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에서 돈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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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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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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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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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개판

DUMMY

수완의 당돌하고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남궁진청은 물론이고, 마운, 서 총관, 장평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네가 나설 자리는 아닌 듯싶구먼.”


서 총관은 평소보다 더 느리고 낮은 음성으로 수완을 꾸짖었다. 그러고는 새파란 남궁진청에게 포권을 취하며 사과했다.


“공자, 부디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천금장은 위아래도 없나 보군. 개판이 따로 없어.”


남궁진청이 건방진 말투로 비아냥 댔다. 수완은 아니꼬왔다.


“개판? 우리 넷은 사람이 분명한데? 그럼, 그쪽이 개새끼가 되는 건가, 하하하.”


남궁진청의 광대가 가볍게 떨리는 것처럼 보였다. 수완이 말을 이어갔다.


“이보게, 진청이. 자네가 어디에 와 있는지 분간이 가지 않는 모양인데, 여긴 물건을 사고파는 상단일세. 얻고자 한다면 응당 값을 치러야지, 어찌하여 공짜를 그리 좋아하는가? 돈도 많은 놈이. 대머리가 되고 싶어 그러는가?”

“엌엌엌, 재밌는 놈이네.”


진청은 독특한 웃음소리를 냈다. 내뱉는 소리가 아니라 공기를 빨아들이며 내는 해괴한 소리였다. 그래서인지 딱딱했던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졌다.


“값이라... 그런데 이걸 어쩌지? 천금장에 줄 아까운 재물은 하나도 없는걸.”


그러자 수완이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거래가 꼭 돈이 있어야 성사되는 건 아니지. 들어보겠나? 내가 재미있는 소설을 알고 있는데.”


모두의 시선이 마운에게 향했다. 수완이 지금부터 풀고자 하는 이야기는 소설의 탈을 쓴 제안이다. 이는 천금장의 주인, 마운의 승인이 동반되어야 소설을 끝맺을 수 있음을 의미했다.


마운이 잠시 고민하더니 찬장에서 술잔 세 개를 꺼내 남궁진청, 수완, 그리고 자신 앞에 놓았다.


“삼십 년 묵은 산삼주입니다. 좋은 날 마시려고 아껴두었는데 오늘이 그날인 듯싶군요.”


마운이 먼저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크~ 좋다. 저 아이가 저래 봬도 말솜씨가 제법입니다. 들어나 보시죠. 혹시 압니까? 일 공자를 기쁘게 할지.”

“얼굴만큼이나 혓바닥도 잘 놀리는지 두고 보자. 내 마음을 동하게 하면 하나뿐인 내 누이 동생을 소개해주지. 어디 지껄여 보거라. 크~ 향 끝내주네.”


남궁진청은 콧김을 뿜으며 술잔을 들었고, 이를 본 수완도 술잔을 기울였다.


“모두 편안히 들어보시죠. 어차피 소설입니다.”



22화. 개판


옛날 옛적 두 사내가 살았다. 하나는 무인 궁진이었고, 다른 이는 완, 상인이었다.


“허허허, 익숙한 이름이군.”

“입 닫고 듣게나, 일 공자. 이야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끼어드는가.”


수완은 진청에게 쓴소리를 했다.


“궁진은 고민이 하나 있었소이다. 허우대는 멀쩡하나 내공이 간장 종지만큼 작았지.”


사람들은 남궁진청의 눈치를 살폈다. 누가 들어도 ‘궁진’은 남궁진청의 가운데 두 글자를 따왔고, ‘완’은 수완의 이름에서 마지막 글자를 따온 게 분명했으니까.


“훗! 계속하거라.”


진청은 술을 홀짝이며 말했다.


“궁진은 영약을 찾아 헤맸소. 간장 종지만 한 내공을 탕반기 정도로는 늘려야 조그만 무관에서 사범 노릇이라도 할 테니. 하지만 영약이 그리 쉽게 얻을 수 있으면 영약이겠소? 어려웠지. 대책 없이 속절없는 세월만 흘러갔다네. 아, 야속한 세월아~”


장난스러운 말투를 곁들여 지루함을 덜었다.


“그러던 와중 우연히 기연을 얻어 신삼이라는 놈을 취한 게요. 효과가 대단했지. 궁진은 더욱 탐이 났소. 신삼을 얻기 위해 천하를 다 뒤졌어. 마침내 신삼이 잔뜩 있던 곳을 찾아낸 거요.”

“오호, 그래서?”

“그 길로 거길 쑥대밭으로 만들었지. 참고로 궁진의 실력은 영 형편없었으나, 핏줄만큼은 잘 타고났기에 가문은 빵빵했소. 키키키.”


수완이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하지만 미처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었소. 알고 봤더니 신삼은 사람이 만든 것이었소. 바로 완이가 연구 끝에 만들어낸 영약이었지.”


마치 모노드라마를 찍는 듯 수완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좌우로 불안한 듯 한 군데 시선을 두지 못했다.


“이를 어쩌나, 신삼을 빼앗을 생각에 완이까지 죽여버렸는데. 신삼을 장복해야 하는데... 내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랐구나.”


남궁진청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저런, 바로잡을 방도가 있겠는가?”


갑자기 수완이 연극을 멈추고 마운에게 포권을 취했다.


“장주님, 소인이 생각하기에 궁진이가 처음부터 거래를 제안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상인인 완이가 신삼을 만들어낸 이유가 뭐겠습니까? 무인도 아닌데 말이죠.”


마운은 턱수염을 쓸어 넘기며 장단을 맞춰주었다.


“결국 재물을 모으려고 그리한 게 아니겠느냐. 상인은 재물을 모으기 위해 인생을 거는 자들이니 말이야.”

“그리 생각하는 게 합당할 테지요. 듣기로는 완이가 고려인삼을 꾸준히 매입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문이 상당하거든요.”


수완은 책상 위로 깍지 낀 손을 턱에 가져다 대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 모습이 마치 결투에 나서는 검투사와 비슷했다.


“제가 궁진이였다면 완이에게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완이, 내가 고려인삼을 매입할 수 있도록 도울 테니, 신삼이랑 바꿉시다. 손잡는 거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완이의 착한 성격이라면, 일 년에 열여덟 근은 궁진이에게 줬을 겁니다.”


열여덟 근이라는 소리에 남궁진청은 침을 꿀꺽 삼켰다.


평범한 무인이 홍삼 한 근을 취하면, 6분의 1갑자를 얻을 수 있다. 단순 계산으로 열여덟 근 모두를 취하면 무려 180년의 세월과 맞먹는 3갑자가 순식간에 쌓인다.


물론 내공이 많아질수록 쌓이는 양도 줄어드니 혼자 다 먹는다고 해도 3갑자를 쌓을 수는 없겠지만, 가문에 속한 다른 무인들에게 나눠 준다면 급격히 수준을 높일 수 있다.


그리만된다면 고지식한 말만 늘어놓는 소림을 제치고 무림 제일의 문파로 자리 잡는 일도 꿈은 아니다.


“대환단 같은 고급 영약을 취해보지 않아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신삼을 장복하면 그에 못지않을 겁니다.”


수완은 여전히 마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왜 열여덟 근이지?”


남궁진청이 물었다.


“그건 밝힐 수 없소. 그냥 완이의 비밀이라고 생각하시오. 싫으시면 궁진이가 어떤 인간인지 한번 물어보시구려.”

“농이 지나치구먼. 하지만 열여덟 근도 나쁘진 않지.”

“일 공자께서 안목이 있으시군.”

“그럼 궁진이가 해줄 건 뭔가? 고려인삼을 사다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수완은 벌떡 일어나더니 뚜벅뚜벅 남궁진청과 마운의 사이로 걸어갔다. 술잔을 내밀었고, 마운이 따라주려 했지만, 수완은 술병을 남궁진청에게 건넸다.


남궁진청은 수완의 의도를 궁금해하며 아무 말 없이 술을 따랐다.


졸졸졸~


벌컥!


“크~ 향이 죽이네.”

“이제 말해.”

“절강성 도지휘사 교체. 나아가 고려인삼 매입권도.”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기가 얼어붙었다. 수완의 말은 명료했지만, 도지휘사를 제거하고 권력과 결탁하자는 제안이었다. 이는 자칫 무림맹을 넘어서 관군에게 진압당할 수도 있는 위험한 발언이었다.


서 총관이 당황하여 소리쳤다.


“바닥에 굴러다니던 돌멩이 같은 놈! 겉모습만 보고 주웠더니, 천금장을 망치려 드는구나! 오늘 당장 네놈의 혀를 뽑아버리겠다! 장 부장!”

“···네? 총관 어른?”

“저놈의 혀를 당장 베어 버려라! 해괴망측한 말만 늘어 놓는구나!”


장평은 어쩔 수 없이 칼을 반쯤 뽑았다. 하지만 실제로 베려는 의도가 아닌, 누군가 말려주길 바라는 눈빛을 보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였다.


벌컥벌컥


마운이 병째로 산삼주를 들이붓고는 낮게 속삭였다.


“가능성은?”

“궁씨 가문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렸겠죠.”


“공자님, 치기 어린 헛소리입니다. 천금장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 이야기입니다. 개소리요.”


서 총관이 상황을 수습하고자 더욱 격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짝짝짝짝!


박수가 터져 나왔다. 주인공은 남궁진청이었다.


“하하하, 왜 그리 흥분하십니까.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지 너무 진지하십니다. 요즘엔 이 정도 말장난은 누구나 합니다. 게다가 소설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잘못 들은 겁니까?”


속내를 알 수 없는 반응이었다.


“최수완이라고 하셨지요. 소협의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이런 말이 생각나는군요. 삼고초려, 촉한의 유비가 제갈량을 세 번이나 찾아갔다죠? 어쩌면 오늘 내가 장자방을 만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남궁진청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일 공자, 건방진 소리 하지 마시오. 나는 그대와 같은 선상에서 협력을 논했는데, 어찌 그대는 천금장 한가운데서 그 따위 망발을 지껄인단 말이요? 참으로 어이없군.”


“그렇게 들렸다면 정말 미안합니다. 정식으로 사과드립니다, 장주님 그리고 소협. 부디 넓은 마음으로 소생의 결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남궁진청은 갑작스레 허리를 완전히 꺾으며 포권을 취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상석에서 물러나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그 모습은 웃어른의 비답을 기다리는 청년 같았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아무튼 제가 확실히 교육할 테니 부디 잊어주십시오.”


서 총관은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되어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러지 마십시오, 총관 어른. 오늘 큰 가르침을 받은 것으로 모자라, 새로운 친우를 얻어 기쁜 날입니다.”

“...”

“소협이 저에게 적당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역시 상인답게 거래할 줄 아는 분이군요. 엌엌엌.”


하지만 마운의 미간은 여전히 펴지지 않았다.


“이번 일은 못 들은 걸로 해주셔야겠습니다. 아무리 궁진이 명문 궁가의 장남이라 하여도 그의 힘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울 듯 싶소이다.”


가주인 남궁천이 직접 나선다 해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으며, 자칫하면 남궁세가 역시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는 엄청난 모의였다


“엌엌엌,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생을 믿어 보십시오. 깔끔하게 처리할 테니. 제가 알기로는 궁진이가 일을 참 잘합니다.”


남궁진청은 마운의 눈을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마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 손을 잡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나이가 들면 얼굴만 보고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반쯤 관상가로 변한다.


그냥 관상가가 아니라 왜 반쯤이냐고?


그건 관상학에 기반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오랜 경험으로써의 느낌. 세월에 풍파에서 풍겨오는 무언가로 판단하기에 그렇다.


남궁진청, 저 청년의 눈빛, 그리고 순식간에 바뀌는 태도, 혼자 쳐들어와 조금도 떨지 않는 배포.


눈이 참 맑아 보이나, 그 속에 광기가 어려 있다. 고분고분 넘어갈 사람이 아니다. 다음번엔 무림맹을 이끌고 올 게 분명하다.


‘위기의 끝에 늘 새로운 기회가 있었지.’


마운은 안에 있던 사람들의 눈빛을 쭉 둘러본 후, 남궁진청의 손을 잡았다.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심장이 뜁니다.”


*


남궁진청은 바로 돌아가지 않고 며칠 천금장에서 묵어갔다.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면 어쩌나 했으나, 방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인에게 듣기로는 무언가를 끄적였다고 한다.


“융숭한 대접 감사합니다. 금방 좋은 소식으로 모시겠습니다.”

“편안하셨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살펴 가십시오.”


남궁진청은 떠났다. 그 모습이 봄 나비의 날갯짓처럼 가벼워 보였다.


그리고 나흘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남궁세가로부터 전갈이 왔다.


‘준비 완료. 병자 월 갑인 일까지 도착 요망’


문득, 오싹한 기분이 수완의 등골을 스치고 지나갔다.


‘···서, 설마 설계 당한 건가?’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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