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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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기리른
작품등록일 :
2024.07.11 23:08
최근연재일 :
2024.08.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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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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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친구

DUMMY

집이 부부 두 명이 산다기엔 정리가 잘 되어있지 않은 느낌이라 어딘가 수상했지만, 내 기우일 뿐이었다.

모든 사람이 다 집을 깨끗이 정리하고 사는 건 아닐 테니까.

저런 부부도 있는 거겠지.


“하···.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주변 탐색은 다 해봤는데, 의준이 가진 과거와 그 주변인들에 대해서 알게 된 것 이외에 큰 진전은 없었다.


삐리리릭-.

때마침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인은 시현이었다.


“여보세요.”

“어. 그 어제 소하랑 누구 만났다며. 어떻게 됐어?”

“지금 만날 수 있어? 얘기하려면 좀 길어.”

“당연하지. 어디로 갈까?”


우리는 저번에 목을 축이고 성진에게 전화를 걸었던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난 성진에게 들었던 이야기와 오늘 강선우의 집에 찾아온 일을 말했다.

얘기를 듣는 동안 시현도 충격을 받았는지 커진 눈과 떨리는 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면 아직 그 의준이 흉내 내는 놈 찾을 단서는 없다는 거잖아?”

“그런 거지···.”

“안 되겠어. 내가 능력을 쓸게.”

“뭐? 그건 안 돼! 얼마나 위험한지는 네가 제일 잘 알잖아.”

“그럼 어떻게 하게···. 사건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며. 그런 놈이 계속 날뛰게 둘 수는 없잖아.”


맞는 말이긴 했다.

점점 사건이 발생하는 주기도 짧아지고 있고, 범인을 찾을 단서는 너무나 부족했다.


“이 근처에서만 사건이 벌어지는 거 보면, 여기서 쓰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마.”

“···.”


시현의 능력은 찾는 사람이 멀어질수록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확실히 사린 고등학교 근처에서만 사건이 벌어지고 있으니, 잘하면 알레르기 반응이 위험해지기 전에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이다.

이 모든 건 다 우리의 추측일 뿐이니까.

범인은 멀리서 이곳엔 범죄만 저지르러 올 수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네가 능력을 쓰려면, 상대방의 얼굴을 알고 있어야 하잖아. 의준이 얼굴이 속임수이거나, 초능력이라면 그게 통할까?”

“···해보기 전엔 모르지. 그렇다고 이렇게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어. 약도 있고, 근처에 병원도 있으니까 한 번만 써보자.”

“그래도···.”

“너랑 의준이가 그런 힘든 일을 당하는 걸 보면서 난 여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이번엔 나에게 기회를 줘.”


결의에 찬 그 얼굴은 내가 아무리 말려도, 언젠간 능력을 쓸 것이란 것이 느껴졌다.


“짧게만 써보자. 1분만 기다려 보고, 발견하지 못하면 바로 약 먹고.”


알레르기에 저항하기 위한 약물이 투입되면 그의 초능력은 사라진다.

오로지 자신의 고통을 감내할 때만 쓸 수 있는 끔찍한 능력이다.


“그럼 나가자.”

“어디를?”

“적어도 응급실 근처에서 쓰자. 여기서 쓰려던 건 아니지? 알레르기 반응 일어나면 약 먹는다고 끝나는 건 아닐 거 아니야.”

“그래, 네 말이 맞지.”


우리는 응급실이 바로 보이는 공원 벤치에 앉았다.

시현은 휴대용 약통에 넣어온 땅콩 몇 알과, 자가주사기를 옆에 꺼내놨다.


“잠깐만 기다려. 소하 부를게.”

“응? 소하를 왜 불러.”

“만약 진짜 찾으면, 내가 바로 찾으러 가야 할 거 아니야. 응급실에 너 혼자 둘 수도 없고, 소하라도 같이 있는 게 더 안전하겠지.”


난 전화기를 꺼내 소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십 분 뒤, 급하게 온 듯 땀을 뻘뻘 흘리며 소하가 도착했다.


“오, 오빠. 진짜 쓰려고요?”

“어. 시도는 해봐야지.”

“아니, 재윤 오빠가 좀 말렸어야지. 이건 좀 그렇잖아요.”

“나도 말려는 봤는데···. 말을 전혀 안 듣더라고.”

우리는 서로 해야 할 역할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준비했다.


“시간 되면 이, 이거 사용하면 되는 거 맞지?”

“어. 여기 내 허벅지에 주사하면 돼. 그러면 시작한다?”

“후···. 그래. 가보자.”

“왜 네가 더 긴장했냐. 안 죽으니까 걱정 마.”


땅콩을 하나 집어 든 시현은 망설임 없이 입속에 털어 넣었다.

몇 초가 지나자, 얼굴부터 시작해 온몸에 빨간 두드러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야, 괜찮은 거 맞지?”

“괘, 괜찮아···. 허억···.”


여유롭다는 듯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전혀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점점 호흡이 가빠지며 그는 심장에 손을 올렸다.


한 번도 시현의 능력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알레르기 반응이 매우 심하다는 것만 알았는데, 실제로 보니 너무 심각해 보였다.


“야! 안 되겠다. 이거 주사 지금 놓을게.”

“안돼! 조, 조금··· 조금만 더 해보자.”

“아니, 이 상태로 그딴 말이 나와?”


떨리는 손으로 겨우 주사기를 꺼내 시현의 다리에 가져다 댔다.

주삿바늘이 들어가기 전, 시현은 다시 한번 내 손을 잡았다.


“잠깐! 보, 보여.”


눈을 감고 자신에게 보이는 의준의 모습에 집중하는 듯 보였다.


“사린구··· XX로 42. 근처··· 건물 주소야···. 지금 누구, 죽이려··· 커헉!”

“됐어! 다 들었으니까 그만 말해!”


점점 숨이 약해지는 시현에게 주사를 놓고, 그를 엎고 응급실로 뛰어 소하에게 뒤를 맡긴 채 밖으로 나왔다.

곧바로 들은 주소를 핸드폰 지도에 검색해 보니, 도보로 십 분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다행이다. 여기서 가까워. 아니 근데 하필 그놈이 일을 벌이는 때였다니. 어떻게 타이밍이 이래.”


중간중간 핸드폰을 보며 전속력으로 뛰어갔다.

택시를 잡기엔 골목길을 지나가지 않는 이상 쭉 돌아서 가야 하는 탓에 더 시간이 오래 걸릴 거다.


‘더 이상 피해자를 늘리면 안 돼···.’


친구의 이름을 더럽히는 짓을 어떻게든 멈춰야 한다.

주변 주택에 달린 주소를 보며 점점 가까워지는 걸 알 수 있었다.


길어야 5분 정도 걸린 느낌이다.

이런 날을 위해 긴 시간은 아니지만, 밖으로 나온 후부터 꾸준히 운동을 해왔다.

예전보다는 금방 지치지 않는다.


“꺄악!”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길 안에서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저건 분명 범인에게 저항하는 사람일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어.


“여기··· 여기가 시현이가 말한 주소인데. 어디있는 거야!”


이 주소가 적힌 주택 앞쪽으론 재건축 예정으로 대부분 사람이 나간 폐건물이 들어선 곳이다.

유리가 깨지고, 빨간색으로 칠해진 벽이 지나가기만 해도 오싹한 분위기를 풍긴다.

범행을 저지른다면, 사람이 잘 오지 않는 저 안이겠지.


다시 한번 소리가 들려오길 바랐다.

꽤 큰 구역이 비어있어, 다 찾아보다간 늦어버릴 수도 있다.


쨍그랑-!

그때 왼쪽에서 유리가 깨져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로 가보자.’


소리가 들린 곳으로 가니, 폐건물 앞에 유리 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흩어진 유리 조각은 누군가의 피가 함께 묻어 반사된 햇빛은 자줏빛으로 주변 건물에 비추고 있었다. 떨어진 중심에서부터는 누군가의 피도 같이 튀어 있었다.


하나의 큰 핏자국에서부터 퍼져나간 그 흔적을 보니 꽤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 같았다.

건물을 올려다보니 3층의 창문 한 부분만 깨져나가 있었다.

그리고 옆 건물 지하로 중간중간 끊긴 핏자국이 보였다.


낮인데도 불빛이 하나도 없어 어두운 그곳에 들어갔다.

계단에 발을 내딛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며 돌조각인지, 유리 조각인지 모를 것이 밟혀왔다.


숨을 죽여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무거운 먼지와 함께 울리는 내 발소리만 들리다가, 멀리서 희미하게 바닥에 무언가가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터벅, 터벅-.

앞쪽 어딘가에서 점점 가까워지는 다른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는 점점 빠르고 커졌다.


난 생각 끝에 빠르게 핸드폰을 빠르게 손전등을 켜 앞으로 비췄다.

그 순간, 시간이 멈췄다.


완전히 정면을 비추지 못했지만, 어둡던 건물 안이 어느 정도 보일 정도가 됐다.

멈춰버린 시선 속에서 날 위협하는 건 무엇인지 찾아봤다.


정면에 사람이나 어떤 물체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오른쪽 끝에, 시야에 손전등 빛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저게 이 시간 정지의 원흉인 것 같다.

범인이 날 죽이기 위해 칼로 보이는 저 물체를 휘두른 거라면, 내가 그걸 피할 수 있을까 싶었다.


시간 정지 덕분에 남들보다 이런 상황을 대처하기 쉽겠지만, 무조건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저번에 찔렸던 것처럼 몸의 움직임이 늦거나, 멈춘 시간이 돌아올 때의 반동을 견디지 못하면 끝이다.

이제 그 반동을 몇 번 정도 견딜 수 있지만 말이다.


웅-.

다시 시간이 돌아오려 한다.

시간이 돌아오자마자 왼쪽 뒤로 몸을 쭉 빼자.


생각했던 대로 몸을 움직였지만 완전히 칼을 피하지는 못했다.

뺨에 스친 듯 따가움과 함께 무언가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너 누구야. 누군데 의준이 흉내를 내는 거지?”

“···그 이름을 네가 어떻게 알지?”


살인범은 멈칫하더니 반문해 왔다.


“내 친구니까. 같잖은 초능력자가 흉내 내니까 화나서 찾으러 왔어.”

“어떻게 그들을 알고 있지? 너도 그들 중 하나인가?”


초능력자가 아닐까, 살짝 떠본 질문을 제대로 물어버린 것 같다.

아까보다 목소리에서 경계가 풀린 느낌이다.

더 건드려 보자.


“···그럼. 아니었으면 방금 공격도 못 피했겠지.”

“날 건드리지 않기로 했을 텐데.”

“다른 놈들은 그런 모양이지. 네가 그 모습만 따라 하지 않는다면 나도 이만 물러가 줄게.”

“무슨 소리야. 이게 내 본모습인데.”

“닥쳐. 그건 네가 아니야. 의준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의준 얼굴로 그런 말을 하니까 더 열이 났다.


“아니, 이건 나야! 지난 시간 동안, 고통과 두려움으로 집에서 나올 수도 없었어. 하지만 깨달았지. 이 고통을 없애기 위해선, 복수가 답이라는 걸.”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다.

저 사람은 누구길래 의준이의 모습을 하고, 저렇게 고통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정말 그가 살아난 걸까.


“네가 정말 의준이라면, 날 잊어버릴 순 없어. 네 부모님도, 동생도. 내 이름이 뭔지는 알아?”

“몰라···. 나에겐 그렇게 많은 기억이 남아있지 않다고. 따돌림당하고, 비웃음당하던 학생 때의 기억만 남아있을 뿐이야. 여기서 해방되려면, 그들에게 복수하는 것뿐이겠지.”


그때 밖에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가짜는 곧바로 문 반대편에 있는 창문으로 뛰었다.

놓칠 수 없었기에 나도 그를 잡기 위해 뛰어가다가 오른쪽 벽 뒤로 숨어있던 사람을 발견했다.


“사, 살려···줘요.”


부엌으로 쓰던 공간이었다.

싱크대에 사람이 들어가 있었다.

물론 큰 사람이 다 들어가지는 못해 골반에서부터 무릎 위까지만 들어가 있었다.

창문에 가까워질수록 자세히 보이는 그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붉은색 액체로 가득 찬 싱크대에서 바닥으로 한 방울씩 떨어졌다.

그건 그냥 물은 아니다.

이미 사람도 살지 않는, 장판도 벽지도 다 떼어간 그곳에 수도가 연결되어 있을 리 없으니까.

그럼에도 아직 살아있다.


난 범인을 쫓기보다는, 얼른 이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저 멀리 경찰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소리쳤다.


“여기···! 사람 살려요!”


그 모습을 본 가짜는 실실 쪼개는 얼굴로 날 바라보며 창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마치 약 올리는 듯, 통쾌하다는 듯이 밝게 웃는 그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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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짜 친구 24.07.31 1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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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친구를 찾아서(4) 24.07.29 1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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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친구를 찾아서 24.07.24 16 0 12쪽
6 살인범 24.07.23 1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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