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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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기리른
작품등록일 :
2024.07.11 23:08
최근연재일 :
2024.08.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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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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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찾아서(2)

DUMMY

“뭔데? 범인 잡히는 거야?”

“에이, 잡히지 말지.”

“미쳤냐? 그래도 사람 죽이는 놈인데 잡아야지.”

“그래서 얼굴 어떻게 생겼는데. 나도 좀 보자.”

“영상 막혔던데?”


난잡하게 엉켜 떠들어대고 있다.


“그럴 줄 알고 내가 캡처 해뒀지. 자, 봐봐. 얼굴 이렇게 생겼어.”

“헐, 뭐야? 왜 멀쩡하게 생김?”

“진짜 이 시대의 다크나이트다. 근데 우리 학교 교복 입고 있는데? 본 사람 있어?”


같은 공간에 있는 게 맞는지도 모르게 사람마다 의견은 제각기 달랐다.

그나저나 얼굴까지 유출됐다니.

어떤 놈이 벌인 거지?


학생들은 어떻게 저렇게 평온할 수 있을까.

자신은 목표가 되지 않을 거라는 어떤 확신이라도 있는 건가.


“근데 난 진짜 안 잡혔으면 좋겠어. 저 사람은 학교 폭력 저지르거나, 나쁜 일 한 애들만 죽였잖아.”


한쪽에서 벌어지는 토론을 들어보니, 그가 벌이는 살인의 타깃이 평범한 학생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그런 일은 저지르지 않은 대부분 학생이 별다른 위기를 느끼지 않고 있는 거다.


“다들 그만 좀 해!”


책상에 엎드려 있던 여학생이 잔뜩 벌게진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일어서며 소리쳤다.

순간 교실은 정적에 휩싸였다.


“소하야. 너 왜 그래.”

“그딴 살인범 얘기가 뭐가 좋다고, 다들 신나서 지껄이고 있는 거야!”


그녀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자, 이상한 걸 봤다는 듯 조용해졌던 교실은 그 모습을 잊고 다시금 활기차게 떠들기 시작했다.

몇몇 친구는 그녀를 따라 교실 밖으로 나갔지만 말이다.

나도 그 몇몇 친구를 따라 그녀를 쫓았다.


‘소하. 민소하. 분명히 의준이 동생 이름이야.’


계단을 훌쩍 뛰어오르는 소하의 속도를 다른 친구들은 따라잡지 못했다.

나도 헉헉거리며 간신히 뒷모습이나마 볼 수 있었다.


계단의 끝에 오른 소하는 옥상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자, 잠깐! 소하야! 얘기 좀 해!”


겨우 문에 다다라 밀어봤지만, 소하가 막고 있는지 문은 열리지 않았다.

체중을 실어 열면 그녀가 다칠 것 같아 함부로 힘을 주기도 난감했다.


뒤늦게 따라온 친구들이 옥상 문을 붙잡고 떠드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반 층 아래에서 저 사람 누구냐, 본 적 있냐는 얘기를 소곤거리는 게 어렴풋이 들려왔다.


‘이거··· 곧 들키겠는데. 에라, 모르겠다.’


“나 의준이 친구야. 주재윤. 예전에 본 적 있지? 잠깐 얘기 좀 하자.”

“누, 누구? 재윤 오빠라고? 뭐야. 오빠가 왜 여기에 있는데.”


반신반의하면서도 내 목소리를 기억하는지 조심히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서럽게 눈물을 흘리는 소하가 서 있었다.

괴로운 듯 보이는 그 모습에 내 마음도 아팠다.


“얘기하자면 긴데···. 얘들이 말하는 저 사건. 내가 생각하기엔, 그건 분명 의준이가 아니야. 그걸 밝히려고 단서를 찾고 있어.”

“그쵸. 아니죠···. 분명, 장례식장에서 그 모습을 봤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진짜 오빠가 살아난 거죠?”

“아직 확실한 건 나도 몰라. 하지만 너도 알잖아. 의준이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근데 얼마 전에 오빠 방에 있던 핸드폰이 사라졌어요···. 이거, 오빠가 몰래 우리 집에 왔다 간 거 아니에요? 이상하잖아요···.”

“엇. 그건 말이야···.”


그래, 들킬 줄은 알았다.

근데 소하는 내가 집에 갔던 걸 모르니까, 뭔가 오해를 해버린 것 같다.


“소하야. 사실은 그게···”


의준의 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은 일, 방에 들어가 핸드폰을 가져온 건 그때의 나라는 걸 얘기해줬다.


“그걸 왜 가져갔어요.”

“하하···. 다 얘기해줄 수는 없는데. 이 사건에 다른 초능력자가 엮여있는 것 같아서. 진짜 범인을 경찰이 잡기도, 범행 과정을 밝혀내기도 어려울 것 같아서···.”

“오빠가 범인을 찾아다니는 거예요? 초능력자···. 누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니까, 확실히 가능성 있네요.”


괴로워하던 소하의 얼굴이 조금은 나아졌다.

소하도 초능력자라 이런 얘기를 해도 어떤 뜻인지 곧바로 이해한 것 같다.

세상엔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를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곳곳에 숨어있다.


시현과 의준이 모인 우리 초능력자 모임에 소하가 끼지 않았던 건, 그녀가 자신의 초능력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끝에서 작은 스파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인데, 리스크가 없지만 그만큼 쓸 일도 거의 없다.

가스레인지에 불이 안 붙을 때 도움이 된 적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오빠 핸드폰도 가져가고. 어디서 구한 건지는 모르는 그 교복 입고 학교에도 왔어요?”

“응. 지금 들킬까봐 엄청 조마조마 하거든? 하루하루 엄청 늙어간다···.”

“뭐 얻은 건 있구요?”

“사실 그렇게 큰 진전은 없어. 핸드폰도 비밀번호를 몰라서 확인 못 했고. 일단 예전에 의준이한테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그거부터 확인해보는 중이야.”


소하는 어느새 평온해진 얼굴로 옥상 벽에 기대앉았고, 나도 자연스럽게 따라 앉았다.


“에휴. 지금 핸드폰 가지고 있어요? 줘봐요.”

“여기.”


의준의 핸드폰을 몇 번 건드리니 바로 비밀번호가 풀렸다.

알고 있었던 거구나.

처음부터 소하나,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는 게 좋았나 싶기도 했다.


“제 생일이에요. 비밀번호.”

“그렇구나. ···근데 너 생일이 언제야?”

“그거도 기억 못 하고! 8월 11일이잖아요.”

“악! 이제라도 꼭 기억해둘게.”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 의준의 핸드폰 문자나 메모장, SNS 계정 등 정보를 찾을 수 있는 건 다 찾아봤다.

뭔가 있을 줄 알았는데, 문자도 다 지워져 있고, 딱히 찾을 수 있는 건 없었다.

남은 건 주소록뿐이었다.


“제발 여기에 그 이름들이 있으면 좋겠다.”

“무슨 이름이요?”

“그, 의준이 방에 있던 수첩. 거기에 적혀있던 이름들.”

“아. 그런 건 찾아볼 생각 못했다. 사실, 떠올리는 것도 힘들어서···.”


주소록에 이름을 하나씩 입력했다.

아무 결과도 뜨지 않을 때마다 마음이 초조해진다.


“두 개 남았어. 이 둘 중 한 명은 있겠지. 김··· 성진.”

“어? 있다!”


운이 좋게도 내가 본 적 있는 사람의 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다.


“바로 전화해 봐요. 저도 이제 그때 일의 전말을 알고 싶어요. 부정하고 고개돌리지 않을래요.”

띵동댕동-.

소하의 말과 함께 종소리가 들려왔다.

점심시간이 끝났다.


“점심시간 끝났는데, 소하야? 일단 넌 들어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하루쯤은 수업 안 들으면 어때요. 전 이게 더 중요해요.”

“그래도···. 내가 먼저 전화해서 너한테 전해줄 수도 있고, 아니면 이 사람이랑 따로 약속을 잡아볼게. 그때 같이 나가서 얘기 들어보자.”

“그때까지 못 기다릴 것 같은데···. 알았어요. 이번에는 오빠 말 들을게요.”


자리를 털고 일어나 계단을 내려가며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소하에게 마지막 인사에 몇 가지 말을 덧붙였다.


“음···. 뉴스나, 이런 곳에서 의준이 이름이 나오고 그래도 개의치 마. 다들 오해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니까···. 내가 꼭 밝혀내고 너에게 알려줄게. 그럼 다음에 연락할게.”

“저도 알아요. 오늘 같은 일이 계속 생기겠죠. 제 오빠 이름을 아는 애들은 절 이상하게 볼테고. 그래도, 그 정도는 이미 각오하고 있어요!”


밝게 웃으며 보여준 그 의연한 모습은 예전에 봤던 의준의 모습 같았다.

역시 가족이라 그런가, 뿜어내는 에너지가 비슷하다.


소하를 교실로 돌려보내고 나는 간신히 학교를 빠져나왔다.

담을 넘을 때 어떤 선생님에게 발각되긴 했지만,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숨이 멎을 때까지 달렸다.


“허억, 헉···. 죽겠네. 목도 마르고. 뭐라도 좀 사서 마셔야겠다.”


조금이라도 저렴한 편의점이나 슈퍼가 없나 둘러봤는데 근처엔 카페 하나만 보일 뿐이었다.

외관을 보니 고풍스러워 보이는 게 아메리카노도 비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고민되는데. 아냐. 목마르고 덥고 죽을 것 같아. 잠깐 들어가서 쉬자. 근데 이름도 되게 특이하네. 만능묘약상점이라니.”


점심시간도 끝나 다행히 앉을 자리가 남아있었다.

계산대 뒤에 걸린 메뉴를 보니 특이한 이름의 음료들이 많았다.


‘용기의 비약, 진실의 묘약···. 무슨 게임 속에서 있을 것 같은 이름이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난 그런 건 시킬 생각은 없다.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 들이켜고 땀 좀 식히고 생각하자.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구석에 있는 자리에 앉고 일 분도 지나지 않아 아메리카노가 나왔다.

이상한 이름 달린 메뉴 아니면 비싸지도 않고,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은 카페인 것 같다.


입안 가득 얼음이 찰랑거리는 커피를 가득 머금고 목으로 흘려보냈다.

시원한 짜릿함이 입과 목을 따라 흘러가는 게 느껴졌다.

뒤이어 머리도 잠깐 띵해졌다.


“살 것 같다···.”


정신을 차린 뒤, 다시 의준의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확인했다.

미룰 수는 없지.

바로 전화해봐야지.


반대쪽 주머니에 넣어둔 내 핸드폰을 꺼내보니,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이 와있었다.


“누가 이렇게 많이···. 아, 시현이구나.”


학생들이 뉴스 얘기로 시끄러웠던 걸 보면, 분명 시현도 보고 만 것이다.

의준 얼굴이 담긴 영상을.


일이 이렇게 되길 원하지 않았다.

살인 사건이 이슈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왜 CCTV 영상이 유출된 건지.

잠시 화가 났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다.


“이건 시현이한테 먼저 전화해야 하나, 저 김성진 씨한테 먼저 전화해야 하나.”


다시 한번 쪼르륵, 커피를 들이켠 후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전화 연결음이 귓속에 울릴 때마다 긴장은 더해갔다.


“누구세요.”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에 상대는 딱딱한 목소리로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주재윤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스팸이죠? 끊을···”

“아뇨! 아니에요! 저 의준이 친구입니다. 사린 고등학교 민의준. 물어볼 게 있어서 전화드렸어요.”

“···뭐요? 목적이 뭐야.”


의준의 이름을 듣고 더욱 경계한 듯 되물어왔다.

시나리오는 이미 준비되어 있다.


“혹시 뉴스 보셨나요. 그 일 때문에 전에 의준이 집에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동생이랑 얘기를 하다가, 예전에 있었던 일을 알고 싶다고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제 번호는 어떻게 아셨는데요. 그리고 그쪽이 의준이 친구인지 뭔지 어떻게 알아요, 제가.‘

”믿기 힘든 건 압니다. 그쪽 번호는··· 의준이 핸드폰에서 찾았습니다. 동생이 비밀번호를 알고 있어서 볼 수 있었거든요.“

”···.“


몇 분 동안 상대방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침묵이 흐르다가, 가끔 한숨소리가 새어나올 뿐이었다.


”하아···. 알겠습니다. 얘기해 드릴게요. 일단 저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얘기라, 적어도 주말까지 시간을 줄 수 있을까요. 만날 장소랑 시간은 따로 연락드릴게요.“

”언제든 편할 때 얘기해주세요. 대신, 의준이 동생이랑 같이 가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신가요.“

”안 괜찮으면 뭐 어쩔 수 있나요. 다 제 업보인데. 그렇게 하죠.“

”그러면 그때 뵙겠습니다.“

”네.“


정확한 날짜와 장소는 정해진 게 없지만, 그가 잠수를 타거나 도망갈 일은 없을 것이다.

아직도 나는 그때 봤던 성진의 눈물을 잊을 수 없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지난날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며 괴로워했다.


”소하한테 문자 남겨놓고 일단 집에 가자. 이 망할 교복도 얼른 갈아입어야지···.“


사린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이 시간에 교복 입고 카페에 와서 커피를 마시는 날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갑자기 부끄러워져 곧바로 음료잔을 반납하고 카페를 나섰다.


”다음에 또 오세요-.“


형식적인 인사를 뒤로 하고 소하에게 문자를 보내려던 중, 다시 한번 핸드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김시현]


”맞다. 얘한테도 전화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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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보이지 않는 위험 24.08.12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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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잠입(2) 24.08.07 1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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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불나방처럼 24.08.05 14 0 11쪽
14 범인을 찾아 24.08.02 13 0 12쪽
13 가짜 친구(2) 24.08.01 10 0 12쪽
12 가짜 친구 24.07.31 11 0 12쪽
11 범인은 어디에 24.07.30 16 0 13쪽
10 친구를 찾아서(4) 24.07.29 15 0 12쪽
9 친구를 찾아서(3) 24.07.26 12 0 12쪽
» 친구를 찾아서(2) 24.07.25 13 0 13쪽
7 친구를 찾아서 24.07.24 16 0 12쪽
6 살인범 24.07.23 1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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