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에서 돈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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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초이
작품등록일 :
2024.07.2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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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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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역사

DUMMY

“어서 오십시오.”

“형님, 여기가 개봉에서 제일 좋은 데 맞아요?”


허름한 흙으로 지어진 초가집에 노모와 아들이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작은 객잔이었다.


“제일 맛있는 곳이지. 너한테만 알려주는 거야.”


점소이가 다가왔다. 이 집 아들이었다.


“뭘로 드릴까요?” “오! 점백이, 복점이 더 커졌네.”


코 옆에 아주 큰 점이 있는 사내였는데, 장평이 점을 칭찬하자 그는 턱을 치켜들었다.


“부장님도 복 많이 받으십시오.”

“고맙네. 오늘 뭐가 최고인가?”

“소룡포라고 새롭게 차림표에 넣었는데, 입맛에 딱일 것입니다.”

“그래? 그거랑 식사거리, 죽엽청도 한 병 가져와.”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잠시 기다리니 대나무통에 무언가가 담겨 나왔다.


“응?”


뚜껑을 열어보니 역시나 익숙한 음식이 들어 있었다.


“오! 맛있어 보이는데.”

“아.. 안 되는데.”


장평이 대뜸 소룡포를 집어 한입 크게 베어물었다. 말릴 틈도 없었다.


“아, 뜨거!”


안에 가득 들었던 육즙이 터져 나오며 장평은 입에 든 것을 모두 뱉어냈다. 수완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렇게 드시는 거 아닙니다. 그렇죠, 점소이?”

“맞습니다요. 우리 부장님께서는 너무 남자다워서 탈이라니까요.”


수완은 작은 접시에 소룡포를 올리고는 피를 찢었다. 그러자 안에 있던 육즙이 쪼르르 흘러나왔다.


그렇다. 샤오롱바오(딤섬의 일종)였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먹어보였다.


“먼저 코로 향을 한번 맡고, 그다음엔 국물로 혀를 적시고 나서, 본격적으로 음미하시면 됩니다.”


고소하고 촉촉하며 느끼하지 않았다.  시기적절하게 점소이가 따라준 죽엽청도 마셨다. 예전에 요리 공부한다고 전 세계 맛집을 돌아다녔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현지에서 맛보던 그 맛 그대로였다.


“크~ 이 집 정말 제대로군요. 으흐흐흐.”


수완은 방금 전의 불쾌했던 기억은 모두 잊은 듯 헤벌레 웃었다.


“그렇게 맛이 좋아? 동생 기분이 풀린 것 같으니 내 기분도 좋아지는구나.”

“훌륭합니다.”


한참을 먹고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쪄야 했을 텐데.’


대나무통에 깔린 면포를 열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구멍이 뚫려 있었다. 즉, 조만간 천금장도 마음만 먹으면 홍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소리다. 바로는 아니겠으나, 시간과 노력만 들인다면 못할 것도 없다.


‘어서 계산을 마쳐야겠군.’


수완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형님, 이제 계산하셔야겠습니다.”

“당연하지. 어이, 점백이, 얼마지?”

“그게 아니라요. 제가 형님 목숨 두 번이나 구해드리고 장주님도 찾아드린 거 기억하시죠?”

“당연하지 이 사람아. 나 장평, 은혜도 모르는 사람이 아니네.”


수완은 죽엽청을 한잔 들이마셨다.


“그래서 값을 받았으면 합니다.”


장평 역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목숨값을 받겠다고? 그래, 뭐.. 얼마나?”

“집 한 채요.”



27화. 역사


“사정을 뻔히 아는데 부담 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형님이랑 언제까지 같이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나는 괜찮은데. 덕분에 아침저녁으로 맛있는 것도 얻어먹고.”


장평은 뜻하지 않게 생긴 큰 빚 때문에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설화 누님이랑도 분위기 좋으신 것 같은데, 진전이 있으려면 아무래도 제가 나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진짜? 그게 그렇게 되나?”


설화의 이름이 나오자 장평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아무렴요. 언제까지 친구로만 지낼 수는 없죠. 이젠 승부를 걸어볼 차례가 아니겠습니까.”


장평은 떨리는 손으로 죽엽청을 한 잔 따랐다.


“크게 바라는 건 아닙니다. 그저 제 한몸 누울 수 있는 방 한 칸이면 족합니다.”

“내가 약조하지. 금방 어떻게든 방도를 마련해 보겠네. 그나저나 승부수를 어떻게 띄우지?”

“천천히 드시죠.”

“그러세, 동생. 밤은 기니까.”


얼마 후, 큰 집은 아니지만 수완이 기거할 집이 생겼다. 장평이 스스로 구했을 리는 만무하고, 아마도 마운이 해준 모양. 왜냐하면 그 집은 천금장의 소유였고, 조금 허름한 창고를 개조했기 때문이다.


“급하게 구하느라 어쩔 수 없었으니 이해해줘. 세간살이가 들어오면 살만할 거야. 그래도 기와집이니까. 하하하.”


장평은 갈라진 벽틈을 바람이 통하지 않도록 흙과 짚을 섞은 무언가로 메꾸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형님.”

“그나저나 언제가 좋을까?”

“말 나온 김에 이번 주 내로 진행하시죠. 마침 명분도 좋습니다. 제 집이 새로 생겼으니 집들이에 초대하겠습니다.”

“오호~! 그럼 되겠구나.”


장평은 힘든 일을 하면서도 싱글벙글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집들이라는 명목으로 며칠간 공사를 시켰다. 장평은 군말 없이 따랐다. 대신 최고의 밤을 선사하기로 마음먹었다.


“형님, 저기 벽 모양이 별롭니다.”

“어디 보자. 여기는 이게 좋겠는데?”

“이거 꽤 귀해 보이는데요?”

“그렇지, 이건 내가 사천에 갔을 때 사온 거네.”

“저에게 주셔도 돼요?”

“뭐든 필요하면 말만 하시게. 속옷까지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


그리고 대망의 그날.

일부러 설화가 달에 한 번 쉬는 전날 밤을 골랐다. 장평과 설화에게는 1일 이브인 셈.


“누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선물. 별건 아니야.”


그간 오며 가며 인사를 나눈 덕에 설화와도 제법 가까워졌다. 수완의 미모에 빠져 곤란한 상황이 생기면 어쩌나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취향은 우락부락한 쪽에 가까운 듯했다.


“어머머머머!!!”


시작은 여자들이 가장 약한 분위기부터. 요리집만큼 카페 투어에도 상당한 경험이 있던 수완은 자신의 집을 마치 고풍스러운 지중해 어딘가로 꾸며 놓았다. 마침 항하도 멀리 보이니 대충 비슷한 분위기가 났다.


설화는 들어오자마자 호들갑을 떨며 감탄하더니 예상대로 장평이 직접 깎은 커다란 곰 인형을 두었다.


“얘는 이름이 뭐야?”

“푸바오라고 할까요? 복을 가져다주는 보물이란 뜻이에요. (복보, 福寶)” “어머~ 이름까지 멋있다.”

“형님이 지어주셨습니다.”


수완은 장평의 옆구리를 툭 쳤다. 띄워줘야지. 장평은 코 밑을 검지로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별거 아니야.”


바람잡이도 불렀다. 양철종과 그의 아내. 직장 상사라 불편하지 않을까 했지만 들어보니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라고 한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야~ 잘해놓고 산다?”

“다 형님들 덕이죠. 하하하.”


수완은 가운데 둥근 탁상에 자리를 지정해 주었다.


“형님은 여기, 형수, 아니 설화 누님은 여기...”

일부러 철종 - 아내 - 설화 - 장평 - 수완 순으로 앉혔다. 모든 건 수완의 지휘하에 이루어졌다.


비장의 무기.


“왔어요~”


가장 자신 있는 요리를 꺼냈다.


바로바로~ 치킨이다. 음하하하!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아직 고추가루가 없어 양념치킨은 만들지 못했다.뭐, 큰 문제는 아니지만.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닭 두 마리가 올라왔다. 하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후라이드였고, 다른 하나는 꿀로 도배를 한 허니 치킨이다.


사람들은 고소한 닭튀김 냄새에 멍한 시선을 보내면서도 티는 내지 않았지만, 약간 실망한 듯한 표정을 잠깐씩 지었다.


잔치상에는 양장피, 오향장육, 탕수육 등등 한 상 거하게 차려놓고 먹는 게 그들 문화인데 사람이 몇인데 고작 닭 두마리뿐이라니.


특히나 그 집 솜씨를 알고 싶거든 탕수육을 맛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튀김 부심이 강한 그들이니, 고려놈이 만든 닭튀김에 실망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야~ 냄새가 대단한데? 주인장, 먹어도 되겠나?”


사람 비위 맞추는 데는 도가 튼 철종이 본심을 감추고 입을 열었다. 수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놈들, 어디 맛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두고 보자.’


철종이 후라이드 치킨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바삭!


철종의 눈이 번쩍 떠졌다.


남자는 가을을 탄다고 했던가. 철종의 발밑이 순식간에 바스러지는 낙엽으로 변했다. 한 발을 내디뎠다. 바삭바삭, 리듬감 있는 소리가 쓸쓸한 철종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조금 더 나아갔다. 그러자 부드럽고 촉촉한 여인의 풍만한 가슴이 철종을 품어준다.


‘누구보다도 아름다웠던 춘심이~ 내 사랑~ 기억난다.’


이 느낌은!!! 처가에 처음 인사갔을 때 밥상에 올라왔던 그 닭다리다.


“여보? 닭다리 들고 뭐해?”


춘심의 타박에 철종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어?”

“뭐하냐고, 먹다 말고.”

“잔말 말고 먹어봐.”


철종은 남은 다리 하나를 춘심에게 밀어주고 개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자 장평이 위기감을 느꼈는지, 냉큼 허니치킨 닭다리 두 개 모두를 뜯어 설화의 접시에 올려주었다.


“다 먹어.”

“그래도...”

“드세요, 누님. 손님들을 위한 거예요.”

“그럼 부장님 하나 드세요.”


설화는 닭다리 하나를 장평에게 건넸다.


“고마워~ 수완이의 정성을 어서 맛보자.”

“네.”


설화는 수줍게 웃으며 허니치킨을 한 입 베어 물었다.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닭튀김 위로 꿀이 달콤하게 흘러내린다. 바삭한 껍질은 기분 좋은 식감을 만들어내고, 그 위로 스며든 꿀은 대지의 향을 담은 아침이슬 같다.


한 입 베어 무니, 달콤함과 고소함이 혀끝에서 춤을 추며, 마음 깊숙이 파고드는 풍미는 마치 따스한 햇살이 가슴을 어루만지듯 부드럽게 다가온다.


‘달콤하다.’


이제는 희미해졌던 기억이 떠오르게 했다.


“설화야, 여기서 이거 먹고 잠깐만 기다려. 엄마 금방 올게.”

“엿가락이잖아. 대박, 엄마 최고!”


한겨울, 설화는 코를 흘리며 어느집 처마 밑에서 엿가락을 조금씩 아껴 먹으며 엄마를 기다렸다. 그런데 엄마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어린 설화는 불안했다. 엿가락이 다 사라지면 정말로 엄마를 영영 보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설화는 눈물을 흘렸다. 한참을 펑펑 울었다. 장평은 화들짝 놀라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모두가 설화의 눈치를 살폈다. 애초에 모인 이유도 둘을 이어주기 위함이 아니었는가.


“죄송해요. 그런 게 아니라... 너무 맛있어서 그랬어요. 이제는 후련해요.”


설화는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입에 잡히는 대로 내뱉었다.


“이런 자리에 술이 빠질 수 없는데, 주인장 술은 없소?”


철종은 가라앉은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방정맞은 목소리로 물었다.


“당연히 있죠.”


수완은 공자의 고향인 산둥성 곡부에서 공수해 온 공부가주를 꺼냈다. 물론 장평이 밤낮으로 달려서 구해온 것. 술을 잘 못하는 여인들을 위해 도수를 낮추어 음료처럼 마실 수 있도록 약간의 개량 작업까지 마쳤다.


“어머, 술도 달아. 향도 좋고.”


자고로 역사는 밤에 이루어 진다고 했던가. 조금은 음흉한 의도가 있지만, 사실 이 순간을 위해 앞선 모든 과정은 깔아둔 밑밥이다. 모든 것은 수완의 지휘하에 이루워 진다. 


그리고 마지막 승부.


설화는 격해진 감정 때문인지, 주는 대로 술을 넙쭉넙쭉 받아 마시다가 달라진 풍경을 알아차렸다.


“...”


어느덧 모두 어디론가 사라지고 둘만 남겨졌다. 심지어 수완마저. 그 집엔 오로지 장평과 설화만이 있었다.


“부장님, 다들 어디 간 거예요?”

“글쎄... 수완아~ 어디 갔어~”


장평은 알고 있었지만 괜히 소리 내어 불러보았다.


“술도 깰 겸 바람이나 쐬러 갈까요?”

“그럴까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니 하늘에 계신 분도 둘을 밀어주려는지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머, 예뻐. 오늘 예쁜 거 많이 보네.”



세상은 고요했다. 하얀 눈이 모든 것을 덮어가며 그곳에 단둘만 남겼다.

시선이 오고 갔다. 두꺼운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오늘 경험한 그 어떤 것보다 따뜻했다. 숨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무언의 대화가 오고 갔다.


“정말 예뻐.”

“...”

“사랑해.”

“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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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8화. 본격적으로 24.09.02 3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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