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에서 돈놀이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세르초이
작품등록일 :
2024.07.24 17:37
최근연재일 :
2024.09.13 22:0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2,420
추천수 :
83
글자수 :
193,412

작성
24.09.06 22:00
조회
30
추천
1
글자
11쪽

32화. 본격적으로

DUMMY

'손자가 말하길, 상책은 싸우려는 의도 자체를 깨는 것이고, 차선책은 외교로 깨는 것이며, 하책은 성을 공격하는 것이다.'



해가 완전히 넘어간 저녁, 안개가 자욱한 황하강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그 안개 사이로 '天'이라고 쓰인 돛을 단 상선 한척이 유유히 내려온다. 귀신에 불처럼 일렁이는 횃불이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수완은 마을 사람들 중 가장 호들갑이 심한 아낙 하나를 골라 말을 전하도록 했다.


‘큰 일났네 룡이, 마을 사람들 전부가 납치 되었어.'

'차근차근 말씀해 보십시오.'

'룡이, 제발 그 뿔난 마귀를 만나주게. 오늘 밤 자네와 결판을 본다고 했어. 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수적 전부가 그 사실을 눈치 채도록, 마을 사람들의 소지품을 인근 이곳저곳에 걸어두었다.


부하들은 타들어 가는 듯한 얼굴로 양룡을 바라봤다.


“형님, 잘하고 오셔야 합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아무 걱정 말거라. 형을 못 믿냐? 형이 다 생각이 있어. 이번에도 아무 일 없을 것이다.”


양룡 역시 애간장이 녹는 듯 했다. 그러나 덤덤한 척 행동했다.


노를 저어 안개 속으로 나아갔다.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해야하나.

몇이나 될까.

잡은 인질과 바꾸자고 해볼까.

정말로 마을 사람들을 다 죽이면 어쩌지.

돈도 없는데. 이럴 때 통이가 있었더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상선이 보였다. 배에는 사내 한명만 타고 있는 듯했다.


순간, 가슴 깊숙이에서 분노가 화르르 끓어올랐다. 한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하나밖에 없던 동생 양통의 목을 베어 손에 들고 흔들던 모습, 눈에 선하다.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하고, 노를 지렛대 삼아 상선 위로 튕겨 오르며 일 합에 원수의 목을 노렸다. 다행히 남자가 아직 자신을 보지 못한 것 같다.


“네 이놈! 그러고도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성싶더냐? 넌 오늘 내 손에 죽는다.”


하지만 남자는 너무도 간단하게 피해버렸다. 양룡은 포기하지 않고 노를 창처럼 휘둘렀다.이번에도 남자는 피하고 오히려 양룡의 품으로 파고들려 했다.


양룡은 재빨리 앞차기를 찼다. 그러자 남자는 기괴한 몸놀림을 선보이며 발목을 잡더니 비틀어 버렸다.


으드득!


“읔”


뼈 어긋나는 소리와 양룡의 고통스러운 외마디가 황하강에 울렸다.


양룡은 겨우 발을 빼내고 남자가 있던 곳을 향해 다시 노를 휘둘렀다. 하지만 어둠과 안개 때문인지, 아니면 다친 다리 탓인지 이번에도 헛손질만 빈복했다.


“이놈, 어디로 도망친 것이냐! 네 놈도 사내라면 당당히 맞서라.”


다시금 기척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그럴 때마다 노를 휘두르고 찔렀다. 아픈걸 티내지 않으려 평소보다 과감하게 몸을 움직였다.


그 탓에 호흡이 거칠어 졌다.


헉헉...


다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 했는가? 조금 피곤해 보이는데 잠시 숨을 고르는 게 어떠한가.”


양룡은 상대에 수작에 넘어가지 않으려 입을 사납게 놀렸다.


“뭐 하자는 것이냐! 내가 네놈 혓바닥에 놀아날 듯싶으냐.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결판을 내자! 이 후레자식아.”


상대는 이번에도 여유롭게 대답했다.


“싸우자니? 말을 잘못 전달 받은 모양이군. 이야기하자고 불렀더니 왜 혼자 힘 자랑인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생각해보니 상대에 옷깃에조차 닿지 못한 듯 싶다.


‘설마 저놈이 고수라도 된단 말인가? 그럴 리 없는데, 그날 밤에 보인 모습은 분명 평범했는데.’


양룡은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닥치거라! 천벌을 받아도 모자랄 놈! 천금장은 무당의 무술을 배웠다고 들었는데, 납치같은 비겁한 술수나 쓰다니. 어른들을 당장 돌려놓지 못할까!”


다시 노를 두손으로 꽉 잡으려는 순간, 이번에는 남자가 선공해 들어왔다. 마치 안개와 횃불이 만들어 낸 그림자 뒤로 모습을 감췄다가 갑자기 튀어 나타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양룡도 침착하게 맞서려 했다. 힘껏 창을 내지르려 했다.


그런게 팔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내려다보니, 어느샌가 남자가 팔목을 붙잡고 있었다. 손을 빼내려 했으다. 어찌나 힘이 센지 쉽지 않았다.


“이제보니 사술을 익힌 놈이로구나.”

“사술은 무슨.”


잠깐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러다가 양룡의 발이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다.


쿵!


눈을 꼭 감았다. 양룡은 생각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구나··· 미안하다 동생들아. 형이 무능하여 이리 되었구나. ’


하지만 남자는 양룡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이야기하자고 하지 않았나.”


양룡은 어리둥절하여 눈만 껌뻑이자, 남자가 친절하게 이끌어 주었다.


거기에는 호리병과 접시가 놓여있었는데, 남자가 먼저 호리병을 들더니 벌컥벌컥 마셨다. 마치 독이 들어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


“크~ 좋군.”


그리고는 앞에 놓인 접시에 젓가락을 가져갔다.


“음~ 짭조름하고 담백하네. 술안주로 딱이야.”


남자가 호리병을 건네며 말했다.


“나는 최수완이라 하네. 성명이 양룡이라지. 좋은 술을 어렵게 구했으니, 들면서 천천히 이야기하지.”


양룡은 엉거주춤하고 있다가 호리병을 받아 똑같이 마셨다. 새파랗게 어린놈에게 밀리기도 싫고 두려움을 보일 수 없었으니 말이다.


“크~”


시의적절하게 남자가 접시를 앞으로 밀어줬다.


“요리도 맛보시구려. 솜씨가 좋아.”


양룡은 그제야 접시에 잉어조림이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납작한 무가 가지런히 놓여 있고, 쪽파로 푸른색을 더한 모습이 참으로 예쁘다. 미간을 찌푸린 양룡은 한 젓가락을 집어 입에 넣었다. 알싸하고 달콤한 향이 입안을 가득 메운다.


그런데 양룡의 미간은 이전보다 더 깊게 구겨졌다. 심장이 마치 터질 듯 두근거린다. 불안한 마음을 이겨보자 욕지기를 내뱉었다.


“이 개자식이!”


남자는 웃으며 대꾸했다.


“귀신이 따로 없어. 단박에 맞추는군. 자네 어머니가 만드신 걸세. 솜씨가 대단하셔.”


의심이 사실이 되자, 양룡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려 술을 한 모금 더 마셨다.


남자가 말했다.


“그냥 마시면 재미없지? 내가 재미난 구경거리도 준비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상선은 계속해서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었다.


“이, 이놈 당장 배를 멈추지 못해.”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령님, 제발 우리 애 무사하게 해주세요.”

“옥황상제님, 저는 살 만큼 살았습니다. 제 목숨을 거두시고 우리 애들 무사하게 도와주세요.”


양룡은 자기 귀를 의심하며 고개를 쭉 빼고 눈을 찡그렸다. 횃불이 타오르면서 그 불빛 속에 얼굴들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마을 주민들이었다. 돌무더기 앞에서 간절히 빌고 있었다.


‘대체 뭐 하자는 거야. 설마 내 눈앞에서 저 선량한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겠다는 건가? 젠장, 이 자식 진짜 마귀가 따로 없어.’


다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생이라며... 미안하게 됐네. 늦었지만 장사라도 잘 지내주게나.”


정신을 차려보니 앞에는 목함 놓여져 있었다. 양룡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목함을 열었다. 양통의 잘린 머리가 보인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제는 현실인지 꿈인지, 이승인지 저승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다. 내 몸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고, 그저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목숨이라도 내놓고 싶은 심정이다.


자신을 최수완이라 소개한 남자의 모습 뒤로 횃불이 일렁이는게 보인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모든 상황이 남자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 난 듯 하다.


‘이거야말로 부처님 손바닥이로 구나.’


양룡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입을 열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제 목을 내놓으라고 하시면 그러겠습니다. 제발 한 번만 선처해 주십시오.”


남자는 한없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네 이야기를 들려주겠나?”



32화. 본격적으로


스무 가구쯤 모여 사는 작은 마을, 그 마을 사람들은 밭농사를 짓고, 황하강에서 물고기를 낚으며 부족하지만 만족하며 살아갔다.


하지만 북적인이 중원을 차지하면서부터 큰 어려움이 생겼다. 당시에는 세리(稅吏)가 있었는데, 그는 같은 한족이면서도 북적식으로 머리를 깎고 포악하게 행동했다.


그날은 세리가 양씨 형제 집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아지매, 이걸로는 부족하다고.”

“나리, 정말 집에 이것뿐입니다.”

“그래? 그럼 다른 걸로 내도 되는데. 과부 된 지 오래라며.”


세리는 양씨 형제 어머니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희롱했다.


“에구머니.”


하지만 어머니는 희롱을 당하면서도 꼼짝하지 못했다. 이 마을에서는 세리 말이면 안 될 일도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광경을 양룡, 양통이 보고야 말았다. 


“이 개자식 죽어!”


양룡은 지게를 내팽개치고 지팡이로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세리가 데리고 다니던 건달들을 포함하여 순식간에 다섯놈을 해치웠다. 


사실 양씨는 한때 이 일대를 주름잡았던 신창양가의 방계 혈통이었는데, 가문 사람 대부분은 북적에 맞서 싸우다 모두 죽고, 겨우 명맥만 이어가고 있었다.


양씨 형제는 분노에 가득 찼다. 그간 당한 게 어머어마 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도 모두 찬동했다. 양룡이 수장이 되었고 마을 청년들은 수하가 되기를 자처했다.


몽둥이, 도끼, 괭이, 낫 등을 들고 그간 악감정을 품었던 사람, 북적의 것이 조금이라도 묻은 사람들은 도륙하고 다녔다.


이미 이판사판 공사판이었다.


오늘도 누굴 잡 족칠까 고민하던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강을 따라 배 한 척이 마을로 들어왔다. 배에 탄 사람들은 늙은 장수처럼 보였다. 번쩍번쩍 빛나는 갑주을 입고 칼을 차고 있었다.


“큰일입니다, 형님. 관군이 우릴 토벌하러 왔나 봐요.”


양룡이 수하들을 데리고 도망치려고 하는데 갑자기 늙은 장수가 광간단을 발견하자, 오히려 화들짝 놀라며 목숨을 구걸했다.


“이 돈 다 줄 테니, 제발 보내주시게. 목숨만은 살려주게···”

“???”


그 순간 깨달았다.


세상이 바뀌었음을,

그리고 새로운 밥벌이를.



“그런 사연이 있었구만 그간 힘들었겠어, 두목.”


이미 개방도들에게 사연을 들어 알고 있었으나, 양룡에게 공감한다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수완은 서글픈 미소를 나눴다. 


“말뿐이라도 고맙습니다. ”


이미 여러가지 혼란스러운 일을 겪은 양룡은 바람빠진 인형처럼 한쪽 귀퉁이에 축쳐져 기대어 앉았다. 게다가 술, 어머니, 밤, 마을 사람. 수완이 준비한 여러가지 감정을 들쑥날쑥케하는 요소들까지 맞닿고 있으니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수완이 물었다.


“듣기로는 이전까지는 통행세나 받았다고 들었네만.”

“그랬지요. 대인”


이제는 꼬박꼬박 존대를 했다.


“그 놈만 찾아오지 않았어도. 모든게 다 이놈에 욕심 탓입니다.”

“응? 그게 무슨 소린가.”


수완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생각해보니 양룡에 입에서 천금장이라는 말도 나왔던 듯 싶다.


“...설마?”

“네, 대인의 생각이 아마 맞을 겁니다.”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양룡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작가의말

선호작 눌러주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림에서 돈놀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추석 휴재 안내(월~ 수, 16~18) 24.09.12 3 0 -
공지 평일 밤 10시에 만나요~ 24.07.29 33 0 -
37 37화. 기연 24.09.13 11 1 11쪽
36 36화. 기연 24.09.12 17 1 12쪽
35 35화. 기연 24.09.11 22 1 11쪽
34 34화. 기연 24.09.10 25 1 11쪽
33 33화. 기연 24.09.09 29 1 11쪽
» 32화. 본격적으로 24.09.06 31 1 11쪽
31 31화. 본격적으로 24.09.05 26 1 11쪽
30 30화. 본격적으로 24.09.04 30 1 11쪽
29 29화. 본격적으로 24.09.03 32 1 12쪽
28 28화. 본격적으로 24.09.02 32 1 12쪽
27 27화. 역사 24.08.30 38 1 12쪽
26 26화. 상벌 24.08.29 39 1 12쪽
25 25화. 개판 24.08.28 39 1 12쪽
24 24화. 개판 24.08.27 42 1 12쪽
23 23화. 개판 24.08.26 43 2 11쪽
22 22화. 개판 +1 24.08.23 62 3 12쪽
21 21화. 개봉 24.08.22 45 3 12쪽
20 20화. 개봉 24.08.21 45 3 12쪽
19 19화. 개봉 24.08.20 50 3 12쪽
18 18화. 개봉 24.08.19 54 3 12쪽
17 17화. 이게 뭡니까 24.08.16 54 3 11쪽
16 16화. 이게 뭡니까 24.08.15 59 3 12쪽
15 15화. 이게 뭡니까 24.08.14 57 3 12쪽
14 14화. 이게 뭡니까 24.08.13 56 2 11쪽
13 13화. 손해만 보고 돌아갈 수는 없지 24.08.12 56 3 11쪽
12 12화. 손해만 보고 돌아갈 수는 없지 24.08.09 59 3 11쪽
11 11화. 손해만 보고 돌아갈 수는 없지 24.08.08 70 4 12쪽
10 10화. 손해만 보고 돌아갈 수는 없지 24.08.07 72 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