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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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기리른
작품등록일 :
2024.07.11 23:08
최근연재일 :
2024.08.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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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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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사람(3)

DUMMY

“하이, 재윤. 잘 있었냐? 난 안 보고 싶었고?”

“미쳤나. 왜 너 같은 남자 새끼를 보고 싶어 해. 그리고 왜 또 왔어.”

“주말이잖아. 이 형이 너 심심할까봐 게임이라도 하라고 좀 가져왔지.”

“오···. 그건 좀 좋은데?”


시현이 가져온 봉투를 침대 위에 올려두었다.

봉투 안에서 휴대용 게임기를 꺼내 들었다.


“이게 그 이번에 새로 나온 거냐?”

“어. 안 해봤냐? 요즘 이 게임 모르는 사람 없잖아. 한 번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를걸?”


말 그대로였다.

집에 처박혀 있으면서 매일 게임을 하긴 했지만, 하던 게임만 하는지라 트랜드를 따라 해본 적은 없다.


“재밌냐?”

“야, 인기 있는 건 이유가 있긴 하네.”

“맨날 그 오래된 게임만 하더니. 좀 새로운 거 해보니까 얘가 맛이 갔네.”

“응. 지금만이야. 집에 가면 다시 악마나 때려잡아야지.”

“으, 진짜 대단하다, 너도.”


게임을 하다보니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 됐다.


“김시현. 일어나봐.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으음···. 몇 시야?”

“6시야. 환자 침대 뺏어서 자니까 좋냐?”

“나쁘지 않네. 꿀잠 잔 듯? 저녁은 네가 사냐?”

“어. 먹고 싶은 거 말해봐.”


우리는 병원 근처에 있는 음식점으로 향했다.

찔린 칼이 작아서 그런지, 상처가 그렇게 깊지는 않아 금세 아무는 것 같았다.

병원에서도 이틀만 있고 집에 가도 된다고 했다.


“으어. 여기 국밥 맛있네.”

“그러게. 괜찮네.”


우리는 국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밖으로 나와 걸었다.


“요즘 뭐하고 사냐.”


시현이 뜬금없이 근황을 물어왔다.

어제부터 찾아와서 이것저것 챙겨주긴 했는데, 생각해 보니 제대로 인사도 못 한 것 같다.


“나? 그냥 집에 있어. 게임하고, 자고, 밥 먹고, 똥 싸고.”

“아니. 주재윤 폐인 다 됐네. 난 대학교 들어갔어.”


흘러가는 대로 사느라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벌써 스무 살이 됐구나.


“대학 생활은 할 만하냐? 이제 한 학기 지났으려나.”

“어. 1학기 다니고 방학이지. 근데 수업 들어도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술 마시고 놀기만 하고 있어.”

“뭐, 그거면 잘 지내고 있는 거 아냐? 다들 그러는 것 같은데.”

“흠, 그런가?”


사실 안부라고 해봤자 딱히 물어볼 게 많지는 않았다.

간단한 인사치레면서, 서로 잘 지내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간단한 수단일 뿐이다.


“그럼 간다. 게임기는 나중에 퇴원하면 돌려줘. 집으로 한번 부르던가!”

“그래.”


아직은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여름의 평범한 하루가 지나갔다.


지잉-.

핸드폰에 알림이 왔다.

방금 돌아간 시현인가 싶어 바로 확인했는데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온 문자였다.


[안녕하세요. 저번에 다녀간 강하진 형사라고 합니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문자 드려 죄송합니다. 혹시 사건이 있고 이상한 악몽 같은 거 꾼 적 있나요.]


저번에도 악몽을 묻더니, 문자로 다시 언급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악몽이라면 꾸긴 꿨다.

하지만 그건 내 트라우마 같은 거겠지.


[없습니다.]


굳이 얘기할 필요 없겠지.

없다고 짧게 답장을 보내고 병실로 돌아왔다.


[몇 년 전 전국을 휩쓴 신종 마약, 모스 파우더 집단 투약 사례가 다시 발견되어···]


“에잉, 쯧! 요즘 놈들은 저런 것에나 정신이 팔려가지고! 세상 말세야, 말세. 앞으로 경제를 짊어져야 할 젊은이들이 어찌 저런, 에휴.”


리모컨을 선점한 나이 지긋한 분이 오늘도 뉴스를 시끄럽게 틀어놓고 세상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보다 눈에 들어온 건 뉴스에 나온 마약 이야기다.


과거 부모님을 잃게 만든 사고의 범인.

트럭의 운전기사가 사용한 마약과 같은 이름이다.

빌어먹을 약쟁이 놈들.

인생 망칠 거면 혼자망 망칠 것이지.


“아이고, 아저씨요! 잠 좀 잡시다!”


분노가 차오르던 중, 이미 잘 준비를 마친 아주머니께서 신경질적으로 노인에게 말했다.

병실의 다른 환자들도 동의하듯 노인을 바라봤다.


“세상 돌아가는 건 알아야지! 이년놈들, 너네가 세상 말아먹는 거야!”

“뭐요? 이 사람이 말 다했나.”


침묵하던 사람 중 한 명이 발끈하여 나섰다.

오늘 밤은 제대로 자기 힘들겠다 느껴 이어폰을 찾아 꼽고 볼륨을 최대로 높였다.

노래 들으면서 게임이나 하다가 자자.



“드르렁! 푸르르···.”


어느새 잠들었던 모양이다.

옆자리 아저씨의 코골이 소리에 잠에서 깬 것 같지만 말이다.

나도 코를 고는 편인데, 저렇게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은 처음 봤다.


‘갈증이 나네. 저녁을 너무 짜게 먹었나.’


국밥이랑 같이 나온 김치가 맛있어서, 너무 많이 먹은 탓인지 입이 말랐다.

쿡쿡 쑤셔오는 등을 뒤로하고 일어나 병실 밖으로 나왔다.


어둠 사이사이 형광색으로 표시된 비상구 모양과 저 멀리 야간 근무 중인 간호사인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도 불빛이 새어나왔다.

천천히 걸어 중앙 휴게실에 있는 자판기 앞으로 가 음료를 하나 뽑았다.


‘물이나 마실 걸 그랬나? 마시면 괜히 갈증 더 날 것 같기도 한데···.’


잠깐 고민하다 캔을 따 벌컥벌컥 사과 음료를 들이켰다.


“캬! 마실 때 이 시원하고 상큼한 건 물은 절대 못 따라오지.”


차가운 음료가 목을 넘어가며 짜릿함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오랜만에 마신 시원한 음료에 나도 모르게 탄성이 입 밖으로 나왔다.

다른 병실에 소리가 새어 들어가지 않았는지, 괜히 숨죽여 주위를 살폈다.


“어···? 밤에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전혀 몰랐는데, 내 뒤에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가 서있었다.

뻘쭘해서 나도 모르게 사과 인사가 튀어나왔다.


“···놔.”


뭐라고 대답하는 것 같은데,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듣기 위해 ‘네?’라고 되묻는 사이 그 여자가 손을 두 손을 뻗으며 또박또박 말해왔다.


“내놔.”


그녀가 내민 손에는 수술할 때 쓸 것 같은 칼이 쥐어져 있었고, 내민 손을 따라 이제는 내 배에 박혀 버렸다.

깜짝 놀라 양팔로 여자를 밀쳐버리고 불빛 아래 간호사들을 향해 뛰어갔다.

간호사는 앞에 놓인 컴퓨터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저, 저기요! 어떤 이상한 여자가 저를 찔렀어요! 윽···. 살려주세요.”


갑작스런 상황에 놀라 느끼지 못했던 고통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배를 움켜잡고 공포감에 도움을 청했지만, 간호사는 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계속 키보드를 두드리며 무언가 적고 있었다.


“제 말 안 들리세요? 저기요!”


손을 뻗어 눈앞에 흔들어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날 찌른 여자가 걸어오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틀렸다, 도망가야 해.


뚝뚝 떨어지는 핏자국을 남기며 나는 최대한 멀리 복도 끝으로 달려갔다.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다면, 해야 할 건 범인에게서 최대한 멀리 도망가는 것 뿐이다.

복도 끝, 청록색과 흰색의 빛이 흐리게 섞여 나오는 곳.

비상구를 통해 밖으로 나가자.


고통과 공포를 억누르며 겨우 비상구 문에 다다랐다.


‘밖으로 나가면 어떻게 쫓아오진 못하겠지···.’


핸드폰이 있다면 경찰에도 바로 연락했을 텐데, 병실에 두고 온 내가 원망스러웠다.


철컥.

약간의 안도감을 느끼며 문고리를 돌렸다.


‘어···?’


철컥, 철컥.

아무리 돌려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뒤로는 미친 여자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데 아무리 잡아당겨도, 체중을 실어 밀어봐도 문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숨은 점점 차오르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이제 내 바로 앞까지 다가온 여자의 손엔 들린 수술용 메스는 너무나 날카로워 보였다.


“내놔!”


소리 지르며 휘두르는 칼을 막기 위해 옆으로 뛰려고 했지만, 이미 풀려버린 다리로 그 자리에 넘어져버렸다.

결국 피할 수 없이 다시 등뒤에 칼이 깊숙이 박혔다.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여러 번, 한 번 한 번 힘을 담아 휘두르는 두 팔에 등이 난장판이 되어 버리는 것 같았다.

바닥은 몸에서 흘러나온 피로 물들어 가며 얼굴을 적셨다.


***


“···아! 재윤아! 일어나 봐! 땀을 뭐 그렇게 흘려. 너 괜찮냐?”


몸을 흔드는 손길과 밝은 햇살, 시현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깼다.

등 뒤에서 난 상처가 욱신거리자, 어젯밤 꿈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르며 깜짝 놀라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악!”

“깜짝이야! 뭐 그렇게 요란하게 일어나.”

“어? 아, 아냐···. 그냥 좀 놀라서.”


꿈속에서 나는 엎드린 자세로 등을 계속 찔렸다.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죽지도 못한 채 눈물만 계속 흘리면서.

아마 못해도 백 번, 아니 천 번도 넘게 칼에 찔렸을 것이다.


“갑자기 얘가 왜 이러냐. 몸도 이렇게 떨고. 진짜 괜찮냐?”


너무나 이상한 꿈이었다.

잠에서 일어난 걸 보면 분명 꿈이 맞지만, 그 안에서 겪은 고통과 감정은 너무나 생생했다.


“아냐. 그냥 악몽을 꾼 것 같아.”

“악몽?”

“응. 어···? 잠깐만. 악몽이라면···.”


악몽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어제 문자를 보내온 형사가 생각났다.

곧장 핸드폰의 문자를 다시 확인했다.


[다행입니다. 혹시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주세요. 이번 일은 아마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그 사이 다시 문자가 와있었다.

나는 답장을 보낸 후 시현에게 말했다.


“야. 와줘서 미안한데 오늘은 일찍 가라.”

“엥? 방금 왔는데 바로 가라고? 뭔 일 있는 거 아니지?”

“다음에 제대로 말해줄게. 꼭 연락할 테니까 걱정 말고.”


시현은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그대로 내 말을 따라줬다.


“에잇. 그래. 아싸리 다 낫고 보자. 퇴원하면 꼭 연락해라. 아프지 말고.”

“응.”


이런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다.

별일 없을 테지만, 혹시 모르니까.


얼마 뒤, 병실 문을 열고 저번에 만난 형사가 들어왔다.


“재윤 씨죠? 연락 받고 바로 왔습니다. 별일은 없는 거죠?”

“네. 그 끔찍한 악몽을 꾼 것 말고는··· 아직 아무 일도 없어요.”


형사와 나는 병실을 나서 밖을 걸었다.


“이번 사건을 조사하며 의문점이 너무 많았습니다.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너무 많았고요.”

“그게 악몽과 관련이 있는 거죠?”

“네. 이 사건에 얽힌 사람들은 모두 공통점이 있었어요. 악몽을 꾸었고, 그 뒤 몇 달 지나지 않아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주, 죽었다는 건가요?”

“죽은 건 아닙니다. 분명 살아있는데, 잠에서 깨어나지를 못해요. 추측이지만 10년 전부터 이런 피해자가 나온 것 같아요.”


강하진 형사의 말을 정리하면 이랬다.

십 년 전부터 알 수 없는 이유로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등장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악몽을 꾸면서 괴로워했던 적이 있다.

악몽이 끝나고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 뒤 모두 깨어나지 못하게 됐다.


“형사님은 예전부터 이 사건을 쫓은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이번에 재윤 씨가 신고한 사건을 계기로, 재윤 씨를 찌른 구지혜 씨가 일어나지 않는 것에서 시작했죠.”


형사 생활을 십 년 넘게 해오며, 가끔 인과 관계나 현실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고 했다.


“어쩌면 초자연적인 어떤 현상, 초능력자 같은 게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사건들은 대부분 미결로 남아 기록만 될 뿐이죠.”

“그런 일이···.”


틀린 생각이 아닐 것이다.

초능력이 맞을까 싶긴 하지만, 우리 삶에는 이런 알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곳곳에 숨어있다.

내가 그러했고, 시현과 의준이 그러했다.

아마 그 악몽이라는 건 단순한 꿈이 아니라 누군가의 능력일 확률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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