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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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기리른
작품등록일 :
2024.07.11 23:08
최근연재일 :
2024.08.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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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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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진으로

DUMMY

고속도로 옆으로 펼쳐진 숲속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얻은 건 있었습니까?”

“네. 헤실거리면서 다 대답을 해주더라고요. 덕분에 알아냈어요.”

“어떤 걸 말입니까?”

“그놈들의 두목이 있는 곳이요. 그리고 거기에서 약에 쓸 피를 가져온다고 했어요.”

“우리가 가야 할 곳이군요. 드디어··· 구할 수 있겠어.”


형사의 얼굴엔 분노와 안도가 섞여 있었다.

납치당한 딸을 곧 찾을 수 있다는 마음과, 일을 벌인 놈들에 대한 분노가 섞인 것 같다.


“그래서 위치가 어디입니까?”

“헤테로세라 라는 기업이 모스의 것이라고 했어요. 거기 지하에서 모든 게 시작됐다고···.”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데 뭐 하는 곳인지 모르겠군요.”

“인터넷에서 본 적 있어요. 향수 만드는 곳일 거예요.”


본거지를 알아낸 이상 후진이란 없었다.

적들도 이미 우리를 알고 있고, 간부도 죽게 됐으니 더욱 우리를 찾아내려 할 것이다.

우리가 저지른 짓은 아니지만.


“언제가 좋을까요?”

“시간을 끌수록 좋을 건 없겠죠. 지금 바로 가시죠.”


나와 생각은 비슷했는데, 실행력은 남달랐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바로 가자고 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납득은 된다.

어떤 능력자가 숨어있을지 모르기에 숨는다면 절대 우리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거리도 생각보다 가깝네요. 한 시간 정도만 걸으면 되겠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일부러 회사 근처를 돌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군요.”


여름의 더운 공기에 온몸에 땀이 흘렀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 정도의 더위는 죽음의 공포에 떨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통이었으니.


우리는 말 없이 걸어갔다.

삼십 분 정도 지나니 작은 숲이 끝나고 다시 도시의 풍경으로 돌아왔다.

이런저런 사고로 피와 먼지 같은 이물질로 더러워지고 찢어진 옷가지를 본 사람들이 가끔 수근거리기도 했다.


“옷은 좀 바꿔입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가격은 생각 말고 아무거나 빠르게 골라서 갈아입죠.”


강하진 형사는 근처에 보이는 옷가게에 들어가 눈에 보이는 옷을 아무거나 잡아 계산대로 가져갔다.

누군가가 옷을 사주는 경험도 오랜만인데, 이런 상황에 겪는다는 게 좀 웃겼다.


“삼십오만 원입니다, 고객님···.”

“이걸로 계산해 주십시오.”


생각보다 비싼 가격이었다.

좀 저렴한 걸로 바꾸는 게 어떠냐고 물을까 하다가 그냥 조용히 있기로 했다.

여유롭게 쇼핑을 즐기러 온 것도 아니고, 빨리 옷을 갈아입고 가야 할 곳이 있으니까.


형사도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지금의 그에게 돈 같은 건 큰 가치가 없었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무엇보다 값진 딸을 구하러 가는 길이었으니 망설일 건 없었다.


“감사합니다···.”

“그럴 거 없습니다. 시선이 끌려 어딘가에 알려질까 염려했을 뿐입니다. 그들의 손길은 어두운 곳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경찰 수뇌부에도 있는 듯 하더군요.”

“거, 거기까지요?”

“거기뿐만이 아니겠죠. 엄청난 돈과 마약이라는 무기를 들고 있으니 넘어갈 사람은 수없이 많을 겁니다.”


실로 무서운 일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사회 깊숙이 침투해 있을 줄이야.

모스의 다른 초능력자들은 능력만 믿고 나대는 오만한 사람들이라 생각했는데 그들의 리더라는 사람은 다른 모양이다.


옷을 갈아입고 거리로 나와 걷다 보니 식당과 카페가 가득했던 거리가 어느새 높은 건물들이 수십 개나 들어찬 거리로 바뀌었다.

헤테로세라는 이곳에 자신들의 건물을 가지고 있었다.

국내의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즐비한 곳에 그들의 건물이 있다니.

생각보다 자본력이 더 거대한 것 같다.


“저기군요.”

“저 건물이군요···.”


고개를 들어도 끝을 보기가 힘든 그 압도적인 크기의 건물 앞에 서니 더욱 긴장됐다.

로비로 들어가니 그런 분위기는 더했다.


“우선 지하로 가봅시다.”


그리핀에게 들은 정보로, 모스파우더를 만들게 된 강하진의 딸은 지하에 있다고 했다.

리더라는 사람도 주로 지하에서 그녀와 같이 머물렀다고 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정해져 있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보니 직원 전용으로 쓸 수 있는 기기가 따로 마련되어 있고, 손님들이 탈 수 있는 게 따로 있었다.

사원증 같은 게 없으니 우리는 손님용 엘리베이터를 탈 수밖에 없다.


“지상은 3개 층밖에 갈 수 없네요. 지하도 2층까지만 가능하고···.”

“직원들이 타는 엘리베이터 쪽을 보니 일반적으로 쓰는 지하층은 5개인 모양입니다.”


일단 우리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평범한 지하 주차장의 모습이었다.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차가 꽉 들어차 있었다.


“여기는 그냥 평범한 주차장 같은데요?”

“그런 것 같습니다. 5층까지는 평범한 주차장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직원 전용인 지하 3층을 내려갈 방법이 있는지 찾아봐야겠군요.”


층을 구석구석 둘러보다가 형사는 비상계단으로 들어갔다.

비상계단으로는 별다른 방해 없이 직원용 주차장으로도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어? 진짜네요?”

“말 그대로 비상계단이기에 여기를 막아두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렇게 한층 한층 내려가며 이상한 게 있는지 살폈는데, 지하 5층에 다다를 때까지 이상한 건 찾을 수 없었다.

그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지하 5층을 끝으로 비상계단은 끝이 났다.


“어딘가에 분명 아래로 내려가는 공간이 숨겨져 있을 겁니다.”


나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몇십 분이 넘게 지하를 돌아다니기 전까지는.


“찾으셨나요···?”

“문으로 보이는 건··· 딱히 보이지 않는군요. 분명 지하에 있다고 했는데, 찾아내기가 쉽지 않군요.”


평범한 주차장일 뿐이었다.

한쪽에 재활용 분리수거장이 있고, 그 옆에 세탁소가 하나 있는 걸 빼면 다를 건 없었다.


“근데···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원래 지하 주차장에 세탁소가 있나요?”

“가끔 본 적은 있습니다. 근데 이렇게 제일 마지막 층에 있는 경우는 처음 봅니··· 혹시 그런 건가.”

“네? 왜 그러세요?”


강하진 형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세탁소가 있는 쪽으로 걸었다.

세 평도 안 되어 보이는 작은 공간에 팔십 대 정도로 보이는 노인이 세탁물을 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여기 직원이지? 맡긴 거 찾으러 온 거야? 사원증 보여줘.”


노인은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러자 강하진 형사가 내게 말했다.


“재윤 씨. 그 카드 꺼내보십시오.”

“카드요? 아··· 거기서 주운 거요? 이걸 여기서 왜···.”

“부탁드립니다.”


이유를 알 수 없어 당황했지만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카드를 꺼냈다.

이건 그리핀이 가지고 있던 모스 소속을 증명하는 카드였다.

최대한 챙길 수 있는 건 다 챙겼었다.


카드를 꺼내자, 눈도 반쯤 감고 골골대던 노인이 번쩍 눈을 뜨고 카드를 가로챘다.

아까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기운 넘치는 모습이다.


“네놈들···. 이걸 어떻게 가지고 있지?”

“조용히 넘겨주진 않았겠지. 안 그래?”

“그리핀 님이 당하다니···. 정체가 뭐냐.”

“말할 필요가 있나?”


형사는 끊임없이 노인을 도발했다.

그러자 노인은 다리미 받침대에 놓인 옷을 들어 휘둘러 그를 공격했다.


날렵한 움직임으로 옷에 닿는 걸 피했지만,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강하진 형사의 볼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옷으로 휘둘렀는데 피가 나다니.

휘둥그레진 눈으로 옷을 보니 흐물흐물하던 아까와 달리 강철이라도 된 것마냥 뻗어 날카로운 모양새로 변해있었다.


“형사님! 피하세···”


저 사람도 초능력자다.

이런 상황에는 내가 나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 앞으로 나서려던 때였다.


탕-!

엄청난 총성과 함께 매캐한 화약 냄새가 은은히 퍼져 나왔다.

노인은 딱딱해진 옷으로 급하게 몸을 막았지만, 총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인지 그대로 옷을 뚫고 노인을 직격했다.


“커헉···! 이놈들 가만··· 안 두겠다···.”


당장이라도 죽일 듯한 눈빛을 보내다가 노인은 그대로 쓰러졌다.

총을 쓸 것이라고 전혀 생각 못했다.

이건 내 편견이자 착각이었다.


그는 이미 경찰이라는 직업을 버렸다.

뒷세계의 범죄자를 상대하던 그에게 총을 구하는 건 일도 아니었고, 그에게는 이제 범죄고 아니고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오직 한 가지 목적.

딸을 구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죽었군요. 초능력자라고 해도 총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군요.”

“그, 그러게요···.”

“이제 입구를 찾아봅시다.”

“어디를 찾아봐야 하죠···?”


지금까지 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다.

딱 한 곳만 빼면 말이다.

이 세탁소.

사람이 있는 곳이었고, 아닐 것이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어서 잠시 잊고 있었다.


“여기에 정말 입구가 있을까요?”

“있을 겁니다. 원래는 저 사람한테 물어볼까 했지만··· 대답해줄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 보이는 얼굴이긴 했어요.”


세탁소 안을 잘 둘러보는 방법밖에 없다.

수십, 수백 개의 옷가지가 작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어 벽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 옷들을 헤치고 벽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약간의 유격이 있는 벽을 찾았다.

옷에 가려지고, 어두워 가까이서 직접 만져보기 전까지는 전혀 보이지 않는 틈이었다.


“여기가 문인 것 같아요.”

“그렇군요. 그 카드 다시 주시겠습니까?”


형사는 문 근처에 카드를 가져다 대자 문이 열렸다.

길게 조명도 하나 없는 통로가 이어져 있었다.

빛은 통로의 끝에서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빛에 가려져 거기에 뭐가 있는지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여기로 가면 만날 수 있겠네요···.”

“그럴 겁니다. 드디어···.”


우리는 각자 다른 이유로 긴장했다.

한 명은 복수 때문에, 한 명은 눈물겨운 재회 때문에.


함정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조심하면서 어두운 통로를 나아갔다.

몇 분 정도나 걸었을까, 가까워질수록 통로 너머에서 보이는 빛에 눈이 부실 정도였다.


끝에 닿고 나서야 거기엔 금속으로 된 문이 있었고, 문 양옆에 달린 조명이 밝게 빛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문 같은 건 없이 바로 큰 공간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던 건 내 착각이었다.

이번에도 그리핀의 카드를 꺼내 벽에 가져다 댔지만, 문을 열리지 않았다.


“젠장! 코앞까지 왔는데. 이러면 문을 부수는 수밖에 없겠···”


어떤 방법으로도 문이 열리지 않아 화가 난 형사는 총을 꺼내 조준했다.

문에다가 총을 쏘아대서 들어가려는 것 같다.

그러나 총을 쏘기 직전, 문이 혼자서 열려버렸다.


어떤 짓을 해도 열리지 않던 문이 갑자기 열린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자아가 있어 총을 피하려던 것도 아닐 테니까.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안에 펼쳐진 공간이 너무도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중세 유럽의 귀족이 살던 집이라는 느낌을 주는 공간이 나왔다.

실험이나 고문, 이런 부정적인 공간을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랐다.

고풍스러운 누군가가 살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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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가짜 친구 24.07.31 11 0 12쪽
11 범인은 어디에 24.07.30 16 0 13쪽
10 친구를 찾아서(4) 24.07.29 14 0 12쪽
9 친구를 찾아서(3) 24.07.26 11 0 12쪽
8 친구를 찾아서(2) 24.07.25 12 0 13쪽
7 친구를 찾아서 24.07.24 15 0 12쪽
6 살인범 24.07.23 1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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