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에서 돈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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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초이
작품등록일 :
2024.07.2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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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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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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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본격적으로

DUMMY

아직 동이 트지도 않은 새벽.


“다 모이셨습니까?”

“...”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잠이 덜 깼나.’


수완은 조금 짜증이 났지만 좋게 좋게 생각하기로 하고 직접 일일이 세어 인원 확인을 했다.


“다 오신 듯싶군요. 들어갑시다.”


상행에는 많은 위험이 따른다. 당장 오늘 밤에 누군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버려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니 떠나기 전에는 반드시 제를 올려 무사를 기원한다. 일행은 뒷산에 천금장에서 조그맣게 마련한 도가 사원으로 향했다.


붉은 기와와 섬세한 목조 건축이 어우러진 고즈넉한 본당, 상행원들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들어섰다.


무수히 켜진 촛불과 은은한 향냄새,

바닥에는 팔괘가 그려져 있고,

검은 얼굴에 엄청난 수염을 뽐내는 재신 조공명과 금칠로 장식된 갑주를 입고 있는 현천상제의 목상이 자리 잡고 있다.


수완은 정성스럽게 마련한 떡과 과일을 제단에 올려놓고, 향을 네댓 개 피워 손에 쥐고 고개를 조아리며 제를 올렸다.


“간청하옵니다. 일행이 무탈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보호해 주시옵고, 거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천금장에 번영을 가져올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리고는 준비해온 금자를 제단 앞에 놓인 향로에 던져 넣는다. 금속이 부딪치며 내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쨍그랑~ 랑랑~


수완은 사원 앞마당에 상행원들을 불러 모았다.


“반갑습니다. 행수를 맡게 된 최수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여전히 입에 자물쇠라도 채운 듯 아무도 호응하지 않는다. 민망해진 수완은 괜히 헛기침을 내뱉었다.


상행원은 총 9명으로 거래 책임자 1명, 호사 6명, 차부 2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통 행수는 가장 연차가 높은 사람이 맡는 것이 관례였으나, 어쩐 일인지 수완이 지목되었다.


“아시겠지만 사천성 성도행입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오르는 초피를 잔뜩 구해오는 거죠. 차부께서는 준비를 마치셨습니까?”


수완이 수레 쪽을 쳐다보자, 짐꾼이자 수레를 도맡아 관리하는 차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말하면 잔소리요. 이쪽은 걱정하지 마시게.”

“좋습니다. 호사부도 준비되었죠?”

“···”


이번에도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호사들은 입을 삐죽 내밀며 ‘협조 안 할 건데?’라고 얼굴에 써 붙인 듯하다.


그때, 멀리서 장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침밥들 안 먹고 나왔어? 왜 아무 말도 없어.”


그제야 쥐새끼 오줌싸는 소리만큼 작게 중얼거렸다.


“이상 없소.”


장평이 수완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쌌다.


“내가 같이 갔어야 하는데··· 아우님 혼자 보내려니 마음이 쓰이는구먼. 가는 길이 워낙 험해서 말이야. 잘 헤쳐 나가겠지만.”


장평은 최근 설화랑 잘되어 혼례 준비로 바쁘다.


“이 새벽에 배웅을 해주는 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형님”


장평은 조용히 속삭였다.


“골치 아픈 놈이 하나 끼었어. 초장에 잡아야 해. 참고로 호사들 중에 자네보다 무위가 높은 녀석은 없으니 여차하면 알아서 하고.”


수완은 실소를 머금었다.


“선배님들을 그렇게 대해도 되겠습니까?” “어허, 이 사람 보게. 선배는 무슨, 센 놈이 형님 하는 게 강호의 도리일세.”

“강호의 도리라··· 그럼 곧 저를 형님이라 부르시겠습니다.”

“사람 참, 뭔 말을 못 해요. 허허.”



29화. 본격적으로


개봉에서 사천성 성도까지는 황하강을 따라 배를 타고 한참 가다가, 서안에서 한중을 거쳐 당도한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미리 섭외해 둔 뱃사공이 보였다. 그런데 장평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누구시요? 처음 보는 얼굴인데.”


뱃사공이 많지 않기에 대충 다 아는 얼굴인데, 매번 서안까지 데려다주던 자는 늙은 노부였다.


“오늘부터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스러운지 차부가 끼어들었다.


“잘하실 수 있겠나?”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녔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뭐... 아무튼 잘 부탁하네. 안전하게.”

“당연합니다.”


차부는 낮게 투덜대며 짐을 실으러 갔다.


“이 동네에 뭔 일이 생겼나 행수도 젊은데 뱃사공까지 새파랗군. 길조야 흉조야.”



나룻배보다는 크지만, 군선처럼 넓지 않은 상선에 사람과 짐을 잔뜩 실었다.


수완이 말했다.


“형님, 다녀오겠습니다.”

“몸조심하시게. 아무도 믿지 마. 순 사기꾼놈들이니까.”

“걱정 마십시오. 들어가십시오.”


다행히 뱃사공은 능숙하게 배를 몰았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방향타를 움직이며 노래를 불렀다. 산과 강만 보이는 풍경 속에서 나름의 시간 때우기 방식인 듯했다.


“노를 저어라, 물길을 따라 푸른 강물에 우리 몸을 맡기고 바람을 따라 힘차게 가리라


물결이 높아도 걱정 말고 한마음으로 노를 저어 가자 우리의 배는 강물을 가르며 나아가리.”


한편, 수완은 상행의 다수를 차지하는 호사부원에게 다가갔다. 수련도 하고 친해질 겸.


“수련이나 하시죠.”

“...”


그러나 이번에도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텃세 제대로구먼. 이 사람들이 원.’


그런데 갈수록 미간이 찌푸려졌다. 수완에 성화에 호사들은 수련에 임하는 듯했으나 금세 한쪽에 찌그러지기 일쑤였다.


게다가 검을 너무나도 대충대충 휘두른다. 마운에 가르침에 의하면 검은 바둑과 같다.


한 수 한 수, 앞에 낸 검이 다음 검의 포석이 되어야 하고, 단 하나도 헛되이 버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자연스레 도지휘사 주살 작전에 함께했던 호사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모두 일류에 닿아 있었으며 행동이 정숙했다. 하지만 이번에 함께한 이들은 실력도 형편없고 태도도 영 꽝이었다.


‘서 총관, 이 노인네가 날 죽이려고 작정했나?’


수완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안평심법을 펼쳐 겨우 억눌렀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반년을 함께할 동료들인걸.


“호동이.”


수완은 둘러보다가 그나마 말을 잘 들을 것 같은 막내를 불렀다. 덩치는 여느 장사 못지않았으나 아직 무예가 일천하여 차부나 다름없는 아이다.


“어허! 이놈아. 행수가 부르질 않느냐!”


호동은 다른 호사들 눈치를 보며 쭈뼛대가 수완이 일갈하니 조심스레 다가왔다.


“태극검을 펼쳐 보거라.”

“···여기서요?”

“그럼 강물 안에서 하리? 어서!”


수완은 호동에게 일부러 큰소리로 태극검을 가르쳤다.


“투로를 그렇게 빼는 게 아니라 잠시 멈췄다 들어가야지.”

“손이 이렇게요?”

“그렇지. 이해가 빠르구나.”


그러자 성취에 관심이 많은 무인은 안 듣는 척하면서도 은근히 곁눈질을 했다. 그럴 때마다 수완은 귀신같이 그들을 읽어내고 불러 합세시키려 했다. 일종의 유인책이다.


“선우 호사, 그러지 말고 같이 합시다. 아무 일도 안 하고 시간 죽이는 거, 그거 고욕 아니요.”

“그럴까?”


대부분은 못 이기는 척 자연스레 합류하려 했다. 그러나 일정한 간격 이상으로는 더 이상 좁혀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석불태가 불쑥불쑥 나타나 딱딱 흐름을 끊어놓았기 때문이다.


“용남이, 자네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행수 나리께 배울 게 뭐가 있다고 그래? 저 양반, 무공 배운 지 고작 반년이라지? 그런 사람한테 무예를 배운다고? 지나가는 똥개가 웃겠다. 으하하하”

“그런가?”


수완과 어울려 수련하는 것을 불태가 직접 ‘배움’이라는 간판을 달아주니, 일어서던 호사들을 다시 구석으로 기대게 했다.


현명한 사람이었다면 그러거나 말거나 하나라도 더 배우려 했겠지만, 여기 모인 사람들은 평생을 이류에 벽에 부딪혀 칼 밥만 먹어온 사내들이었다.


‘저 인간을 줴팰 수도 없고. 젠장, 이 상태로 적이라도 마주한다면 몰살이겠어.’


수완은 살심을 느꼈다. 곰곰이 생각했다.


방법은 두 가지.

군림하든지, 아니면 협력하게 만들든지.


미미F&B에서 일하던 시절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나중에는 전사 총괄 주방장까지 오른 것에 아무도 불만을 품지 않았지만, 처음에 받았던 시선은 지금 이 상황처럼 곱지 않았다.


“대표 친구라는데?”

“실력도 없는 놈이 빽으로 들어왔구먼. 그러니까 다리 병신이 단숨에 주방장 자리를 꿰찼지. 회사가 망하려나 봐”



“자, 모이세요.”


수완은 선실 곳곳에 퍼져 있던 행원들을 갑판으로 불러 모았다.


“지금부터 생사조를 만들어 드릴 테니, 밥 먹을 때나 변소 갈 때나 한 몸처럼 움직이십시오.”


경험상 조직을 장악하려면 우선 마음 맞는 사람을 떼어 놓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때로는 합심하여 불가능한 일도 이루지만, 불온한 마음은 조직을 전복시키기도 하는 게 마음에 맞는 사람이다.


특히나 지금처럼 수뇌부에 대한 강한 불만이 있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뭔 개소리야!”


이번에도 석불태가 씩씩대며 앞으로 나왔다. 물론 그냥 좋은 표현은 아니었고, 늘 그렇듯 시비를 걸어왔다.


“완장질 거하게 하시네. 난 못 따라 주겠어. 야 임마! 네가 상행에 대해서 뭘 안다고 깝죽거려! 내가 몇 번짼 줄 알고 하는 소리야?”


수완은 아무 대꾸 없이 그의 곁으로 다가가 석불태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이거 안 놓아.”

“못 놔.”



휘리릭- 쿵!


그대로 넘겼다. 바닥에 누워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눈만 깜박거리는 불태의 시선에 수완이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석불태 호사. 행수는 나다. 불만 있으면 언제든지 한판 뜨자고.”


그리고 내공을 실어 외쳤다.


 “석불태, 호동, 최수완을 갑조로 명한다. 생사조원은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다!"


*


사흘쯤 흐른 어느 날, 생사조를 만들긴 했지만, 그 이상 진전이 없어 골머리를 앓던 밤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떨어질 듯한 무수히 많은 별, 참으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수완의 직감은 어째서인지 이 평온한 밤하늘이 불편했다.


‘가슴이 답답한 게 뚫리지 않는구나.’


그런데, 갑자기 유속이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황하강을 두르고 있던 산들도 보이지 않았다.


수완은 천신향이 일러준 성도로 가는 길을 암송했다.


‘황하의 금빛 물살을 타고 닷새쯤 가다가, 오른쪽에 보이던 산이 사라지고 두 갈래를 마주할 때, 큰 물살을 따라가면 산시성에 닿을 것이고, 좁은 위강(魏河)으로 갈아타야 서안에 닿는다.’


급히 뱃사공에게 다가갔다.


“이보시오. 곧 분기점에 도달할 것 같은데 맞소?”


뱃사공이 잠시 머뭇거렸다.


“아직 아닙니다. 조금 더 가야 합니다.”

“그러지 말고 똑바로 보시오. 오른쪽에 있어야 할 산들도 없어졌지 않았소. 저기 앞에 보이는 게 관중평원이 아니면 무엇이오?”


그러자 뱃사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어련히 알아서 데려다줄 테니, 간섭하지 마시오.”


철썩! 철썩!


그 순간, 어둠 속에서 강물과 어울리지 않는 큰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급기야 배가 한쪽으로 기울며 길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수완은 칼을 뽑았다.


“네 이놈, 무슨 짓이냐! 목숨이 아깝거든 배를 당장 돌려놓거라!”


수완은 고함을 쳤다. 하지만 뱃사공은 말을 듣지 않았다.


쿵!


무언가가 배에 부딪혔다. 순식간에 주변이 환해지며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거친 목소리 또한 들려왔다.


“으캬캬캬, 월척이로다~”


그런 노래가 생각 났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적이 없나


"씨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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