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대영제국에 괴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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낑깡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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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저녁 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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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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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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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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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잼

DUMMY

영국 요리는 맛이 없다.


전생에는 나도 그저 농담같은 밈인 줄 알았다.


왜냐면 내가 존경하는 영국의 셰프 고든 렘지도 최고의 요리사잖아. 게다가 영국은 매년 세계적 수준의 셰프들을 배출해왔으니까.


근데 1900년대 영국 런던에서 살고 보니 알겠다. 영국 요리는 정말로 맛이 없는 게 맞다.


단순히 사람들이 요리를 못해서가 아니었다. 아, 물론 그런 부분도 아예 없진 않겠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영국 가정식에는 '정체성'이라고 부를 만한 게 없다는 것.


동아시아의 발효 장류, 프랑스의 마더 소스, 이탈리아의 다채로운 식재료, 독일의 맥주 중심 식문화와 비교해보면, 영국 음식 전체를 관통하는 뚜렷한 요리 철학이 존재하지 않았다.


‘영국은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사실은 식재료의 가짓수가 부족해서 다양한 맛을 내지 못하는 쪽에 더 가깝더라고.


왜 그럴까? 역사적, 사회적 이유도 여러 가지 있겠지만, 나는 가장 큰 원인을 채소류와 향신료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뭐가 자라야 무쳐도 먹고, 구워도 먹고, 삶아도 먹지. 근데 진짜 아무 것도 없더라니까?


해양성 기후, 부족한 일조량, 추운 북해 지역. 한국처럼 다양한 산나물은 절대 자생 불가능한 식생.


시장에 가서 싸게 살 수 있는 채소라곤 추운 곳에서도 잘 자라는 케일, 양배추, 무, 당근, 완두콩 정도가 전부. 그 외의 채소는 전부 수입이라 비쌌고.


영국의 드넓은 평야엔 진짜로 밀이랑 잔디가 전부다. 영국에서 왜 디저트류, 제빵, 목축업이 발달했는지 알겠더라고. 풀만 잘 자라니까 소랑 양들이 그거 뜯어먹고 잘 큰거 아니야.


섬나라니까 일본처럼 해산물을 주로 먹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해산물 요리의 핵심은 비린내를 잡는 건데, 전근대 영국까지만 해도 이 비린내를 제대로 없앨 향신료를 구하기 어려웠다. 결국 튀기거나 베이킹하는 방식으로 겨우 냄새를 줄이는 게 전부. 피쉬 앤 칩스나 정어리 파이가 그래서 나온 게 아닐까 싶었다.


게다가 산업화로 사람들이 전부 대도시로 밀려들고, 고된 노동으로 요리할 시간이 부족하니 전통 레시피의 계승도 점점 끊기고.


그래서 내가 빙의한 1900년대의 영국에는, 솔직히 내 기준에 맛있다고 할 만한 가정식은 하나도 없었다.


여기서 맛있다고 하는 영국 요리란, 결국 상류층의 입맛에 맞춘 디저트류나, 해외에서 가져온 조리법을 바탕으로 한 이국의 요리들, 그러니까 귀족들을 위한 음식뿐이었다.


이러다 보니 영국의 서민들은 자신들만의 진정한 영국 요리, 영국인들이 즐길 수 있고, 유럽 전체가 부러워할 요리 정체성을 만들어 줄 초인을 애타게 기다려 왔는데···


그렇게 그들의 염원을 안고 1902년 런던에 혜성처럼 등장한, 영국인만을 위한 신의 식재료가 있었으니···


온 영국인이 몇 백년을 그토록 기다렸다던, 최고의 국민 식품이라고 찬양한 바로 그 제품!


심지어 영국이 발을 뻗친 캐나다나 호주, 뉴질랜드 등 모든 식민지에 이걸 같이 먹자고 강요까지 한 그것!


그게 뭐냐고?


영국인들의 혐성과 최악의 식문화가 만들어 낸, 사상 최악의 잼!


마마이트(Marmite)!




###




"안 돼! 마마이트는 안 돼! 우웩!"


덜컹, 덜컹.


나는 갑작스러운 흔들림에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거친 도로와 마차 바퀴가 부딪치는 소음이 귓가에 울렸다.


"쟝 군, 갑자기 졸다가 무슨 잠꼬대를 하는 건가? 마마이트가 뭐라고? 그게 대체 뭔가?"


헨리 씨의 목소리가 나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지금 내가 꿈을 꾼 게 맞지?


"앗, 제가 졸았나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나? 굉장히 피곤해 보이는군. 손수건으로 입에 침부터 닦게나."


쓰으읍.


나는 재빨리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이미 늦은 것 같았다.


이상한 꿈이었다. 사람들이 나를 붙잡고 마마이트만 바른 샌드위치를 억지로 처먹이려는 꿈.


도대체 왜 이딴 꿈을 꾼 거지...?


으엑, 입에서 역한 비린내가 나는 것 같다!


"하하! 참 재미있는 친구로군! 편하게 있어! 피곤하면 잠깐 졸 수도 있는 거지! 연구 개발에 몰두하느라 그랬을 거라 믿겠네!"


헨리 씨 옆에는 어색한 표정의 뚱뚱한 털보가 앉아 있었다. 잠깐 멍한 상태가 지난 후에야, 나는 그 남자의 정체를 떠올려 낼 수 있었다.


오늘 헨리 씨의 사무실에서 처음 만난 아저씨. 이름은 '찰스 피튼'. 런던에서 가장 큰 제분소와 제빵공장을 운영하는 젠트리라던데. 회사 이름이 호비스 사였던가? 아무튼, 꽤나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돈 벌 기회라니까 주저 없이 따라나설 만큼.


"크흠."


그리고 내 옆에 앉은 안경 쓴 깡마른 남자. 이쪽은 '에드워드 하딩' 씨. 헨리 씨가 급히 주선해 준 특허 전문 변호사였다.


아침에 헨리 씨 사무실로 쳐들어가 변호사와 투자자를 내놓으라고 하니, 이 사람들을 연결해 주더라?


헨리 씨, 피튼 씨, 하딩 씨, 그리고 나.


이렇게 네 명은 헨리 씨의 마차를 타고 런던 한복판을 달리고 있었다.


어디로 가냐고? 내 발명품 가지러. 아, 도착했군. 조는 사이에 벌써 다 왔네?


푸르르륵, 히히힝!


우리가 도착한 곳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커다란 공방(workshop).


그 공방 앞에는 자켓 없이 베스트만 걸친 둥글둥글한 인상의 젊은 사내가 서 있었다.


발명가, 헨리 로이스 씨. 이 공방의 주인이자 작은 전기회사 사장님. 연구자금 때문에 공방을 부업으로 운영하는 사람이다.


"쟝 폴 뒤랑! 어제 연락했는데 이렇게 빨리 오다니, 마음이 급했나? 그렇다고 기계가 어디 도망가진 않을 텐데."


그는 악수를 나누며 내 귓가에 몰래 속삭였다.


"쟝! 개발 비용이 두 배나 더 들었어! 선금을 더 줘야겠는데."

"으윽."


이건 내 비상금인데.


나는 할 수 없이 요크 공작님에게 받은 금화 주머니를 그의 품에 쓱 밀어 넣었다.


그는 주머니 안의 금화를 잠깐 확인하더니, 액수를 보고 화색이 되어 급히 숨겼다.


아주 수전노 같으니라고.


아무튼, 나는 헨리 로이스 씨와 일행을 서로 소개시켰다.


"쟝 군, 그래서 자네가 만들었다는 그 혁신적인 발명품은 어디 있나?"

"로이스 씨가 안내해 주실 겁니다. 로이스 씨?"

"따라오시죠. 보여드리겠습니다. 솔직히 만들기 꽤 힘들었습니다."


힘들긴 뭐가 힘들어? 도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그려줬건만.


그가 안내한 곳에는 나무와 금속판을 덧대어 만든 꽤 커다란 장치가 있었다.


"이, 이건 아주 흔한 미트 그라인더 아닌가? 이게 자네가 자랑하던 발명품이라고?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피튼 씨, 너무 성급하시군요.


나는 그를 무시하고 바로 로이스 씨에게 물었다.


"로이스 씨, 성능 테스트는 문제 없었죠?"

"수십 번 넘게 시험해 봤지. 커피, 고기, 양파, 마늘, 감자... 그리고 네가 말한 땅콩까지, 전부 잘 갈리더군!"

"그럼 다시 시험해 보시죠. 이번엔 관객도 있으니 더 흥미로울 겁니다."


로이스 씨가 직원을 불러 커다란 자루를 가져오게 했다. 그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야채들이 들어 있었다.


"자네, 이걸로 뭘 할 생각인가···?"

"갈아보려는 거죠."

"갈아? 대체 어떻게?"


헨리 씨도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전원 버튼을 올렸다.


위이이잉! 드르르르륵!


엄청난 소음과 함께, 나와 로이스 씨가 만든 그라인더는 순식간에 내용물을 단번에 갈아버렸다.


"아···."

"보셨나요?"


순간적으로 경악한 피튼 씨. 제분소의 사장님이라면, 이게 어떤 의미인지 바로 알겠지.


로이스 씨와 나는 이 시대에선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바로 전동 그라인더.


처음 식당을 만들며 선풍기 모터로 배기 팬을 제작했던 나는, 그 모터를 또 다른 주방 도구에 적용할 수 없을까 고민했다.


마침 딱 좋은 게 있었다. 그라인더.


1901년 지금까지도, 식재료를 갈아내려면 수동 핸드밀이나 커피 그라인더 같은 걸 들고 한참을 낑낑대며 돌려야 했다. 그나마도 힘이 분산되어 제대로 갈리지도 않았다.


시대가 어느 땐데 전동 그라인더가 없어? 진짜 없더라.


그래서 직접 만들기로 했다. 로이스 씨에게 설계도면을 그려 주고, 시판되던 수동 그라인더를 분해해서 그대로 접합시켜 달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의 첫 실험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제길, 이 시대의 조잡한 선풍기 모터를 만능 도구로 착각한 내 잘못이었다. 발명가도 아니고, 이과생도 아닌 내가 어떻게 알아. 힘이 부족해서 재료를 갈지도 못하고 모터가 멈출 줄은 몰랐다.


그럼 어떻게 했냐고? 뭘 어떻게 해? 시중에 있는 모든 모터를 가져다가 일일이 테스트해봤지. 방법이 없잖아. 시대가 시대라 스펙 시트 같은 건 기대할 수도 없었으니까.


파워 조절이 가능한 현대의 전동 그라인더와 달리, 이 시대의 모터는 출력이 고정되어 있었다. 부족한 건 모터의 회전력.


선풍기용 모터는 날개를 회전시켜 공기를 이동시키기 위해 설계되었으니, 속도는 높아도 토크(힘)는 약했다.


그래서 우리는 토크는 높고, 속도가 낮은 모터를 찾아야 했다. 정밀한 작업용 모터가 필요했다는 거다.


다행히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전기 재봉틀에서 뜯은 모터가 딱 맞더라고. 남은 건 효율이나 구조의 최적화였는데, 그건 나보다 똑똑한 로이스 씨가 전담했다.


이 과정에서 돈이 엄청나게 들어갔다. 내 월급으론 택도 없었고, 결국 특허권을 만들어 팔기로 하면서 로이스 씨에게도 배당을 주는 조건을 걸어 투자자로 끌어들였다.


이 수전노 아저씨가 처음엔 질색하더니, 내 레스토랑에서 치킨 앤 칩스를 먹어보고 나서야 따봉을 날리며 동의하더라고.


"멋져! 정말 대단한 아이디어의 발명품이군! 원하는 사람이 많이 나올지도 모르겠는걸! 하지만··· 이게 우리 제분소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지? 곡물을 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나랑은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데."


피튼 씨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럴 만도 하지. 곡물을 가는 제분과 식재료를 분쇄하는 그라인더는 목적도, 작동 원리도 전혀 다르다. 호환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물론, 그라인더를 만든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게 없으면 이 시대의 기술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식품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았다.


보여주는 게 가장 확실하다.


나는 지금까지 들고 있던 자루를 열고, 그 안에서 볶은 땅콩, 올리브유, 소금, 그리고 꿀을 꺼냈다.


그리고 볶은 땅콩만 그라인더에 넣고 돌려 보았다.


첫 번째 시도, 내용물이 조금 고르지 않다.


두 번째 시도, 상당히 잘 갈려 나간다.


세 번째 시도, 드디어 페이스트 같은 덩어리로 변했다.


"어어···?"


헨리 씨가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냄새가 아주 좋죠?


나는 그 페이스트를 다시 그라인더의 다른 입구에 넣고, 준비해 온 꿀과 올리브유, 설탕을 함께 투입했다.


방금 전 갈아낸 쪽이 미트 그라인더였다면, 이쪽은 커피 그라인더로 개조한 부분이다. 기술의 한계로 모터나 날을 교체해 가며 쓸 수 없었기에, 두 개를 아예 함께 장착해버린 것이다.


드르륵! 드르르륵!


그리고 나온 결과물은··· 갈려나간 땅콩에서 베어나온 기름과 추가로 투입한 내용물들이 섞여 아주 끈적하고 크리미해진 덩어리.


"쟝 군! 자네··· 설마 땅콩으로 잼을 만든 건가?!"

"네, 맞습니다. 그리고 제가 넘길 특허는 기계가 아니라 바로 이 잼의 생산 권리입니다."

"잼! 땅콩 잼이라니! 내 생애 땅콩으로 잼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지금 보셨잖아요. 아직 놀라기엔 이릅니다."


내가 제분소 사장님을 소개해 달라고 한 이유.


사실 이 시대에는 제대로 된 식품 가공업조차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있는 식품업계라고 해봤자, 대형 제빵공장과 제분소가 전부.


그래서 내 특허의 지분을 일부 팔아서, 나 대신 이—


"이름은 '땅콩 버터'라고 부르죠. 버터처럼 생겼으니까요. 흥미 있으십니까?"

"흥미? 물론이지! 냄새가 아주 기막히군! 혹시 빵이 있다면 한 번 발라 먹어봐도 되겠나?"


···땅콩 버터를 제대로 생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눈앞의 이 아저씨뿐이었다. 내가 안 하냐고? 귀찮게 내가 왜 해? 레시피만 주고 숟가락만 얹으면 되지.


아무튼 식품업계의 거물답게 눈치가 빠르네. 맛을 보고 싶다 이거지?


물론 지금 시점에선 미국에서 땅콩 버터 특허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영국까지 넘어오려면 아직도 멀었지. 게다가 처음 만들어진 땅콩 버터는 맛이 형편없어서 그냥 환자용 건강식으로 썼다던데?


하지만 내 시제품은 완벽히 다르다. 내가 만든 건 조잡한 미국의 초기 땅콩 버터가 아니라, 진짜 현대식 땅콩 버터. 한식밖에 만들 줄 모르는 내가 어떻게 땅콩 버터 레시피를 알았냐고?


뭘 어떻게 해. 나한테 이미 해답지가 존재하잖아. 포인트 상점에서 현대 시판용 땅콩 버터 여러 개 소환해서 라벨의 성분표를 보고 역설계했지. 생각보다 복잡한 건 없더라고.


물론 100% 재현은 불가능. 완벽하게 재현하려면 올리브유 대신 경화유를 써야 하는데, 그건 이 시대에 아직 없으니까. 그래도 올리브유를 사용한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 80% 정도는 비슷한 식감이 구현되더라.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자루에서 식빵을 꺼냈다.


이럴 줄 알고 미리 챙겨왔지. 한 번 맛보시라고.


나는 땅콩 버터를 듬뿍 바른 식빵을 따라온 일행 세 명에게 건넸다.


"이··· 이 맛은! 대단하군! 정말 맛있어! 특, 특허권을 사겠네! 당장 투자하겠네!"

"나도 투자하겠다, 쟝 폴 뒤랑! 내게도 지분을 나눠주게!"

"호, 혹시 제 푼돈이라도 필요하시다면!"


[찰스 피튼: 고소해! 부드럽고, 달콤하면서 짭짤하기까지! / 감정: 경악 / 만족도: ★★★★★]

[헨리 커즌: 이 '땅콩 버터'가 런던 요식업을 완전히 뒤흔들지도 몰라! / 감정: 대혼란 / 만족도: ★★★★★]

[에드워드 하딩: 엄청난 기회다! 나도 이 배에 올라타야 해! / 감정: 희열 / 만족도: ★★★★★]


【 요리 포인트를 30 획득했습니다. 】


경악한 건 피튼 씨뿐만이 아니었다. 나와 함께 이 기계를 개발한 로이스 씨조차도,


"쟈, 쟝! 나한테 이런 얘긴 안 해줬잖아? 이 기계로 어떻게 잼을 만든 거지? 그런 가능성은 상상도 못했어! 고기와 감자를 갈아낼 기계라며!"


[헨리 로이스: 쟝 폴 뒤랑! 날 또 속였군! 대단한 녀석이야! / 감정: 흥분 / 만족도: ★★★★★]


【 요리 포인트를 10 획득했습니다. 】


아니··· 그게 지금 그렇게 중요한 일입니까?


사실 중요하긴 하다. 고기와 감자를 갈아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현대 사회에 아주 파괴적인 유행을 낳은 식품을 하나 더 개발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일단 그 아이디어는 나중으로 미루고, 눈앞의 땅콩 버터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직 마마이트가 등장하지 않은 1901년의 영국 사회.


영국인들의 국민 식재료에 대한 오랜 염원과 열망.


빈집털이로 마마이트를 밀어 내고 그 자리를 선점하려면 기회는 지금 뿐이었으니까.


이걸로 미래의 영국 음식이 조금은 맛있어지지 않을까? 흐뭇하구만.


그리고 이 젠트리 아저씨들이 생산한 땅콩 버터에 숟가락만 얹어서 번 돈으로 한식 식재료를 영국에 들여온다면? 퍼펙트하지?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단순하고 어설픈 계획이 영국 사회에 얼마나 큰 파란을 일으킬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제기랄.


작가의말

1. 영국 땅에서 채소류가 빈약하게 된 건 빙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대가 북극에 너무 가깝다 보니 빙하기 때 땅이 싹 다 얼어서 웬만한 채소류는 쓸려나가고 멸종해버린 거죠. 그래서 지금도 영국에서 키우는 채소는 원래 추운 지역에서 잘 자라는 양배추나 당근 같은 일부 채소류밖에 없다고 하네요. 

후추 같은 향신료는 일조량이 풍부한 아열대 이하 지역에서만 자랍니다. 아프리카나 인도, 동남아시아에 향신료 플렌테이션이 있는 이유입니다. 영국은 해양성 기후로 허구한 날 구름이 끼어서 일조량이 부족하니 향신료 같은 게 나올 리가 없습니다. 섬나라라서 주변국가에서 대체 향신료를 수입하기도 힘들었구요. (그리고 아시겠지만 근대 전까지만 해도 무역하기 힘들 정도로 싸워댔잖아요.) 식문화라는 게 주변국이랑 문화를 교류하면서 발전되는 게 큰데, 영국은 이런 기회를 전부 박탈당했기 때문에 식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다는 이론도 있습니다. 솔직히 이런 지리적 배경 때문에 해외무역과 식민지 수탈에 더 목맨 게 아닐까 싶습니다. 

2. 마마이트 맛은 솔직히 설명이 안 됩니다. 그냥 느끼하고 쓰고 엄청 짭니다. 냄새도 역하고요. 춘장에다가 소금 겁나 쳐서 졸인 걸 빵에다 발라먹으면 그나마 조금 비슷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영연방 국가는 이걸 진짜 엄청 좋아한다고 합니다.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데, 워낙 어렸을 때부터 먹어서 익숙한 사람들은 잘 먹는 것 같습니다. 유튜브에 marmite challenge 라고 치면 엄청 많은 영상이 나옵니다··· 전부 경악합니다. 영국 음식이 맛없다는 건 오해다··· 이딴 걸 맛있다고 먹는데 어떻게 신뢰하겠습니까?

3. 주인공이 만든건 엄밀히 따지자면 푸드 프로세서인데, 그냥 그라인더로 퉁 치겠습니다. 어차피 저 시대에 푸드 프로세서의 개념은 없었습니다. 전 화에서 설명한 대로 아주 기초적인 전동 그라인더조차 1905년 이후 상업화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땅콩의 문제인데, 사실 땅콩은 20세기 초만 해도 아메리카에서 엄청나게 생산되서 굉장히 쌌지만, 영국 수입품으로는 여전히 비쌌을 겁니다. 하지만 여기선 일단 소설적 허용으로 설명하지 않고 넘기겠습니다. 몇년 정도 차이의 문제일 뿐 어차피 조만간 땅콩은 싸게 수입되기 시작하니까요. 그리고 올리브유인데, 제가 알아보니까 원래 땅콩 버터를 양산하려면 식물성경화유, 수제작이라면 땅콩기름을 쓰는데요 당시 시점으로는 경화유는 물론 시판용 땅콩기름조차 없었을 거라서 일단 올리브유 레시피로 레드썬입니다! ㅠ (경화유의 최초 상업화는 1911년)

4. 헨리 로이스. 롤스로이스의 창업주. 물론 1901년엔 아직 중소업체 사장님입니다.

5. 땅콩 버터의 역사는 다음화에 설명할게요! 더 쓰다간 후기란이 폭발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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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야망 +21 24.09.15 4,339 20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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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인연 +27 24.09.13 5,368 249 15쪽
54 인생의 전환점 (수정) +36 24.09.12 5,826 255 14쪽
53 악역 +22 24.09.11 5,873 244 15쪽
52 찐사랑 +35 24.09.10 6,287 256 13쪽
51 퀘스트 +19 24.09.09 6,511 26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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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수색 (2) +62 24.09.05 7,187 301 14쪽
46 수색 +33 24.09.04 7,334 287 15쪽
45 왕실 다과회 +15 24.09.03 7,734 296 15쪽
44 불청객 +20 24.09.02 7,724 31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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