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에서 돈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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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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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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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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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개봉

DUMMY

“미친놈이세요?”

“어허, 수완이. 어찌 말이 그리 거칠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자한테 대뜸 그러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수완은 장평의 저돌적인 움직임에 미간을 찡그렸다. 불쾌해서 그런 건 아니고 안타까워서 그렇다.


사연은 이랬다.


수완이 귀부인을 상대로 한창 판매에 열을 올리던 때, 장평은 평소 연심을 품고 있던 설화에게 개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안녕.”


얼굴이 붉어진 장평은 설화 주변을 맴돌며 한마디라도 나누려 애썼다.


맑은 사슴 같은 눈과 복숭아처럼 뽀얀 피부를 가진 그녀는 천금장의 점원으로, 장평은 처음 본 순간부터 그녀에게 반했다.


‘어쩜 저리도 고울까. 선녀가 분명해.’


하지만 그녀는 장평의 마음을 번번이 무시했다. 그것도 개무시.


“아, 왜 또 왔어요. 그렇게 한가해요?”

“그 여린 팔로 어찌 무거운 솥뚜껑을 들려고. 이리 줘.”

“아이참! 장 부장님. 왜 이러세요. 이거 놓으세요.”


설화는 솥뚜껑이 무거워 도움받아도 좋을 상황이었지만, 사나운 눈매로 밀어내기 바빴다.


“장 부장님, 그만 좀 하세요. 장 부장님이 자꾸 이러시니까 사람들이 수군대잖아요.”

“미안...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리되었네.”


장평은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었다.


“웃지 마세요. 한 번만 더 그러시면 장주님께 말씀 드릴 거예요.”


이 모습을 지켜보던 영업부장 양종철이 끼어들었다.


“설화야, 그만 우리 장 부장님 마음 받아주라. 저 양반이 외모는 우락부락해도 마음이 여린 분이야. 그뿐이랴? 명실상부 장주님 오른팔인걸. 장 부장님만 꽉 잡으면 네년에 드러분 팔자도 피는 거라니까.”

“오른팔인지 오른발인지 저는 모르겠고, 제 인생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좀 꺼주세요. 자꾸 이러시면 그만둘 수밖에 없어요. 그걸 원하세요?”


설화는 분위기를 싸늘하게 하고 떠나갔다.


“저저저 싸가지 없는 복에 겨운 기지배. 쯧쯧쯧”


한동안 그녀를 향한 연심을 꺾어야 했다. 그녀를 못 보는 건 너무나도 끔찍하니까. 하지만 홍삼 때문일까? 장평 안에서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후~ 정말 미치겠어. 요즘 따라 왜 이렇게 예뻐 보이는 거지.’


그녀의 싱그러운 미소는 자신에게만 보여줬으면 좋겠고. 접객임을 알지만, 다른 남정네들에게 보이는 눈웃음을 볼 때면, 당장 쫒아가서 그들을 혼내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내린 결론,


‘절대 포기 못해.’


“형님이 설화 누님에게서 마음을 얻지 못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수완이 물었다.


“그야 내가 무인이라 그런 거 아니야? 설화는 평범한 남자가 좋다고 했어.”

“정말 그 이유 때문일까요?”

“그렇겠지. 자기 입으로 그랬는데.”


하지만 수완의 생각은 달랐다. 평범한 남자가 좋은 게 아니라 장평과 반대되는 사람을 찾다 보니 평범이라는 단어가 나왔다고.


“그럼 포기해야겠네...”


장평은 고개를 떨구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다른 여자 찾아보시죠. 제가 보기엔 형님이 아까워요.”

“아니야··· 난 여인들에게 인기가 없어. 그리고 설화 아니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똑 떨어질 것처럼 촉촉해졌다. 문득, 그 얼굴에서 수완은 자신의 과거가 겹쳐 보였다.


전생의 수완은 그다지 훌륭하지 못했다. 다리 병신에 만두귀, 얼굴은 고릴라를 닮았고 평생을 남자들 사이에 살아 투박했다.


‘지우가 아니었으면 평생 혼자 늙어갔겠지. 그런 내가... 돈 몇 푼에... 정말 못난 놈...’


수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우님, 갑자기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튼, 결정을 하세요. 포기하실 거면 포기하시고, 그렇지 않다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어, 어떻게? 방법이 있는 거야?”


장평은 수완의 두손을 꼭 잡으며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남자와 여자는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남자는 사랑에 빠지면 곧장 그녀에게 달려가서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내 애를 낳아도.’


하지만 여자는 다르다. 이 남자가 믿을 만 한 지, 나를 내팽개칠 사람은 아닌지 면밀히 살핀다. 현대 학자들은 그러한 특성이 번식과 관련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남자는 다수의 여성과 관계를 맺어 유전자를 남기려 하고, 여자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동안 자신을 돌봐줄 배우자를 찾기 때문이라는 설이다.


그리하여,


‘우선 친해져야 해.’


지우의 말에 따르면 여자는 달콤한 것에 약하다. 단순한 말이나 음식에도 쉽게 마음이 열린다. 수완은 이 점을 활용해 설화의 식욕을 자극하기로 했다.


‘역시 빵이지. 대한민국에도 빵순이 천지니까.’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남자의 성욕과 여자의 식욕은 비슷하다고. 제가 꼭 형수님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지, 진짜로?”


장평의 눈이 번쩍 떠졌다.


“우선 이 벽돌 좀 날라주세요.”

“어, 어.”

“근데 뭐 만드는 거야?”

“화덕이요.”


화덕이 있으면 빵을 만들 수 있고, 겨울에는 고구마도 구워 먹을 수 있다. 이 시대에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요리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다른 남자와 차별화할 수 있는 장평의 비밀 무기가 되어 줄 것이다.


“요렇게 저렇게 만들어 주세요.”

“걱정 마. 맡겨두라고.”


비 올 때도 쓸 수 있도록 땅에서 무릎 정도 띄우고 그 위에 벽돌과 흙, 지푸라기를 섞어 이글루와 같은 형태를 잡아주고 굴뚝을 더해 마무리했다.


처음 만들었음에도 모습이 제법 훌륭했다. 이 시대에 사람들은 집 한 채 정도는 스스로 만들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님, 솜씨가 대단하십니다.”

“당연하지. 이 집도 내 손으로 하나하나 올린 거야. 으하하”

“그럼 제 집도 그렇게?”

“조금만 기다려 양지바른 곳에 뚝딱 지어줄 테니.”


며칠 후


“진흙이 다 마른 거 같은데.”

“···좋습니다. 시작해 볼까요?”

“그나저나 참으로 비싼 재료만 들어가네?”

“어쩔 수 없죠. 천금으로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걸 훔치는 데 그 정돈 써야죠.”

“하긴, 설화만 내 여자로 만들 수 있다면...”


계란, 설탕, 밀가루, 우유, 생과일에 대장장이에게 사정사정해서 만들어 낸 거품기까지. 특히 설탕과 우유를 구해오는 데만 거의 보름 치 급료를 사용했다.


“가봅시다.”


수완은 달걀을 흰자와 노른자로 나누고, 흰자에 설탕을 넣어 휘젓기 시작했다.


“이렇게 원을 그리며 쉬지 않고 휘젓는 겁니다. 자, 해보세요.”

“이, 이렇게?”

“오! 형님 대체 어찌 그리 잘하시는 겁니까?”


장평은 머랭 치기에 천부적이었다. 그냥 잘하는 수준이 아니라 기계라도 불러도 좋을 만큼 빨랐다.


“이거? 별거 있나? 태극권을 수행한다 생각하고 내공을 담아 돌리는 게 전부인데.”


장평은 거품기를 쥔 손만 돌리는 게 아니라, 바가지까지 함께 돌리고 있었다. 내공을 담아 양손으로 함께 돌리니 순식간에 단단하고 쫀득한 머랭이 완성되었다.


‘무공이 자꾸 이상한데 도움 되네. 하하’


다음은 머랭에 밀가루와 계란 노른자를 잘 섞어 틀에 붓는다.


“잠깐만 쓰고 가져다줄게. 양 부장.”

“그거 파는 건데 가져가면 어떻게!”

“씀! 맞을래?”

“가져가셔요. 장 부장님.”


틀은 대장간에서 대놓고 슬쩍 한 거다.


수완은 불을 붙여 화덕 안을 뜨겁게 달군 후, 그 안에 반죽 틀을 넣었다.


솔솔~


그러자 은은하게 익어가는 달콤한 냄새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일 다경정도만 더 익히면 완성입니다.”


고소하게 익어가는 빵 냄새에 침을 꿀꺽 넘어가게 한다. 수완은 설화의 환한 미소를 기대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빵을 꺼냈다.


“다 된 건가?

“아직입니다. 이거나 다시 돌려주세요.”

“어, 어.”


장평식 수제 생크림이 왔어요~


수완은 공기층을 머금은 폭신한 빵에 생크림을 바르고 그 위에 생과일을 올려 마무리했다.


“완성입니다. 이걸 가지고 설화 누님께 가보시죠. 분명 마음이 조금이나마 열릴 겁니다.”

“지, 진짜지?”

“대신, 한 번만 만나달라느니, 사랑한다느니 그 딴말은 하지 마세요. 그냥 담담하게 네 생각나서 사 왔다. 알았죠.”


수완은 장평이 할 말까지 일러주었다.


“그 정도로 될까? 사내라면 ‘넌 내 여자야.’ 라고 당당하게 말해야 하는 거 아니야?”

“싫으시면 제가 직접 설화 누님에게 드려 볼까요? 열리나 안 열리나?”

“아, 알았다고 알았어. 시키는 대로 하마.”


장평은 황급히 수완에 손에 든 빵을 빼앗았다.


“아우님, 그나저나 이거 이름이 뭐야?”

“열 개에, 빠질 익. 개익(開溺)이라 하옵니다.”



19화. 개봉


설화는 콧노래를 부르며 먼지를 털고 있었다.


‘날씨 참 좋아. 하늘도 맑고 단풍이 참 예뻐.’


그런데 시장에 나온 꽃다운 처자들이 웃는 소리가 들리자, 설화의 얼굴에 슬며시 그늘이 드리웠다.


‘저 단풍잎이 떨어지면 또 한 살 더 먹겠지. 내 인연은 대체 어디에...’


여자 나이 22살. 스물이 되기 전에 시집을 가는 게 일반적이었으니, 설화는 이미 혼기를 한참 넘긴 노처녀다. 게다가 부모님도 없고, 외모마저 평범했다.


문득 실없는 소리나 하던 장 부장이 떠올랐다.


‘피- 너무 가벼워. 진심인지도 모르겠어. 장주님 오른팔이 나 같은 여자를 왜 좋아하겠어. 아마도 그냥 하룻밤 즐겨보겠다는 심산임이 틀림없어.’


그때였다. 장평이 가게 앞에 나타났다.


‘또 사랑한다느니 헛소리나 지껄이겠지.’


그런데 이번에는 장평이 평소와는 달리 아무 말 없이, 예쁘게 수놓아진 보자기에 싸인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네게 맛보여 주려고 구했어. 개익이라는 건데 입 심심할 때 먹어봐.”


설화는 여느 때처럼 고개를 팽 돌렸다.


“가져가세요.”


그러나 장평은 더 말하지 않고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엥?? 말하다 말고 간 거야?”


시간이 흘러 퇴근 시간이 되었다.


“아이고, 뭔 손님이 이리도 많아. 힘들고 허기지다.”


설화는 낮에 장평이 주고 갔던 개익이란 정체 모를 음식이 생각났다.


“대체 뭐길래.”


설화는 예쁘게 수 놓아진 보자기를 풀었다. 안에서 질 좋은 목함이 나왔다.


‘돈 좀 썻나본데?’


설화는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목함을 열었다.


팡!


어떤 장치를 해놨는지 코스모스 꽃잎이 흰 덩어리 위에 아름답게 흩뿌려졌다.


‘어머...’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음식은 눈으로 한번, 코로 한번, 입으로 한번 먹는다고 했던가.

구름처럼 폭신한 무언가에 꽃잎과 과일들이 조화롭게 자리 잡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생크림을 살짝 찍어 맛을 봤다.


!!!


‘뭐가 이리 부드러워. 단맛은 또 뭐고.’


설화는 급히 젓가락을 찾아 제대로 한 움큼을 입안에 밀어 넣었다.


‘부드럽고, 고소해. 살랑살랑 따스한 봄바람이 입안을 가득 채우는 느낌이야.’


따져보지 않아도 평범한 음식은 아니라는 건 한 입만 먹어도 알 수 있었다. 천하를 얻은 황제조차도 맛보지 못했으리라 확신할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설화는 순식간에 개익 한 판을 먹어 치우고는 한동안 텅 빈 목함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천금장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취재관으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장 부장, 몸은 괜찮은가?”

“멀쩡합니다. 총관 어른.”


장평은 어깨를 휘휘 돌리며 건재함을 알렸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최수완이라고 합니다.”

“이야기 들었네. 이번에 장주님과 장 부장의 목숨을 구했다지. 식구가 된 걸 환영하네. 하하하”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서 총관.

공동 창업자라 불릴 만큼 마운과는 어릴 때부터 막역한 사이. 비록 형제는 아니었으나 형제만큼 가깝고, 명실상부 천금장의 이인자이다.


그때, 마운이 밝은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 고얀 놈들! 코빼기도 안 보이고 잘들 있었냐? 하하하.”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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