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대영제국에 괴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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낑깡깽
그림/삽화
매일 저녁 8시
작품등록일 :
2024.07.2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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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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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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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효과

DUMMY

정식(定食). 정해진 고정 메뉴로 구성된 식사를 의미하는 말.


이 단어는 원래 일본어로, 1940년대 한국 사회가 급격히 근대화하고 도시화하면서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러면서 오래 전 삼국 시대부터 이어 온 반찬 문화와 결합해, 밥과 다양한 반찬, 국, 메인 요리(주로 고기나 생선)를 함께 제공하는 한국식 상차림을 의미하는 말로 변화한 것.


그렇다면 일본어 '정식'은 도대체 어디서 영향을 받아 생겨난 단어일까?


바로 서양식 코스 요리. 메이지 유신 당시만 해도 일본에는 메뉴를 '고정'해서 판매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서양 문물이 전파되면서 이러한 개념이 함께 도입되었고, 일본의 일즙삼채(*一汁三菜, 국 1개 반찬 3개)라는 전통 반찬 문화와 융합되면서 정식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서양인들은 모두 코스 요리만 먹을까? 동양처럼 여러 음식을 한 번에 테이블에 놓고 함께 먹는 문화는 없는 걸까?


사실 코스식 구성은 르네상스 이후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귀족 문화에서 시작되었다. 정교한 순서에 따라 호화롭고 격식 있는 고급 음식을 즐기겠다는 발상, 즉 귀족 문화라는 말. 그럼 서민은?


그건 바로, 패밀리 스타일(Family Style).


서양의 오랜 식습관은 여러 요리를 한 번에 테이블에 놓고, 각자 원하는 음식을 덜어 먹는 방식이다. 사실 이 쪽이 오히려 전통적인 서양 가정식에 가깝다.


그리고 패밀리 스타일이 나중에 미국으로 이주한 서민계층 이민자들 사이에서도 일반적인 식습관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준비한 코스 요리를 이렇게 한 번에 내놓아도, 이 사람들에게는 전혀 어색할 게 없다는 말씀!


조리법도, 맛도, 냄새도, 식감도 전혀 다른 요리들. 하나씩 내놓고 각개격파 당할 바엔, 패밀리 스타일로 모두 합쳐 내놓는 게 맞다. 그래야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며 전체적인 밸런스를 잡아 주니까!


나는 에디스 아가씨의 도움을 받아 월도프 샐러드, 두부 스테이크, 두부 라자냐, 두부 버섯 탕수, 그리고 레몬 파스타를 모두 모아 중앙 홀로 한꺼번에 서빙했다.


"으음···?"

"이, 이 요리들은 도대체 뭔가?!"


[니콜라 테슬라: 이 냄새는 뭐지?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설마···? / 감정: 불안 / 만족도: -]

[토머스 엘바 에디슨: 이것이 바로 세계를 지배하는 영국의 요리인가! 놀랍군! / 감정: 경악 / 만족도: - ]


굳이 상태창을 보지 않아도 안다. 이 반응은 이미 먹혔다! 심지어 크룩스 경까지 눈을 부릅뜨고 날 주시했다.


"쟝 폴 뒤랑 군! 이 요리들, 나조차도 전부 처음 보는 것들인데,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나?"


굳이 설명까지 해야 하나? 사실 크룩스 경의 이 요청은 손님으로서도 상당히 이례적이다.


1901년, 이 시기의 요리는 단순히 오감을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현대처럼 요리에 스토리와 철학을 담아 즐긴다는 개념이 거의 없었다는 거다.


현대의 파인 다이닝에서는 셰프가 요리의 배경과 영감을 친절하게 설명하며 식사를 하나의 종합적인 경험으로 승화시키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그런 문화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누벨 퀴진(*Nouvelle Cuisine, 프레젠테이션 중심의 요리 운동), 미슐랭 가이드(*Guide Michelin, 레스토랑 평가 시스템)조차 등장하기 전의 시대. 즉, 셰프가 자신의 요리를 설명해주는 관습이 전혀 없었다는 말.


그러니까, 지금 유럽에서는 아무리 손님이라도 주는 대로 퍼먹으면 그만이라는 얘기. 손님은 왕? 그런 개념은 아직 멀었지! 저번에 공작님 소동 때 이런저런 설명을 곁들인 것도, 사실 그저 뭐라도 둘러대려다가 우연히 나온 발언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이 요리들에 정성껏 스토리텔링을 담아냈다. 작품에 의도가 깃들었단 말이다. 충격을 위해 아주 약간만 맛보여 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입술에 침을 잔뜩 발랐다. 이제부터 입 털 시간이다. 그리고 그건 내 장기였다.


"혹시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이 과학적 영감을 어떻게 얻었는지 아십니까?"

"피타고라스? 플라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 말인가?"

"네, 그분들 맞습니다. 혹시 알고 계신가요?"

"으음··· 글쎄, 그들이 영감을 어떻게 얻었지?"

"바로 채식입니다. 당시 철학자들은 고기를 섭취하면 동물의 영혼이 깨끗한 사고를 방해한다고 믿었다네요. 그래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반드시 채식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 말이 있었나? 처음 듣는군."


그야 당연히 처음 듣겠지. 전부 뻥이니까. 인터넷도, SNS도, 챗GPT도 없는 시대. 이 자리에서 내 혼신의 구라를 검증할 방법은 없었다. 나는 이럴 때마다 진심을 담아 연기하는 편이니까.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내 발언의 사실 여부를 따지는 게 아니다. 뻥으로 인해 내 요리에 일종의 스토리가 생겼다는 것. 바로 이렇게.


"아무튼 그래서 저는 세 분 과학자분들께 어떻게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채식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혹시 연구가 막히신 적 있지 않으셨습니까? 새로운 영감이 필요하신가요? 그렇다면 채식으로 맑은 영혼을 되찾아 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런 마음으로 요리를 준비했으니, 꼭 한번 즐겨보시길 바랍니다."


핵심은 바로 이거다. 내 '정성'을 보여 주는 것,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가 '채식요리'를 만든 이유를 설명하는 것.


물론, 상태창을 통해 테슬라 씨가 채식주의자라는 걸 이미 알고, 그에 맞춰 재료와 컨셉을 고려했다는 사실은 말할 수 없지. 모로 가든 맛만 좋으면 그만 아니겠어?


이렇게 뻥을 치자, 일동이 모두 경악했다. 특히 에디슨 씨의 반응이 가장 재미있었다.


"자, 잠깐···! 그럼 이게 전부···?"

"예, 전부 채소로 만든 요리입니다. 전부요. 육류는 하나도 없습니다."

"말도 안돼! 이건 분명 고기다! 고기의 냄새가 나잖아!"


바로 이런 반응을 기대했던 거다! 사실 이 코스의 묘미는 누가 봐도 메인 요리가 고기 요리처럼 보인다는 데 있다. 고기를 다루는 대표적인 조리법인 굽기, 베이킹, 튀김을 활용하고, 소스까지 고기 요리에서 흔히 쓰는 걸로 범벅했으니까.


하물며 지금은 채식이란 샐러드에 마요네즈 뿌리고 호밀빵이나 말린 과일 정도 먹는 게 전부인 시대! 이런 게 채식요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사람들은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 현실이 어긋날 때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그 충격의 갭은 똑똑한 사람일수록 더 크다!


"믿을 수 없다! 실례지만, 먼저 한 입 맛을 보지!"


에디슨 씨는 잽싸게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들더니, 두부 스테이크를 썰어 바로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곧이어 나온 반응은···


"흐으으음!! 이 맛은! 말도 안 돼! 육즙이 이렇게 풍부할 수가!"


【 요리 포인트를 10 획득했습니다. 】


반응 빠르네!


"재료가 도대체 뭔가! 제발 알려 주게! 너무 궁금해서 못 참겠어!"

"여기서 모든 걸 다 알려드리면 재미 없지 않겠어요? 지금 이건 내기 대결이잖아요? 요리에 대해선 나중에 천천히 설명드리죠. 일단 테슬라 씨도 한 번 드셔 보세요. 어서요!"


나는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진 테슬라 씨를 향해 손짓했다. 두부 스테이크와 두부 버섯 탕수에 푹 빠져 허겁지겁 먹어대는 에디슨 씨와 달리, 테슬라 씨는 포크와 나이프를 쥔 손을 차마 요리에 가져가지 못하고 있었다.


"테슬라 군, 갑자기 식욕이 사라졌나? 왜 그러고 있는 건가? 쟝 군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일세. 그러고 가만히 있는 건 실례가 아닌가 싶군."


역시 크룩스 경, 영국 제일의 과학자답게 눈치가 빠르다. 테슬라 씨의 이상한 태도를 바로 알아차렸다.


"후우, 알겠습니다. 쟝 폴 뒤랑,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내가 채식주의자라는 걸 알고 있었나? 어디서 들었나?"

"네? 채식주의자셨나요? 처음 듣는 소리입니다만, 어디 잡지에서 인터뷰라도 하셨나요?"

"물론 그런 적은 없지."


나한테 떠봐야 소용없다. 구라칠 땐 진심을 담는 편이라서.


테슬라 씨는 고개를 돌려 크룩스 경을 바라보았다.


"크룩스 경, 혹시 경이 말한 건가요?"

"나? 아닐세! 나는 자네와 함께 계속 있었지 않나! 내기도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거고! 자네도 아까 커피 하우스에서 쟝 군이 얼마나 놀랐는지 봤잖나!"

"그건 그렇지요. 후우."


아무래도 이 크로아티아산 홈즈 씨, 뭔가 눈치챈 모양인데? 그래서 뭐 어쩔 건데? 증거 있어? 영장 있어?


그런데, 예상치 못한 반응이 테슬라 씨에게서 튀어나왔다.


"제가 졌습니다."

"뭐라고? 그렇게 바로? 한 입도 안 먹고?"

"예, 냄새만 맡아도 군침이 도는군요. 그리고 에디슨 씨가 저렇게 말도 못 하고 식사에 집중하는 모습 좀 보십시오. 제가 에디슨 씨와 십 년을 넘게 알아왔지만, 저런 모습은 처음입니다."


테슬라 씨는 포크로 에디슨 씨를 가리켰다. 그는 짧은 시간 동안 거의 두부 버섯 탕수를 혼자 다 해치울 기세로 먹고 있었다.


"쩝쩝, 지금 내기가 뭐가 중요하나? 나는 이미 포기했다네! DC 전류 따위 이제 신경도 안 써! 이런 훌륭한 요리를 내 생애 처음 맛보는군! 달고! 시고! 맛있다! 이게 채식이라면 나도 테슬라 군 자네처럼 평생 채식만 하겠어!"


[ 토머스 엘바 에디슨: 나는 미국에 돌아가 배경음악 사업을 할 테다! 일단 이거부터 다 먹고! / 감정: 황홀 / 만족도: ★★★★★ ]


하지만 테슬라 씨는 계속 인상을 찌푸렸다. 전혀 좋아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이거 분위기가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아무튼, 승복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 입도 먹을 수 없습니다.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아니, 자네···!"

"이 음식을 먹으면, 저는 평범한 채식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 불안합니다. 분명 제 삶이 180도 바뀌겠지요. 그것은 제가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쟝 폴 뒤랑, 내기는 당신이 이겼소. 나중에 크룩스 경을 통해 원하는 도움이 뭔지 알려 주시오."


테슬라 씨는 모자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아니, 그러면 내 포인트는? 이렇게 고생했는데? 두부 소환하는데 얼마나 많은 포인트를 썼는데?


그 순간 테슬라 씨를 붙잡은 건 에디슨 씨도, 크룩스 경도 아니었다.


개입한 건 바로 나와 함께 서빙을 마치고 이 순간을 지켜보던 에디스 양.


"잠깐만요!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요? 쟝 님께서 이 요리에 얼마나 큰 정성을 쏟았는지 아세요?!"

"어, 레이디는 누구십니까?"

"제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쟝 님께서 이 요리를 만들면서 사람들이 채식을 조금이라도 즐거워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는 사실이에요! 맛없는 야채를 맛있게 먹게 하기 위해서요! 저도 채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 요리를 보고 나니 채식이 좋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구요!"

"으음."


허리에 양 손을 올리고 쌍심지를 켠 채 훈계를 시작하는 에디스. 그녀에게 이런 면도 있었나? 기세가 조금 무서운데?


아무튼 그 뒤로 거의 5분 동안 에디스는 테슬라 씨에게 따발총처럼 뼈 때리는 말들을 쏟아냈다. 인간의 이성부터 시작해 철학, 윤리, 도덕, 양심까지 전 범위에 걸친 팩트 폭력들. 철저히 교육받은 귀족가의 아가씨만이 던질 수 있는 말들이었다.


그에 맞서 테슬라 씨는 내가 만든 요리가 너무나도 정확하게 고기 요리의 풍미를 재현했다고 주장하며, 이걸 먹으면 다시는 채식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채식주의 신념에 대한 위협이라니, 역시 괴짜 테슬라 씨다운 반응이었다.


그의 개인사에 대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딘가 채식주의와 관련된 불편한 과거가 있는 듯한 말투.


하지만 그 엄격한 백작가에서도 배우가 되겠다고 가짜 단식 투쟁까지 벌인 에디스 아가씨의 고집을, 채식만 해서 몸에 힘도 없고 빼빼마른 테슬라 씨가 이기기엔 아무래도 무리였던 모양.


게다가 테슬라 씨가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단 하나의 논리.


이런 시도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좋아하게 되면, 채식주의 레시피가 더 풍부해지고, 결과적으로 채식주의의 저변이 확대되어 테슬라 씨에게도 이득이 될 거라는 점.


결국 이성주의자인 테슬라 호는 에디스 발 1톤짜리 어뢰에 격침당해 침몰하고, 두 손 두 발 다 들며 항복 신호를 보냈다.


"알겠소, 알겠소! 일단 맛은 보겠소! 그만! 그만해 주시오!"


결국 자리에 주저앉은 테슬라 씨. 에디슨 씨처럼 두부 스테이크를 잘라 입으로 가져가는데···


우걱우걱!


【 요리 포인트를 10 획득했습니다. 】


"졌다! 진짜로 졌어!! 쟝 폴 뒤랑! 자네는 세계 최고의 요리사야! 이게 어떻게 채식이란 말인가?! 이건 육식이야! 요리의 과학적 혁신이군!"


체념한 테슬라 씨의 승복은 더욱 더 빨랐다.


테슬라 씨도 에디슨 씨처럼 미친 듯이 식사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던 크룩스 경도 한숨을 쉬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어엇? 그건 내가 먼저 찜한 요리일세! 양보하시오!"

"경쟁에서 양보가 어딨습니까? 연세가 있으니 좀 참으시죠!"


테이블 위의 모든 음식이 다 비워지기까지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들의 식탐은 굉장했다!


[니콜라 테슬라: 채식을··· 포기해야 할까? / 감정: 대혼란 / 만족도: ★★★★★ ]


결국 이렇게 결론이 났다.




###




물론 내기도 내 승리로 끝났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원하는 건 이동식 가정용 냉장고라고 두루뭉술하게 설명했다. 사실 냉장고의 정확한 원리는 잘 모른다. 내가 이과 출신도 아니고.


아무튼 두 천재 발명가에게도 가정용 냉장고는 생소한 개념인 듯했다. 이들도 냉장고라고 하면 기존의 냉장창고 정도의 생각밖에 없었던 것.


잠시 머리를 기웃거리며 고민에 빠진 테슬라 씨가 말했다.


"그 분야는 나도 잘 모르겠군. 미국에 돌아가서 관련 자료를 검토해 봐야 알 것 같네. 하지만 뭐, 약속하지. 이미 충분한 대가를 받았으니까."


그는 손 안의 종이를 꽉 쥐었다. 저게 뭐냐고? 레시피.


두부 스테이크, 두부 라자냐, 두부 버섯 탕수의 레시피.


맞다, 나는 테슬라 씨에게 그가 맛본 채식 요리의 레시피를 모두 넘겨주었다. 가장 중요한 재료인 두부는 미국 차이나타운에서 쉽게 구할 수 있을 거라고 귀띔까지 해줬다.


실제로 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지 않을까? 중국인들도 두부 좋아하잖아. 못 구하면··· 뭐 알아서 하겠지. 저렇게 푹 빠졌는데. 미국에서 못 찾으면 조선 다이너스티라도 가서 구해야지 어쩔거야?


레시피를 왜 줬냐고? 결코 테슬라 씨가 요리를 다 먹은 뒤에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표정을 해서 불쌍한 감정이 들어서는 아니었다. 얼마 전 요크 공작님에게서도 봤던 그 표정.


잠깐 기다리라 하고 바로 레시피를 써서 넘겨 주니까 진짜 날아갈 것처럼 좋아하더라. 매사에 계속 불평불만 투성이던 사람이 그렇게나 환해 지는 건 처음 봤다.


에디슨 씨는 그런 테슬라 씨의 어깨를 짚었다.


"크흠, 그런데 자네 이 레시피의 미국 내 상업적 권리를 나에게 넘겨도 괜찮다는 거지? 내가 이걸로 미국에서 채식 레스토랑을 운영해도? 돈을 좀 크게 만져도?"

"몇 번이나 말씀드렸죠. 저는 상관없습니다. 마음껏 쓰세요."

"좋아, 그럼 나도 그 대가로 자네의 연구에 힘을 보태도록 하겠네. 괜찮은 결과가 나오면 바로 전보를 보내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말이야, 만약 쟝 군의 아이디어대로 가정용 냉장고를 만들 수 있다면··· 내 촉이 맞다면 이거 꽤나 큰 돈벌이가 될 것 같아! 테슬라, 자네 생각은 어때? 나랑 다시 한 번 손잡고 회사를 차려보지 않겠나? 이번엔 정말 자네 연구를 성심성의껏 돕겠네!"

"제네럴 일렉트릭이 아닌 새로운 회사··· 말입니까."


짝짝짝.


갑자기 박수를 치는 크룩스 경.


"그렇다면 '에디슨-테슬라 냉장고 유한 회사'라는 이름은 어떤가? 회사를 만든다면 나도 투자자로 참여해도 될까? 부끄럽지만 미국에 한 자산이 좀 있네. 일전에 투자한 유전 회사가 크게 성장했거든! 그 주식을 팔아서 투자하겠네. 그리고 우리의 쟝 군은···."


이번엔 크룩스 경이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사외 이사로 영입하는 건 어떨까? 좋은 아이디어를 준 만큼, 이 사업이 성공하면 충분한 배당금을 주도록 하세나."

"나쁘지 않은데요. 단, 영국에 올 때마다 맛있는 채식 요리를 대접해 준다는 조건 정도는 추가해 주셔야겠죠."

"내 채식 레스토랑이 성공하면, 배당금도 쟝 군 자네에게 주지. 어때?"


뭐야, 갑자기 분위기가 왜 이래? 이 사람들 아까까지는 서로 싸우는 분위기 아니었어? 그런데 왜 갑자기 어깨동무를 하고 친해지는 거야? 내가 또 뭐 건드렸어?


어쨌든 돈 준다니 손해 볼 건 없었다. 조만간 큰 돈이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 나는 고개를 열렬히 끄덕이며 찬성의 뜻을 표했다.


이렇게 해서 반나절 동안 벌어진 냉장고 소동도 마침내 끝을 맺었다. 학술원부터 커피 하우스, 그리고 내 레스토랑까지··· 아오, 정말 힘들다. 이걸로 진짜 끝난 거겠지?




###




크룩스 경, 테슬라 씨, 에디슨 씨, 에디스 아가씨까지 모두 배웅하고 나서야, 나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사무실 의자에 몸을 뉘였다.


하지만 잠을 잘 수는 없었다.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메시지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눈을 찌푸리고 깜빡이는 알림들을 하나씩 열었다.


【 일반 퀘스트: 특별한 음식으로 명사들을 감격시키기 (4/99회차) - 성공 】


【 퀘스트 달성 추가 포인트: 10,000 】


【 퀘스트 달성 추가 보상 : 돌려돌려 랜덤 박스 x2 】


【 메인 퀘스트 오픈 : 특별한 음식으로 역사 개변하기 (0.42%) 】


【 랜덤 박스 확정권 파편 A x1 (1/10) 】


이게 도대체 다 뭐냐고?


아무래도 비밀을 파헤칠 시간이 또 다시 다가온 듯했다.


작가의말

1. 정식이란 단어가 일본식 한자어인데, 사실 이 단어가 들어오기 전에도 한국어에 한국식 한차림을 의미하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바로 '백반'입니다. 그런데 원래 이것도 그냥 흰 쌀밥을 일컫는 단어일 뿐, 당시에는 정식의 개념이 없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정식의 개념이 들어오면서 이 단어의 외연도 '정식 구성'을 포함하도록 확장된 거죠. 그러니까 '제육볶음 정식'과 '제육볶음 백반'은 같은 의미가 맞습니다. 

중국에도 근대에 일본식 정식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단어가 있습니다. '투찬(套餐)'이라는 말인데 정식과 같은 개념이라고 하네요.

2. 니콜라 테슬라는 1884년에 미국으로 이주한 후, 잠시 동안 토머스 에디슨의 회사(에디슨 머신 웍스, 제네럴 일렉트릭의 전신)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나 테슬라는 에디슨과 성격 차이로 갈등을 겪고, 몇 개월 만에 회사를 떠났다고 합니다. 그 이후엔 계속 전류 방식의 의견 차이로 라이벌 관계였죠.

3. 금요일에 소설 제목을 ‘대영제국의 한식요리사'로 변경할 예정입니다! ’20세기'라는 단어만 제거하는 변경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미식이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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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난제 NEW +42 18시간 전 2,974 182 12쪽
57 야망 +21 24.09.15 4,338 208 14쪽
56 발판 +27 24.09.14 4,889 227 13쪽
55 인연 +27 24.09.13 5,366 249 15쪽
54 인생의 전환점 (수정) +36 24.09.12 5,824 255 14쪽
53 악역 +22 24.09.11 5,873 244 15쪽
52 찐사랑 +35 24.09.10 6,287 256 13쪽
51 퀘스트 +19 24.09.09 6,510 267 13쪽
50 그림자 골목 +17 24.09.08 6,721 269 16쪽
49 묘수 +49 24.09.07 6,894 276 13쪽
48 기억의 잔향 +61 24.09.06 7,145 307 14쪽
47 수색 (2) +62 24.09.05 7,184 301 14쪽
46 수색 +33 24.09.04 7,332 287 15쪽
45 왕실 다과회 +15 24.09.03 7,731 296 15쪽
44 불청객 +20 24.09.02 7,723 310 13쪽
43 왕실의 말 +27 24.09.01 8,002 327 15쪽
42 만남 +33 24.08.31 8,276 334 14쪽
41 여행 +23 24.08.30 8,463 334 14쪽
40 뜻밖의 보상 +36 24.08.29 8,617 353 14쪽
39 폭탄 선언 +42 24.08.28 8,621 325 15쪽
38 과거 회상 +28 24.08.27 8,673 320 14쪽
37 유혹 +28 24.08.26 8,741 312 13쪽
36 완벽한 탈출구 +24 24.08.25 8,835 31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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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마지막 한 수 +16 24.08.22 8,987 325 16쪽
32 맛의 미로 +26 24.08.21 9,094 330 14쪽
31 추리 게임 +29 24.08.20 9,042 29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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