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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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기리른
작품등록일 :
2024.07.11 23:08
최근연재일 :
2024.08.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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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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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집단

DUMMY

초능력자들이 모여 집단을 만들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뭐, 어떻게 보면 중학생 때 친구들과 만든 그 모임도 초능력자 모임이긴 하지만.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거예요. 걔네가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고 다니기라도 해요?”

“죽이기만 하는 게 아니지. 그들에게 인간은 가축이랑 같은 거야. 가지고 놀다가 버리고, 죽이고···. 내, 내가 실수로 거기 사람을 건드렸어.”


다시 쓸데없는 이야기를 횡설수설 쏟아내기 시작했다.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어떻게 저 사람이 다시 능력을 쓰지 않게 만들지, 하는 것이었다.


“아무튼 저는 거기 사람 아니니까 안심해요. 그리고 다시는 능력 써서 사람 죽이지 마요.”

“다행이야. 네가 모스 사람이 아니라니까···. 근데 안심하라니. 며칠 전부터 경찰이 연락하고 있는데, 이 몸으로 그대로 있을 수 있겠어?”

“그대로 저랑 싸우겠다는 거죠? 저도 가만히 안 있을 겁니다.”


내가 이렇게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이유는, 이번 꿈에서 느꼈다.

이게 꿈이라는 걸 인지하면 나도 현실과는 다른 여러 힘을 쓸 수 있다.

그건 현실이 아닌 꿈이니까.


“안 돼···. 너로 목표를 정한 이상 둘 중 하나가 죽지 않는 이상 연결된 꿈은 끊을 수 없다고. 꿈을 뺏을 수 없다면, 지금 어떻게든 널 죽일 수밖에!”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유나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 옆에 떨어진 칼을 향해 달렸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지만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떨어진 식칼과의 거리는 내가 훨씬 가까웠다.


“어림없지! 이 칼을 잡게 둘 것 같아?”


빠르게 먼저 칼을 잡아 들었다.


“이, 이리 내! 널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다고!”


식칼을 빼앗기 위해 달려든 유나리는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았는지, 인간이 가진 다른 강력한 무기를 사용해 날 공격했다.

질긴 고기와 딱딱한 음식도 씹어 먹을 수 있게 발달한 이빨, 그걸로 내 팔을 물어뜯었다.


“악! 저리 가!”


살을 뚫고 들어오는 이빨의 감촉에 놀라 난 반사적으로 손에 든 칼도 놓고 양팔로 그녀를 밀쳐냈다.

저 멀리 날아가 바닥에 떨어진 유나리가 죽일 듯 노려봤지만, 정면 승부로 체격 차를 극복하는 건 쉽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 같다.

여기에 더해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도망치며 유나리가 벌인 소란에 출동한 거겠지.


“다, 다음에 두고봐. 현실에서도, 꿈에서도 너는 나에게 벗어날 수 없어.”


그대로 그녀는 문을 열고 비상계단으로 도망쳐버렸다.

병원 밖으로 나와 어디론가 뛰어가는 모습을 보고 나는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쫓아갈 수도 있었지만 도망치는 모습을 보며 지금까지 겪었던 일이 떠오르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긴장하여 느껴지지 않던 공포와 피로감, 고통이 동시에 몰려왔다.


“허억···. 이런 상황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거야···. 진짜 죽겠네···.”


숨을 고를 때까지, 경찰이 찾아올 때까지 난 옥상에 누워있었다.

이후 간단한 조사를 마치고, 내일 다시 찾아오겠단 말을 남기고 경찰은 떠나갔다.


그날, 나를 포함한 병실 사람들은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뜬눈으로 하루를 보낸 다음 날, 어제 찾아오겠다는 경찰 대신 강하진 형사가 찾아왔다.


“어제 얘기 들었습니다. 몸은··· 괜찮죠?”

“뭐, 잠을 못 잔 것 빼고는···.”


거의 이틀 동안 잠을 못 잤다.

중학생 때 벼락치기로 시험공부 한다고 하루를 샜던 때에 느꼈던 피로감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신경도 예민해지고, 판단력도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다.


‘이대로 잠에 들면 또 꿈에서 그 새끼랑 싸워야겠지···.’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쉬자, 강하진도 그런 내가 힘들어 보였던 모양이다.


“음료라도 한 잔 하시겠습니까? 제가 사겠습니다.”

“그러면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시원한 거 마시고 정신이라도 좀 차려야겠어요.”


자판기에서 음료 두 개를 뽑은 강하진이 하나를 내게 넘겼다.


“오늘 아침에 소식을 하나 들었습니다.”

“뭐죠?”


사실 궁금하단 생각도 들지 않았다.

무기력 그 자체인 상황이다.


“어제 병원 소동이 있고, 경찰이 유나리 씨의 집에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문이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고 하더군요.”

“그, 그 사람이 죽었다고요?”

“네. 머리가 익은 채로 부엌에 쓰러져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범인은··· 알 수 없는 상황이고요. 대신 어떤 명함 같은 게 하나 떨어져 있다더라고요.”


어젯밤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그녀를 노릴 사람은 모스라는 그 집단밖에 없다.


“거기에 모스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나요?”

“그걸 재윤 씨가 어떻게 아시죠?”

“어제 유나리랑 옥상에서 대치하며 들은 이야기가 있어요. 모스라는 초능력자 집단에게 쫓기는 중이라고 했어요.”

“···거짓말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이게 사실이길 바라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반문했다.


“사실, 저도 초능력자예요. 유나리, 아니 본명이 뭔지 모르겠지만 그 양반도 그랬고요. 초능력자는 정말 있어요. 그래서 전 사실이라고 믿어요.”


이 일련의 사건이 있고 벌어진 범행 도구를 짐작도 할 수 없는 살인 사건.

강하진 형사의 눈에는 알 수 없는 기대와 분노가 들어차 있었다.


“최근 시중에 풀린 모스 파우더란 마약이 있습니다.”


뉴스에서 몇 번이고 떠들던 이름이다.

같은 병실 환자가 주구장창 그 내용을 들으며 욕을 해대서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나리의 집에 남겨진 명함과 마약을 담은 용기에 그려진 마크가 똑같더군요. 나방의 얼굴을 형상화한 그 모습.”

“그 집단에서 마약까지 유통한 거군요···?”

“이게 단순한 마약이라면··· 제가 지금까지 이런 의문을 가지고 살아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당국에서 숨기고 있지만, 마약에선 어떤 사람의 유전자 정보가 담겨있습니다.”

“사람의 유전자 정보가요?”


형사가 주먹을 꽉 쥐고 말을 이었다.


“거기에서 발견된 건, 제 딸의 유전자입니다. 칠 년 전에 실종된···.”


차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며, 희망을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다시 그 마약이 나타난 걸 보면, 제 딸아이는 아직 죽지 않았을 겁니다. 드디어, 조금이나마 딸에게 가까워지고 있군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뭐라고 말해야 할지 조심스러웠다.

가족의 실종이 그런 조직과 연결되어 있다니.

그나마 형사라는 직업이, 어쩌면 딸의 행방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에 아직까지 포기하지 않은 그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처음 그 마약이 세상에 드러난 건 삼 년 전이었습니다. 마약에 취한 트럭 운전사가 일가족이 몰고 오던 차를 들이받은 사고였죠. 자식만 살아남았다고 했는데···”


강하진은 잠시 멈칫하며 가슴 속에 넣어둔 수첩을 꺼내 몇 장 넘겨보았다.

꾸깃꾸깃한 그 수첩엔 긴 세월이 녹아있어 보였다.


“···재윤 씨.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싶었는데, 제가 괜한 얘기를 꺼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아요. 그놈이 했다는 마약이 모스 파우더, 저거라는 거죠?”


마약 복용자에 의한 사고라고만 전해 들었다.

이렇게 연결점이 생길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불운하고 불행한 악재가 쌓여 우리 가족을 덮친 거라 여기고 묻어두려 노력했다.


“형사님. 그 모스라는 집단에 대해 더 찾아볼 생각이죠?”

“딸아이가 실종된 그날부터, 언제나 제 목표는 그거였습니다. 목숨을 걸고 찾을 겁니다.”

“아무래도 저도 같은 목표를 위해 달려야 할 것 같아요. 제 부모님을 앗아간 그놈들···. 반드시 찾아내서 복수할 거예요.”


이미 범인도 죽고,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저 멈춘 시간 속에서 가족이 죽어가는 모습을 끔찍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이게 올바른 길일지는 모르겠지만, 내 삶에 목표가 생겼다.


***


며칠 뒤, 퇴원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무기력하던 삶을 이끌 목표가 생긴 나는 더 이상 집에만 박혀있을 수 없다.

그동안 미뤄뒀던 삶을 시작할 때가 됐다.


“여보세요.”


그 전에 먼저 해야할 일이 있다.


“어, 재윤아. 퇴원했냐?”

“어제 퇴원했어. 게임기 돌려주려고 연락했어.”

“더 써도 되는데. 방학이라 나도 집에서 놀고 있으니까, 오늘 바로 만날래? 그거 주는 김에 오랜만에 밥도 먹고 좀 놀자.”

“···그래. 병원에서 오지 말라고 한 이유도 말해줘야 하니까.”


오랜만에 연락한 거의 유일한 친구.

내 목표를 위해, 친구와 여유롭게 매일 놀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런 고마운 친구를 그저 내칠 수도 없고.

약속도 지킬 겸 모스 얘기는 빼고 어느 정도 있었던 일을 얘기해줘야겠다.


점심시간이 좀 지나고, 우리는 카페에서 만났다.


“뭐냐. 며칠 사이에 너무 마른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다시 이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초능력자랑 얽혀서 죽을 뻔했어.”

“진짜? 지, 지금은 괜찮은 거지? 그런 일이 있으면 말하지. 나도 무조건 도와줄 건데.”

“에이. 아무 상관도 없는 널 어떻게 엮이게 해.”


친구와 있을 때의 이 여유로움과 편안함.

무척이나 좋지만, 조금은 경계해야 한다.

앞으로 내 행보가 주변 사람까지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


“그래도 우리가 어떻게 모였냐. 너랑 의준이랑. 우리 다 중학생 때 그 어린 나이에 초능력자라는 자신감만 가득 차서 의기양양 비슷한 사람들 찾고 다녔지.”

“그때는 참, 겁도 없었어. 나쁜 생각 가진 사람 있었으면 어쩌려고.”

“뭐, 초능력자가 그렇게 흔하진 않잖아. 그리고 능력이라고 뭐 대단한 거 있는 사람도 별로 없고.”

“너처럼?”

“아오. 말 다했냐? 내 능력이 어때서. 영화에서도 나오는 그런 천리안 같은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데.”

“능력 쓰기가 너무 힘들잖아.”


시현의 초능력은 말 그대로 천리안과 같이 한번 본 사람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정말 좋은 초능력이지만, 발동시키기 위해선 땅콩 알레르기 증상이 발현되어야 한다.

증상도 매우 심해서 몇 분이면 기도가 막혀 죽을 수도 있는 정도다.

찾으려는 사람의 거리가 멀수록 찾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 위험이 배가 된다.


“그건···. 하, 왜 이렇게 내 능력만 이렇게 리스크가 크냐. 쓰레기가 맞는 것 같네. 그래서 사실 알레르기 모르고 땅콩 먹었을 때 이후로 한 번도 안 써봤잖아.”

“그래도 뭐, 안 쓰고 살면 되지. 난 안 쓰고 싶어도 자동으로 발동되잖아. 이거 엄청 골치 아프다.”

“크큭. 진짜 우리 다 능력에 하자가 있어. 의준이는··· 걘 크게 위험하지도 않고 참 부러웠지···.”


사실 이렇게 다시 모이게 된다면, 우리는 세 명이 모였어야 했다.

서로 학교는 달랐지만, 초능력자라는 동질감으로 뭉친 셋은 항상 같이 다니며 놀았다.

고등학생이 되고 의준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야, 슬픈 얘기는 하지 말자···.”

“미안, 미안. 얘기하다 보니까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버려서.”

“···.”

“후···. 야. 게임이나 하러 갈래?”


해야 할 일이 생겨서 자주 만나지는 못할 것 같다고, 연락이라도 가끔 하겠다고 말하러 왔는데.

막상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 오늘만 좀 즐기고 헤어지기 전에 얘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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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친구를 찾아서(2) 24.07.25 12 0 13쪽
7 친구를 찾아서 24.07.24 15 0 12쪽
6 살인범 24.07.23 13 0 12쪽
» 의문의 집단 24.07.22 1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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