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에서 돈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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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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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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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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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개봉

DUMMY

그 남자는 화려했다. 붉은 비단으로 만들어진 철릭을 빼입고 고관대작이나 쓸법한 옥으로 장식된 죽립을 썼다.


나이는 대략 약관. 얼굴이 기름을 바른 듯 반들반들하며 상투를 얼마나 세게 틀어 올렸는지 머리카락 한 올 삐져나오지 않고 정돈되어 있다. 오죽하면 눈꼬리가 11시 11분으로 치켜 올라갔으랴.


그리고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었으니, 그가 지나갈 때마다 상쾌한 박하 향을 풍겼다.


‘특이한 사람이야.’


이제는 적응했지만, 처음엔 수완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잘 씻지 않아 구린내가 진동했기 때문이다.


물론, 집집마다 상수도가 들어오는 게 아니니 목욕을 자주 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개울이 바로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현대인인 수완의 입장에서는 비위가 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막무가내로 나오지 않았다면 누구에게나 깊은 호감을 남길 수 있는 인상이야.’


“남궁세가에서 오셨다 하셨소?”


마운은 그 남자의 말을 믿기 힘들어 재차 물었다.


“그렇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천금장에서는 손님 접대를 이리하는가. 에헴.”


일 공자 남궁진청은 지천명에 닿은 노부에게 반말로 대꾸했다. 천금장 식구들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달아올랐지만, 누구 하나 쉽사리 나서지 못했다. 상대는 무림의 거두 소림사와 위세를 나란히 하는 천하 5대 세가 중 으뜸인 남궁세가였으니까.


“들어오시지요. 결례가 많았습니다.”


결국, 하대 당한다 해도 별로 이상할 게 없는 사람이 나섰다. 바로 수완이다.


“그럴까?”


남궁진청은 수완을 쭉 훑어보더니, 마운이 앉아 있던 상석으로 곧장 향했다. 몸놀림이 어찌나 자연스럽고 당당한지, 마치 처음부터 자기 자리였던 것처럼 보였다.


“보이차를 들이겠습니다.”


수완이 말했다. 그러자 남궁진청이 피식 웃고는 손사래를 쳤다.


“그건 됐고. 나는 홍삼으로 우린 차가 있으면 좋겠구나.”

“대체 무엇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소이다.”


마운이 움찔하며 끼어들었다. 


가주 남궁천의 뜨뜻미지근 했던 반응을 보았을 땐, 아직 창고에 처박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 공자가 먹으려는 걸 쳐내지 않았던가. 그런데, 장남이 홍삼을 취하는 걸 허락했을까? 아니라고 보는 편이 사리에 맞는다.


“이 사람 이거. 다 아는 사이에 어렵게 돌아갈 것 있겠나.”


말만 들어서는 누가 윗사람인지 모를 대화가 이어졌다.


“나, 남궁진청이 이미 취하고 오는 길이네. 효과가 아주 좋더군. 엌엌엌”


진청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수완이 미간을 찡그리며 들릴 듯 말 듯 작게 중얼거렸다.


“그것 참 안타까운 소식이군. 남궁세가는 예절을 팔아먹은 모양이야.”


그 소리를 들었는지 진청이 수완의 멱살을 잡았다.


“뭐? 너 뭐라고 했어.”

“이거 놓으시죠. 불쾌합니다. 홍삼은 제가 가주님께 선물로 드린 것인데 어찌 성의를 간단히 무시한답니까? 남궁가의 법도는 그렇소이까?”


남에게 받은 선물을 함부로 할 수 없다. 그러니 홍삼은 남궁천이 직접 취하거나 아니면 평생 간직하는 것이 도리이다.


즉, 진청의 말은 ‘제 아비가 저잣거리에 필부도 아는 예절도 모르는 무뢰한’이라 떠벌리고 다니는 꼴이었다.


“제 말이 틀리셨습니까. 일 공자.”


수완의 일침에 일 공자는 얼굴을 붉혔다.


“네 이놈! 감히 남궁가를 모욕하려 드느냐? 내 당장 네 놈의 사지를 찢어발겨도 시원치 않으나, 오늘만큼은 중차대한 일로 왔으니 운 좋은 줄 알거라!”


진청은 한번 넘어간 흐름을 되찾아 오기 위해 더욱 기괴한 행동을 했다. 책상에 다리를 올려두고 화두를 던졌다.


“여기가 도둑놈 소굴이라지?”

“이게 무슨 망발이요. 아무리 일 공자라 하여도 용서할 수 없소.”


결국 장평이 화를 참지 못하고 칼을 뽑았다. 그러자,


“그쪽이 절강성 도지휘사의 물건을 가져간 걸 알고 왔네. 잔말 말고 홍삼을 내놓아라.”

“···”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다.


이미 남궁세가를 의심하고 있었으니 특별히 놀라운 소식은 아니지만, 협박을 하러 일 공자가 직접 찾아온 행위에 다들 적잖이 충격받은 모양이었다.


특히나 마운의 머릿속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 뒤섞였다.


‘저놈을 죽여야 하나? 그러면 무림 공적이 되겠지.’

‘아니면 제 발로 기어들어 온 저 버르장머리 없는 놈을 인질로 잡고 협상할까? 그래도 장남이니 귀하게 여기겠지?’

‘그도 아니라면 회유를? 평생 저 망나니에게 끌려다닐게 뻔한데..’


진청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었다.


“옛말에 침묵은 긍정과 같다지. 후후”



21화. 개봉


오랫동안 출타하고 돌아오니 동생 녀석이 끙끙 앓고 있었다.


“진명아, 무슨 고민하고 있더냐?”

“형님,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가신 일은 잘되셨고요?”

“오냐. 성취가 제법 있었어. 제왕검형(帝王劍形)을 익히게 되는 날도 머지않은 듯 싶구나.”

“그러셨습니까. 경하드립니다.”


평소 가주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입장이기에 늘 꼬치꼬치 캐묻던 동생이, 어쩐 일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저 녀석이 왜 저러지?’


진청은 동생을 유심히 살펴봤다.


‘어깨도 넓어진 것 같고... 호흡도 깊어졌구먼...’


“내공이 많이 늘어난 것 같구나?”

“아. 그거요. 고려인삼을 먹었습니다.”


진청은 짜증이 확 솓구쳤다.


‘장남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데 차남 따위에게 그 귀한 걸 먹여? 아버지께서는 대체 무슨 생각이신 거지? 집안 꼴 잘~ 돌아간다.’


진청은 노기를 겨우 가라앉히고 물었다.


“대체 그 귀한 게 어디서 나서?”


진명은 순순히 모든 걸 불었다.


“그리된 것입니다. 형님이 계셨었다면 형님께서 취하셨을 텐데 제가 덕을 본 셈이죠.”

“그 좋은 영약을 먹고도 왜 그리 죽상을 하고 있느냐?”

“그게··· 홍삼이라고 더 좋은 영약을 선물 받았는데 아버지께서는 먹지 못하게 하십니다. 형님, 뭐 좋은 수 없겠습니까? 반반씩 하자고요.”

“···글쎄다. 아버지께서 그리 정하셨으면 나라고 별다른 방법이 있겠느냐.”


진청은 무표정을 지으며 안타까워하는 동생을 토닥여 주었다.


‘바보 같은 자식, 그 귀한 정보를 제 입으로 술술 나불대는구나.’


남궁진청은 가주전으로 향했다. 그런데 손님이 들어있었다. 진청은 마당에서 손님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척하며 귀를 가져다 대었다.


“가주님께서 저 좀 도와주셔야겠소이다.”

“대체 무슨 일로 국사에 바쁘신 도지휘사께서 누추한 제집을 찾아 주셨습니까.”


도지휘사 소방정.

대대로 이름난 장군을 배출해낸 명문가의 가주. 관과 무림은 불가침이라는 불문율이 있으나 서로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수 있기에 명문가끼리는 교류가 잦다.


다만, 남궁천과 소방정의 사이는 썩 유쾌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남궁천은 소방정의 가주 자리를 위협하는 차남 방수와 죽마고우이기 때문이다.


“도둑맞았습니다.”

“그게 무슨···?”


소방정은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모든 일을 숨기지 않고 털어놓았다.


“이미 포위망을 뚫고 도망친 것 같소이다. 다른 성에까지 함부로 군사를 움직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입니다.”

“운영이 있지 않습니까?”

“죽었소이다.”


소방정은 남궁천의 손을 꼭 잡고는 애절하게 말했다.


“도둑놈 좀 잡아주시오. 그리만 해주신다면 크게 보은하리다."


그러나 남궁천의 반응은 뜨뜻미지근 했다. 혐오에 가까운 눈빛이랄까? 지나다니는 바퀴벌레를 보는 듯했다.


“...”

“그러지 말고 사정 좀 봐주시오.”

“···알겠습니다. 알아보고 기별 드리지요. 에헴.”


도지휘사는 똥을 덜 닦은 듯 찜찜한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펴 가십시오.”


그 이야기를 모두 들은 남궁진청은 직감했다. 그 도둑놈이 천금장이라는 걸. 이미 아버지께서도 눈치채셨으리.


진청은 그 ‘홍삼’이란걸 찾기 위해 가문 창고를 열었다. 안쪽 금고에 고이 넣어두었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밖에 있었다. 


“도둑놈아 기다리라고 내가 간다.”


*


“홍삼 그놈 참 효과가 대단하더군. 단 한뿌리로 순식간에 6분지 1갑자를 얻었어. 과연 천금장주 그대가 가주님께 바칠 만해.”


마운은 여러 가지 뒤섞인 마음을 정리하며 침착하게 답했다.


“대체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듣지 못하겠소이다. 홍삼은 우리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이오. 도지휘사께서 도둑맞았단 사실은 금시초문이외다.”

“맞소이다. 우린 잘난 도지휘사 나으리 때문에 죽을 고비 넘기며 영파까지 가고도 허탕만 치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서 총관이 덧붙이려 장부에 기록된 손해를 보여줬다.


“늙어서 그런지 거짓말이 능숙하구먼. 감히 내 눈을 속이려 다니냐. 홍삼은 도지휘사의 고려인삼으로 만든 것이 아니냐!”


진청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탁상을 내리쳤다. 그 덕분에 위에 올려진 찻잔이 쏟아졌다.


“길게 말하지 않으마. 홍삼을 모두 내놓든지 아니면 무림맹으로 가자. 거기서도 그딴 말을 지껄일 수 있는지 두고 보자!”


무림맹이 어떤 곳인가. 강호를 어지럽히는 악적을 처단하기도 하지만, 대대로 조정에서 전해오는 수사 요령(?)을 전수받아 없는 죄도 묻는 기관이다.


‘내 죄를 내가 알렸다. 어서 진실을 고하지 못할까!’


얼굴 전체를 가로지르는 선명한 상흔을 가진 판관이 노하자, 형틀에 묶인 피고인은 벌벌 떤다.


‘아닙니다. 잘못 찾아오셨습니다. 저는 아무 죄도 없습니다.’

‘어허 네 이놈! 세 치 혀로 감히 무림맹을 능멸하려 드느냐. 여봐라 저놈을 매우 쳐라!’


퍽! 퍽! 퍽!


잠시 후, 곤죽이 된 사내는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제가 했습니다. 제발 죽여주십시오. 흑흑’

‘이제야 죄를 실토하는구나. 처음부터 그랬으면 서로 편하지 않았느냐. 죄인이 자백하였으니 증좌가 확실해졌다. 관련된 모두를 잡아들이라!’


무림맹은 그런 곳이다. 게다가 무림맹을 대대로 남궁세가가 꽉 잡고 있으니, 남궁진청이 마음먹고 건드리고자 하다면, 소림, 무당처럼 방귀깨나 뀌는 문파가 아니고서야 살아남기 어렵다.


“...”


꼴깍.


마른침만을 삼키는 소리만이 취재관을 가득 채웠다. 그때, 수완이 다시금 불쑥 끼어들었다.


“그래서 공자에게 남는 게 있겠소?”

“뭐?”


남궁진청은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다. 조각난 파편으로 순식간에 퍼즐을 완성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일 공자와 이 공자 중 차기 가주가 될 만한 사람이 누굴까? 목숨 빵을 뜨자면 단연 일 공자다.


비록 행동이 방자하고 무례하나, 달리 생각하면 담대하다. 절정의 무인이자 노부 앞에서 저리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아마 없다.


비록 오늘은 적이나, 우리 편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천군만마가 되어 주리라.


그렇다면 저 인간이 원하는 게 뭘까?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입에 달고 있던 홍삼이다.


수완은 남궁진청의 눈동자를 유심히 살폈다.


‘눈이 뒤집혔어. 일이 쉬워지겠군.’


무릇 무림인이라면 영약과 상승 무공을 담은 비급에 모든 걸 내어준다. 


수완은 생각을 발전시켰다. 무림맹 할아비가 당장 달려와 주리를 튼다 해도 천금장의 도움 없이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것.


수완이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주제넘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이것밖에 없으니까.


“남궁진청이라고 했나? 반갑소. 나 최수완이오.”


반대편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았다.


“천금장을 대표하여 남궁세가와 상호 협력을 제안하는 바요.”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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