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에서 돈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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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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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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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기연

DUMMY

수완은 조금 짜증이 났지만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상대가 상대인지라, 그냥 까탈스러운 사람인가 보다, 뭐 그렇게, 좋게 좋게 넘기기로 했다. 용납 못하면 어쩔 건가.


저녁에는 객잔에 상행원들을 불러 모았다. 회식을 빙자한 업무 보고 자리였다.


"요리가 나올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듯하니, 어찌 처리되고 있는지 말해 보십시다."


석불태가 여지없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식량이며 기물이며, 잡다한 건 이미 구해다가 방에 올려다 놓았고, 짐말은 떠날 때 가져가려고 침만 발라두고 왔네."

"그래도 됩니까?"

"당연하지. 당장 타고 다닐 것도 아닌데, 괜히 일찍 가져와 봐야 밥만 축내지. 으뜸인 놈으로다가 내가 딱 골라 놓았으니, 행수는 아무 걱정도 없을 것이여."

"말을 볼 줄 아셨소?"

"그라문, 북적놈들 거, 서역에서 건너온 거, 토번에서 키운 말, 종류는 다양한데, 산을 넘으려면 토번에서 키운 게 제일이야. 어뗘? 이 정도면? 으헤헤"


수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상을 주었다. 칭찬이다. 얍!


"박학다식하십니다, 석 호사"

"시험이라도 치렀으면 장원 급제하는 거 아닌지 몰라. 안 그러냐 호동아?"


수완은 불태의 말이 길어질까, 얼른 다른 호사들에 눈길을 돌렸다. 마침 요리가 나왔다. 서안에서 즐겨먹는 양꼬치다. 호사는 능숙한 솜씨로 꼬치를 쯔란에 찍어 입에 넣었다.


"음, 오랜만이라 그런가 육향이 진하네. 우리도 말끔히 전달했소."


큰 대문집처럼 수신 거부 하는 사람은 없던 모양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호사부는 경비를 서는 것 외, 나머지 시간은 휴식을 드리겠습니다. 놀음판에는 드나들지 마십시오."

"그럼 그럼, 아직 상행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놀면 재미없지."


마지막 차부에게 물었다.


"모두 팔았습니까?"


어쩌면 서안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차부 둘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게··· 행수, 큰일 났소."


수완의 미간이 찌그러졌다.


"서책과 도자기, 농기구는 워낙 수요가 많으니 남김없이 팔았는데, 비단은 포목점에서 영 받아주지 않소."

"늘 거래하던 포목점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아니었습니까?"

"그랬지. 아 근데 이놈에 영감탱이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이제부터는 천금장 물건은 안 받겠다는 거야."

"왜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그야··· "

"가만? 행수. 우리는 차부야. 판매는 행수 몫이지 않아? 그것까지 우리가 알아다가 바쳐야 하는가. 우린 짐만 관리하면 그만이다 이 말일세."


‘이 아저씨들이 진짜.’


소리를 꽥 지르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안평심법 덕분이다. 어차피 말해봐야 들어 먹을 사람들도 아니까. 매로 다스린다면 듣는 시늉이라도 할려나.


"알겠습니다. 대신 차부들께서는 내일 남은 포목점을 마저 도신 후에, 휴식을 취해 주시죠."

"알았네. 식구끼리 그 정도는 양보해야지."


'두 번만 식구였다가는, 으휴!'


결국 수완이 나서야 했다. 쌔가 빠지게 돌았다. 이 의리도 없는 인간들은 빈 말이라도 돕겠다는 말조차 없었다. 유일하게 생사조로 묶인 호동만이 수완을 따라 나섰다.


"너도 가서 놀아도 된다."

"아닙니다. 행수 어른"

"왜? 돈을 벌고 싶어서?"

"그럼요. 많이 벌겁니다."


수완은 피식 웃었고 호동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따라 웃었다.


"하긴, 가자!."


자주 거래했다던 포목점부터 들렀다.


"왕 어르신, 계십니까."

"뭐가 필요하시오?"

"필요한 게 아니라, 천금장에서 왔습니다."

"난 또. 안 산다니까."


주인 왕단은 조금의 시선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저 메뚜기 때를 마주한 듯, 안으로 피하려 했다. 들어가려는 왕단의 팔뚝을 급히 잡았다. 


"대체 왜 그러십니까? 오랜 거래처라고 들었습니다."

"어허! 이거 안 놔!"


힘도 없는 노인네가 소리를 꽥 질렀다. 얼마나 역정이 심했는지 호동이 딸꾹질을 할 정도.


"한순간에 이런 법이 어디 있답니까."

"어딨긴 여기 있지. 나한테 돈 맡겨놨어! 맡겨놨냐고! 내가 언제 천금장 비단 산다고 했나? 지들 멋대로 가져오고, 사라 마라. 아침부터 사람을 들들 볶아."

"그럼 이유라도."

"나도 몰라 썩 꺼져! 퉤!"


말 그대로 문전박대, 심지어 소금 세례까지 맞았다. 수완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후~ 배 타자마자 수적 만나고, 빡빡하게도 굴러가는 구나."

"행수 어른, 힘내십시오. 아직 포목점은 많습니다."

"그래 기운 내자. 정 안되면 성도 도착해서 팔지 뭐. 더러워서 내가 안 팔아!"


며칠을 포목점을 돌았다. 그리고 시간 날 떄마다 큰 대문 집에도 갔다. 그때마다 늙은 남자는 수신자가 없으니 다시 오란 말만 되풀이했고, 포목점에선 필요 없다는 말만 들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아침은 거기 가서 먹자."

"오! 좋습니다."


손님이 오면 다과라도 내오는 게 중원의 예절인데, 큰 대문 집은 감떡과 유차마화라는 간단한 요깃거리를 줬다. 수완은 특히 달콤, 고소, 쫄깃한 감떡에 푹 빠졌다.


"저 왔습니다."


오늘도 수염이 없는 늙은 남자가 맞아줬다.


있든지 말든지, 고소하고 달콤한 감떡 생각에 침이 절로 넘어 간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로 남자가 반겼다.


"아이고! 마침 잘 오셨소."

"계십니까?"

"그렇소. 잠시 기다리시오."


남자는 뭐가 그리 급한지 수완과 호동을 그 자리에 덩그러니 남겨두고 반대편 문으로 나갔다.


그때였다.


우두득!


"으악!"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귀청이 떨어질 듯한 비명이 들렸다. 


어떠한 일이 벌어졌을지 대강 감이 왔다. 예전, 그러니까 한창 유도하던 시절에, 비슷한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으니까. 수완은 눈살을 찌푸렸다.


"으..."


늙은 남자가 쪼르르 달려왔다.


"이름이 뭐랬죠?"

"최수완입니다."

"호동입니다."


"호 군은 여기 그냥 있고, 행수는 저를 따라오시는데, 절대로 고개를 드시면 안 되고, 질문도 안됩니다. 그저 하문하시는 말에 짧게 대답하십시오. 가능한 안된다, 어렵다는 삼가 하시고요."

"그러죠, 뭐. 금방이면 끝나겠죠?"

"그건 모릅니다. 따르시죠."


문을 통해 들어갔다. 연무장 비스름한 게 보였다. 거기엔 열명정도, 무인으로 보이는 자들이 있었는데, 훈련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한 청년이 다가왔다. 홍해가 갈라지듯 무인들이 양쪽으로 쫙 도열했다. 늙은 남자는 수완의 머리를 짓눌렀다. 보나 마나 이곳에 주인이다.


청년은 수완 앞에 멈추어 섰다. 수완도 약간 긴장되는 마음이 들었지만, 서신만 전달하면 되기에 걱은 하지 않았다.


"개봉에서 서신을 가지고 왔습니다."


수완이 품에서 서신을 꺼내려 하는데, 청년은 웬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축국(蹴鞠) 찰 줄 아느냐?"



34화. 기연


"어허, 무엄하다. 당장 대답하지 못할까!"


여자처럼 가는 소리를 내던 늙은 남자가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수완은 고개를 조아린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축국? 그게 뭐지? 축구는 들어 봤어도.’


앞에 있는 청년, 그러니까 천자의 아들, 이 나라의 이 황자이자, 산서성 일대에 봉해진 진왕이 묻고 있었다.


나이는 대략 스물 남짓, 천자가 거지에서 황제에까지 오른 기운을 그대로 물려받았는 지, 기골이 장대하고 눈빛이 매섭다.


"괜찮네, 상선. 그럴 수 있네. 다시 묻겠다. 공 차본 적 있느냐?"

"저는 개봉에서 서신을 전달하려고-"


진왕은 대답을 다 듣기도 전에 수완을 끌었다.


"됐다. 고추 달고 태어나 공 한번 차보지 않은 사내가 어디 있겠는가. 당장 웃옷을 벗고 뛰어들거라."


‘잉?’


진왕은 축국이라는 공놀이에 환장했는지 말을 하면서도 발아래 가죽을 꿰어 만든 공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이게 대체 뭔 상황이야. 중원에서 공을 왜 차냐고.’


수완은 황당했지만 어쩔 수 없이 웃옷을 벗었다. 권력자가 까라면 투덜대면서 까는 어린 백성이 그 였으니.


한편으로는 심장이 뛰었다. 공을 찬다니, 이게 얼마 만인가. 만능 스포츠맨 최수완, 한 때 유도선수와 고민할 정도로 축구를 좋아했다.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로, 올림픽 금메달을 따지 못하게 된 것보다, 조기축구에 나가지 못하게 된 것이 더 아쉽다는 말까지 늘어놓고 다닐 정도.


‘평생 볼 한번 못 차보고 끝나는 줄 알았는데··· 세상사 알다가도 모르겠어.’


같이 웃옷을 벗고 있는 남자가 곁으로 다가가 왔다. 얼굴이 상막하고 온몸에 상처로 가득했다.


"금문완이라고 하오. 이거 받으시오."


어떠한 용도인지 모르겠는 팔뚝만 한 나무 몽둥이를 들려주었다.


"최수완이 입니다. 처음이라 이거 참···. 아무튼 잘 부탁드립니다."

"···처음? 그래요? 일단 알았소이다."


금문완은 간단히 규칙을 설명해줬다. 축국은 풋살? 축구 어딘 가에 있는 놀이였다. 경기장은 대략 좌우 50보 내외였고, 선수는 골키퍼 없이 한 팀에 네명이, 양쪽 끝에 꽃아 만든 구문 안을 공을 집어넣으면 점수를 얻는다고 했다.


"그냥 방해만 하지 마시오. 어차피 임시로 끼워둔 거니. 우리가 알아서 할 거요."


남자는 피식 코웃음을 치고는 자기들끼리 결의를 다졌다.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


징~


"축이요!"


징 소리가 울리며 시작되었다. 수완은 진왕과 다른 편이 되었다. 선공은 진왕편이 잡았다.


일단 맨 뒤에 섰다. 신입이 공격하겠다고 깝죽거리는 것만큼 꼴불견도 없으니. 원래 조기축구도 물 심부름부터 한다. 물론 게임을 바꾸는 에이스는 예외겠지만.


‘어라? 초보들인가? 무슨 개념이야.’


이들의 포지션이 이상했다. 아무리 축구와 축국이 다른 놀이라고 하여도, 공격과 수비는 있어야 할 텐데, 하나의 덩어리처럼 공 주위에 일곱이 몰렸다. 


앞에 세 명이 서고 그 바로 뒤에서 진왕이 공을 몰고간다. 흙바닥 공차기가 그렇듯, 짧게도 길게도 튄다. 그 역시 무공을 익혔는지 경공을 사용해서 쫒아 나간다.


진왕이 신을 내며 말했다.


"달려 들거라. 그렇게 멍하니 있으면 실점한다."


하지만 대왕축구라 그런지 약간의 몸싸움만 보일 뿐 뺏어내지 못했다.


진왕은 구문을 향해 공을 후린다.


어림없는 볼~


벗어나도 크게 벗어났다. 진왕은 아쉬운 듯, 소리를 질렀다.


"아오!!!"


금문완이 말했다.


"형씨, 뭐해."

"아...?"


잽싸게 공을 주어왔다. 원래 막내가 하는 거다. 그러면서 공을 만져봤다. 딱딱했다. 공기가 든 건 아닌 듯 하다. 하긴 고무가 없던 시대니까.


수완은 발 안쪽으로 우리 편에게 정확히 밀어주었다. 이번엔 수완편인 금문완이 몰고 나갔다. 이번에도 공에 꿀이라도 발라 놓았는지, 모든 이가 몰렸다.


그런데 아까와는 다른 양상이 펼쳐졌다. 호리호리한 남자가 높이 뛰어오르더니 허리춤에 하나씩 차고 있었던 막대기를 빼내어 그대로 후려 갈겼다. 심지어 기술 이름까지 외쳤다.


"양오검!"


동시에 진왕이라는 작자는 한술 더 떳다. 공을 몰고 가는 사내의 무릎을 노리고 살인 태클을 날린다.


"청룡십이각!"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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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국에 관하여 뜬금없는 전개라고 생각하실까 말씀드립니다.


공을 차넣는 놀이는 어느 문화권에나 존재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도 있고, 중국, 한반도, 유럽에도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에게 공을 주면 알아서 가지고 노는 것을 떠올리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기록으로 보자면, 삼국사기에 신라 화랑들이 축국을 즐겼다고 하고, 당나라 서책에는 고구려 사람들은 축국을 잘한다는 문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이디어 또한, 수호전(북송 말 배경) 등장인물인 고구가 축국을 잘해 태위에 올랐다는 내용에서 착안했습니다.


실제 규칙은 어떠했는지는 밝혀진 바 없다고 합니다. 무협지이니, 작가가 상상을 해야 하죠. 재미있게 봐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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