리는 그 말이 뭔지 서로 의견을 나눴다.


“뭐라고 한 건지 알겠는 사람?

“산생선?”

“그거겠냐고.”


다들 감을 못 잡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엔 이거 같은데.


“선생님···. 무슨 일 있을 수도 있으니 선생님 부르자는 거 아닐까?”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맞는 것 같다!”

“그, 그럼 내가 선생님 데려갈게! 근데 어디로 데려가···?”

“어제 쟤네 창고 뒤에서 담배 피우는 거 봤거든? 일단 거기로 불러봐. 내가 빨리 가서 거기에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볼 테니까.”


우리는 역할을 나눠 움직였다.

한 명은 선생님을 부르러 갔고, 나와 다른 한 명이 건물을 돌아다니며 의준을 찾는 거다.


솔직히 무서웠지만, 그보다 의준에게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더 앞섰다.

4층에서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중간에 마주친 선생님이 뛰지 말라고 한 소리 했지만,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내달렸다.


내가 가볼 건 학교 후문 쪽이다.

학교엔 작년부터 별실 공사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지 한 달이 넘게 공사가 멈춘 상태였다.


“헉, 허억···.”


이렇게 달려본 것도 오랜만이다.

공사장 근처에 다다른 나는 시멘트와 여기저기 철근도 드러나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서늘하고 매캐한 냄새가 덮쳐왔다.

계단으로 이어진 2층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조용히 올라가 몸을 숨겨 누가 있는지 살펴봤다.

저 멀리 강선우 무리와 의준이 보였다.

그를 때리고 있지는 않았는데, 상황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언제든지 저들이 나서 의준을 공격할지 모른다.


여기서 나는 두 가지 고민에 휩싸였다.

나가서 일단 저들을 막아서야 할지, 교무실로 달려가 빠르게 선생님을 불러와야 할지.

강선우의 모습을 보니 덜컥 겁이 나 제대로 된 판단도 되지 않는 것 같다.


“야, 너 뭐냐?”


그때, 내 뒤에서 담배 냄새를 풍기며 다가온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혼란스러운 상황에 누가 올라오는지도 못 봤던 모양이다.


“뭔데 훔쳐보냐고.”


대답하지 못하는 내 멱살을 잡아끌고 그는 강선우 무리로 향했다.

강선우는 가까워지는 우리를 보며,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표정이 잔뜩 밝아졌다.


“그래. 딱 쟤가 있네. 학교는 그런 곳이야. 힘으로 지배되는 곳. 다들 아니라고 하지만 언제나 그렇게 흘러왔어.”

“그건 네가 그렇게 보고 싶을 뿐이잖아. 폭력이 없으면 넌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렇게라도 인정받고 싶은 거잖아?”

“···. 야. 쟤 밟아봐.”


의준이 날 보고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강선우는 의준이 한 말에 잔뜩 열받은 채로 친구들에게 명령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뒤에서 누군가가 내 다리를 차 넘어뜨리고 몰려들기 시작했다.

다시금 옛날의 공포가 떠올라 두 팔로 머리를 감싸 웅크렸다.

이런 때엔 머리를 보호해야 한다.


“그만둬!”


포기하고 급소를 막는 것에 집중했을 때 내 위로 사람의 주먹이 아닌 온기가 느껴졌다.

의준이 자신의 몸으로 나를 막아주는 것이었다.


“이 자식들! 그만 안 둬!”


때마침 친구들이 선생님을 데려왔다.

우리를 때리던 놈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도망갔다.


사건이 일단락되고, 의준을 중심으로 우리 다섯 명은 서로를 믿는 친구가 됐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었다.


다음 날, 어김 없이 제일 먼저 교실에 도착한 나는 친구가 왔을 때 반갑게 인사를 건넸는데, 이상하게 받아주지를 않았다.


“아, 안녕! 의준아.”

“안녕. 어제 다친 데는 좀 괜찮아?”


인사를 받고 걱정해 주는 건 의준밖에 없었다.


다섯 명이 그렇게 똘똘 뭉쳐 친구가 된 줄 알았는데, 다음 날 남은 건 두 명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우리를 피했다.

그래도 이번엔 혼자가 아니다.

친구가 있다면 뭐든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그날 저녁, 강선우가 하교 중이던 내 앞을 막아섰다.

가볍게 뺨을 후린 뒤 시작한 그의 말은 이랬다.


“너 나한테 그만 맞고 싶지? 그러면 하나만 하면 돼. 민의준 그 새끼 모르는 척 해.”

“뭐···?”


오늘 세 친구가 우리를 피했던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구나.

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모든 걸 힘으로 찍어 누르던 녀석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친구가 생겼기 때문일까, 용기가 생긴 나는 되물었다.


“왜 그런 짓을 하라는 거야?”

“이 새끼가 뭘 물어. 하라면 하면 되지. 그래도 궁금해하는 것 같으니 말해줄게. 그 새끼는 힘으로 무릎 꿇릴 수 없다는 걸 인정했어.”

“···.”


강선우가 꺾을 수 없음을 인정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 조직 사람들을 제외하면.


“그래서 재밌어졌잖아. 어떻게든 난 걔를 무너트릴 거야. 내 앞에서 제발 잘못했다고, 빌게 만들어야지. 이건 그 놀이 중 하나야.”

“못 하겠다면?”


역겨운 새끼.

당연히 난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

나를 믿고 지켜준 친구를 배신하라니.


“못 하겠어? 그럼 하고 싶게 만들어 주면 되지.”


퍽.

그날부터 다시 폭력은 시작됐다.

예전과 좀 다른 점이라면, 맞은 곳이 보이지 않도록 교묘하게 때렸다.

정말 아프고 괴로웠지만 이 정도는 항상 겪었던 거다.

나만 참으면 된다.


그렇게 학교에선 아무렇지 않게 의준과 공부도 하고, 게임도 하고 지냈다.

얼마 뒤 우리가 누구 물건을 훔쳤다는 둥, 성적 취향이 이상하다는 둥.

별별 소문이 돌아 주변의 시선도 안 좋아졌지만, 우리는 그게 사실이 아닌 걸 알기에 당당했다.


그렇게 몇 달이 더 지나고 우리는 서로가 강선우 무리에게 맞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강선우는 의준도 데려가 폭력을 썼던 것이다.


친구, 소중한 사람이 상처 입는 걸 깨닫는 게 이렇게 마음 아픈 일인지 몰랐다.

난 잔뜩 화가 났고, 예전에는 무서워서 하지 못했던 생각을 떠올렸다.


“우리 경찰에 신고하자.”


진작에 해야 했을 일이다.

사람을 이렇게 상처 입히는 놈들을 봐줘선 안 된다.


다음 날, 학교엔 경찰이 찾아와 강선우와 그 친구들을 데려가 조사를 했다.

학교는 발칵 뒤집어졌다.


가해자의 담임 선생님들도 어딘가게 자주 불려 갔고, 학부모들이 와서 난리를 치기도 했다.

시끄러워진 학교 상황에 좀 불안했지만, 그 이후 강선우 무리는 우리를 신경쓸 겨를도 없는 것 같았다.


며칠 뒤, 그 사고가 벌어지기 전까지는.


의준과 나는 같이 집으로 가던 중, 다시 한번 강선우와 마주쳤다.


“이 개 같은 새끼들···. 잘 지냈냐?”

“무슨 일로 찾아왔어? 사과할 거 아니면 가. 아니면 바로 경찰에 전화할 거야.”

“그놈의 경찰! 그거 때문에 지금 내가 지금 뒤질 것 같아. 그게 밝혀지면···.”


평소엔 보지 못한 공포에 질린 듯한 그의 모습은 너무나 신기했다.

항상 자신감에 넘쳐 있던 그 표정과 대조되는 그 모습은 기괴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이제 놀이고 뭐고, 다 됐고. 너희 중 한 명이 나 좀 도와줘야겠다.”


주머니에서 길다란 물체를 하나 꺼내들었다.

어두워 멀리 있을 때는 그게 뭔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칼이 아닐까, 우리 둘은 어렴풋이 생각해 뒷걸음질 치며 그와의 거리를 유지했다.


강선우가 가로등 아래 들어갔을 때, 손에 든 게 칼이 아니라 주사기인 것을 알았다.

왜 저런 걸 손에 들고 다가오는 걸까.

알 수는 없었지만, 위험한 건 분명했다.

타고난 힘을 가진 그는 둘이 상대하기도 벅차다.


“셋 세면 뒤로 돌아서 뛰자.”


의준은 내게 작게 속삭였다.


하나, 둘, 셋···.


“넌 오른쪽으로 가! 난 왼쪽으로 갈게!”


서로 갈라져 뛰어갔다.

강선우가 어느 쪽으로 쫓아오고 있을지 두려움에 뒤돌아봤을 때, 그는 내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었다.

내가 속도가 느린 걸 이미 알고 있어 손쉬운 먹잇감이라 판단한 것 같다.


숨이 점점 차오르고, 속도도 느려졌다.

나는 여기까지인가.

그 순간, 의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길 자신 없냐? 강선우!”


세 명은 동시에 그 자리에 멈춰섰다.

나는 숨이 차올라 더 이상 달릴 수 없었던 것이고, 의준과 강선우는 다른 이유인 것 같다.


“하, 그래. 이참에 그것도 결판을 짓자.”


내 바로 뒤까지 다가왔던 강선우는 뒤로 돌아 의준을 따라갔다.

멀리서도 의준이 몰아치는 숨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본인도 힘든데 왜 저렇게까지 했을까.

걱정되면서도 내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같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날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됐다.



몇십 분이 지나고, 바닥에 드러누워 있던 나는 몸을 일으켜 의준을 찾아 나섰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도록 두 사람 모두 날 찾아오지 않으니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동네를 돌아다녀도 두 사람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집에 찾아가도 없었고,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겨우 그를 찾은 건 교실이었다.

마지막으로 들린 학교에서, 의준은 강선우의 자리에 엎드려 있었다.

불을 켜니 등에 꽂힌 주사기도 보였다.


“의준아! 괜찮아···?”


깜짝 놀라 다가가 의식을 확인했다.


“헤헤···.”


아무리 물어도 그는 대답하지 않고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바닥엔 알 수 없는 물이 흥건하게 흘러내려 있고, 기쁜 듯 웃는 그 모습은 아이와 같아 보였다.


정신을 차린 건 30분 정도 후였다.

그 과정에서 등에 꽂힌 주사는 바닥에 떨어졌다.


“으···. 머리야.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지?”

“괘, 괜찮아? 등은 안 아파?”

“등? 아··· 주사기. 뭔지 모르겠어. 점점 기분이 좋아지다가, 어느새 정신을 잃어버려서.”

“그거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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