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에서 돈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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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초이
작품등록일 :
2024.07.2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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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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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손해만 보고 돌아갈 수는 없지

DUMMY

“무모하셨습니다.”

“그치만 선금으로 건넨 돈만 해도 금자 스무 냥이네. 적지 않아.”


금자 한 냥은 은자 스무 냥으로 바꿀 수 있고, 은자 한 냥으로 쌀 두 섬을 살 수 있으니,


무려, 쌀 팔백 섬(7,600kg)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재물을 냄새도 맡아보지 못하고 그대로 날리게 생겼다.


“됐다. 더는 거론치 말거라.”


마운은 근심어린 표정으로 검은 바다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종종 광대를 씰룩 거리는 것으로 보았을 땐, 간신히 화를 억누르고 있는 듯 했다.


“떠오르는 대로 각자의 의견을 말해보라. 흰소리라도 좋으니 말이야.”


장평은 크게 심호흡하여 성난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의견을 피력했다.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개봉으로 돌아가시지요. 무려 도지휘사가 엮인 일입니다. 자칫하다간 천금장까지 위혐해질 수 있습니다.”


평소 행동거지와 다르게 의외로 냉정한 판단.


도지휘사는 현대로 치면 군단장에 해당하는 고위직이다. 딸린 군사만 해도 수천에 이른다.


“자네는?”


마운의 시선이 수완에게 향했다. 그다지 기대하는 눈빛은 아니었지만...


“···"


수완은 즉답하지 않고 장고 했다. 거의 한 시진에 가까워지도록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재촉하지 않았다.


“훔치죠.”


마운과 장평, 모두 화들짝 놀랐다. 다만 그 놀란 이유가 서로 조금은 다른 듯했다.


“어허, 수완이. 아무리 혈기 왕성하여 사리 분별하기 힘든 과년이라도, 해서 될 말이 있고 안될 말이 있네!”


장평이 꾸짖었다.


“어차피 도지휘사도 뒤로 빼낸 물건입니다. 떳떳하게 유통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니 들키지 않고 훔쳐낼 수 만 있다면, 생각보다 별 문제 없이 지나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장물에는 이름표가 없다. 그렇기에 역관도 쉽게 빼앗긴 것이다.


잔뜩 찡그린 장평과 달리 마운은 조금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사실 수완은 참신한 이야기를 한 건 아니었다.


백전노장, 장돌뱅이에서 시작해 대상단의 주인이 된 그의 머릿속에도 들어있던 생각.


수장은 겉보기엔 편해 보인다. 힘들고 어려운 일은 부하들에게 시키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나름에 힘든 고충이 있었으니, 그중 하나가 선택이다.


마운 역시도 사람이기에 잘못된 선택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수완의 생각은 과격하고 비현실적이다. 장평에 의견을 따르는 게 합리적으로 옳아. 하지만...'


마운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아프군. 속이 쓰라리고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기분이야..’


이대로 돌아간다면 금자 백이십 냥을 그대로 손실 봐야 한다. 더군다나 남궁세가와 힘들게 맽은 연줄도 망가트려야 하니 어떻게 해서든 활로를 뚫고 싶다는 마음이 들끓었다.


수완이 말을 보탰다.


“오면서 돌아본 바로는 군관 중에 무공을 익힌 자가 드물어 보입니다.”

“자네 말이 맞네. 관은 개개인의 성취를 올리는 쪽보다는 대규모 진법을 펼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이지.”

“누가 그러더군요. 장사꾼이 돈벌이가 뻔히 보이는데 그냥 두고 볼 수 있겠느냐고요. 결정이 어려우시면 장주님께서 직접 돌아보시며 셈해 보시지요.”


마운은 한참을 대꾸하지 않았다.


“...방에 음식을 준비해 두었으니 오늘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배불리 먹고 쉬거라.”

“네, 장주님.”

“감사합니다. 장주님.”


수완과 장평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고, 마운은 밤늦도록 질척이는 파도 소리를 안주 삼아 깡 죽엽청을 들이켰다.



10화. 손해만 보고 돌아갈 수는 없지


꼬끼오~


역관은 어젯밤 들이닥친 괴한 때문에 한숨도 못 자고 날을 샜다. 새벽녘 닭 우는 소리에 겨우 잠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등 뒤로 스산한 기운에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 보니 역시나 장평이 와 있었다.


“김지언 씨. 지금 쳐 자빠져 잘 때가 아니요. 누군 그 일 때문에 밤잠 설쳤는데 참으로 팔자가 좋소?”


본인 아니다. 마운이 잠을 못잤다. 장평은 꿀잠 잤다.


역관은 곧장 무릎을 꿇었다.


“사, 살려주시오. 그 선금, 당장은 아니지만 모두 돌려 드리리다."


장평은 검을 빼 들고 역관의 머리맡으로 다가왔다. 키는 작지만 옹골찬 어깨, 날이 바짝 선 검날이 위압감을 뽐냈다. 게다가 눈빛은 초점이 없다. 마치 뒤가 없는 사람처럼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흐흐흐. 누구를 바보로 아나? 이래 봬도 본인은 도덕경을 완독한 사람이오.”

“나, 나는 조선의 역관이요. 내게 벼벼벼... 변고가 새... 생긴다면 분명 관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게요.”

“지금 나를 겁박하려 드는겐가. 사람을 뭐로 보고. 으압!”


장평이 외마디 기합을 외치고 달려왔다. 당장이라도 목을 벨 기세.


‘우지랄, 나는 한푼도 쓰지도 못했는데... 마누라만 좋은 일 시켰구먼.’ 


역관은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

“···???”


실눈을 살짝 떠 상황을 살피니, 아직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장평이 보였다. 필시, 살인을 망설이는 사람의 표정이다.


이때다 싶어 장평의 다리를 붙잡고 애원했다.


“제, 제발 살려주시오. 내게는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이 있소.”

“지금 누구 놀리나?!! 엉?”

“네??”

“누군 이 나이 먹도록 장가도 못 들었는데. 노총각 놀리냐고!!!”


역관은 아차 싶어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며 아무소리나 해댔다.


“아, 아 아닙니다. 사실은 여편네는 김치녀고 딸내미는 집 나갔소이다. 나 정말 불쌍한 사람이요. 하루 하루가 지옥이나 마찬가지요.”


그제야 장평의 표정이 편안해졌다.


“다시 봐도 불쌍한 얼굴이군. 그 얼굴로 각시를 얻었으니 어떤 여편네인지 안봐도 뻔하겠어.”

“맞습니다. 저, 정말 불쌍한 인간입니다. 살려만 주시면 뭐든 할 테니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 주시오. 제발~.”


그러자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표정을 밝게 하고 손을 맞잡았다.


“너 나랑 일 하나 하자.”


*


김지언, 김수로왕의 피를 이어받은 김해 김 씨 47대손. 자랑스러운 조선의 아들이다.


주캐 대(對) 중원 행렬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역관이요. 부캐는 나라 살림에 이바지는 못 하지만, 내 가문은 확실히 챙기는 밀매업자다.


‘이거면 된다고...?'


지언은 포목점으로 향했다.


“주인장~!”

“조선 양반? 여긴 그쪽 동네에서 입을만한 물건은 없는데. 껄껄껄.”


무릇, 중원인이란 이민족을 개무시한다. 중화사상이 종놈에 뼛속부터 대감에 머릿속까지 스며있다.


지언은 비꼬는 주인에게는 조금의 시선도 주지 않고 비단을 가리켰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그쪽 동네에서 입을 만한 건 없다니까. 사지도 않을 거면서 사람 귀찮게.”


철컹


금자가 가득 든 주머니를 좌판에 내려놓아 주인장의 오만한 입을 막았다.


그렇다. 그 대단한 중화사상을 잘근잘근 씹어 먹는 재물이다. 주인은 자세를 공손히 했다.


“아이코! 큰손이셨구먼. 얼마나 드릴까.”

“전부.”

“힠!! 아이고~ 나으리 잠시만 앉아 계십시오. 금방 마실 거라도 내오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지언은 영파의 포목점이란 포목점은 모두 쓸고 다녔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날파리가 꼬여 들었다.


“감히 대국의 질서를 어지럽히려 드느냐. 비단은 왜 사고 돌아다니는 것이냐.”


절강성 도지휘사의 그림자 운영(雲影)이다. 저번에도 이 새끼가 뜯어갔다.


“그야 나도 먹고 살아야죠. 인삼도 다 뺏긴 마당에 그거라도 가져다 팔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안된답니까? 쥐새끼도 도망갈 구멍은 열어두고 쫒으라 했거늘, 도지휘사께서는 이놈도 아는 기초적인 병법도 모르신답니까.”

“닥쳐라 이놈! 뚫린 입이라고 감히!”


운영이 칼을 들이댔다. 하지만,


“거참. 사내놈이 혓바닥 한번 기네. 비단 어디 있는지 알려 달라는 거 아뇨? 힘들게 굴지 말자고.”


운영은 당황하여 눈알만 굴렸다. 역관이 저항하고 고문 끝에 실토해야 하는데... 왜 순순히 분다고 하지?


“무슨 개수작이냐! 내가 네 놈에 잔꾀에 속아 넘어갈 것 같으냐!"

“아 씨발, 누군 성질머리가 없어서 가만히 있는 줄 아나! 어이 쇠돌이, 네 놈이 운영이라고? 너 인마 종놈인 거 내가 모르는 줄 알아? 뒈질려고 건방지게~!”


운영은 고개를 푹 숙였고 역관은 제 발로 도지휘사의 고문실을 나섰다.


“뒷산 오두막에 숨겨두었으니 니들끼리 다 해 처먹어라. 내 다신 오나 봐라. 캬악 퉤~!”


*


“장주님 계책이 정말 대단합니다. 예상대로 모든 일이 흘러갔습니다.”


수완은 오늘 아침 설명한 마운의 계책을 떠올리며 감탄했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으나, 이렇게 세세하게 들어맞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도지휘사가 아직 역관을 주시하고 있을 게야. 허튼소리는 하지 않는지, 더 뜯어낼 재물은 없는지 말이야. 우리는 역관을 이용해서 비밀 창고를 찾아낸다.’


장평과 수완은 도지휘사의 그림자 운영의 뒤를 밟아 나갔다. 떳떳하지 못한 일인지라 역시 가솔들이 동원되었다.


“수준이 어느 정도 돼 보이십니까?”


수완이 물었다. 훔치는 일에 꼭 필요한 경공술은 이류에 닿았으나 무술은 아직 배우지 못했으니, 상대 무위가 높다면 수완은 빠지는게 옳을 터.


“글쎄? 삼류? 이류? 아, 저놈은 일류 중간 정도는 되겠군.”

“그럼 다행이군요.”


수완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빨리빨리 움직여.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되면 큰 상을 내리신다고 하셨다.”

“네. 호사 어른, 힘들 내자고.”


운영은 짐꾼들을 채근했고 마침내 도지휘사의 비밀창고에 닿았다.


그런데,


‘정말 저기라고?’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영파에 딱 하나 있는 절. 그것도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대웅전(大雄殿)에 아래에 더러운 재물을 잔뜩 모아두는 비밀창고가 있었다.


장평이 욕지기를 내뱉었다.


“미치겠구먼. 얼마나 업보를 쌓으려고 저러는 거지.”


모든 이가 불자는 아니었으나, 부처님을 욕보일 만한 강심장도 없다. 더군다나 스님들이 이 더러운 일에 가담했다는 건, 세간에 큰 파문이 일 정도의 엄청난 일.


"훗! 기발한 걸."


반면, 수완은 조금 다른 생각에 입꼬리를 올렸다.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놈이야.'


사파, 마교, 여진, 몽골, 남만까지 적으로 간주될 만한 모든 이에게 영파를 빼앗기더라도 이곳 담은사만큼은 무사하고도 남을 거다.


“이만 돌아가시죠.”


수완이 말했다. 그런데 장평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화가 잔뜩 났는지 얼굴이 시뻘게져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이라도 들이닥치시고 싶으시죠. 하지만 장주님의 명은 여기까지 입니다. 참으셔야 합니다.”

“...”

“???”

“왜 그러십니까? 어디 아프십니까?”


장평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인상을 구기더니 급기야 불쑥 일어났다.


“조화검 어른!”


수완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러나 장평은 멈추지 않았다.


“먼저 가라.”

“안됩니다. 아무리 어른께서 장삼봉 진인의 피를 이어받으셨다고는 하지만 혼자서는 무립니다.”

“그게 아니라, 흡!”


장평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뒷간 좀...”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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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밤 10시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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