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군부에 잠입했는데요? (2)
군부에 들어온 지 3일.
내 방은 책으로 가득 차서 제대로 누울 공간조차 없었다.
“대장! 대장 책 더 가져다줘요!”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대장은 익숙한 듯이 책을 던졌다.
“아 대장! 잠깐! 저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해요?”
“후⋯ 조만간 네놈에게 임무를 줄 거야. 그때까지 잠자코 있어. 윗분들은 무슨 생각인지⋯ 실험체로 써도 모자란 놈을⋯”
“대장 나름 저 대장 직속 부하인데 그렇게 대하면 서운해요.”
“난 너를 내 부하로 생각한 적이 없어. 그니까 그딴 소리는 하지 마라.”
“후⋯ 뭐 그래요. 대장, 방으로 책이 꽉 차서 저 누울 곳도 없어요. 더 넓은 곳으로 방 바꿔주면 안 될까요?”
대장은 방을 쓱 둘러보더니 조금 심각하다는 걸 느꼈다.
“방을 바꾸는 건 안돼.”
“아 왜요! 아! 그럼 이렇게 해요. 이 책들 가져오는 곳에 저 있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저 거기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책만 읽을게요!”
“흠⋯ 매번 가져다주는 것도 귀찮고⋯그게 더 편할 수도? 그분이라면 너를 통제할 수도 있을 거고. 한번 이야기는 해 보지. 아니 지금 따라와라”
“아 잠깐! 어차피 제 방에 있는 거 다 거기로 다시 옮겨야 하잖아요. 제가 좀 들고 갈게요.”
나는 가장 처음에 방에 들고 왔던 수속성 관련된 책들 뭉치를 집었다. 나는 이 책들을 옮기기 편하게 미리 준비해 두었었다.
칼리스토 대장이 나를 데려간 곳은 고풍스러운 느낌이 나는 서고였다. 지하 1층 복도 끝에 있던 이 장소에는 어떤 장발의 검은 머리 여성이 앉아있었다. 외모로만 보면 헤일리와 같은, 혹은 나보다 한두 살 어리게 보이는 사람이었다.
칼리스토 대장은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사람에게 고개 숙이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레플리 대장님.”
“뭐 또 책 가지러 온 거예요?”
“아닙니다. 이번에는 부탁을 하나 드리러 온 겁니다. 이 많은 책들을 읽었던 사람이 바로 이번에 잡아온 이 루크라는 놈입니다. 이놈이 대장님 서고에서 책을 읽고 싶다고 하십니다.”
“맞아요. 대장님. 제가 부탁드린 거예요. 매번 가져다주는 것도 귀찮을 것 같아서요.”
레플리라는 사람은 턱을 괴고 나를 보더니 질문을 던졌다.
“이 책 쓴 용사 정말 대단하지 않아? 이 용사의 주 마법속성이 뭐였게?”
이 사람은 내가 책을 진짜 읽었는지 떠보는 듯했다. 실수했다. 기억수정에 책을 담는 것에 중점을 두었기에 책의 내용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건 듀크 용사할배가 얼음마법을 썼다는 것이었다.
“얼음 아닌가요? 그것도 무영창으로.”
“하하 맞아! 무영창 정말 대단하지 않아? 나도 얼음마법이 주 속성이라 책에 적힌 대로 시도해 봤는데 안되더라고. 어떻게 영창 없이 생각만으로 술식을 터뜨리지? 그것도 원하는 방향으로⋯ 이 정도 해야지 용사 하는구나 싶더라고”
칼리스토는 나를 보며 만족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좋아 합격이야. 저기 구석에 가서 조용히 책을 읽어도 좋아. 밤에 방에서 읽고 싶으면 몇 권 빌려가.”
“감사합니다! 그 방에 있던 책들을 다 옮겨둘게요.”
칼리스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우리가 옮겨줄게 너는 여기 있어라.”
칼리스토는 기쁜 표정으로 방을 나갔다. 아무래도 귀찮은 일 하나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칼리스토가 나가자 저 레플리라는 여성 대장과 나만이 이 장소에 남았다.
나는 책장에서 게이트 관련된 책을 몇 권 빼서 구석에 앉아서 책을 기억수정에 기록하려고 했다.
그러나 시작하기 적전에 여성 대장이 나를 불렀다.
“얘 너, 엄청 강하다매? 막 신기한 마법도 쓰고.”
“에엥? 그거 헛소문이에요.”
“아닌데~ 보고서 보면 너 지금 당장 나 죽이고 탈출할 수도 있겠는데? 해볼래?”
“예?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하세요! 저 벌레 한 마리도 못 죽이는 놈이에요. 아이구 무서워라!”
“거짓말. 여기 3급 마물을 혼자서 55마리나 죽였다고 쓰여 있는데?”
나는 당황했다. 이 군부의 정보력을 너무 얕본 모양이었다.
“하하⋯ 아 그게 또 그렇게 과장됐나? 그거 제 옆에 단장이 항상 있었는데 다 그 사람 작품이에요.”
“단장? 북부 변방 방위군이면⋯ 헤라 브뤼너?”
“네 맞아요. 그 사람이 막 부와왁 하면서 손에서 불 막 화아악 뿜어내더니 픽픽 쓰러지던데요?”
“풉⋯ 그거 알아? 나 헤라랑 싸운 거?”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이 단장이 말했던 단장의 과거 가장 친했던 친구인 듯했다.
“아뇨? 왜 싸웠어요?”
“헤라가 아저씨같이 딱딱한 소리를 하길래. 걔 방법이 틀렸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음 따라와 볼래?”
나는 보려던 책을 덮고 여성 대장을 따라갔다.
따라간 곳에는 큰 유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는 사람 한 명이 서 있었다.
“뭐⋯뭐예요?”
“뭐긴. 실험이지. 우리 실험하고 있다는 거 못 들었어?”
갑자기 큰 문이 열리면서 마물이 나타났다. 내가 단장과 봤던 마물과는 크기부터가 달랐다.
“2급 마물 알마야. 껍질이 웬만한 마법을 다 튕겨내 버리지.”
마법사는 마물에게 수십 개의 마법을 시전 했지만 어떤 피해도 입히지 못하고 알마에게 너무 쉽게 밟혀 죽였다.
“흠⋯ 실험 끝!”
이건 실험이 아니었다. 단순한 살인에 불과했다.
“아⋯ 이게 대체⋯”
“왜? 내가 살인자 같아?”
“이건 실험이 아니잖아요⋯”
“실험 맞아. 각성이라는 걸 알게 되어서 각성자를 찾고 있었거든. 극한의 환경에 처하게 되면 각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
“각성은..!”
각성에 대해 말하면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알아. 용사의 책을 보다 알았어. 각성은 마나를 주입해서 하는 거라고. 그래서 이게 마지막 실험이었어.”
“당신은⋯ 제정신이 아니야.”
“알아. 제정신 아닌 거 나도 알아. 그래도 이제 이런 짓은 안 해. 찾아버렸거든 각성자.”
여성 대장이 나를 보면서 웃으면서 각성자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소름이 돋았다.
벌써 나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너구나⋯ 너가 나를 잡으려 했던 주요 인물이구나.”
“맞아. 근데 네가 우리한테 협조하기로 했다고 들어서 실험은 못해. 윗분들이 하지 말래. 근데 대장한테 말이 짧다?”
“그래서 나를 뭐 어떻게 할 생각인데.”
“뭐 실험하기는 아까우니까 군부는 섬 밖으로 보내려고 생각하고 있던데? 저기 헤라까지 포함해서. 아니, 쿠데타 가담자 모두.”
중앙 보위부는 쿠데타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나는 이 점을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쿠데타?”
“그래 뭐 우리가 왕을 꼭두각시로 생각하고 사람들 막 납치한다고 불만이 많다매?”
“몰라. 나는 상세한 내용은 몰라.”
“뭐 대충 그렇데. 그래서 힘 좀 깎으려고 부족토벌도 보내고 그랬어. 근데 헤라는 쿠데타에 리스트에 없던데 불쌍하게 중앙 군부 눈 밖에 나버려서 에휴⋯ 끝까지 고지식하네. 어쨌든 너를 필두로 다 나가게 될 거야.”
“하 억울하네⋯ 나 뭐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나는 왜 마물이 가득한 섬 밖으로 내보내는 건데”
“군부에서 너의 능력은 위험하다고 판단했으니까.”
“내가 섬 밖으로 나가기 싫다면?”
“우리 중앙 군부 전체랑 싸우게 되겠지? 네가 아무리 각성자라도 우리 전체를 상대하기는 벅찰걸? 그리고 너 사람 못 죽이잖아.”
“뭐?”
“내가 사람들 많이 죽여봐서 알거든. 너 보고서 봤는데 이상하더라고. 죽여도 싼 도적놈들도 살려두고 병사들도 살려두고. 참 신기해? 그지? 뭐 아니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날 죽여봐. 쉽잖아?”
쉽기는 개뿔 나는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사람도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군부는 내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흠⋯ 우리도 피해를 입고 싶지는 않거든. 서로서로 좋게 가자는 거지. 너 능력이면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여기 탈출할 수 있잖아? 책 보려고 여기 남아있는 거지. 아마 네가 탈출한다고 해도 아무도 목숨 걸고 너를 막지는 않을 거야. 그때 책 들고 유유자적 나갔던 것처럼”
“크윽⋯ 너 다 알고 있었구나.”
“그 책들 열심히 읽어둬. 섬 밖에서 마물 한 마리라도 더 죽여줘야지. 근데 한 가지만 기억해 줘. 내가 아무리 미친년이고 그래도 다 사람들을 위한 일들이라니까?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몇몇 사람들이 희생해 줘야지. 책 읽고 책장에만 잘 넣어줘~”
레플리 대장은 유유자적 실험실을 떠났다.
단장이 저 사람과 왜 싸웠는지 어느 정도 납득이 되었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에이 모르겠다. 믿어보자. 단장을.”
나는 책을 들고 레플리 대장이 앉아있던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
헤라 브뤼너는 루크의 말대로 시계탑에 있는 노인을 찾아갔다. 계단이 많아 오늘 운동은 충분할 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제3 변방 방위군 단장 헤라 브뤼너입니다. 계십니까?”
잠시 기다리니 어떤 노인이 문을 열었다.
“흐음. 이렇게 빨리 잡으러 온 건가?”
“네? 아닙니다. 루크가 자신의 위치를 용사님께서 알고 계실 거라고 해서 온 겁니다.”
“루크가? 들어오게.”
나는 노인에게 루크가 책을 찾으러 보위부 건물에 다시 들어갔다는 걸 말해주었다.
“그놈. 너무 위험하게 다니는 것 아닌가?”
“후⋯ 원래 그런 성격입니다. 어쨌든 루크는 어디에 있나요?”
“내가 그걸 어찌 알겠나. 흠⋯ 설마?”
노인은 어떤 접시를 가져왔다.
“이건 최근 자네가 만진 물건들의 마나흔적들을 보여주지. 한번 양손으로 쥐어보겠나?”
물이 담긴 접시를 헤라가 양손으로 쥐자 빛이 나면서 위치가 표시되었다.
“신기하군요.”
“흠 자네 물건 중 하나가 중앙 보위부에 있구먼.”
헤라는 루크가 왜 굳이 책을 여관까지 들고 와서 자신에게 읽게 했는지 이해가 갔다.
아마 그 책의 위치가 지금 루크가 있는 곳의 위치일 것이다.
“참⋯ 멍청해 보이면서도 똑똑한 놈이라니까요.”
“하하 그런 것 같구나. 그 접시 가져가겠나? 빌려주마.”
“감사합니다.”
헤라 브뤼너는 접시를 챙겨 들고 시계탑을 나왔다.
헤라는 루크가 추천해 준 꼬치구이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아무리 자신이라고 해도 중앙 보위부 건물에 단신으로 들어가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내일은 교관님을 뵈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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