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가볍게 막기 (1)
“제 얘기는 여기까지에요.”
차수창이 벌이고 있는 일에 대해서 낱낱이 털어놓은 서소현. 그녀의 큰 눈망울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게 보인다.
“고마워요. 얘기해 줘서. 말하기 힘들었을 텐데.”
서소현을 달래기 위해 말을 꺼낸다.
고마운 게 맞기도 하고.
“아.”
그 말에 서소현이 조금 안정을 찾았다.
“여, 역시 나리 언니가 신뢰하는 친구분이구나 싶어요. 저랑도...친구 해 주실 수 있나요?”
“그래요. 하하하.”
이 말이 다 진심이라면.
A급 헌터가 또 하나 굴러들어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 전에 검증을 하나 거쳐야겠지만.
준비했던 계획을 실행하자.
“소현 씨. 혹시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을까요? 차수창의 계획을 들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요.”
“네에?”
검증을 위해 꼭 필요한 도구를 건넨다.
서소현은 조심스레 내가 내민 물건을 받아들었다.
“이건...뭔가요?”
“비밀입니다. 이걸 가져다가 차수창의 방에 놓고 사용해 주세요. 지금 그 녀석은 한국에 들어와 있다 하니, 한시가 시급합니다.”
서소현은 조심스레 돌을 받아들고 의문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서소현에게 준 물건은 차원문의 돌이라는 아이템.
‘주요 기능은 돌이 있는 곳에 차원문을 설치하는 것. 한 쪽의 돌이 발동하면, 다른 쪽의 돌을 가진 사람은 언제든지 그 쪽으로 넘어갈 수 있다.’
원래는 한 쌍의 돌이 세트다.
한 쪽은 서소현에게. 다른 한 쪽은 내가.
내 계획은 이렇다.
서소현이 돌을 가지고 가서 차수창의 방에 사용하면.
뀽뀽이가 재빠르게 차원문을 타고 차수창의 방에 들어가는 거다.
‘그리고 타락 감지기를 사용해서 놈의 범죄행위를 탐색하는 거지.’
타락 감지기. 말 그대로 타락을 감지하는 물건.
아까 전까지만 해도 서소현을 바라보고 미세한 알림을 흘리기도 했다.
감지기의 내부 기능으로 서소현에겐 반응하지 않도록 설정해 놨지만.
서소현에게 묻어있는 타락을 생각한다면.
차수창이 방 안에 숨겨놓은 것 중에는 타락과 관련된 물품이 있을 확률이 높다.
솔직히 80퍼센트 이상 확신하고 있다.
‘서소현 본인이 말하길, 미국에 온 뒤로는 밖에 거의 나가지 않았다 했으니까.’
심지어는 외부에서 사람이 찾아올 때에도 그냥 방 안에 처박혀 숨어있었다고 했다.
그런 상황이라면 가장 높은 타락 감염 원인은 당연히 가족.
그 중에서도 제일 배팅 성공률이 큰 건 각성자에 빌런 의심 대상인 서수창이겠지.
극히 낮은 확률로 타락과 연관이 없다?
그러면 그냥 깡으로 찾으면 나올 거다.
서소현이 했던 말.
‘차수창은 낯선 사람을 만난 뒤 방에만 계속 있었다.’
그 말대로라면 차수창의 방 안에는 뭔가 있을 게 뻔하니까.
‘만약 여기서 서소현이 차수창 체포에 협력한다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겠지. 차수창의 계획도 알 수 있고.’
위험한 일이지만 탈출 대안도 세워 놨다.
‘이 계획이 가지는 여러 가지 허점도 대부분 고려해 놨어.’
예를 들자면, 가장 큰 변수.
‘서소현이 진짜 차수창과 한 패라는 가정.’
그 부분도 대충 처리해 놨다.
아까 말했던 시스템의 잡다한 기능 중 하나를 사용해 놓음으로써.
‘물건 대여.’
시스템은 공식적으로 무언가를 빌려주는 기능을 지원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상당히 대단하고 유용한 기능으로.
두 가지의 대체 불가능한 장점이 있다.
하나는 먹튀의 배제.
대여 기간을 설정해 두면 그 기간이 지날 시 빌린 물건을 즉시 원 주인에게 돌려보낸다.
다른 하나는 물건 손상에 대한 보상이다.
물건을 빌려간 대상자는 직, 간접적으로 빌린 물건을 손상시킬 수 없으며.
외부의 공격으로 파괴되었을 때에는 탑 재량으로 상응하는 가치의 자원을 강제 징수한다.
‘만약 서소현이 흑심을 품고 있어도 타락 감지기를 빼돌리거나 부술 수 없다는 뜻이지.’
이 기능의 좋은 점은.
서소현이 내 계획을 미리 알아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템 감정, 확인의 규칙.
남의 아이템은 허가받지 않고 살필 수 없다. 일부 예외를 제외한다면.
‘그 예외 중 하나가 감정사고.’
돌이켜 보면.
내 대파가 영약인지 알아챈 걸 보면.
아마 이현준 근처에 있던 딱딱한 얼굴의 남자가 감정사였을 것 같다.
‘이현준이랑 같이 캠핑 오라고 했더니 일 해야 한다고 안 왔었지...’
어쨌든.
‘이 대여 시스템을 이용하면 서소현이 저 돌이 뭔 물건인지 알아낼 수 없어.’
외관만으로 알아내긴 힘들 거다.
다른 돌 아이템이 많으니까.
감정사의 도움을 받기엔 분명 시간이 걸릴 터.
‘그리고 나는 서소현의 자택 도착 시간도 알 수 있다.’
대여 시스템의 규칙 또 하나 더.
‘물건을 빌려준 사람은 그 물건이 어디 있는지 파악할 수 있고.’
결정적으로.
‘물건을 빌린 사람은 빌린 물건에서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질 수 없다.’
‘빌린 물건을 버리는 것’ 역시 물건에 손상을 입히는 것으로 간주하니까.
‘공짜 위치 추적기지.’
돌을 사용하는 데 시간이 걸리거나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땐 그냥 서소현을 믿지 못할 사람 취급하면 끝.’
서소현을 슥 보고 미소를 지어 보인다.
“소현 씨. 미안한 애기지만... 차수창이 혹시 어디서 살고 있는지도 알 수 있을까요?”
“아? 아...”
잠깐 고민하는 모습이 된 서소현.
‘거래, 받아들이려나?’
나 역시 조금은 긴장하고 그녀를 본다.
“좋아요.”
불안하게 흔들리지만 확실한 눈빛.
그 말과 함께 서소현은 돌을 꽉 쥐었다.
‘좋아. 그렇다면. 서소현만 지켜보면 되겠군.’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 * *
서소현이 미국으로 돌아간 뒤.
나는 최경호와 하나리, 이현준을 우리 집으로 불러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보를 공유했다.
바닥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A급 헌터들과 한국 최고 재벌 아들 하나.
누가 보면 누추한 곳에 이런 귀한 분들이 모여 있냐고 할 것 같은 풍경이다.
“그래서. 서소현을 통해 정보를 얻어낼 생각이야.”
“한국 테러라니...”
심각한 얼굴의 둘.
다행히 둘은 내 얘기를 잘 경청해 주었고.
내가 앞으로 할 일 역시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약조했다.
“내가 부르면 나와 줘.”
“응. 휴가 써야겠다.”
얘기를 끝내고 동료들을 돌려보내고.
그 뒤로는 쭉 대여 시스템으로 서소현의 행적을 추적했다.
미국에 도착하고, 본인의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내 동료들. 하나리, 최경호, 이현준의 힘으로 빌린 A급 헌터 전용기를 대여해서 오래 걸리진 않았다.
대여 시스템의 지도에 떠오른 빨간 점.
서소현을 의미하는 빨간 점이 움직이다가 미리 지글 지도로 알아본 서소현의 집에 멈추어 섰다.
‘도착했다.’
침을 꿀꺽 삼키고.
상황을 주시한다.
차원문의 돌이 언제 사용되는지 집중한다.
그렇게 집중하는 순간.
내 집중은 강제로 깨졌다.
‘뭐야?’
무엇인가가 갑작스럽게 내 시야를 가렸기에.
그 무언가를 천천히 살피던 나는.
조심스레 미소지었다.
* * *
캠핑을 잘 마치고, 서소현은 미국으로 향했다.
미국엔 반나절도 안 걸려 도착할 수 있었다.
나리 언니와 새로 사귄 친구, 한성현의 도움으로 A급 헌터 전용기를 대여했으니까.
돌아가는 것도 빨리 갈 예정이다.
이제는 그 곳이 집이니까.
‘후우.’
서소현은 조심스레 미국에서 머물던 차수창의 집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흘끔 누가 왔는지 보다가 다시 매정하게 TV로 눈을 돌려버리는 가족들.
서소현은 그 무심함에 살짝 몸을 떨었다.
‘무섭다.’
아마 집에 돌아온 게 서소현이 아닌 차수창이었다면 이렇게까진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차수창은 가족들을 전부 미국으로 끌고 오긴 했어도, 지금 그들을 전부 먹여살리는 물주니까.
그래도 서소현은 개의치 않았다.
여전히 냉담한 가족들을 보면 심장이 조여드는 것처럼 욱신거리고 손이 덜덜 떨리지만.
이제는 이 곳에서 떠날 거니까.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거니까.’
그렇기에 과거보다 한껏 밝아진 얼굴을 할 수 있다.
‘누군가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만족감은 행복한 삶을 위해선 꼭 충족되어야 할 감정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지금까지는 그 감정을 누릴 수 없던 서소현이지만.
한국에서 새로 만난 그녀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
새롭게 얻은 동료.
그들과 함께라면 없었던 자기효능감도 채울 수 있으리라.
‘한성현 씨. 한성현. 날 배려해서 자기 친구분들을 소개해 주기도 하셨지.’
괜히 눈 높은 나리 언니가 신뢰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돌을 들고 심호흡을 한 채로.
차수창의 방 앞에 선다.
‘이 짓을 하면. 아마도 사촌 오빠랑은 절연이겠지. 어쩌면 외가 전부랑.’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갈등이 된다.
지금까지 누리던 인간관계를 전부 버려야 한다는 뜻이니까.
방문 앞에서 서소현은 잠깐 눈을 감았다.
고민한다.
과연 어떤 선택이 옳을지.
결정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차수창은 한국을 향한 그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면서.
서소현의 입장 따윈 단 하나도 고려하지 않았다.
아무리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만.
사람은 물을 마시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서소현은 방문 문고리를 잡았다.
무슨 물건인지 몰라도 사용은 할 수 있다.
조심스레 돌을 사용하고,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 순간.
서소현에게서 멀리 떨어진 한국의 시골에 있던 한성현.
그의 앞에 명료한 문장 하나가 떠오른다.
[각성자 ‘서소현’의 호감도가 70% 이상입니다!]
그녀의 결심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 * *
내 손에서 반짝이는 차원문의 돌.
다른 한 쌍의 돌이 사용되었단 사실을 알려 주는 이다.
‘서소현. 결심했구나.’
호감도 70 이상.
그 문구를 보며 조용히 미소짓는다.
결단을 내리고 스스로를 갉아먹던 안 좋은 인연을 끊기로 결심했구나.
그 고뇌를 알고 있기에 찬사를 보낸다.
나 역시 회사를 퇴사할 때 수많은 고민을 거듭했으니까.
그 곳에 있으면 괴로울 수밖에 없었지만, 막상 퇴사를 결심하는 건 쉽지 않았다.
거기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금전적인 문제.
무엇보다도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내 발걸음을 떨어지지 못하게 했다.
나아가는 건 쉽지 않지만.
서소현은 나아가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그럼 나도 열심히 해야지.’
뀽뀽이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뀽뀽이에게도 어떤 임무인지 미리 말해 두었다.
차원의 돌을 꽉 쥐고 사용하자 내 앞에 차원문 하나가 나타난다.
“뀽!”
양손에 도구를 들고 비장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맡겨달라고 말하는 뀽뀽이.
계획은 간단하다.
타락 감지기와 마력 감지로 차수창의 방 안을 탐지해서 놈이 꾸미고 있는 흉계의 증거를 찾는다.
임무를 완료하거나, 만약 일이 크게 잘못되어 뀽뀽이가 위기에 빠지면 탈출한다.
‘요약하면 그냥 찾고 탈출하는 거지.’
뀽뀽이의 손에는 두 개의 물품이 있다.
하나는 당연히 타락감지기고.
다른 하나는.
‘귀환 주문서.’
사용하면 미리 지정해 둔 지점으로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물건.
탑 안에서는 모종의 사유로 귀환 포인트에 괴물이 깔려있으면 그대로 사망이라는 점에서 선호되지 않지만.
탑 밖에서는 돈이 많으면 그냥 편하게 집으로 바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사치품으로 취급받는 물건이다.
‘내가 상황을 다 통제할 수 없으니, 뀽뀽이 재량으로 탈출할 수 있도록 들어 둔 보험이지.’
당연히 만능은 아니고.
주문서류는 마력으로 작동하는 물건이기에 마력 방해가 심한 곳에서는 사용이 불가능.
‘그 점은 뀽뀽이가 드래곤 로드라서 고려할 필요가 없지만.’
정 안되면 내가 기본 소환 스킬로 뀽뀽이를 즉시 귀환시킬 수도 있다.
뀽뀽이는 특성의 효과로 사망 시 차원 파편 안에서 부활하기도 하고.
‘뀽뀽이의 안전도 다 생각해 놨다는 말씀.’
뀽뀽이가 뿅 뛰어올라 차원문 안으로 들어간다.
이제 슬슬 차수창의 흉계를 막으러 갈 시간.
그리고 반격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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