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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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기리른
작품등록일 :
2024.07.11 23:08
최근연재일 :
2024.08.16 10: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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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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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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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신분증 확인하겠습니다.”


저번과 다르게 혼자 클럽으로 들어간다.

과하게 흥이 넘치는 이 거리는 다시 와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지하로 내려가서 주변을 돌아다니다 보니 전에 만난 힘센 여자가 보였다.

날 의식하고 있었는지, 금세 시선이 마주쳤고, 가벼운 손 인사를 건네며 다가왔다.


“금방 올 줄 알았어. 어때. 같이 올라갈래?”

“그럴까요?”


역시 그때의 방으로 날 데려가려고 했다.

이번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와서 전보다 당황스럽지는 않다.

긴장은 많이 되지만.


“어땠어? 좋았어?”

“네? 어떤 거요?”

“왜 갑자기 모르는 척하지? 그때 받아 갔잖아. 그거 아직 안 했어?”

“하하···. 네, 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 대충 웃고 얼버무렸다.

그 사이 방 앞에 도착했다.

문을 열어보니 전에 봤던 사람들이 그대로 있었는데, 어딘가 전보다 분위기가 늘어져 있고 섬뜩했다.

전보다 더 약에 취한 것 같다.


“어, 왔어? 여기 앉아.”


멀쩡한 건 그때 그 여자뿐이었다.

반갑게 웃으며 날 맞이해 주니 기분이 오묘했다.

옆에 앉은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다시 말을 꺼냈다.


“그거 안 했어?”

“네.”

“왜? 그거 얻으려고 여기까지 온 거였잖아.”


여기부터 시작이다.


“그때 모스파우더랑 다른 하나도 같이 보여주셨잖아요.”

“카드? 어머. 그게 탐나는 거야?”

“생각해 보니까 그게 더 좋을 것 같아서요.”

“푸하하! 오랜만이다, 너 같은 애. 그래, 처음 봤을 때부터 넌 그럴 것 같았다니까?”


잘했다는 듯, 술을 한 잔 들이켜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기부터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했는데, 예상보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여기 있는 애들 봐봐. 며칠 사이에 더 맛이 갔지? 네가 거기에 손을 댔다면 저렇게 됐을 거야. 그냥 쾌락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 거지.”

“헉, 그런···.”

“우리 모스는 저런 버러지가 아닌 사람들을 찾고 있어. 아무리 초능력자라도, 저런 애들은 아무런 도움도 안 될 테니까.”


이건 일종의 테스트였던 것이다.

같은 초능력자라도, 본인들에게 도움이 될지 아닐지를 판단하려는 것이라 했다.

저렇게 약에 절은 사람들은 귀찮은 일을 처리하게 맡긴다고 하는데, 그 귀찮은 일이란 건 무엇일까.


“너는 왜 우리가 조직을 만들었는지 알아?”

“음···. 동질감을 느껴서인가요?”


나와 시현, 의준이 모였던 건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비밀을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가지는 이런 능력 때문인지 비능력자와 어울리는 게 본능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다.

물론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다.


“그것도 있지. 그리고 이 사회의 부조리를 느낀 거지. 남들보다 뛰어나지만 결국 그들과 비교당하며, 뒤섞여 살아야 한다는 점.”

“그쵸. 어떻게 잘 어울려서 살아야죠.”


어렸을 때는 이런 문제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고, 혼자 조용히 떨어져 지내기도 한다.

우리도 그러다가 서로를 만나고 유대감을 쌓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교류하는 경험을 해봐서인지, 전보다는 사람들을 대하는 게 편해졌다.


“왜 그래야 하지? 우리는 새로운 힘을 가진 더 고등한 존재야. 능력도 없는 놈들과 비교당할 사람이 아니라고.”

“···.”


그녀는 심취한 듯 떠들어댔다.

반박하고 싶은 말이 가득했지만, 앞으로 일을 위해서는 참고 들어야 한다.


“그래서 리더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우리를 모으고 있어. 저 멍청한 인간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서. 어때. 공감되지?”

“···네.”

“쾌락만 좇는 머저리들은 걸러내고, 도움이 될 사람들을 찾고 있었어. 너 같은 사람 말이야.”


무서운 방법으로 사람을 모으는 것 같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나 싶다.


“조건은 달성한 거야. 이제 시험을 한 가지 통과하면 되는데, 해볼 거지?”

“해보겠습니다. 어떤 것인가요?”

“지금부터 날이 밝을 때까지 시간을 줄게. 이 클럽에서 무능력자 한 명을 죽이고 나한테 데려와. 쉽지? 여기 데려와서 죽여도 되고.”

“사, 사람을 죽이라고요?”

“그냥 벌레 한 마리 죽이는 건데, 어려울 게 있어? 설마 아직 한 명도 안 죽여본 거야?”


미친 소리를 너무 당당하게 하고 있다.

사람을 죽이라니.

정말 이 사람은 비능력자를 벌레처럼 보고 있는 걸까.

대다수의 초능력자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갑자기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여기서 거절하는 것도 위험해질 수 있으니, 잘 빠져나가서 일단 강하진 형사와 만나보자.


“하하! 너무 쉬워서··· 그래서 물어본 거죠!”

“좋아. 네 능력이 뭔지는 이 시험으로 알 수 있겠지. 그럼 지금부터 시작이야. 나 기다리는 거 별로 안 좋으니까 최대한 빨리 부탁해.”

“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어떤 경우가 와도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다.

아니, 죽일 수 없다.

이건 만화나 게임이 아니니까.


핸드폰을 열어 강 형사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디신가요?]

[지하 2층 화장실입니다.]


내가 있는 층이다.

여기는 위에서 음악 소리가 들어오긴 했지만, 따로 스피커도 없고 조용한 곳이었다.

긴 복도를 따라 여러 개의 방이 들어차 있을 뿐이다.


화장실로 들어가니 시퍼런 옷을 입은 사람이 허리를 숙여 변기를 청소하고 있었다.

잘못 들어온 건가, 싶어서 다시 뒤돌아 나가려는데 청소부가 나를 불렀다.


“재윤 씨. 접니다.”

“아! 형ㅅ··· 하진 씨! 청소부로 들어온 거였군요.”

“네. 뭐 다른 재주는 없어서.”

“제가 방금 저기 옆에 방에서 얘기를···”

“잠시만요. 누가 들어올 수 있으니 조치를 좀 하죠.”


강하진 형사는 말을 막아서더니 화장실 문 옆에 있는 청소도구함을 열어 ‘청소 중’이라는 팻말을 꺼내 앞에 세우고 문을 닫았다.


“자. 이러면 뭐 누가 들어오진 않겠죠. 무슨 얘기를 했죠?”

“저 약을 먹지 않는 게 맞았어요. 그리고 모스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더니, 시험을 한 가지 통과해야 한대요.”

“어떤 시험이죠?”

“사람을··· 죽여서 데려오래요. 오늘 밤까지요.”

“생각보다 더 미친놈들이군요.”


조직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그걸 알기에 우리는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꼭 죽여서 데려갈 필요는 없고, 데려가서 죽여도 된다고 한 거죠?”

“네···.”

“그럼, 저를 데려가십시오. 여기, 이 칼로 절 찌르면 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을···! 저는 못 해요!”


강 형사는 자신의 옷을 들추며 나를 안심시켰다.


“안심하십시오. 방검복을 입고 있어서 그 칼이 제 몸까지 뚫고 들어오지는 못할 겁니다. 대신에···”


강하진 형사를 데려가 죽이는 척을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우리 두 사람의 연기다.


철컥.

얘기를 하던 중, 밖에서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어떤 새끼가 한창 손님 많을 시간에 저거 두고 화장실 청소를 하냐! 너 새로 온 그 새끼냐? 옆엔 누구야.”

“손님입니다. 그게··· 이분이 잔뜩 취했는지 막힌 변기를 자꾸 내려서 그걸 청소하느라 그랬습니다.”

“뭐? 야 아무리 그래도··· 어윽! 냄새 씨발. 야. 5분 안에 청소 다 하고 냄새도 다 빼놔. 난 간다.”


처음엔 분명 화장실 냄새 말고 다른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새 화장실에선 고약한 냄새가 퍼져나가고 있었다.


“으악! 이거 무슨 냄새에요?”

“이 스프레이입니다. 혹시 몰라서 가져왔는데, 쓸 곳이 있어서 다행이군요.”


강 형사가 꺼낸 건 방구 스프레이라고 적힌 물건이었다.

이건 방구가 아니라 그 위 단계인 무언가의 냄새에 가까웠다.

어디서 저런 걸 구해서 가지고 온 건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저는 5분 정도 청소하는 척을 하고 나갈 테니, 재윤 씨는 먼저 나가서 재료를 구해주시죠.”

“아, 알겠어요. 어떻게 구해볼게요.”


난 화장실을 나와 지하 1층으로 올라갔다.

화장실에 왔다가 먼저 나간 가드는 뒤늦게 자신을 따라온 나를 보며 코를 막고 얼굴을 찡그렸다.

저렇게 싫어할 줄은 몰랐다.


다시 지하 1층으로 가니 음악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이 시끌벅적한 틈 사이에서 나는 벽 쪽에 있는 칵테일 바로 곧장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어떤 술 드릴까요?”

“감자튀김 하나랑 와인 한 잔 주세요.”

“와인은 어떤 걸로 드릴까요?”

“음···. 아무거나 주세요.”

“아무거나요? 흠. 감자튀김이랑 와인을 시키는 분이 많지는 않아서 좀 고민이 되네요. 좀 탄산감 있는 와인으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사실 와인은 마셔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어서 잘 모른다. 근데 이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주문했다.

단순히 허기를 달래기 위해 주문한 메뉴는 아니다.

이것들은 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하나의 재료가 될 것이다.


“여기 나왔습니다.”

“어···. 감사합니다.”


와인이 생각과는 달랐다.

내가 생각하는 와인은 검붉은색의 술이었는데, 바텐더가 내준 와인은 투명한 색의 기포가 올라오는 와인이었다.

이건 예상과는 달랐지만, 어쩔 수 없다.


바텐더는 다른 손님의 주문으로 칵테일을 만들면서도 나를 신경썼다.

나처럼 주문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지 호기심이 생긴 모양이다.

하지만 난 이걸 먹기 위해 주문한 게 아니다.


바텐더가 설거지하기 위해 등을 돌린 사이, 나는 테이블에 돈을 올려두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거지를 마친 바텐더는 그 사이 사라진 내 자리를 보고 어리둥절해 있었다.


“음? 그 특이한 손님 어디 가셨지? 돈은 두고 가셨는데, 감자튀김도 와인도 전혀 손을 안 댔네. 뭔가 마음에 안 들었나?”


내 자리를 살피던 바텐더는 시무룩하게 자리에 놓인 감자튀김과 와인을 치웠다.


“음? 근데 케첩이 어디 갔지?”


감자튀김이 있던 접시엔 케첩이 담긴 종지가 통째로 사라져 있었다.


케첩을 든 손을 숨기며 나는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종지를 채로 가져온 게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다.

나중에 어떻게든 갚아야지.


화장실로 가보니 강 형사가 아직 바닥에 대고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형ㅅ··· 아니 형!”


계속 버릇처럼 형사님이라 부르려고 하다가, 다른 사람이 들을까 자연스럽게 형이라고 틀었다.


“가져왔습니까.”

“네. 이거면 될까요? 더 묽은 액체도 가져오려고 했는데, 뭘 주문해야 할지 몰라서 못 가져왔어요.”

“이거면 충분합니다. 그러면 준비를 해볼까요.”

“네! 앗, 잠시만요! 우웩···.”


강하진 형사는 주머니에서 방구 스프레이를 꺼내 내용물을 다 변기에 쏟아냈다.

스프레이로 쏘아낸 작은 양이 아닌, 대용량의 용액은 정말 역겨운 냄새를 풍겨 헛구역질을 유발했다.


필요한 일인 건 알겠지만,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처음엔 밖에 나가서 기다려야 하나 고민했는데 겨우 참다 보니 코가 마비돼서 나름 견딜만 해졌다.


몇 분 사이 그의 작업은 끝이 났다.


“그럼, 이제 가볼까요.”

“좋아요···. 가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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