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간 속에서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기리른
작품등록일 :
2024.07.11 23:08
최근연재일 :
2024.08.16 10:0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320
추천수 :
0
글자수 :
128,832

작성
24.07.19 10:00
조회
17
추천
0
글자
12쪽

꿈꾸는 사람(4)

DUMMY

강하진 형사는 해결되지 못하는 이상한 사건들에 초능력자라는 존재를 떠올린 게 감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물론 동료들한테 얘기했다가는 미친놈 소리 들을 얘기죠.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어요.”

“일리 있는 말 같아요.”

“그래서 지금 사건이 그런 초능력과 엮인 것 같아 개인적으로 재윤 씨에게 연락을 드린 겁니다. 제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저도 어젯밤 그런 꿈을 꾼 것 같아요.”


말할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다.

경찰이라는 점과 뛰어난 감을 가졌다는 점에 신뢰가 가는 사람은 맞지만 얼마나 이 일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개인마다 가진 초능력은 무궁무진하고, 그 위험성도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한번 믿어보고 싶었다.


나는 어젯밤 꿈을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재윤 씨를 찌른, 그 꿈속의 범인 얼굴은 못 본 거죠?”

“네. 머리카락으로 다 가리고 있어서 전혀 못 봤어요. 여자였고, 키가 160 초반 정도인 것 외엔 잘 모르겠어요.”

“그 다른 피해자들, 지금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 주변인 얘기를 듣고 공통적인 걸 좀 추려봤습니다.”

“어떤 거죠?”


강하진 형사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러했다.

악몽을 꾸는 사람은 꿈속에서 항상 같은 사람에게 죽임을 당한다.

꿈속 살인범은 대부분 과거 같은 악몽에 시달리던 사람이다.

악몽이 멈추면, 악몽에 등장하는 사람은 깨어나지 못한다.


“흠···.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 건 확실하군요.”

“네. 그건 확실한데, 그 이상을 알 수가 없어요. 그 사람 사이가 원한 관계인 경우도 있고, 친구인 경우도 있고, 서로 얼굴만 아는 사이인 경우도 있더라고요.”

“저랑 유나리 씨와 같은··· 이런 경우도 충분히 있는 거군요. 혹시 유나리 씨에게도 연락을 해보셨나요?”

“전화나 문자를 모두 받지 않더군요. 그래서 내일 한 번 찾아가 볼 생각이었습니다.”


강하진 형사의 연락을 피할 이유는 없어 보이는데,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얘기를 들어보면 내 꿈에 나온 건 유나리일 텐데 왜 굳이 얼굴을 가리려 했던 거지?


더 이상 강하진과 나눌 이야기가 없어 서로 특이 사항이 있으면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나도 곧 퇴원하니까 집에 가면 유나리를 찾아가 보자.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병실로 들어오니 며칠 동안 봐왔던 그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볼륨 최대로 키워놓은 뉴스 소리와 신세 한탄하는 할아버지.

주위엔 짜증 가득한 얼굴로 눈치를 주고 있다.


‘다 모르겠다. 그냥 피곤하네.’


악몽 때문인지 제대로 잔 것 같지 않다.

이제 저녁 시간이 지났는데, 벌써 잠이 몰려왔다.

그대로 잠에 들어도 괜찮은 걸까···.


***


“헉! 잠깐 잠들었나? 시간이···”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3시 26분이었다.


‘응? 하루 종일 잔 건가? 시간이 이상한데.’


이상한 낌새에 주위를 더 자세히 살펴봤다.

먼저 할아버지가 틀어놓은 뉴스.


[최근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묻지마 살인 범죄가···]


“에휴. 세상 말세다, 말세. 아무리 그래도···”


낯익은 소리였다.

분명 며칠 전, 있었던 일이다.


내 옆엔 시현이 사과를 깎으며 라디오를 튼 것처럼 혼자 그때 했던 말을 해대고 있었다.


“야. 내 말 들리냐?”

“야. 너는 죽으면 안 된다.”


역시 반응하지 않는다.

현실처럼 생생하지만 이건 꿈일 뿐이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어젯밤 꿈에 나온 사람 그대로의 모습이다.

풀어헤친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손에 수술용 메스를 든 그 모습.

그때처럼 나에게 달려들 준비를 마친 것 같았다.


“···유나리 씨.”

“···!”


칼을 들고 나에게 다가오던 여자는 움찔하며 잠시 멈췄다.

내 말이 들리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저 여자는 이 꿈속에 재현된 환상이 아니라는 거겠지.

이 상황에서 자의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저 여자와 나뿐이다.


“잠시 얘기 좀 해요. 잠깐만···!”

“안돼!”


아랑곳하지 않고 칼을 내리꽂았다.

겨우 몸을 돌려 피했고, 칼은 침대에 박혔다.


“다, 당신도 초능력자죠? 저도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 서로 얘기 좀 해보자고요.”

“뭐? 서, 설마 너도 그놈들이랑 한패야? 안돼···. 나, 날 내버려 둬!”


초능력자라고 말했을 뿐인데, 유나리는 혼자 이상한 생각에 빠져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


“응? 깼다.”


다시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9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창밖엔 어두워진 하늘이 보였다.

그놈들이 도대체 누구길래 혼자 공포에 질려 도망을 간 것일까.

찝찝함이 가득했지만, 오늘은 죽지 않고 악몽을 넘겼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다시 잠들면 그 악몽을 꾸게 되려나···.’


불안하면서도 몰려오는 잠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악몽을 꿀 때면, 제대로 잠을 잔 것 같지 않다.

어떻게 보면 하루를 샌 것과 같은 셈이다.


끊임없이 몰려오는 피로감에 그대로 나는 눈을 감았다.


이번엔 제대로 잠에 든 건지, 악몽을 꾸는 건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난 잠에 들었던 모양이다.


삐이-.

귀에 맴도는 이명과 함께 몸을 감싸온 적막에 정신을 차리기 전까지는.

시간이 멈춘 것이다.


내게 위기에 처했을 때 발동되는 그 초능력이 발동됐다.

생각해 보니 꿈속에선 이 능력도 전혀 발동 안 되는구나.

꿈이니까.


‘그나저나 왜 시간이 멈춘 거지?’


의문을 가지고 눈을 떠보니 병실의 불이 꺼져 눈앞이 컴컴했다.


‘망할.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 이러면 어떻게 피할 수도 없는데.’


침착하고 다시 주위를 살폈다.

희미하게 뭉쳐 보이는 여러 형체 중, 달빛에 비춰 무언가 반짝이고 있었다.

내 머리 위에 놓인 그 빛 주위로 은은하게 퍼지는 빛 속에 숨겨진 건 칼이었다.


‘이게 뭐야! 꿈도 아닌데 누가 날 죽이러 온다고?’


깜짝 놀랐지만, 충분히 긴 시간 속에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음에 해야 할 행동을 생각했다.

정지가 풀리면 바로 몸을 비틀어 머리를 노린 이 칼을 피해야 한다.


‘다시 이렇게 날 노려올 사람은 이렇게 되면 한 사람뿐이지···.’


작게 살아나는 소리와 함께 멈춘 시간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경험하며 이제 어느 정도 타이밍을 알 것 같다.


‘하나, 둘, 셋···!’


곧바로 몸을 비틀어 침대 위에서 떨어졌다.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침대에 있던 철제 기둥에 몸을 부딪쳐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곤히 잠든 사람들도 그 소리에 잠에서 깬 듯 몸을 뒤척였다.


“한밤중에 이게 뭔 소리야···.”


옆자리 아저씨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일어나 내쪽을 쳐다봤다.

그와 눈이 마주친 건 사람의 눈이 아니라, 달빛에 빛나는 손바닥 정도의 날을 가진 식칼이었다.


“으, 으아악! 저거 뭐하는 놈이야!”


아저씨는 겁에 질려 온 병실이 다 떠나가게 소리를 질러댔다.

칼을 든 범인은 당황한 듯 곧바로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현실이라면 분명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얼른 핸드폰만 챙겨 밖으로 나갔다.


“누구세··· 꺄악!”


비명에 놀라 다가오던 간호사가 범인의 칼에 찔려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이, 이 새끼.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저 멀리 다른 간호사가 쓰러진 간호사의 응급 처치를 하기 위해 달려오는 걸 확인하고, 난 다시 범인을 쫓았다.

늘 열리지 않았던 비상문을 열고 나가는 실루엣을 보자 왜인지 열불이 났다.


“내가 저 문이 안 열려서 그 꿈에서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데···.”


곧장 따라 문을 열고 들어오니 위쪽으로 올라가는 발소리가 계속 들렸다.

왜 위로 올라갔는지 알 수 없었다.

도망치려면 아래로 내려가야 할 텐데.


그렇게 우리는 서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옥상에서 만나게 됐다.

먼저 올라온 범인은 바닥에 칼도 버려둔 채 난간을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위로 올라온 건, 도망칠 곳이 없다고 생각할 만큼 저 범인도 심리적으로 몰려 있다는 뜻 같았다.


“저기요! 지, 진정 좀 해요! 내려와서 이야기 좀 하자고요.”

“됐어···. 네가 거기 소속이라면, 입 못 막은 이상 이제 끝이야. 어차피 날 죽이러 오겠지.”


자꾸 혼자 판단하고 이상한 상상을 하는 게 참 골치가 아팠다.


“아니. 난 그쪽이 뭔 말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니까? 난 아무런 소속도 없어!”

“거, 거짓말! 초능력자라고 다가온 사람들은 다 그쪽 사람이었어. 그래서 최대한 옮겨 다니며 도망친 건데···.”


뭘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공포에 질려 되는대로 내뱉는 것 같은데, 어떻게 진정시켜야 할까.

차라리 장단을 맞춰줘야 하나.


“모르겠고···. 일단 내려와 봐요. 나 이제 스무 살인데, 고등학생 때부터 집에 처박혀 밖에도 안 나왔다고.”

“그게 가능한 거야? 이상한 거짓말 하지 마.”

“진짜라고.”

“···.”


유나리는 한참 생각을 하다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이제 진정 됐어요?”

“어···.”

“그래서, 진짜 이름이 뭐예요? 그쪽이 구지혜도, 유나리도 아닐 거 아니야.”

“몰라···. 얼마나 옮겨 다녔는지, 원래 내가 누군지도 까먹었어.”


구지혜가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된 후, 묘하게 달라진 유나리의 모습이 걸렸었다.

그러다 오늘, 나를 찌르려는 그 모습에서 엘리베이터에서 날 찔렀던 그 모습이 겹쳐보였다.

그래서 추측한 대로 떠본 것뿐이다.

꿈을 먹고 사람의 몸을 옮겨 다니는 게 아닐까, 하고.


“십 년 정도 전이었어. 스무 살이 되고 난 다른 사람의 꿈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 그때 난 짝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유나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주저리대며 풀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자신에게도 살갑게 대하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첫눈에 반했다.

그런데 양아치 같은 놈, 운동도 잘하고 성적도 좋다는 과 대표와 만나고 그녀는 더 이상 내게 살갑게 대하지 않았다.


저놈 잘못이다.

아마 내게서 그녀를 빼앗아 가려는 거겠지.

나도 그냥 두고만 볼 수 없어.

널 끝까지 저주할 거야.


그렇게 생각하자 그날 밤, 난 과대의 꿈속에서 깨어났다.

처음엔 나도 이게 뭔지 몰라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숨어있었는데, 얼마 뒤 알게 됐다.

여기는 꿈속이고, 저 남자를 죽일 힘이 있다는 걸.


매일매일 나는 그를 괴롭히고 죽였다.

어떤 날은 야구방망이로, 식칼로, 망치로···.

몇 날 며칠이고 그런 날이 지속되자 과대는 현실에서도 날 보면 겁에 질려 도망가기 시작했고 점점 꿈과 현실을 헷갈리게 됐다.


그에게 완벽히 꿈과 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졌을 때, 난 그의 몸에서 깨어났다.

예전의 내 몸을 버린 채로.


나중에 경찰이 학교에도 찾아와 예전 내 몸에 대해서 묻고 다니는 걸 보고서야 그 몸은 죽었다는 걸 알았다.

아무 상관 없었다.

예전과 달리 큰 키와 다부진 몸, 잘생긴 얼굴을 얻었으니.

이 몸에서 그녀도 내 걸로 만들고 원하는 건 모두 쟁취하자.


하지만 그녀는 변한 나에게 화를 내며 금세 멀어졌고, 괴로움에 휩싸인 나는 다시 한 가지 결정을 했다.

아예 그녀의 몸을 내가 가지자.

그러면 내가 그녀와 하나가 될 수 있으니까.


***


듣고 있자니 헛구역질도 나고, 화도 끓어올랐다.

저런 사람이 있다니.


“그렇게 난 내가 원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의 몸을 정복해 가며 살아가고 있었어. 그러다 그 집단을 만난 거지. 모스라고 부르는 그놈들을.”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멈춘 시간 속에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월-금 주 5회, 오전 10시에 연재됩니다. 24.07.18 10 0 -
24 마지막 화: 마지막 대결, 새로운 시작 24.08.16 9 0 12쪽
23 마지막 대결 24.08.15 10 0 12쪽
22 적진으로 24.08.14 10 0 12쪽
21 보이지 않는 위험(2) 24.08.13 9 0 11쪽
20 보이지 않는 위험 24.08.12 9 0 12쪽
19 잠입(4) 24.08.09 10 0 11쪽
18 잠입(3) 24.08.08 11 0 12쪽
17 잠입(2) 24.08.07 12 0 12쪽
16 잠입 24.08.06 11 0 11쪽
15 불나방처럼 24.08.05 14 0 11쪽
14 범인을 찾아 24.08.02 12 0 12쪽
13 가짜 친구(2) 24.08.01 10 0 12쪽
12 가짜 친구 24.07.31 11 0 12쪽
11 범인은 어디에 24.07.30 16 0 13쪽
10 친구를 찾아서(4) 24.07.29 14 0 12쪽
9 친구를 찾아서(3) 24.07.26 11 0 12쪽
8 친구를 찾아서(2) 24.07.25 12 0 13쪽
7 친구를 찾아서 24.07.24 15 0 12쪽
6 살인범 24.07.23 13 0 12쪽
5 의문의 집단 24.07.22 14 0 12쪽
» 꿈꾸는 사람(4) 24.07.19 18 0 12쪽
3 꿈꾸는 사람(3) 24.07.18 19 0 12쪽
2 꿈꾸는 사람(2) 24.07.17 18 0 12쪽
1 꿈꾸는 사람 24.07.16 33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