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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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기리른
작품등록일 :
2024.07.11 23:08
최근연재일 :
2024.08.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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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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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

DUMMY

“하, 재밌었다. 넌 어째 게임을 더 잘해진 것 같네?”

“뭐··· 집에 처박혀서 혼자 뭐 했겠어.”

“잘 가라! 다음에 또 놀자.”

“···응.”


다음이 언제가 될지 모른다고, 저번처럼 그냥 잠수하긴 싫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어중간하게 우리는 헤어졌다.


찝찝한 마음으로 집에 가던 중 휴대폰이 울렸다.


“네, 형사님. 주재윤 입니다.”

“강하진 형사입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최근 서울에서 일어난 청소년 살인 얘기 들어보셨습니까?”

“뉴스에서 봤어요.”


몇 주 전에 일어난 범죄 소식이 있었다.

세 명이나 되는 청소년이 끔찍하게 살해당한 사건이다.

눈과 입, 목에 볼펜이 박힌 채 피를 흘리며 죽어 있는 고등학생 세 명이 골목길에 뒤엉켜 쓰러져 있었던 걸 한 행인이 보고 동영상을 찍어 올렸다.

검열되지 않은 끔찍한 범죄 현장이 여러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갔고, 결국 뉴스에도 대서특필되었다.


떠도는 소문으로는, 범인이 죽은 세 명의 학생에게 괴롭힘당하던 학생이라는 얘기도 있다.

인터넷을 통해 죽은 학생들이 소위 일진이라고 말하는 학생이었고, 돈을 빼앗고 폭력을 일삼는 일이 많았다는 정보가 퍼졌다.

덕분에 잘 죽었다, 인과응보라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 여러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건의 범인으로 보이는 사람의 얼굴이 CCTV에 찍혔습니다. 교복을 입고 있는 남성의 모습이었는데···.”

“뭐가 이상했나요?”

“찍힌 얼굴에 대해 조사해보니··· 이미 삼 년 전에 죽은 사람이더군요. 그래서 수사는 난항을 겪고 있고, 저는 이게 초능력자에 의한 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네···? 확실히 그럴 가능성도 있겠네요. 죽은 사람이 나타나 사람을 죽였다니···.”

“그리고 바로 어제 있었던 범죄 현장에서, 유나리 씨의 집에서 발견한 명함이 또 발견됐습니다.”


모스의 명함이 발견됐다면, 거의 틀림 없을 것이다.

어쩌면 생각보다 더 빨리 복수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


“아직은 어제의 범죄와 범인의 모습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에 공개되겠죠. 그러면 더 큰 혼란이 생기고, 범인이 숨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빨리 잡아야 한다는 거죠. 알았어요. 저도 어떻게든 협조해서 찾아볼게요.”

“···후. 이런 정보를 공유한다는 게 형사로서는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지만, 저에겐 제 가족이 더 중요하니까, 용의자의 정보를 문자로 보내놓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수십 년을 형사로 지내온 강하진에게 일반인에게 범죄 정보를 공유하고, 따로 수사를 진행한다는 게 잘못됐다는 인식은 깊게 박혀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그를 죄어오는 것은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에서 오는 다급함이었다.

긴 세월 동안 그는 뛰어난 형사였지만, 지금은 자식을 지키려는 한 아이의 아빠에 불과하다.


띠링-.

곧바로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


[CCTV 남성. 이름 민의준. 나이 17세 (사망 당시)]

[범행 구역은 XX구 근처에서 벌어지고 있음. 생존 당시 사린 고등학교에 다녔음.]

[가족, 학교, 주변인 탐문 결과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보임.]


문자를 보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그 자리에 얼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왜 이 이름이 여기에 적혀있는 건지, 그가 여기에 엮여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민의준.

그는 김시현과 함께 누구보다 나와 친했던, 매일 붙어 다녔던 친구의 이름이다.

그저 이름만 같은 사람인가 싶었지만, 같이 첨부된 사진과 고등학교를 보면 분명했다.


“왜··· 왜 네가 거기에 있는 거야?”


***


겨우 진정한 채 집에 들어온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고등학생이 되고, 우리 셋의 학교는 더욱 멀어져 매일 보기 힘들어졌다.


그런 와중에 나와 부모님 사고가 벌어졌다.

한순간에 부모님을 잃고, 끔찍한 장면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던 나는 가까스로 병원에서 퇴원한 뒤, 집에서 나올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았다.


그러던 중 찾아온 것이 시현과 의준.

내 유일한 친구들이었다.


처음엔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몇 번 와보다가 금방 떠나갈 줄 알았으니까.

내 소중한 사람이 다시 죽는 모습이 보기 싫다는 이유로, 더 이상 소중한 사람을 만들지 말자는 마음이 생겨버렸다.

사실은 그냥 무서웠던 거다.


예상과 다르게 두 친구는 세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날 찾아왔다.

방학 때부터,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로도.


시간이 지나며 슬픔이 좀 옅어졌던 건지, 사람이 없는 어두운 방이 무서워졌던 건지 난 그렇게 그들에게 문을 열었다.


“야. 너 밥 제대로 먹는 거 맞냐? 얼굴이 그게 뭐야!”

“어우, 냄새. 집도 좀 치우고 불도 좀 켜놔!”


두 친구는 예전과 다름없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편하게 날 대했다.

걱정하고 안쓰러워하는 모습이 아니라 밝게 웃으며 장난을 치는 그 모습에 난 조금이나마 힘을 얻었던 것 같다.


“어···. 아냐. 그냥 이게 좋아.”

“지랄하지 마. 네가 이러고 있는다고 좋아할 사람 아무도 없어. 넌 예전보다 더 잘 살아야 해, ···네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처음엔 여전히 무서움이 남아있었는데, 그런 내 벽을 완전히 부숴준 건 의준의 말이었다.

항상 웃기만 하고 밝은 친구가 정색하며 한 그 얘기가 내 가슴에 깊게 박혔다.

그래, 잃었다고 끝은 아니다.

내가 큰 상처 없이 살아남은 것도, 부모님이 지켜준 덕분이겠지.

그렇다면, 이렇게 혼자 앓다가 죽어간다고 부모님이 좋아하실까.


목적이 없는 삶은 무엇보다 무기력하다.

어떤 것이든, 사람에겐 목적이 중요하다.


마음속에 한 줄기 빛이 스며드는 느낌을 받으며, 난 친구들 앞에서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그 후로 시현과 의준은 주말마다 우리 집에 찾아와 같이 게임도 하고, 되지도 않는 요리도 해 먹으며 즐겁게 보냈다.

몇 달 동안은 말이다.

어느 날 의준의 연락이 끊기고, 그의 동생에게 한 가지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무거운 울음소리와 시끄러운 사람들도 북적이는 장례식장에서 의준이 괴롭힘을 당하다 결국 자살했다는 소리를 듣고는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곳엔 의준의 반 친구들이 단체로 오기도 했지만, 주변의 눈치를 보며 한 명씩, 조용히 찾아오는 친구도 많았다.


그런 한 친구에게 우연히 얘기를 들었다.

의준은 따돌림을 당했다기보다, 따돌림당하던 친구들을 위해 맞서다가 학교 일진들 전체의 타겟이 되었다는 것이다.

잠시였지만 괴롭힘에서 해방된 친구들은 그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각인된 공포, 무력과 시선에서 오는 압박감에 모두 숨어버렸다고 한다.

이렇게 될지 몰랐다고, 너무 미안하다고 우는 그 친구의 모습은 아직도 생각이 난다.


사실 진짜 미안해야 할 사람은 그들이 아니다.

외면해 버린 것도 잘못은 맞지만, 원인은 그들을 괴롭히는 무리였다.

애초에 힘이나, 외모나 인맥에 취해 사람을 깔보고 괴롭히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리고 이런 상황을 눈치채고 나와 시현이라도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면 어땠을까.


가장 먼저 나서 내게 힘을 주었던, 강인한 모습에 존경심까지 생겼던 그가 단숨에 사라져 버리자 조금씩 빛을 찾아가던 내 마음엔 다시 어둠이 드리웠다.



“그렇게 학교고 뭐고, 삼 년이란 시간 동안 집에만 처박혀 있었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의준아···.”


그가 귀신이 되어 나타났다면, 나서서 한을 풀어주고 싶다.

아니면 또 다른 초능력이 생겨 정말 살아난 거라면 그를 멈추고 나에게 해줬던 것처럼 그를 어둠에서 구해야 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정리 해보자.”


사실 경찰도 뭣도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

초능력자라고 하지만, 내 능력은 그를 찾아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시현의 능력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시현이 위험해질 수 있으니 이 사실을 알리고 능력을 쓰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음. 그러면 할 수 있는 건 이거 정도려나.”


난 세 가지 정도 해볼 일을 정리했다.


***


먼저 의준이의 집으로 가보자.

선뜻 날 맞이해 주거나, 이야기를 해줄지는 모르겠지만 시도는 해봐야지.


기억 속에 있던 의준의 집을 찾아갔다.

중학생 때 몇 번이나 가봤던 그 집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똑똑.


“누구세요?”

“어···. 저 재윤입니다.”

“재윤이요? 그게 누구··· 아, 들어와요.”


의준의 어머니 목소리도 조금 쉬고 낮아졌지만, 예전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식탁으로 날 안내해 냉장고에서 꺼낸 음료를 한잔 내주었다.


“너한테도 경찰들이 찾아갔니?”


방금까지도 울었던 듯 눈이 부어있는 것 같았다.

그래, 나한테도 경찰이 찾아온 걸로 하자.


“네. 삼 년이나 지났는데···. 왜 의준이를 찾는 건지, 혹시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을까 해서요.”

“그것들이 미쳤는지, 이미 죽은 내 아들 이름 들먹이면서 집에 있냐고, 살아있는 거 아니냐고 묻더라.”


어머니는 이제야 조금씩 익숙해지던 아픔을 건드린 이들에게 무척이나 화가 난 듯 말을 쏟아냈다.


“그래. 살아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 그래서 나도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서 그건 왜 묻냐고 하니까 글쎄··· 내 아들이 살인 사건 용의자라고 하는 거 아니니? 어이가 없어가지고!”

“아니, 그런 일이 있었다니···.”

“뭐든 좋으니 살아 있으면 나도 보게 해달라고···. 그렇게 말하고 보내버렸단다.”

“저한테는 그냥 최근에 본 적이 있냐, 그런 것만 묻고 가서 이런 일이 있었던 줄을 몰랐네요. 괜히 물어봐서 죄송해요.”


슬프게 아들을 떠나보낸 어머니가 그런 말을 들으면 얼마나 속상했을까 싶었다.

혹시나 내가 모르게 아들이 살아있는 게 아닐까 기대하면서도, 살인 사건 용의자라고 하다니.


“괜찮아. 오랜만에 재윤이 너라도 보니까, 옛날 생각나고 그러네. 시현이는 잘 있니? 너는 그리고 왜 이렇게 야위었어. 점심이라도 먹고 가.”

“어···. 시현이도 잘 지내고 있어요. 다음에 한 번 같이 올게요. 점심은··· 주시면 감사하게 먹겠습니다.”

“그래. 잠시만 거기서 기다려.”

“음, 혹시 기다리는 동안 의준이 방에··· 잠깐 가봐도 괜찮을까요···?”


이건 범인을 잡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립기도 했다.

셋이 게임도 하고, 뒹굴거리며 놀던 그 방의 모습이.

어머니도 그 마음을 알았는지 잠깐 고민하다 의준의 방으로 안내했다.


“금방 부를게. 둘러보고 있으렴.”

“감사합니다···.”


그때의 시간에 멈춰 있는 듯, 청소도 잘 되어있고 생전에 의준이 쓰던 것들이 모두 그대로 있었다.

예전과 다르지 않은 모습에 괜히 눈물이 났다.


‘참아야 해. 지금 여기에 울기만 하려고 온 게 아니잖아.’


뭐든 정보가 중요했다.

예전에 의준과 친했던 사람이라던가, 그를 주도적으로 괴롭힌 사람이라던가 그런 거라도 찾아봐야 한다.


서랍이나 책 사이사이를 뒤졌다.

그렇게 발견한 건 수첩 하나와 생전에 의준이 쓰던 핸드폰이었다.

핸드폰은 배터리가 다 닳았는지 꺼져있었다.

다행히 책상에 충전기가 있어 연결해 보니 화면에 빛이 들어왔다.


‘몇 분만 있으면 저건 켜지겠지. 그동안 공책을 먼저 보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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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친구를 찾아서 24.07.24 1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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