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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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기리른
작품등록일 :
2024.07.11 23:08
최근연재일 :
2024.08.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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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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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자, 잠깐! 지금 날 죽이면 안 될걸? 위에 있는 인질들은 이미 다 죽었어.”

“···더 죽여달라는 소리로밖에 안 들리는 걸.”

“더 들어봐! 그놈들한테 어떻게 여기를 알게 됐는지 알아냈어. 그래서 말하는 거야. 얻어낼 건 이미 다 얻어냈다고!”

“그럼 말해봐. 그놈들이 뭐라고 했지?”

“흐, 흥. 말하면 죽일 거잖아. 지금 말할 생각 없어. 대신 날 리더에게 데려다줘. 직접 말할게.”


스콜은 자신에게 주도권이 넘어왔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이 공적을 그리핀이 아닌 자신이 가져가야 한다고, 서서히 승리감에 취했을 때였다.


콰직!

그녀의 팔 한쪽이 무언가에 밟혔다.

엄청난 고통과 함께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팔을 잡고 울부짖었다.


“끄아악! 이게 무슨 짓이야! 내가 없으면 안 된다니까!”

“멍청함이 끝을 모르는군. 넌 내가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을 거라 생각한 거냐.”


투명화되어 있어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핀은 이미 훨씬 전부터 스콜이 하는 짓을 보고 있었다.


“정보를 캐낸 건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니 죽이지는 않고 두 팔만 부숴주지.”

“아아아악!”


그녀의 반대쪽 팔도 그대로 밟혀 부서졌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녀는 이제는 모든 걸 포기한 듯이 웃기 시작했다.


“두, 두고 봐···. 어떻게든 널 죽여버릴 거니까···.”


그리핀은 그녀의 말은 신경도 쓰지 않고 아래로 2층으로 내려가 부하들에게 스콜의 처리를 시켰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라고 했지?”

“네···. 저는 모스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아까 전부터 나는 여기에 앉아있었다.

그리핀은 날 사무실에 앉혀놓고 스콜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돌아왔다.

모스에 들어간다면, 이 사람에게 붙는다면 더 많은 정보를 캘 수 있을 것 같아서 내린 판단이었다.


“이렇게까지 판을 벌이기 전에 말해줬으면 좋았을 것 같지만··· 파우더에 대한 소문을 퍼트린 놈의 이름도 찾았으니 넘어가도록 하지.”

“아···! 감사합니다.”

“강하진이라는 이름을 들어봤나?”

“아뇨. 전혀··· 못 들어봤습니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강하진 형사의 이름을 알아낸 것일까.

일이 더 위험해진 것 같지만 이미 벌어진 일.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스콜인가··· 그년한테 이곳에 대해 더 들은 얘기는 없나.”

“이 클럽에 대해 말인가요? 모스파우더를 파는 거 외에는··· 다른 건 모르고 있습니다.”

“다행히 그런 정보는 넘기지 않은 모양이군. 넌 당분간 날 따라다녀라.”

“알겠습니다.”


그는 이번 일로 나를 신뢰하게 된 모양이다.

바로 모스에 넣어주려는 것 같지는 않지만, 옆에 두고 더 지켜보려는 것 같다.


소동이 좀 정리되고, 그리핀은 날 돌려보냈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본인을 따라다니며 일을 도우라고 했다.


클럽에서 최대한 벗어났다고 판단했을 때, 나는 곧바로 강하진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됐습니까, 재윤 씨.”

“그, 그게···. 간부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신뢰를 얻은 것 같아요. 그런데 한 가지 위험한 일이 생겼어요.”

“무슨 일입니까.”

“저쪽에서 형사님 이름을 알아냈어요.”

“···결국 그렇게 됐습니까. 만약 제가 잡히면 재윤 씨까지도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군요.”


찾아보다가 오늘 클럽 지하에서 있었던 일에 강하진 형사가 얽혀 있는 것도 알아내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됐다.


“솔직히 우리의 적이 어디에 숨어있어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 형사라는 직업도 버릴 때가 왔군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제 정체도 드러난 이상, 어디에 있어도 위험합니다. 그렇다면 알게 모르게 죽기 전에, 이 일에 전념할까 합니다.”


강 형사는 자신이 가진 힘과 인맥을 이용해서 완전히 딸을 찾는 데에 집중할 것이라 했다.


“저에 대해 알게된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 의심을 살 수도 있습니다. 물론 클럽에 잠입해 있었기에 스스로 알아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


다음 날 저녁.

나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클럽으로 향했다.

이번엔 가드들도 내 얼굴을 알고 바로 길을 열어줬다.

오늘은 지하가 아닌 지상으로 계단을 올랐다.


이 층엔 독립된 그리핀의 사무실이 있고, 그 앞에 몇 개의 책상이 있었다.

앉아있던 사람 중 한 명이 일어나 날 맞이했다.


“서치··· 님이었죠? 반갑습니다.”

“간부님한테 들었습니다. 오늘부터 여러 가지 일을 알려줄게요. 아마 오래 있지는 않겠지만, 이곳에 대해서는 알아두는 게 좋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서치는 처음에 내가 왔을 때, 내가 초능력자인 걸 판별한 능력자다.

그는 자신들과 거래하는 초능력자들의 명부를 관리한다.

실질적으로 여기서 모스파우더의 밀매를 운영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여러 가지 파브르 클럽의 비밀에 대해 알려줬다.

이곳은 단순히 모스파우더를 판매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원료를 공급해 와서 가공하는 곳 중 하나라고 했다.


“여기 말고 몇 곳이나 더 있는 건가요?”

“어딘지는 말 못 하는데, 두 군데 더 있어요. 이게 우리 조직의 주요 수입원이라 점점 넓혀가는 중이지요.”


원료라고 하면, 약에서 매번 발견되는 강하진 형사의 딸, 그녀의 피가 아닐까 했다.

그걸 가져오는 곳을 알아내야 한다.


“그 원료는 아주 안전한 곳에서 가져오겠네요.”

“그쵸. 보스가 아주 아끼는 거라서, 어디 있는지 아는 것도 보스랑 간부 몇 명밖에 안 될 거예요. 하나 아는 건, 목요일마다 받아온다는 것뿐.”


접근하기 쉽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그나마 그리핀이라는 사람도 모스의 간부 중 한 명이기에, 그 정보를 알고 있을 가능성은 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3층으로 이동했다.

지금까지는 지하 2층까지만 가봐서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지하 3층은 분위기가 전혀 딴판인 공장이었다.

바로 위에서 큰 음악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뛰어놀고 있을 텐데, 아무런 소리가 들어오지 않았다.

들려오는 건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전부였다.


“오셨습니까. 공장 내 이상 없습니다. 더 둘러보고 가시겠습니까.”

“아냐. 금방 갈게.”


이미 자동화된 공정으로 모스파우더를 생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중에 팔린 양이 얼마나 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서치는 전화를 하나 받고는 바로 나와 함께 이 층으로 올라왔다.


“그리핀 님이 부르세요. 뭔가 시킬 게 있나 보네요. 대충 소개할 건 다 했으니, 다음에 기회 되면 또 보자구요.”

“네. 감사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너무나 평범하고 친절한 사람이다.

도대체 왜 저런 이상한 조직에 들어가서 일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난 그의 지시에 따라 그리핀이 있는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다.


“얘기는 잘 들었나.”

“네. 잘 들었습니다.”

“어제 얘기한 무능력자 놈이 그새 어딘가로 숨었더군. 이 사실을 알고 있던 건 너와 나. 둘밖에 없었는데···. 어떻게 된 건지 알겠나?”

“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정말 어제 그 이름을 처음 들었어요.”


순간 움찔하긴 했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모르는 척을 했다.

사무실 안은 몇 초 동안 싸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하하. 장난이야. 그렇게 얼어있지 말아. 여기 이거 보이나? 책상 밑에 도청기가 붙어있더군.”

“그, 그랬군요! 하하···. 도청기가 있을 줄은 몰랐네요.”

“청소하는 놈이 튀어서 급하게 새로 받았는데, 그놈 짓인 것 같더군. 영상을 보니까 그놈의 얼굴이야. 어느새 우리 클럽에도 잠입해 있었던 거지.”

“무섭네요···.”

“무능력자 주제에, 그래도 형사라고 재주는 있군. 테스트도 할 겸, 너에게 줄 임무가 생겼다.”


그리핀은 나에게 주소 하나를 넘겼다.

임무는 어렵지 않았다.

찾아가서 살고 있는 사람의 인상착의를 확인하고 오라는 것이었다.


“이게 뭐길래···. 누가 살길래 보고 오라는 거지?”


의미를 알 수 없어서 오히려 찝찝했다.

가는 길에 누군가 날 감시하고 있지는 않을까, 주위를 둘러보고 나는 강하진 형사에게 문자를 보냈다.


[클럽 지하에서 모스파우더 제조 공장 확인. 목요일마다 원료를 받아온다고 함. 어디에서 받아오는지는 모름.]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평범한 아파트였고,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누구세요?”


인터폰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아랫집 사람인데요. 소음 문제 때문에 찾아왔어요.”


이 늦은 시간에 찾아와 처음 보는 사람을 불러낼 방법은 이것 외에는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집주인은 그럴 리가 없다며 당황스러워하면서 문을 열었다.


“쇼파에서 티비만 보고 있었는데··· 소음이 컸나요?”

“어··· 잠시만요. 아, 여기가 아니라 옆집이었네요. 죄송합니다.”

“아, 그쵸?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다행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안에 있던 건 삼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전혀 이상해 보이는 부분도 없고, 굳이 확인만 해보라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는 다시 클럽으로 돌아가 그리핀에게 보고했다.


“흠. 인상착의는 일치하는 군.”

“그런가요?”

“그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듯이 보이는군. 알고 싶나?”

“솔직히 궁금하긴 합니다. 별다른 의미가 없는 임무였던 것 같아서요.”

“강하진이라는 놈의 동생이야. 경고의 의미로 한번 보낸 거지. 알아서 오지 않으면 처리하겠다는 경고로.”


역시나 끔찍한 짓을 하는 놈들이다.

그리고 그만큼 정보력이나 힘이 엄청난 것 같다.

이렇게 단신으로 파고들어도 괜찮은 건지 슬슬 무서워졌다.

내가 대단한 초능력이라도 가졌으면 좋았을 텐데.



오늘 하루도 이렇게 끝이 났다.

새벽 다섯 시. 해도 밝아오는 시간이 되어서야 집으로 가는 중이다.


꺼두었던 핸드폰을 켜보니 강하진 형사에게 방금 전까지 몇 통의 전화가 와있었다.


“여보세요?”

“이제 받으셨군요. 오늘 어떻게 된 겁니까? 동생 집에 누군가 찾아왔다고 하던데요.”

“경고라고 하더라고요···.”

“역시 뼛속까지 끔찍한 놈들이군요. 숨어 있는다고 절 포기하진 않겠습니다. 얼추 정보도 다 모였으니, 얼른 계획을 실행해야겠습니다.”

“저도 열심히 해볼게요.”


짧은 연락을 끝냈다.

강하진 형사는 일주일 정도 뒤에 계획을 실행할 것이라고 했다.

그때까지 나도 모스의 간부 옆에서 여러 정보를 더 캐내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요즘 하루하루가 아주 수명을 갉아먹는 것 같네.”


삶에 의욕이 생긴 건 좋았지만, 이렇게 힘든 삶을 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끝을 봐야 한다.


***


일주일이 더 흘렀다.

아쉽게도 이 일주일 동안은 별다른 일이 없었다.

대부분을 2층 사무실에 앉아서 멍하니 보냈다.

그리핀도 날 잊은 건지 더 이상 임무를 시키지 않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강하진 형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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