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에서 돈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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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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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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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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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상벌

DUMMY

앞마당에 설치해 둔 연습용 목인형 앞에 수완이 우뚝 서 있었다. 한참 동안 목인형을 노려보다가 갑자기 검을 빼들고, 접비봉침을 날렸다.


“으얍!”


그러나 수완의 목검은 어찌 된 일인지 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목인형을 살짝 빗나갔다. 그럼에도 당황하지 않은 수완은 반대손을 뻗어 목인형의 목을 잡아챘다. 안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바닥에 내리찍어 마무리하는 시늉을 했다.


“헉헉··· 아직 멀었어.”


수완은 가쁜 숨을 내쉬며, 도지휘사를 단칼에 베지 못했던 그날을 떠올렸다.


접비봉침은 상대를 단번에 도륙할 수 있는 훌륭한 기술이었다. 하지만 실패했을 때는 큰 문제가 있었다. 그동안 아무런 대책도 없이 몸을 훤히 드러냈으니, 그만큼 반격을 당하기 쉬웠다. 무인으로서 있을 수 없는 실수. 바보같이 당황하여 복부에 권법을 크게 허용한 것도 모자라, 검까지 놓쳐버렸던 일을 떠올리며 수완은 부끄러움에 몸서리쳤다.


생사의 기로에 서 있었던 그 서늘함이 아직도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수완은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를 계속해서 연구했다.


“형님, 좋은 방도가 없겠습니까?”

“좋은 방도라··· 그냥 이렇게 돌려 치면 되는 거 아니야?”


장평은 유려하게 검을 돌려 사선으로 베어 보였다. 매끄럽고 강력해 보인다.


“제가 한번 해볼테니 형님께서 한번 상대해 주시겠습니까?”

“그래, 오너라.”


쉭~, 챙!


수완이 장평이 알려준 대로 공격을 펼쳐 보았다. 하지만 이미 투로를 알고 있어서인지 너무 쉽게 장평의 검에 막혔다. 오히려 연계하여 추가 공격을 펼치는 것보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두세 발짝 물러서는 것이 더 나아 보였다.


“왜 그럴까요? 단 한 번도 연계기를 성공하지 못했어요. 이러면 쓸모가 제한적인데···”


뒤에서 따라오던 마운이 불쑥 끼어들었다.


“크~ 좋다. 별거 있냐? 네 놈이 못난 탓이지. 하하하.”


수완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마운의 말이 틀려보이지는 않았다. 수완이 가진 무위 이상으로 수준 높은 상대의 모가지를 단칼에 베려는 것은 욕심인 듯 하다. 그게 세상사는 이치에 맞으니.


그러나 수완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지금까지 자신이 상대를 어떤 방식으로 제압해왔는지를 떠올랐다.


‘나에게 맞는 방식이 따로 있었던 건 아닐까? 굳이 검법으로만 제압할 필요는 없잖아. 내가 무당의 직계 제자도 아니고.’


수완은 이미 자기 것으로 만든 유도를 접목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이쪽 무림에는 잡아 던지고 꺾는 유술이 없다. 물어보니, 굳이 병장기가 있는데 그런 잡기술이 왜 필요하냐고 대꾸한다. 


‘옳거니, 이거다. 어차피 같은 사람에게 두 번 쓸 기술은 아니니까. 크크크.’


딱! 딱!


한참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데 장평이 인상을 찌푸리며 집안으로 들어왔다.


“늦으셨습니다.”

“어, 요즘 일이 좀 많아서. 연습하고 있었어?”

“네,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상대에게 통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금방 날카로워질 거야.”

“형님, 저녁 식사 아직이시죠? 식사 금방 가져다드릴게요.”


수완이 부엌으로 향하려 했다.


“저기, 수완이.”

“네?”


장평이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이내 마음을 굳힌 듯 입을 열었다.


“오해하지 말고 듣게, 아우님.”

“말씀하십시오.”


장평은 품 안에서 서신 한 장을 꺼내어 건넸다.


“이게 뭡니까?”

“읽어보시게.”


수완은 봉투에 든 서신을 꺼내 펼쳤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홍삼 건으로 상벌위원회를 개최한다.』


‘드디어 한몫 챙겨주시려나?’


“나이스!”


수완은 소리쳤다. 도파민이 뿜어져 나왔다.


“나? 뭐시기?”

“붙잡을 나(拏), 이로울 이(利), 빼어날 수(秀)를 쓰는, 나이수라 하는 것입니다. 한 번 해보십시오. 주먹을 쥐고 위로 쳐올리며 복부에 주먹을 꽂아넣듯이 지르는 겁니다. 이렇게요. 하하!”

“요즘 인기 있는 거야?”

“하하, 그럼요.”



26. 상벌


다음 날 아침 일찍 수완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상벌위원회에 출두했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결과만큼은 천금장에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으니 큰 상을 받을 게 분명하다.


“상으로 뭘 주실까요? 장주님 배포가 크신 것 같은데. 히히.”


장평이 말했다.


“아우님,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시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야.”

“걱정 마십시오. 저 그 정도로 양심 없지는 않습니다. 그냥 장주님께서 소인의 노고 정도 알아주시면 만족합니다.”

“그래... 하하하.”


장평은 쓴웃음을 지었다.


‘설마 질투하는 건가?’


취재관 앞에 서니 행정원이 하나가 가로막았다.


“최수완이?”

“그렇습니다.”

“잠깐 여기서 기다려. 장 부장님은 이만 돌아가 일 보시면 됩니다.”

“아닐세. 앞에서 기다림세.”

“아닙니다, 형님. 제가 애도 아니고 바쁘실 텐데 일 보시죠.”


수완은 장평의 등을 떠밀었다.


“...흠, 그래도 내가 자네 곁에 있어야...”

“제가 설마 입 싹 닫겠습니까? 히히.”


행정원이 취재관 안으로 들어가 수완이 도착했음을 알리니 문이 열렸다.

그런데 분위기가 조금 묘했다. 기물은 다 어디로 치웠는지, 정 가운데에는 의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으며, 그 앞의 긴 탁상에 마운과 서 총관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원래 분위기가 이렇게 무겁나?’


고개를 갸우뚱했다.


“앉게나.”


서 총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야기는 들었는가?”

“홍삼 건에 대해서 정리하려 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렇네. 원래라면 감찰원들이 상황을 서술해야 하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총관인 내가 직접 진행하겠네. 동의하나?”


‘감찰...이요?’


수완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알겠냐고!!!”

“네, 그리하십시오.”


‘···흠.’


서 총관은 딱딱한 어조로 형식적인 질문을 했다.


“최수완, 소속 미정이고. 본인 맞는가?”

“맞습니다.”

“지금부터 상황을 소상히 서술하겠으니 틀린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도록.”

“그러겠습니다.”


마운은 눈을 감았고, 서 총관은 옆에 놓인 두루마리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귀군(貴君)은 우연히 장주를 만나 천금장에 합류하였고, 고려인삼 매입 행렬에 참가하였다. 주어진 역할은 장주님을 보조하는 것이고, 이에 필요한 기술인 태극심법, 제운종, 태극검법을 사사받았다···(중략)”


서 총관은 거의 한 식경에 달하는 시간 동안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서술했다. 그런데 끝으로 갈수록 내용이 조금 이상해졌다.


“귀군이 도둑질을 종용하였고, 그 결과로 천금장이 한때 크나큰 위기에 빠졌다. 뿐만 아니라 천금장의 큰 자산이라 할 수 있는 홍삼을 임의로 반출하였다.”

“저, 저기요? 총관 어른?”


수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란 말인가.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면 보따리 내놓으란다고.


“어허! 어디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말을 끊어? 어찌 이리도 건방진가. 자네에게도 변론의 기회를 줄 것이니 잠자코 기다리거라!”


서 총관은 도끼눈을 뜨고 수완을 꾸짖었다.


“사실을 논하신다면서 어째... 아닙니다. 나중에 한꺼번에 말씀드리지요.”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이상한 사실관계 확인 작업이 이어졌다.


“이상으로 마치겠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거든 어디 지껄여 보거라.”


수완은 눈을 감았다. 저 괴팍한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당장이라도 주먹을 꽂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울컥울컥 올라왔기 때문이다.


“이놈! 지금 무엇을 하는 게냐! 아까는 말을 끊더니 이젠 묵언수행이냐!”


그러거나 말거나, 수완은 자신의 처지에 대해 곰곰이 따져보았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천금장과의 결별이었다. 그러나 바로 접었다. 무림에 조금은 익숙해졌다고는 하나 아직 집도 절도 없는 거렁뱅이 신세이다. 게다가 자칫 천금장에 억하심정을 불러일으키게 했다가는 보복당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했다. 사람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닌 세상이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무기는 무엇인가.’


수완은 한참을 생각하다 눈을 떴다.


“장주님께서도 한 말씀 해주시죠. 같은 생각이십니까?”


마운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근엄하게 말했다.


“따르라.”


수완은 깊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답했다.


“그리하겠습니다. 다시는 경거망동하지 않겠습니다. 다시 한번 사죄드립니다.”


의자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포권을 취했다. 그렇게 상벌위원회가 끝이 났다. 상은 없었다. 오로지 벌만 있을 뿐이었다.


『반 년치 급여의 5할 감봉』


아직 급료가 정해지지도 않았는데 감봉부터 받게 되었다. 서 총관의 말이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당장이라도 내치고 싶지만, 장주님과의 정을 생각하여 자비를 베풀겠다.”


수완은 터덜터덜 취재관 문을 열고 나왔다.


“고생했다.”


장평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과를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대충은.”


사실 장평은 예상하고 있었다. 말이 상벌위원회지, 단 한 번도 상을 주기 위해 열린 적은 없다. 왜냐하면 큰 상은 보통 마운이 그 자리에서 직접 내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절차를 밟아 논의할 만큼 복잡한 사안이라면 보나마나 벌밖에 없다. 상은 마음대로 줘도 되지만 벌만큼은 즉흥적으로 줬다가는 크게 원망을 듣게 되니, 최소한의 절차라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총관 어른께서 널 밉게 보시는 모양이구나. 왜 그리 쫌스러우신지.”


장평이 씁쓸하게 웃었다.


개척자와 수호자, 보통 창업주는 도전적이고 이인자는 보수적이다. 도전적인 일은 큰 이익을 가져다주지만 반대로 한 번의 실수에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 반대로 보수적이기만 해서는 사업을 키워나갈 수 없으니, 마운과 서 총관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천생연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직원들 입장에서는 둘의 성향이 손바닥 앞뒷면처럼 완전히 다르니 곤란한 경우가 많다. 똑같은 행동을 해도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따로 물어보진 않았지만, 마운에게는 수완의 행동이 이쁘게 보였을 것이다. 그랬으니 모든 작전을 승인했겠지. 반면 서 총관에게는 근간을 송두리째 앗아갈 재앙처럼 느껴졌으리라.


수완은 속으로 한탄을 했다.


‘진청이 놈이 워낙 상황을 휘어잡는 바람에 큰 실수를 했어. 그나저나 남궁진청, 대체 그 놈의 정체가 뭐지?’


생각해보니 말투며 태도며 수완이 알던 그 인간과 묘하게 닮아있다.


깨끗이 다려입은 옷차림,

늘 풍겨오던 민트향,

전체를 정확히 꿰뚫어보고,

교묘하게 판을 조작하는 솜씨,

거기에 모두를 속아넘기는 연기력까지.


‘그러고 보니 민트가 한자로 박하였네. 가만? 걔네 부모님이 화교였던 것 같은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미 F&B가 중국집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을 모르지만 수완은 어렸을 때부터 정직의 집에 뻔질나게 드나들었으니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와서 기억을 더듬어보니 정직의 아버지가 주방에 지시하던 말씨가 중국어였던 것 같다.


결정적으로,


‘주제 파악을 못하는 놈이라고 했지.’


“...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수완은 괜한 생각을 떨쳐내려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총관 어른이 그러실 분이 아니야. 이해해주니 고맙네.”


장평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 수완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 걱정 마십시오.”

“아무 걱정 말거라. 이 형님이 있지 않느냐. 오늘 개봉에서 제일 좋은 곳에서 맛난 거 사줄 테니 가자~ 하하하.”


장평은 수완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듯 취재관이 울리도록 큰소리로 웃었다.


“형님은 그런데 눈치 안 보셔도 돼요?”

“눈치는 무슨. 사내 대장부가 웃고 싶으면 웃는 거지. 누가 이몸을 말리겠느냐.”

“진짜요?”

“조금만 목소리 낮추자. 어른들 들으면 기분 나쁘실라.”

“크크크. 형님도 참 정말 대장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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