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해본 행성관리가 너무 쉽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새글

오드뷔
그림/삽화
AI
작품등록일 :
2024.07.25 11:36
최근연재일 :
2024.09.17 10:05
연재수 :
58 회
조회수 :
6,719
추천수 :
171
글자수 :
338,752

작성
24.08.25 21:10
조회
111
추천
3
글자
12쪽

성 윤주 (4)

DUMMY

테란을 포기해달라는 성 팀장의 말에 서준은 말없이 미소만 짓고 있었다. 먼저 말을 꺼내 주니 고맙긴 하지만 여기서 네 알겠습니다라고 물러날 수는 없다.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성 팀장은 서준을 바라본다.


“미안해서요.”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는 말이다. 테란을 포기하는 건 서준이 아니라 성 팀장이었다. 말은 서준에게 포기하라고 하고 있지만 자신이 테란을 포기하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 이유뿐이라면 좀 곤란한데요.”


서준은 여전히 입에 걸려 있는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성 팀장의 말에 답한다.


“물론 유진 소프트에 준 인수 대금은 제가 돌려드리겠습니다. 테란을 포기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대표님.”


죄송이야 할 것이다. 바로 며칠 전에 맺은 계약을 해약하자니. 상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비즈니스가 무슨 애들 장난인가.


“돈 문제가 아닙니다. 돈이야 당연히 돌려받는 거고요.”


서준의 얼굴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지만 말하면서 언성이 살짝 올라가자 성 팀장이 살짝 움츠린다. 어이쿠 내가 좀 오버했네.


“그걸로 괜찮으냐는 의미입니다. 저 말고 성 팀장님 본인이.”


서준의 눈길은 계속 성 팀장을 보고 있다. 미소는 짓고 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다. 성 팀장은 한참 서준을 보더니 눈길을 피한다.


“괜찮습···. 아니 솔직히 괜찮지 않아요.”


내가 사람은 제대로 본 것 같다. 서준은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방금 하신 이야기는 못 들은 이야기로 할게요. 가져온 자료는 저 주시고요.

삼 일 내로 서비스 준비 마칠 거니까 프로모션용 이미지 셀렉 해주세요.

전에 보니 미발표 일러가 꽤 있던데. 그거 성 팀장님이 그린 거죠? 그중에서 제일 괜찮은 걸로 몇 개 뽑아주세요.”


성 팀장은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서준의 말에 정신을 못 차린다.


“삼일이요? 아무리 빌드업 마친 상태로 넘겨드렸지만, 그렇게 빨리요? 그리고 애당초 지금 상황에서 정식 서비스가 가능할지···.”


“유능한 개발자가 있어서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성 팀장님. 저는 테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저도.”


테란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다음 말을 하려는 순간 서준은 울컥하는 기분을 느낀다. 몇 년 전에 똑같은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서준이 말을 하다 말고 가만있자 성 팀장이 의아한 얼굴로 쳐다본다.


“성 팀장님. 박현수 피디라는 사람 아시죠?”


성 팀장을 만난 첫날 물어보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날 물어볼까 하다가 쓸데없이 감정적이 될까 봐 하지 않았다.


“박 현수 피디님이요? 알죠. 저희 테란 프로젝트 총괄 피디셨으니까요.”


서준은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이 목에 걸려 나오지 않는다.


“강 대표님도 박현수 피디 아세요?”


서준은 성 팀장의 말에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인다. 그냥 가슴 한켠에 고이 묻어두고 살았던 일을 억지로 꺼내면 이런 기분이 드는구나 새삼 깨닫는다. 기분이 상당히 드럽다.

그래도 계속 의아한 얼굴로 자신을 보는 성 팀장 앞에서 철없는 아이처럼 감정을 터뜨릴 수는 없다.


“박현수 피디님. 아니 현수 선배는 제 대학 동아리 선배님이세요.”


성 팀장이 좀 놀란다.


“그래서···. 박 피디님이랑 친하셨나 봐요.”


“친했죠. 나이 차가 좀 나는 선배였지만 진짜 친형 같은 선배였어요.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혼내기도 하고 술도 많이 사주고. 뭐 항상 PC방 겜 내기에서 져서 사준 거긴 하지만요.”


성 팀장은 조용히 듣고만 있다. 입으로는 즐거운 추억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눈이 웃고 있지 않은 서준의 낌새가 좀 이상해서일지도 모른다.


“제가 첫 직장에서 힘들어 할때 현수 선배가 많이 도와줬어요. 병특 끝나면 자기한테 오라고도 해줬고. 만일 그때 갔으면 성 팀장님하고 동료가 됐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게요.”


성 팀장은 조용히 서준의 말에 동조를 해준다.


“결국 두 번째 직장은 현수 선배랑 같이 일했습니다. 선배가 창업해서 저보고 오라고 했죠. 테란 프로젝트 실패 책임을 지고 회사에서 팽 당한 건 잘 아시죠?”


성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다른 사람한테 들은 건데, 사실 테란 프로젝트 실패 책임이 현수 선배한테 있는 건 아니었다고 하더라고요.

위에 있던 외부에서 온 본부장이라는 사람이 억지로 개발에 관여하고 파벌 싸움하는 바람에 팀이 몇 번 쪼개지고 붙고 하는 과정에서 어떻게든 프로젝트 멱살 잡고 하드 캐리해서 클로즈 베타까지 간 건 오히려 현수 선배였다고 들었어요. 맞나요? 성 팀장님.”


“네, 맞아요.”


성 팀장도 옛날 생각이 나는지 살짝 눈을 내리깔면서 답한다.


“뭐 저야 그때는 그런 거 잘 모르고 선배도 테란 이야기는 잘 안 했어요. 회사 분위기는 완전 좋았고, 모두들 정말 재미있게 일했죠.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을 거 같아요.”


“그랬군요. 박 피디님이 창업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때 강 대표님도 같이 계셨었군요.”


“네. 아까 선배가 테란 이야기 잘 안 했다고 했죠. 근데 딱 한 번 한 적 있어요. 한번은 저랑 술을 진탕 먹은 적이 있는데 그날 선배가 그랬어요.

나 테란 포기 못 한다. 얼른 성공하고 돈 많이 벌어서 테란 사 올 거야. 그때는 정말 제대로 만들고 싶다. 면서 엉엉 울었어요.

선배가 우는 모습을 본 건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요.”


성 팀장은 손으로 입을 가렸다. 눈에는 살짝 물기가 맺혀 있다.


“박 피디님이 그런 말을···. 제가 이 회사 저 회사 옮겨 다니느라 예전 멤버들 소식을 거의 몰라요. 박 피디님, 지금은 뭐 하고 계세요.”


서준은 성 팀장을 빤히 쳐다본다. 저 말 들을 거 같아서 처음 만난 그날 안 물어본 건데.


“죽었어요.”


성 팀장은 자기가 잘 못 들었나 싶어 눈을 깜빡인다.


“4년 전에 자살했어요. 선배가 하던 회사. 제가 있던 회사가 망했죠. 예전에 선배 내쫓은 본부장이라는 새끼가 선배한테 웃으면서 다가왔어요.

자기가 벤처 투자 회사 차렸는데 옛날 일은 잊고 일 한번 해보자고. 병신 같은 선배는 거기에 또 넘어갔죠. 투자 약속받고 투자 많이 받으려면 회사 외형 늘려야 한다고 빚내서 사무실도 늘리고 직원도 늘리고 가짜 매출도 만들고.

저도 그때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회사가 커진다고 좋아만 했죠. 그러다 본부장이 약속 펑크 내고 잠적했어요. 선배 회사 명의로 대출 풀로 땡겨서 그거 챙기고 뜬 거죠. 회사 외형 키운 것도 대출금 늘리려고 그런거고.”


어휴 정말 가슴 속에 묻은 각종 감정이 마구 쏟아져 나오니까 감당이 안 된다. 성 팀장은 이미 소리만 안 냈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다. 여기까지 하자.


“성 팀장님 제가 포기 못 하는 이유 아시겠죠. 뭐 선배 복수나 못다 한 한을 풀자. 뭐. 그런 멋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치만 그때 선배가 펑펑 울던 날 저도 같이 술이 떡이 돼서 선배. 나도 테란 같이 살릴 테니까. 울지 마요. 하면서 약속을 해버렸거든요.

뭐 안 지킨다고 선배가 뭐라 하진 않겠지만 어쩌다 이런 기회를 만났으니 그냥 한번 해보려 합니다. 그러니 더 이상 포기하라고 말하지 마세요. 성 팀장님.”


성 팀장은 아까부터 계속 블라우스의 소매로 눈물을 닦고 있다. 카페 안의 손님들이 기웃거리며 도대체 저 테이블에서 무슨 드라마가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하며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팔자에 없는 알파 메일 의혹을 오늘도 받는구나. 나란 남자.


서준은 성 팀장을 만날 때부터 짓고 있던 얼굴의 영업용 미소를 그제야 풀고 빙그레 웃었다. 근데 아까부터 주둥아리가 근질 근질하다. 안돼. 니가 나올 때가 아니야.


“성 팀장님은 정말 운이 좋아요. 돌고 돌았지만, 마지막 9번째 파트너가 저라서요. 텐시아. 한번 붙어봅시다. 까짓거 죽기밖에 더 하겠어요.”


아. 마지막 대사는 날리지 말 것 그랬다. 성 팀장의 눈물범벅 된 채 아연해하는 얼굴을 보고 아차 싶었지만 뭐 어떻게 하겠는가. 지병인 것을.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으며 간신히 성 팀장을 달래고 집에 돌아온 서준은 민님과 연님을 불러 성 팀장과의 대화 내용을 전했다.

어휴 또 지르고 오셨습니까라고 중얼대는 민님의 투덜거림은 귓등으로 흘리면서 이번 계획에서 중요한 사안 몇 가지를 단말들과 공유했다.


우선 서버는 자체적으로 준비하기로 했다. 텐시아가 방해한다면 할 수 없다. 우리만의 방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좀 더 테스트를 해보고 나중에 하려고 했지만 일단 지르고 본다.


“연님. 가상 서버랑 데이터 주고받는 건 이상이 없지?”


- 네. 관리자님. 현재까지는 문제가 없습니다.


연님은 세레스타의 행성 관리 시스템에 테란을 서비스할 수 있게 가상 서버를 구축했다.

창조주님이 주신 신성한 행성 관리 시스템을 게임 서버로 사용한다니 조금 찔리기는 하지만 뭐 있는 걸 사용 안 하는 것도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공짜 서버 잘 쓰겠습니다. 모든 것은 창조주의 뜻대로.


나름 큰 비용을 들여 업그레이드한 7등급 <차원 통신기 NEO Unlimited>가 서로 다른 두 차원의 신호를 잘 연결해 줄지 의문이긴 하지만 더미로 시험해 본 스트레스 테스트로는 꽤 효율이 좋았다.

여전히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앱이지만 기능은 말 그대로 언 리미티드한 것 같아 다행이다.


클라이언트의 배포는 몇몇 오픈 소스 배포 채널을 이용하기로 했다. 워낙 자유롭고 방대한 조직이라 텐시아가 거기까지는 압력을 넣지는 못할 것이다.

서준이 처음에 테란을 인수하면서 생각했던 기능들도 추가했다. 서준의 생각이 잘 먹힐지는 미지수지만 게임 개발 10년 차에 게이머로서 20년을 넘게 산 서준의 감각은 분명 먹힐 거라고 예상한다.

자신이 게임을 하면서 늘 이런 기능 좀 있었으면 했으니까 말이다.


연님이 테란의 개발에 몰두하는 동안 서준은 전 회사로 나가 착실히 인수인계를 했다. 누구처럼 이상한 메시지 남겨두고 인수인계했다고 우기긴 싫었다.

팀장도 대표도 서준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한다. 아마도 그사이에 있었던 여러 일이 그들에게도 들려왔을 것이다.

서준과 텐시아의 이야기는 게임 개발자 커뮤니티나 업계 관계자들이 쓰는 익명 게시판에서도 화제가 되었다고 들었다. 어떤 글들이 도는지는 일부러 보지 않았지만 대충 예상은 간다.


인수인계 끝나고 인사를 하는데 팀장이 남은 기간 다 휴가 처리할 테니 이제 안 나와도 된다고 서준에게 통보했다. 혹시나 유탄이라도 튈까 봐 그런 것이겠지만 하루가 급한 서준의 입장에서는 신경 쓸 곳이 하나 줄어든 게 고마울 뿐이다.


생각보다 연님의 퍼포먼스가 뛰어난 덕에 성 팀장과 약속한 삼일이 안되서 테란의 서비스 준비가 끝이 났다.

서준은 톡으로 성 팀장에게 링크를 보냈다. 클라이언트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링크였다.

희영 선배한테도 보냈다. ‘헐’이라는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그 한마디에 아주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좀 놀라셨을 겁니다. 선배.


- 관리자님. 세레스타에 좀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테란의 런칭 준비로 정신이 없는데 민님이 갑자기 세레스타에 일이 생겼다고 알려온다. 그동안 세레스타의 일은 꾸준히 민님에게 보고 받고 확인해 주고 있었다. 새삼 급한 일이라니.


- 테네브리타가 퓨리오타를 침공하기로 한 모양입니다. 퓨리오타에 침공 예정 시각이 통보되었다고 합니다. 퓨리오타에서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퓨리오타는 무슨 낯짝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걸까. 안 그래도 정신이 없는데 무시하라고 민님에게 지시를 하려다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냥 무시하는 것만이 정답일까. 그냥 무시하는 건 너무 쉽다. 보통 쉬운 길은 보상이 작다. 게임의 퀘스트도 쉬운 퀘스트는 보상이 그저 그렇지 않은가. 서준은 민님에게 다시 지시를 내렸다.


“민님, 퓨리오타와 이번 침공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모아줘.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거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처음 해본 행성관리가 너무 쉽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제목이 변경될 예정입니다 (변경완료) 24.09.04 11 0 -
공지 한시적 표지 변경 (성윤주) 및 연참 안내 24.08.24 10 0 -
공지 (첫공지) 일연 승급 신고와 제목 변경을 고려 중입니다 24.08.16 55 0 -
58 이거 참교육이 필요하겠네요 NEW 17시간 전 15 1 13쪽
57 이것이 바로 연료 X입니다 24.09.16 20 1 13쪽
56 카리나님의 선물 24.09.15 27 2 14쪽
55 습격의 배후 24.09.14 28 1 12쪽
54 뜻밖의 습격 24.09.13 31 1 12쪽
53 레오니타의 망나니 왕녀 (2) 24.09.12 32 1 12쪽
52 레오니타의 망나니 왕녀 (1) 24.09.11 33 1 12쪽
51 행성 전체를 테마파크로 만들겁니다 (2) 24.09.10 42 2 13쪽
50 행성 전체를 테마파크로 만들겁니다 (1) 24.09.09 44 2 16쪽
49 저보고 300조의 남자라는데요 24.09.08 73 2 14쪽
48 자고 일어났더니 거물이 되어 있었다 24.09.07 73 2 13쪽
47 가족의 시간 24.09.07 79 2 12쪽
46 쑨 웨이밍 회장 24.09.06 89 3 12쪽
45 여신 강림 24.09.06 98 2 13쪽
44 지구는 새로운 에너지를 원해요 24.09.05 102 3 12쪽
43 새로운 흑막? 새로운 목표! 24.09.04 104 2 16쪽
42 이대로 재벌물로 가나요 24.09.03 104 2 13쪽
41 진짜 별일 없었으니 안심하라구 +1 24.09.02 104 4 13쪽
40 관리자님의 씨를 좀 나눠주시겠습니까 24.09.01 105 3 13쪽
39 퓨리오타 방어전 (4) 24.08.31 104 3 13쪽
38 퓨리오타 방어전 (3) 24.08.31 105 4 13쪽
37 퓨리오타 방어전 (2) 24.08.30 105 3 12쪽
36 퓨리오타 방어전 (1) 24.08.29 105 3 13쪽
35 전설의 3연벙 전략 24.08.28 107 3 14쪽
34 1인 용병단 결성 24.08.28 107 3 12쪽
33 마나석 24.08.27 108 3 13쪽
32 꽤나 요망하시군요. 카리나 고문 +1 24.08.26 111 4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