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에서 돈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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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초이
작품등록일 :
2024.07.2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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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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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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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본격적으로

DUMMY

가까운 육지에 배를 대고 적당한 곳에 짐을 숨겼다. 어차피 뱃사공도 도망갔기에 더 이상 상선을 움직일 수 없다.


“석불태를 데리고 올 테니 잘 지키고 계시오.”

“그러시게.”


차부 둘을 짐을 지키라고 두고, 호사들은 생사조끼리 짝을 지어 탐문에 나섰다. 수적들이 타고 다니는 조각배로는 멀리 나아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인근에 사는 놈들이 아닐까?


“그런데 말이야. 석불태 납치된 게 맞을까? 도망가거나 죽은 건 아닌지 몰라? 아니면 강에 빠져 죽었거나”


수완이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그러자 호동이 발끈하며 답했다.


“아닙니다. 절대로 그러실 분이 아니라고요! 불태 아재는 그리 비겁한 분이 아니세요. 어제도 수적 놈들을 수도 없이 베셨다니까요. 수영도 얼마나 잘하신다고요.”


“정말? 뒤꽁무니만 빼던 거 같은데.”

“오해십니다. 말은 거치셨어도 속은 얼마나 따뜻한 분이신데요. 절대로~ 나쁜 분이 아니에요.”

“그래? 아닌 거 같은데.”


기억으로는 호동은 불태에게 늘 핀잔만 들은 것 같았는데, 정이 많이 든 모양이었다. 뭐 같은 사람이라도 다르게 느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조그마한 마을이 나왔다. 수완은 밭일하는 늙은 농부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르신,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노인은 귀가 잘 들리지 않는지, 귀청이 떨어지도록 큰 소리로 답했다.


“뭐라고?”

“이 근방에 개방도들이 어디 모여 삽니까?”


단정하고 멀쩡하게 생긴 청년이 거지소굴을 찾으니, 이상한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아, 참고로 저는 무림인입니다. 근방에 개방 고수께서 오셨다는 말을 듣고 가르침을 받고자 왔습니다.”


그제야 노인은 의심을 거두고 손가락을 가리켰다.


“저쪽 다리 밑에 가보슈.”

“감사합니다.”


호동이 물었다.


“행수 어른, 뜬금없이 웬 개방도들입니까?”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을 아느냐. 참고로 사람들의 말은 개방도가 모두 듣는다 하였다.”


마운에게 배운 것을 마치 자기 생각인 양 폼을 잡고 읊었다. 그러니 호동이 존경에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가르칠 맛 나는 녀석이라니까.’


마침 거지 움막이 보였다. 수완은 짚으로 엮어 대충 앞만 가려 놓은 발을 열어젖혔다.


“여보시오. 안에 계시요. 여기가 협의로 가득 찬 개방도 거처가 맞소?”


움막에는 거지 둘이 있었는데, 이제 막 동냥을 나갈 모양인지 채비하고 있었다.


“뉘슈?”


‘조금만 늦었어도 허탕을 칠 뻔했구먼.’


수완은 그들이 떠날세라 짧고 분명하게 목이 잘린 사내에 대해서 설명했다. 예상대로 단박에 알아맞혔다.


“하통이 아재를 말하는 거 같은데?”

“맞는구먼요.”


예상처럼 개방도들은 그 지역에 평생을 살아왔기에 어느 집 아들이 어느 날 밤 만들어졌는지까지도 알고 있을 정도로 인근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어디 사는 놈입니까? 동료 중 하나가 끌려갔습니다.”

“쯧쯧쯧 수적질을 그만하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말을 들어 먹지 않는 놈들이야.”


세 개의 매듭을 가진 분타주는 혀를 끌끌 차더니 바가지를 앞으로 쓱 밀며 자리에 앉았다. 수완도 그 뜻을 눈치채고 가져온 성의를 내밀며 포권을 취했다.


“요즘 황사 때문에 밖에 나가기 힘드시죠? 마침 남는 음식이 잔뜩 있어서 적선이나 할까 싶어 와봤습니다. 배가 많이 고프시죠?”


분타주는 보자기를 들쳐 가득 쌓은 음식들을 쭉 훑어보더니 미소 지었다.


“그냥 적선 받기는 뭐하고. 어디 보자. 한 곡조 읇어보거라~”


그러자 옆에 있던 말복이라는 거지가 벌떡 일어나더니, 한손에 바가지를 다른 손에는 숟가락을 들고는 박을 두드리며 목청을 높였다.


“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절씨구 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어허~ 품바가 들어간다.”

“하하하, 목청 한번 좋소이다. 여기 남은 음식이오. 배 터지게 드시오.”


그제야 분타주는 수완이 가져온 말린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정보를 풀기 시작했다.


“저쪽에 가면 수합촌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면...(중략)”



“...참 고얀 일이지.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소굴은 어디란 말입니까?”

“글쎄? 그거까지 우리가 알려주기는 뭐한데.”


분타주는 두강주 한 모금에, 육포를 씹으면 말만 빙빙 돌리고는 약만 올리고 핵심은 말해주지 않았다.


“아무리 그 사람들이 못된 짓을 했다고 해도 말이야. 사람이 의리가 있지. 내가 이곳에서만 말이지 자그마치...”


결국엔 자기도 이쪽 동네 사람이라 말해주기 어렵다 그런 소리.


‘정파라며? 수적 편이나 들고. 이래도 되는 거야.’


분타주가 탐욕스레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우리가 도와줄까? 우리가 말하면 부드럽게 처리될 수도 있는데. 거마비가 좀 들겠지만.”

“그런가요.”


수완은 바로 결정할 수 없었다. 갑자기 수적들이 행태를 바꾼 것도 걸리기도 했고, 보통 걸뱅이들은 마을에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니.


“조금만 더 생각해보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려, 언제든지 오셔잉~”


*


탐문을 마치고 호사들을 불러 모아 정보를 공유했다. 예상처럼 다른 호사들 역시 수적 소굴에 대한 정보는 알아 오지 못했다.


“어찌했으면 좋겠소”


새벽에 수완이 말했던 ‘우리는 하나’ 라는  말에 심취한 호사 하나가 나섰다.


“반드시 구해야 하오.”

“그러니까 어떻게요.”

“어제처럼 다시 배를 띄워 주변을 탐문하다 보면 어디 있지 않겠소. 어제는 밤 중 기습이라 당황해서 그렇지, 낮에 다시 싸운다면 충분히 승산 있다고 보오.”


실제로 수적들의 무위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대부분이 농사꾼 수준.


“그거 좋은 생각이구먼.”

“역시 무인이라면 칼로 끝장을 봐야지.‘


흔히 삼류는 평범한 사람 둘을, 이류는 다섯을, 일류는 열 명까지 능히 물리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으니, 호사의 오만한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수완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상행에서 한두명 죽거나 다치는 건 평범한 일로 받아들여졌지만, 한둘 빠지기 시작하면 앞으로 언제 다시 덮쳐올지 모르는 도적들에게 저항조차 어려우리라 생각했다.


“그럴 수는 없소.”

“그럼 어쩌자는 말이요, 행수. 이제 와서 불태 형님을 포기라도 하겠다는 거요.”


호사들은 저마다 야단법석을 피우며 한마디씩 던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머리가 빠개질 것처럼 아파왔다.


‘으··· 이 양반들, 어찌 이리도 단순 무식 해. 대한민국 사람 생각으로는 이 세상을 정말 이해하기 힘들고 어렵구만.’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가만? 내가 왜 대한민국 사람이야?’


수완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왜 그렇게 웃소, 행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라는 말이 있소. 저쪽 서역 땅의 법전이지. 나는 그 법이 참 마음에 들더이다.”



31화. 본격적으로


수합촌 어귀, 동이 트기 전의 새벽. 어둠 속에서 느티나무 아래에 밧줄로 무언가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음? 저게 뭐지?”


밭일에 나서려던 한 남자가 그쪽으로 다가갔다. 평생을 이 마을에서 살아왔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에그머니!”


남자는 엉덩방아를 찌으며 나자빠졌다. 그것은 양통의 목이었다. 한동안 얼어붙은 듯이 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메고 있던 지계를 벗어 던지고 어디론가 달려가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아이고, 누가 이래 놨대. 쯧쯧쯧.”

“오래 살았지, 뭘 그래.”

“씁, 이 여편네가 조용히 못해.”

“아니, 내가 틀린 말 했나?”

“쓸데없는 소리 말고.”

“관군이 들이닥친 건가?”

“설마,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사람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춘식아, 당장 양룡이에게 알리고 와. 상춘이는 어머님을 모시오고 오고.”

“그려그려.”


그때, 저 멀리서 한 노파가 숨을 헐떡이며 다가왔다. 당장 오늘이라도 하직할 듯한 모습이었다.


“마침 저기 오시네.”

“아줌마, 천천히. 숨 넘어가겠어요.”


멀리서부터 울먹이며 다가오는 노파, 누가 봐도 목이 잘린 이의 어머니였다.


노파는 잘린 머리를 보자마자 바닥에 털썩 엎어져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마을 전체를 울리는 듯했다. 이내 까무러치며 숨이 넘어갈 듯했다.


이 모든 건 수완이 꾸민 짓. 멀리서 호사들과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요주의 인물로 생각되는 집에 호사들을 보내어 감시하게 했다. 그 중에서도 수완은 노파의 집은 직접 잠입하기로 결심했다.


늦은 밤, 수완은 집 안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방 안에는 침상에 몸을 눕힌 채 신음소리를 내는 노파가 보였다. 침울한 기운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수완은 천천히 노파에게 다가가 말했다.


“내가 당신 아들을 죽인 사람이요.”


그 말에 노파는 자다가 벌떡 일어나더니 눈을 부라리며 달려들었다. 그녀의 손은 힘이 없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날카로웠다.


“이 못된 놈! 내 아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리 숭악한 짓을 했느냐!”


노파는 연신 수완의 가슴과 어깨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잠시 맞아주었다. 어차피 노인의 주먹질이었기에 아프지도 않았다.


“다 알고 있지 않소.”

“나는 모른다. 내 아들은 착한 아이야.”

“사람 목숨을 빼앗고 납치하는 게 착한 것이요?”


수완은 방안을 두리번거리다가 저벅저벅 걸어가 장롱을 열었다. 그랬더니 장롱 안에는 이 허름한 초가집과 어울리지 않는 흰쌀과 은자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래도 발뺌하시겠소?”


노파는 고개를 팽 돌리며 수완의 시선을 피했다. 침묵이 흘렀다. 수완은 느릿하게 칼을 꺼내들었다.


“내가 왜 왔는지는 이제 아시겠소?”


노파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적 소굴이 어디요? 동료가 붙잡혔소. 나는 구해야 하오. 더는 다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소.”


그러나 노파는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했다.


수완은 한걸음 더 다가가며 칼을 들이댔다. 노파의 목에서 약간의 피가 흘러내렸다.


“말하시요. 그렇지 않으면 지금 죽이겠소.”

“이 원수 놈, 내가 그깟 협박에 굴종할 줄 아느냐? 내가 북적 놈들의 핍박에도 살아남은 사람이다!”


칼날이 목 앞에 들어와 있음에도 오히려 더 눈을 부라리며 다가왔다. 마치 찌르라고 도발하듯, 그녀의 눈빛은 도전적이었다.


수완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눈빛 어디서 봤나 했더니 이제야 기억나는 구만. 쏙 빼다 닮았구만.”


이상한 웃음에 노파의 눈빛이 흔들렸다. 수완은 노파의 눈동자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말했다.


“이, 이놈이.”

“어디 얼마나 버티나 봅시다. 도둑놈 둘이나 낳으신 위대한 어머니시여.”


그랬다. 그녀는 목이 잘린 양통의 어머니이자 진짜 두목의 어미이기도 했다. 그 날 밤 수완을 노려보던 눈매가 그녀에 눈에서 보였다.


수완은 차분하게 그녀의 점혈을 짚었다. 같은 시각, 마을에 있는 사람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납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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