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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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기리른
작품등록일 :
2024.07.11 23:08
최근연재일 :
2024.08.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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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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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나방처럼

DUMMY

밧줄은 이제 작은 힘만 줘도 풀릴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강선우가 여전히 심취해 주절대고 있는 틈에 밧줄을 풀어내고 날 앉혀놓은 의자를 던졌다.

당연하게 그는 의자를 피했다.

그 틈에 나는 공장에 놓인 여러 기름통 사이로 뛰어갔다.


“밧줄은 어떻게 푼 거지? 내 이야기가 퍼져나가면서, 망할 학생들이 이상한 무기를 들고 다녀 좀 귀찮아졌어.”

“네가 생각보다 약골이어서 그런 거 아니야?”


기름통을 넘어뜨려 최대한 바닥에 흩뿌려야 한다.


“이게 뭐하는 짓이지? 그런다고 내가 못 쫓을 줄 알아?”


강선우의 속도는 생각보다 빨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잡힐뻔했지만 넘어뜨린 기름통으로 길목을 막아 가까스로 피했다.

기름을 밟은 강선우는 바닥에 넘어지기까지 했다.


“잡아봐! 보니까 도망갈 만하네.”

“···넌 누구보다 고통스럽게 죽여주지.”


여유를 가지고 있던 그의 눈빛은 어느새 불같은 화로 뒤덮여 있었다.

바닥에 뿌려진 기름은 갈수록 내게도 방해가 됐다.

신발과 바닥에 묻은 기름에 나까지 미끄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으앗!”

“제 꾀에 걸려 넘어지는 꼴이 아주 우스워. 자, 이제 할 만큼 다 발버둥 쳤나?”


넘어진 사이에 거의 다 따라잡았던 강선우는 다시금 여유를 찾고 나에게 걸어왔다.

더 이상 도망가는 건 무리다.

조건도 다 갖춰진 것 같고.


“넌 어떤 비명을 지르며 죽어갈지 궁금해. 너처럼 발버둥 치는 놈일수록 마지막엔 공포에 질려 살려달라고 붙잡거든.”

“케헥···! 이거··· 놔!”


내 목을 잡아 들었다.

손에도 기름이 묻어 미끄러울 텐데, 목을 조여오는 그 엄청난 힘에 나는 가볍게 들렸다.

자칫하다간 능력을 쓰기도 전에 죽어버릴 것 같이 정신이 희미해졌다.

아무리 손에 힘을 줘도, 손톱으로 팔을 뜯어도 강선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 아냐···. 하마터면 바로 죽일 뻔했군. 아직 제대로 즐기지 못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바닥에 날 던져버린 후 몇 번이나 발로 짓밟았다.

막혔던 호흡을 하기에 바빠 난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기침을 해대며 열심히 공기를 들이마셨다.


“뭐 더 보여줄 건 없나? 난 너 같은 놈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걸 봐야 복수의 희열이 느껴진다고.”

“하나··· 보여줄 건 있어.”

“어디 해봐. 뭘 어떻게 할 거지?”

“그러면 손 좀 줘볼래?”


이미 그에게 나는 먹잇감에 불과했다.

내가 정신을 차리도록 시간을 준 것도,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손을 뻗은 건 그런 자만심 때문이었다.


“깨물기라도 할 건가? 그러면 난 네 이빨을 부숴주지.”

“불··· 좋아해?”

“불? 뜬금 없이 그런 건 왜 묻지?”

“네 몸에 좀 붙여주려고.”


틱-.

내 손끝에서 만들어진 작은 스파크는 강선우의 몸 전체로 빠르게 퍼져갔다.

이어서 바닥으로, 내 몸으로 불은 이어졌다.


할 수만 있다면 강선우에게만 불을 붙이고 도망가고 싶었는데 무리였다.

이걸로 저놈에게 복수를 할 수 있고, 이 짓거리를 막을 수만 있다면 후회는 없다.


“으아아악! 이 새끼! 무슨 짓을 한 거야!”


온몸이 불타오르는 괴로움에 이리저리 움직이며 발버둥치는 강선우의 모습은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정해진 목적 없이, 그저 불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불 속에서 퍼덕이는 그 모습은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꼴··· 좋네···.”


왜인지 나는 생각보다 고통스럽지 않았다.

대신 점점 숨을 쉬기도 힘들어지고 정신이 흐려졌다.

내 행동에 후회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더 살아보고 싶기는 했다.

하고 싶은 게 많았으니까.


***


사이렌 소리가 크게 울렸다.


“헉, 저기 봐. 저거 불 난 거야?”

“연기 진짜 큰데? 개무서워···.”


공장단지에서 내렸을 때 소방차가 몇 대나 줄을 서 있었다.

소방관들은 호스를 끌어다가 열심히 꿈틀대는 불길을 막아섰다.


“선 안으로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근처로 구경 온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 사진을 찍어대고 떠들어댔다.

경찰들이 그런 사람들을 더 가까이 가지 못하게 막아섰고, 가까이 가려는 사람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이 안에 있을까요, 형사님?”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요. 전신이 불타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게 되었을 겁니다.”

“일이 이렇게 될 거라고는 예상도 못 했는데···.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감정에 충실하면 됩니다. 그게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맞는 말 같아요. 그리고··· 소하는 살았으니까요. 그거면 된 거죠.”


우리가 도착한 건 소방차가 오기 몇 분 전이었다.

공장에서 뿜어내는 검은 연기와 불길은 압도적이었다.

가까이 다가서기도 힘든 열기에 당황하던 중, 공장 입구에 쓰러져있는 사람이 한 명 보였다.


“저, 저기 사람이 있어요!”


용기를 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검게 그을리고 피가 묻어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그건 소하였다.


“다가가면 위험합니다! 소방관들이 금방 올 겁니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


강 형사는 어떻게든 다가가 소하를 데려오려던 나를 붙잡았다.

저기 쓰러져있는 소하가 살아있는지도 우린 알 수 없었다.

그저 십 미터도 넘게 떨어져 있는데도 몸에 닿는 그 열기에, 가까이 다가갔다간 죽을 것이란 경각심이 들 뿐이었다.


“안 돼요! 그때까지 기다리다가 죽으면 어떻게 해요!”


나는 근처를 둘러봐 수도관 하나를 발견했다.

양동이에 잔뜩 물을 받으며, 몸 전체를 물로 적셨다.


“저는 갈 겁니다.”


물을 담은 양동이를 하나 들고 나는 젖은 몸으로 불타는 공장으로 다가갔다.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뜨거워지는 열기를 참고 겨우 소하의 앞에 도착했을 때는 숨도 쉴 수 없었다.


숨을 꾹 참고 양동이의 물을 소하에게 쏟아부었다.

얼굴의 시꺼먼 가루가 물에 쓸려가며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정말 소하가 맞았다.


몸을 최대한 낮춘 채로 소하를 끌고 움직였다.

분명 엄청나게 위험한 상황이지만, 시간이 멈추지 않는 걸 보면 아직은 죽을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그렇게 겨우 소하를 끌고 어느 정도 열기에서 벗어났다.

얼굴을 두드리며 의식을 확인했다.


“소, 소하야! 괜찮아? 정신이 들어?”

“어···. 오빠. 여긴 어떻게···. 나 살아있구나.”


아주 작은 목소리고, 거친 숨소리와 함께 그녀는 말했다.

뒤이어 멀리서 들리던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지고, 내린 소방관들이 소하에게 응급처치하고, 구급차를 태워 데려갔다.


그사이 강하진 형사는 공장 주변을 탐색하며 혹시나 강선우가 어딘가로 도망가지는 않았을까 흔적을 찾았다.

소하를 보낸 나도 도왔지만 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몇 시간이 지나고 불이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나서야 그의 행방을 알 수 있었다.

소방관들이 불길 속에서 데리고 나온 사람 한 명.

사람이라고 하기에도 이미 까맣게 불타 생명력을 잃은 무언가였다.


우리는 그게 강선우라고 얼핏 예측하기만 할 뿐이었다.



며칠이 지나고, 나는 과일을 들고 병실에 찾아갔다.


“정신이 좀 들어?”

“재윤 오빠구나···. 응, 나 멀쩡해.”

“멀쩡하기는 무슨. 목소리에 기운도 하나 없는데. 그래도··· 다행이야. 그 불길에서 다리랑 팔만 화상을 입고 살아있었으니, 너무 다행이야.”

“그러게. 나도 그대로 죽을 줄 알았어. 출구까지는 열심히 기어갔는데, 밖으로 나오자마자 정신을 잃어서.”

“잘했어.”

“오빠가 거기서 나 데리고 안전한 곳까지 옮겼다며. 위험했을 텐데··· 고마워.”


난 그저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소하까지 잃었다면, 아무리 강선우를 멈췄다고 해도 그렇게 기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나를 찾아왔어?”

“그건···”


그때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내 말을 끊었다.


“나 아니면 누구겠어?”

“시현 오빠···! 또 능력 쓴 거야? 괜찮은 거지?”

“괜찮으니까 여기 찾아왔지. 병원 신세는 더 해야겠지만···. 나 3층 병실에 있거든? 자주 찾아올게.”


환자복을 입고도 밝게 웃는 그 모습에 우리 둘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뒤, 강하진 형사에게 화재에서 나온 시신의 신원이 강선우였다는 걸 들었다.


기분이 묘했다.

사람이 죽었는데 내가 이렇게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게.

그래도 후련하면서도 어딘가 그에게 불쌍함이 느껴지지 않을까 했는데, 그가 벌였던 여러 사건과 행적이 나에겐 그만큼 크게 느껴진 모양이다.


경찰과 대중에게 강선우가 연쇄 살인범이었다는 건 밝혀지지 않았다.

그는 항상 의준의 모습으로 사건을 벌였기 때문에 본인의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정말 사기적인 능력이다.


그의 정체를 아는 건 우리 셋과 강하진 형사뿐이겠지.

뉴스에선 갑작스럽게 끝이 난 연쇄 살인범의 행적과 의문점에 대한 추측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현장에서 발견된 문양과 신종 마약, 모스파우더에 그려진 문양이 같다는 사실이 큰 논란이 되었다.

강선우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이 문양 이야기로 넘어갔다.

이게 외국 범죄조직의 문양이라거나, 어떤 유명인이 엮여있다는 둥 추측하기 바빴다.


“재윤 씨, 강하진 형사입니다.”

“아, 네. 형사님. 무슨 일인가요?”

“몸은 이제 좀 괜찮으시죠? 아무래도··· 도움을 좀 받아야 할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좋습니다. 어떤 일이죠?”

“저번에 알려주신 그 클럽. 거기에 잠입했던 형사들이 모두 실종됐어요.”

“그런 일이···.”

“확실히 거기에 뭐가 있는 모양입니다.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당연하죠.”


이제 정말로 내 복수를 시작할 때가 왔다.

과연 저 클럽엔 모스와 관련된 어떤 비밀이 숨어있을까.


강 형사는 다음 주에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


“비피 님. 그 강선우라는 자식 소식 들으셨습니까.”

“불타 죽어버렸다지? 에휴. 리더가 생각한 것보다 얘가 관심을 못 끌고 죽었네.”

“사장님도 실험이었을 테니까요. 저희가 세상에 나섰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그렇긴 하지. 좋은 능력은 가졌는데, 미쳐버렸으니 저런 거 말고는 어디다 써먹겠어.”


두 사람은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눴다.

아래층에선 큰 음악 소리가 울려 바닥이 희미하게 진동했다.


“요새 여기에 날파리가 꼬인다는데, 좀 찾아봤어?”

“그놈들 경찰인 것 같습니다. 파우더가 어디서 꼬리가 잡힌 모양인데,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외부에서 알기는 어려울 텐데···. 안에서 새어 나갔나? 아니면 그놈들? 일단 네가 여기 있으면서 좀 찾아봐.”


비피는 술잔을 다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옆에 앉아있던 그리핀은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았다.


“딱 너한테 어울리는 곳이네. 오랜만에 좀 취해봐. 좋지?”

“마음껏 취해보겠습니다. 그리고 꼭 알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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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잠입(2) 24.08.07 12 0 12쪽
16 잠입 24.08.06 11 0 11쪽
» 불나방처럼 24.08.05 14 0 11쪽
14 범인을 찾아 24.08.02 12 0 12쪽
13 가짜 친구(2) 24.08.01 10 0 12쪽
12 가짜 친구 24.07.31 11 0 12쪽
11 범인은 어디에 24.07.30 16 0 13쪽
10 친구를 찾아서(4) 24.07.29 14 0 12쪽
9 친구를 찾아서(3) 24.07.26 11 0 12쪽
8 친구를 찾아서(2) 24.07.25 12 0 13쪽
7 친구를 찾아서 24.07.24 15 0 12쪽
6 살인범 24.07.23 1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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