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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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기리른
작품등록일 :
2024.07.1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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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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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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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대결

DUMMY

여기저기 액자를 감상하고 있었는데, 벽을 바라보고 있는 커다란 의자에서 중년의 남성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 폭력적인 손님들입니다. 문을 총으로 쏘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누구냐. 손 들고 일어나. 허튼 짓하면 바로 쏴버릴 거야.”


형사가 곧바로 총을 조준하고 단호하게 명령했다.

의자에 앉은 사람은 개의치 않는 듯 찻잔을 들어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내 말이 말 같지 않나! 어서 투항하고··· 내 딸을 데려와.”

“아! 당신이 블러드의 아버지였습니까?”

“블러드라니. 그런 멍청한 별명으로 내 딸을 부르지 마.”

“저희 조직은 별칭을 쓰기로 약속해서요. 뭐··· 사실 저 아이의 원래 이름도 뭔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탕!

형사는 여유를 부리는 남성에게 경고의 의미로 식탁에 놓인 찻주전자를 쐈다.

안에 들어있던 액체와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남성의 옷에도 묻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지 옷에 묻은 자국을 쳐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를 바라봤다.

처음 눈에 들어온 백발에 나이가 있는 사람이 아닌지 판단하려던 찰나 보인 그의 얼굴은 상당히 젊었다.

언뜻 보기에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으로 보였다.

하지만 말투나 행동, 입고 있는 옷가지는 몇백 년 전에 살았던 사람 같았다.


“예의라는 걸 모르는 분이네요. 아끼는 옷이 망가지기라도 하면 책임지실 겁니까?”

“닥치고 내 딸 데려와. 그럼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게 해주지.”

“하하! 물론 총이란 참 대단한 물건입니다. 전혀 단련하지 않은 인간도, 초능력을 가지지 않은 인간도 단숨에 강하게 만들어 주죠.”

“헛소리.”


인내심이 바닥난 강하진 형사는 다시금 방아쇠를 당겨 총알을 날렸다.

여유 부리며 말을 빙빙 돌리는 그에게 주도권을 잡기 위해 팔을 노렸다.

고통과 폭력은 대화를 효과적으로 만들기도 하는 법이다.


총알이 날아가는 건 눈으로 좇을 수 없다.

엄청난 소리로 발사됐다는 것만 알 뿐이다.

그런데 곧 남성 앞에서 멈춰 찌그러진 총알이 내 눈에 보였다.

벽이라도 있는 듯 그의 몸에 닿지 못하고 총알이 막힌 것이다.


“일단 진정하시죠. 저도 당장은 두 사람을 죽일 생각이 없어요. 그보다 너무 흥분해서 시선이 좁아진 것 같은데 주위를 한번 둘러보시겠습니까?”

“네놈의 말은 믿을 수 없다.”


형사는 남성에게 시선을 집중한 채 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감시하고 있는 사이 내게 주위를 둘러보라는 것이다.


고개를 둘러 방 안을 더욱 자세히 살폈다.

다른 공간으로 이어지는 문이 하나 있고, 화장실, 책상이 하나 보였다.

중앙엔 커다란 침대가 있었다.


“어···?”


침대에서 아무런 움직임도 없어 자세히 보기 전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기 어려웠다.

백색의 이불을 덮어 얼굴만 보이고 있기도 했다.

머리카락이 없는 창백한 피부에, 눈은 하얀 안대로 가려놔 더욱 눈치채기 어려웠다.

입 또한 실 같은 걸로 꿰매어진 모양새였다.


이게 사람인지, 인형인지도 헷갈렸다.

하나 확실한 건 소름 끼치게 끔찍한 몰골이었다.


“재윤 씨. 뭔가 있나요.”

“어···. 여기 침대에 사람인지 인형인지 모를 게 누워있어요.”

“···혹시 목에 두 개의 점이 있는지 확인해 줄 수 있습니까.”


어렸을 때부터 강 형사의 딸은 목 왼쪽에 두 개의 점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 거울을 보며 장난을 치던 추억이 있어 잊을 수 없다.

형사의 심장은 점점 크게 뛰었다.

저기에 있는 게 딸일 수도 있다는 기대감과, 이곳에 갇혀 무슨 짓을 당했을지 하는 생각을 따라오는 고통스러움이 함께 몰려왔다.


“있어요···.”


긴 시간이었다.

딸을 잃고, 우울감에 빠진 아내도 점점 유약해지더니 먼저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 일이 있고 모든 걸 포기한 채 그저 흘러가듯 살아왔다.


그러다가 알게 된 모스파우더.

거기에서 발견된 딸의 흔적.

곧 무너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았던 형사는 이 소식으로 겨우 일어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줄곧 딸의 흔적을 찾아다녀도 몇 년 동안 어떠한 실마리도 잡을 수 없었다.

이제야 겨우 한 발자국 나아가며 딸의 앞에 도달했다.

여러 감정이 교차하며 점점 손이 떨리고 눈에도 물이 차올랐다.


그런 강하진 형사 앞에 선 남성은 여유롭게 딸에게 가보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형사는 결국 한 가지 생각에 도달했다.


불안한 호흡과 떨리는 몸, 흐려진 시야로는 어차피 앞에 선 이 사람을 막아설 수 없다.

방금처럼 총을 쏴도 어차피 피해를 줄 수도 없다.

그러니 이런 건 다 제쳐두고 딸의 모습을 확인하자.

어찌 보면 판단력이 흐려진 그의 합리화일 수도 있었다.


“예, 예진아···!”


총을 넣어두고 곧바로 침대에 누운 딸에게 다가갔다.

목에 있는 점을 보니 확실히 예전에 봤던 그의 딸이었다.

하지만 그 외에 어떤 곳에도 딸의 모습은 남아있지 않았다.


모두 빠져버린 머리카락, 곧 죽을 듯 비쩍 마른 몸.

거기다가 말을 할 수 없게 꿰매놓은 입.

코에 손을 가져다 대보니 미약하게 오고 가는 바람으로 살아있다는 걸 겨우 알 수 있었다.

이불을 치워보니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그녀의 몸에는 수없이 꿰맨 흔적과 멍 자국, 바늘 자국이 남아있었다.


이 모습을 본 형사는 더 이상 이성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도대체 내 딸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소리를 지르며 장전된 총알을 모두 남성에게 쏘아냈다.

그러나 너무도 무력하게 총알들은 바닥에 떨어졌다.

총쯤은 개의치도 않는다는 듯 그는 입을 열었다.


“몇 년이 지나도 반항적인 그 성격이 고쳐지지 않더군요. 저는 동물을 길들이는 건 해본 적이 없어서, 좀 쉽게 만들었죠.”

“개자식···. 넌 무조건 죽여버리겠어.”


보기에 강하진 형사는 너무도 흥분한 것 같았다.

결국 내가 먼저 그를 막아섰다.


“형사님. 진정하세요. 형사님한테는 더 중요한 게 있잖아요.”

“말리지 마십시오. 지금이라도 저 자식을 죽여버리지 않으면 이 분노를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떠올려 봐요! 형사님은 딸을 구하러 온 거예요. 저놈을 죽이기 위해 온 건 저예요. 그러니··· 여기는 저에게 맡기고 딸을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피해요.”

“그, 그런···.”


강하게 말하자 형사의 정신이 돌아온 모양이다.

그는 딸의 손을 잡고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품에 안았다.


“가능하다면 저도 저놈을 죽여버리고 싶지만··· 제 손으로 그런 일은 불가능하겠죠. 염치 없지만 재윤 씨에게 맡기겠습니다.”

“네. 맡겨만 주세요. 저도 지금까지 겨우 참고 있었어요. 그러니 어서 가세요.”


형사가 딸을 안고 문으로 향하는 걸 보고는 남성이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


“제 앞에서 둘이 뭐 하는 짓입니까? 오랜만에 손님이라 얘기라도 해볼까 했는데, 이건 손님이 아니라 그냥 강도였군요.”


남성은 손을 뻗어 도망치려는 형사를 향했다.

형사는 거대한 무언가에 잡힌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엄청난 힘으로 조여오는 느낌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탕-!

나는 그런 남성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강하진 형사는 인사하며 나에게 장전한 총을 넘겨줬다.


“호오. 언제 총을 넘겨줬나요?”


아까와 같이 총알은 막혔지만, 알 수 없는 힘에 잡혀있던 강 형사는 풀려났다.

무슨 능력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 번에 여러 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형사를 풀어줄 일은 없으니까.

나는 계속 남성을 조준하며 능력을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알 거 없어. 죽기 싫으면 저 사람들은 그대로 보내주는 게 좋을 거야.”

“하하! 이거 한 방 먹었군요. 그래요. 여기서는 놓아줄 수밖에 없겠어요. 뭐, 여길 벗어난다고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무슨 말이지?”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온 거 아닙니까? 명색이 모스의 본거지인데, 제 부하들이 그리도 없을까. 우린 처음부터 당신들을 그냥 내버려 둔 겁니다.”


이들의 본거지인데 이렇게 쉽게, 그것도 보스가 있는 곳까지 올 수 있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어찌 보면 아주 오만한 생각이지만, 호랑이굴 깊숙이 먹이를 가둬버린 것과 마찬가지이니 불리한 건 우리였다.


“그래도 네가 죽으면 다 끝나는 거 아니야?”

“맞죠. 맞는 말입니다. 근데 제가 죽을 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서 말입니다.”

“자신감이 너무 지나친데.”

“예전에도 이렇게 찾아온 놈들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거의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왔다고 하는데, 제 얼굴을 본 건 단 한 명뿐입니다.”


복수나 도전이라는 명목으로 찾아오는 많은 사람이 얼굴도 보기 전에 죽어버렸다는 이야기였다.

나와 강하진 형사를 지하까지 내려올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의 호기심과 무료함 때문이었다.


“그런데 단 두 명이 온 건 또 처음이네요. 저 사람은 딸의 구출이 목적이었던 것 같고··· 당신은 왜 저를 죽이려고 하죠?”

“굳이 말할 필요 있나.”

“궁금하잖아요. 이제 죽이면 알 방법도 없는데. 아, 일단 소개하자면 저는 네시스라고 불러요.”

“네 촌스러운 이름 알아서 뭐 해. 그리고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어린데 당돌하시네요. 이렇게 손짓 한 번이면···”


네시스가 말과 함께 손을 들어 올리자 그대로 시간이 멈춰버렸다.

나에게 공격을 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유추해 보자면 작은 손짓으로, 어쩌면 생각만으로 발동되는 능력 같았다.

총알 방어도 가능하고, 멀리 있던 강하진 형사를 공격할 수도 있었다.


“무슨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이제 멈춘 시간 속에서 혼자 움직일 수도 있···”


보이지 않는 공격을 피해 움직이려 했는데 투명한 벽처럼 나를 둘러싼 모든 공간이 막혀버렸다.

이 보이지 않는 네시스의 공격 안에 갇혀버려 어디로 피할 수가 없다.

그저 시간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다 그대로 공격에 맞는 방법밖에는 없다.


“어떻게 움직일 수 있게 됐는데··· 이러면 전이랑 다를 게 없는데.”


다를 게 없다기보다는 더 위험했다.

그때는 나도 멈춰있었을 뿐, 시간이 풀리면 그 사이 보고 판단한 대로 움직여 간신히 공격을 피했다.

지금은 알아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빠져나갈 방법을 떠올리지 못한 채 점점 시간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으윽···!”

“뭐죠? 그렇게 자신감 넘치게 도발하더니, 잡혀버려서 어쩌자는 겁니까. 제가 조금만 힘을 주면 터져 죽어버릴 텐데.”


내 몸을 가볍게 압박하던 공격이 점점 조여왔다.


“이거··· 놔···!”

“흠. 조금이라도 흥이 날 줄 알았는데, 기대 이하네요. 당신은 그 형사랑 달리 초능력자 아니었나요? 어서 능력이라도 좀 써보세요.”


온몸이 조여오며 점점 숨을 쉬기가 어려워져 정신이 희미해지고 있다.

어떻게 얻게 된 복수의 기회인데, 무력하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분했다. 몸에 힘을 주고,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벗어날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몇 분의 시간이 지나 점점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을 때, 의외의 사건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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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잠입(3) 24.08.08 1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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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가짜 친구 24.07.31 1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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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친구를 찾아서 24.07.24 1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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