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간 속에서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기리른
작품등록일 :
2024.07.11 23:08
최근연재일 :
2024.08.16 10:0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327
추천수 :
0
글자수 :
128,832

작성
24.08.06 10:00
조회
11
추천
0
글자
11쪽

잠입

DUMMY

번화가의 밤은 굉장히 화려했다.

다음 날은 신경 쓰지 않는 듯, 밤을 밝힌 여러 불빛 사이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눈빛도 밝았다.


“재윤 씨가 스무 살이라고 했습니까?”

“네. 이제 스무 살이죠.”

“이런 곳은 처음 와보는 것 같군요. 신기한가요?”

“이런 밤에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신기하긴 하네요.”


사람이 너무 많아 걸어 다니기도 힘들었다.

걸어가다 보면 처음 보는 사람이 다가와 클럽을 가리키며 여기서 놀고 가라며 홍보를 하기도 한다.

밖에도 잘 나오지 않았는데, 이런 풍경을 보고 있자니 괜히 어지러운 것 같았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버젓이 그런 일을 벌이고 있다니···.”

“관심이 없다면 모르는 경우가 많죠. 사람들이 모르는 곳에서 생각보다 이상한 일도, 끔찍한 일도 많이 일어납니다.”


그런 모양이다.

지나가면서 보이는 골목엔 벌써 잔뜩 술에 취해 벽을 붙잡고 비틀거리는 사람도 보인다.

술집에서 환호성이 들려오기도 하고, 길가에서 우는 사람도 보였다.


“저기입니다.”


주변 풍경에 정신이 팔린 채 강 형사를 따라 걷다 보니 벌써 목적지에 도착한 모양이다.

그가 가리킨 건물은 파브르라는 간판이 밝게 빛나는 클럽이었다.

앞엔 검은 옷을 빼입은 가드 세 명이 서서 출입하는 사람을 관리하고 있었다.


“정말··· 형사님은 못 들어오는 거죠···?”

“저도 이제 삼십 대 후반이니, 안 받아주겠죠. 그래도 같이 들어가려고 시도는 해볼 겁니다.”

“제발 됐으면 좋겠어요.”


강하진 형사와 같이 들어가는 경우, 나만 출입할 수 있는 경우를 대비해 계획을 세워오긴 했지만, 혼자 저 공간에 들어가기는 좀 겁이 났다.

그래도 형사는 나이대에 비해 젊어 보이고, 꽤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어 들여보내 줄 것 같았다.

강하진 형사는 아니라고 했지만.


“신분증 검사하겠습니다.”


가드는 무표정하게 신분증을 요구했다.

우리는 각자 신분증을 넘겼고, 신분증과 얼굴을 몇 번 번갈아 보더니 출입을 시켜줬다.

들어가며 나는 조용하게 강 형사에게 속삭였다.


“어떻게 잘 들어왔네요!”

“사실, 나이대를 바꾼 가짜 신분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 무조건 들어올 수 있었던 거잖아요···.”

“장난 좀 쳐봤습니다.”


진지하고 장난기 없는 그 목소리로 장난이라고 하니까, 전혀 장난 같은 느낌이 없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갈수록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가 커지면서 내 심장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크게 음악을 틀어놓다니.

오래 들으면 귀가 아니라 몸이 아플 것 같다.


완전히 내려가니 외부의 빛은 하나도 통하지 않고, 흐릿한 형광등과 네온빛 전구가 뒤섞여 오묘한 분위기를 내뿜었다.

술에 취한 사람들은 중앙에 모여 정신 없이 몸을 흔들어대고 있다.


강 형사가 어깨를 두드렸다.

말로 하기엔 주변이 너무 시끄러웠다.

오른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저쪽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오빠, 어디서 왔어?”

“네, 네? 저요?”


가리킨 방향으로 그를 따라가던 중, 앞길을 누군가가 막아섰다.

술 냄새를 풍기며 눈이 반쯤 풀린 여성이었다.


“같이 놀자. 저기 내 친구들도 있는데, 같이 갈래? 오빠 잘생겼다.”

“네? 아뇨! 저 일행이 있어서··· 저기요!”


거절했는데도 그녀는 내 팔을 잡아끌었다.

강하진 형사는 그런 내 모습을 못 본 모양이다.

어찌나 힘이 세던지, 아무리 팔을 빼내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이 여자···!”


역시 인생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인가 보다.

계획했던 대로 흘러갈 리가 없지.


그녀가 데려간 곳은 2층에 있던 한 룸이었다.


여덟 명 정도 되는 인원이 큰 테이블을 둘러앉아 술을 마시며 놀고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앉은 내게, 중앙에 앉아있던 또 다른 여성이 물어왔다.


“여기는 왜 왔어?”

“그, 그건 왜 묻죠···? 당연히 클럽엔 놀려고 왔죠.”


무언가 아는 것인지 여유롭게 묻는 태도에 불안해졌다.

그녀는 술을 들이켜고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원하는 게 이거랑 이거. 둘 중에 뭐야?”


그녀가 꺼낸 건 모스의 문양이 그려진 카드 한 장과, 투명한 액체가 들어있는 병 하나였다.

이 두 개는 모두 내가 찾으려던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걸 내게 내밀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시간을 끌며 정보를 더 끌어내 보자.


“흐, 흠. 어떻게 알고 절 데려왔어요? 깜짝 놀랐잖아요. 저 힘 센 분은 또 어떻고···.”

“어머, 당황했어? 이거 귀엽네. 내가 다 알 수가 있거든. 네가 우리랑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


내 심장을 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며 하는 그 말은 섬뜩했다.

아마 내가 초능력자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인 모양이다.

이런 사람이 있다면 조직에 접근하려는 일반인은 확실히 걸러낼 수 있겠다.

아마 실종된 형사들도 이 사람에게 걸린 모양이다.


“그런 능력도 있다니. 상상도 못 했네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초능력자들인가요?”

“질문이 너무 많으면 위험해질 수도 있는데, 감당 가능해?”


순간 방 안의 분위기가 어두워지며 내게 시선이 모였다.


“엇···. 조용히 원하는 것만 말할게요. 저는 오래 살고 싶어서···.”

“꺄하하! 장난이야. 여기도 다는 아니고 절반 정도? 널 데려온 애는 확실히 초능력자야. 힘이 장난 아니었지?”


어쩐지 뿌리칠 수 없는 그 힘은 일반적인 게 아니었다.

괴력을 내는 종류의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나 보다.

그녀는 활기차게 내게 손을 흔들었다.


“어쩐지. 근데, 저 약은 알겠는데 카드는 뭐예요?”

“파우더는 알면서 이걸 몰라? 모스는 알고 있지?”

“그건 알죠.”

“이게 조직 사람이라는 증표거든. 초능력자라면 다들 원하잖아. 뭐, 여기엔 나밖에 없지만.”


자랑하는 듯 손에 든 카드를 흔들었다.

그 카드를 얻는 방법이 무엇인지도 묻고 싶었지만, 너무 캐묻는 것 같은 느낌인 것 같아 더 이상 질문은 할 수 없었다.


“그럼 원하는 건 이거였겠네. 먼저 처음인 것 같으니까 이건 샘플로 줄게. 해보고 다음에 또 하고 싶으면 찾아와. 돈 들고.”

“오···. 공짜로 줘도 되는 거예요?”

“괜찮은지 해보라고 처음엔 조금 나눠주거든. 이건 이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순도 높은 물건이야. 여기서 같이 해볼래?”


무서웠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들 조금씩 풀린 눈빛을 하고 있다.

이걸 해서 저렇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아···. 일단 집에서 혼자 해볼게요.”

“아직은 무섭구나? 뭐, 그래. 일단 해봐. 한 번 하면 절대 못 멈출 테니까···.”


밖으로 나가면서, 작게 속삭인 마지막 문장이 귀에 박혔다.


찰칵.

밖으로 나온 나는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안에서는 이 무서움과 긴장감을 숨기려고 최대한 노력했는데, 밖으로 나오니 긴장감이 풀리며 잠시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 사이 강하진 형사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날 발견하고 달려왔다.


“재윤 씨! 무슨 일 있었습니까? 갑자기 사라져서 깜짝 놀랐습니다. 괜찮은 겁니까?”

“괘, 괜찮아요. 일단 저희 밖으로 나가요.”


내 눈빛을 보고 강하진 형사는 아무런 말도 없이 수긍했다.

우리는 클럽에서 나와 조용해질 때까지 좀 걸었다.


“그래서··· 뭘 찾은 겁니까? 그 품에 숨겨둔 그것 때문입니까?”


역시 눈썰미가 대단하다.

나와 마주치고부터 바로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이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는데 이걸 얻었어요. 모스 파우더···.”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을 좀 해주시죠.”


나는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룸에 가서 있었던 일을 다 털어놓았다.


“그런···. 먼저 접촉하는 게 아니라, 그쪽에서 접촉해 오는 것이었군요. 그것도 본인들이 판별한 초능력자들에게만.”

“그런 것 같더라고요.”

“그렇다면··· 형사들이 찔러보고 다녔던 걸 바로 눈치챈 이유가 있었군요.”


강하진 형사는 생각에 잠겼다.

수사를 하다 실종된 두 명의 형사를 생각한 것 같다.


“우선 어떤 방법인지라도 알았으니 다행입니다.”

“그러게요···. 근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그 방에서 다른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음···.”


이상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그 방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약 때문인지 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 듯이 보였다.

단 한 사람만 빼고.


“그 방에서 모두 약에 취해있었는데, 이걸 준 사람만큼은 멀쩡해 보였어요. 이런 건 도움이 안 되겠죠?”

“아닙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 이런 의문이 생기는군요. 저 클럽에서는 초능력자들에게만 모스파우더를 팝니다.”

“일반인에게도 이 약이 풀려있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다른 불법적인 경로로 많이 거래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다르죠. 어쩌면 초능력자들을 모으기 위한 미끼가 아닐까 싶습니다.”


초능력자들이 모인 집단인 모스.

확실히 그들과 엮인 이 클럽엔 많은 능력자들이 있었다.


“그런 것 같아요···. 일단 이건 형사님에게 드리겠습니다. 잘 처리해 주세요.”

“네. 시중에 풀린 것과 다른 게 있는지 분석해 봐야겠습니다. 앞으로의 행동에 선택지는 두 개가 있겠군요.”

“뭐죠?”

“처음에 그 여자가 두 가지를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약을 사러 가거나, 그 카드를 얻으러 가거나.”


집으로 가면서 생각해봤다.

정말 저 약을 사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렇다고 약에 취한 연기를 해 봤자 수많은 중독자를 봐왔을 그 여자가 속아줄 것 같지 않다.

또한 모스라는 집단에 더 접근하기 위해 좋은 선택도 아니다.


결국 나는 카드를 얻어야 한다.

적을 잡기 위해서는 적을 알아야 한다고 했던가.

모스에 들어가야 그 약을 만든 사람을 알아내고 복수할 수 있다.


강하진 형사는 약에 대한 분석이 끝난 후 다시 클럽으로 가보자고 했다.


“나 혼자 들어가게 될 텐데··· 무섭네.”


도움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결국 강하진 형사는 초능력자가 아니기 때문에 본인의 신분을 속이고 모스에 잠입할 수는 없다.

대신, 그는 파브르 클럽에 직원으로 잠입해 정보를 찾아보기로 했다.


애초에 우리는 서로를 돕게 모인 건 아니다.

서로의 복수를 위해 협력하기로 했을 뿐.


***


며칠 뒤, 강 형사의 연락을 받았다.

받은 약은 모스파우더가 맞았고, 시중에 풀린 것과 성분은 같은데 비율이 조금 다르다고 했다.


들어있는 피의 양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 피는 역시 강하진 형사 딸의 피였고.


그는 다시 한번 각오를 다졌고, 나는 내일 다시 클럽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강하진 형사는 이미 클럽에 청소부로 잠입한 모양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멈춘 시간 속에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월-금 주 5회, 오전 10시에 연재됩니다. 24.07.18 11 0 -
24 마지막 화: 마지막 대결, 새로운 시작 24.08.16 9 0 12쪽
23 마지막 대결 24.08.15 11 0 12쪽
22 적진으로 24.08.14 10 0 12쪽
21 보이지 않는 위험(2) 24.08.13 9 0 11쪽
20 보이지 않는 위험 24.08.12 10 0 12쪽
19 잠입(4) 24.08.09 11 0 11쪽
18 잠입(3) 24.08.08 11 0 12쪽
17 잠입(2) 24.08.07 13 0 12쪽
» 잠입 24.08.06 12 0 11쪽
15 불나방처럼 24.08.05 14 0 11쪽
14 범인을 찾아 24.08.02 12 0 12쪽
13 가짜 친구(2) 24.08.01 10 0 12쪽
12 가짜 친구 24.07.31 11 0 12쪽
11 범인은 어디에 24.07.30 16 0 13쪽
10 친구를 찾아서(4) 24.07.29 14 0 12쪽
9 친구를 찾아서(3) 24.07.26 11 0 12쪽
8 친구를 찾아서(2) 24.07.25 12 0 13쪽
7 친구를 찾아서 24.07.24 15 0 12쪽
6 살인범 24.07.23 13 0 12쪽
5 의문의 집단 24.07.22 14 0 12쪽
4 꿈꾸는 사람(4) 24.07.19 18 0 12쪽
3 꿈꾸는 사람(3) 24.07.18 19 0 12쪽
2 꿈꾸는 사람(2) 24.07.17 19 0 12쪽
1 꿈꾸는 사람 24.07.16 34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