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무림인의 미궁견문록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슬하
작품등록일 :
2024.08.01 11:15
최근연재일 :
2024.09.13 22:41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5,821
추천수 :
216
글자수 :
267,889

작성
24.09.13 22:41
조회
33
추천
4
글자
13쪽

45화 보상

DUMMY

관리자 격인 마법사들이 다 죽고, 하유성과 아리아는 시설에 남은 사람들을 인도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시설 안쪽에는 경비를 족쳐서 얻어냈던 정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납치될 때까지 정보 길드는 뭘 했나 싶을 정도였지만, 그 이유는 곧 드러났다.


바로 도시 안쪽의 사람들을 납치한 게 아니라, 미궁 도시로 피난 오는 이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쓴 것.


이 세계에서 미궁 도시 알레프는 인류의 최전선이자 동시에 가장 번성한 도시라는 이중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알레프의 바깥 세계는 대체로 척박했다.

마계와 너무 가까운 탓인지 일반 작물은 잘 자라지 못했고, 야생 동물들은 일정 부분 마력에 오염돼 독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어느 정도 마력에 적응되어 있는 인간이나, 혹은 그런 종자를 개발할 수 있는 곳들만 살아남았다.


종자를 개발하더라도 그걸 키울 수 있는 땅은 또 희박했으니, 자연스럽게 전쟁이 자주 일어났고, 덕분에 독립 세력이라 할 수 있는 미궁 도시만 점점 배를 불려갔다.


전쟁 난민들은 하나둘 미궁 도시로 흘러들어왔다.


물론 도시 안쪽에서는 쉽사리 죽어가는 개척자들을 그런 난민들로 채우고 있다는 나름의 어둠이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에겐 꿈과 희망의 장소였던 것이 바로 미궁 도시.


아르카나 이리스라는 단체는 그런 꿈을 가지고 온 이들에게 정착 절차를 도와주겠다며 접근해 강제 노역을 시킨 것이었다.


심지어 노역뿐 아니라 사람 그 자체를 재료로 삼기까지 했으니, 피해자들의 상태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안 됩니다. 받을 수 없습니다.”


도시를 지키는 경비 병력이 한가득 모여 온 피해자들을 보며 말했다.


“이들은 도시에 연루된 범죄 사건의 피해자이제 부상자요. 그런 데도 들어갈 수 없소?”


“도시의 안정을 위해 무분별한 난민의 수용은 금지하고 있습니다. 범죄와 관련되어 있고, 부상자라면 더더욱 금지하고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경비병은 정중히 말했지만, 그건 하유성이 아니라 뒤에 있는 아리아를 향해서였다.


“열어.”


그녀가 말했다. 다른 말뜻은 없었다. 문을 열라는 것뿐.


그러나 도시의 출입을 관리하는 병사들은 가뜩이나 요즘 난민 문제로 말이 많다며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다.


“기사단에 다녀올게.”


그녀는 혼자 도시로 들어가 기사단의 지원을 받아오겠다고 했다.


난민들에게 필요한 건 보증자였고, 이번 사건의 의뢰자인 용검 지크프리트라면 얼마든지 보증을 설 수 있는 힘이 있었다.


하유성은 남아서 기다리는 인원을 진정시켰다.


“우리 애가··· 우리 애가 죽어가요.”

불에 그슬린 상처로 가득한 아이를 업고 있는 한 남성이 말했다.


“이걸 쓰시오.”


하유성은 포션을 희석해 건넸다.

저런 부상자가 너무 많아서, 사비를 털어 치료하려 하더라도 전부 처리할 수가 없었다.


“제발 조금만 더!”

아이를 둔 남성이 하유성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지만, 하유성은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오···.”


애초에 하유성에겐 포션이 거의 없었고, 그마저도 시설 내부에서 꽤 사용한 상태.


나름의 판단에 따라 포션을 물에 희석하여 중환자 몇 명에게 나눴지만 중과부적이었다.


누군가는 애원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화를 내기도 했다.


하유성은 피로를 느끼긴 했지만, 그래도 감사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에 위안 삼기로 했다.


“전사 님. 감사합니다. 혹 잠시···.”

한 젊은 여성 피난민이 하유성을 불렀다.

그녀는 비교적 상태가 괜찮은 편이었는데, 함께 도시로 오던 남편이 크게 다쳐 하유성이 응급 조치를 해준 상태였다.


그녀의 상태가 겉보기에 괜찮은 건, 조직의 두목이었던 남자가 그녀를 노리개로 삼았기 때문.


그녀의 남편이 치료를 받으며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펑펑 울며 아내를 껴안던 모습은 하유성의 머리에 깊게 남아있었다.


“무엇이오?”


“시설 안에 그 놈의 비밀 집무실이 있습니다. 입구에서 쭉 안쪽으로 들어간 다음 왼쪽으로 두 번···해서 장치를 작동하면 나올 겁니다.”


그곳에 그가 숨겨둔 장부나 자료 등이 있을 거라고, 여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본인이 수치를 당한 장소를 용기 있게 밝히고 있다는 걸 하유성은 알 수 있었다.


“고맙소. 내 꼭 잘 처리하겠소.”


“정말 고맙습니다···.”


“잘 버텨주어 고맙소.”


하유성은 진심으로 말했다.


마약으로 회로에 손상이 오는 개척자들보다도, 이들이 더 큰 피해자라는 걸 그는 실감할 수 있었다.


얼마간 기다리자 아리아가 기사단 간부들을 끌고 나타났다.


그들은 정말로 모든 사람의 신원을 보증한 다음, 일단 기사단에서 치료받은 후 인적 사항을 확인하고 인력으로 쓰일 것이라 했다.


기사단이라고 마냥 지원해 줄 수는 없으니 저들은 분명 또 다른 노동을 해야겠지만, 적어도 하유성처럼 폭탄 목걸이를 차거나 하진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만한 인원을 도시에 들이는 건 기사단 입장에서도 꽤 부담이라 난색을 표했지만, 아리아의 강한 주장과 압박으로 받아낸 것이었다.


일이 일단락되고, 하유성은 다시 시설로 돌아가 여자가 알려줬던 비밀 장소로 향했다.


과연 음지의 마탑이라는 원대한 꿈을 가진 사람의 비밀 집무실은 어느 정도 규모일까.


하유성은 기대를 갖고 방 안의 장치를 순서대로 건드렸다.


그러자 벽이 돌아가며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은, 휴게실과 사무실을 합쳐놓은 것 같은 공간이 나왔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건 어마어마한 규모의···.


책이었다.


그것도 전부 빈 종이에 스스로 쓴 책.


약물의 합성 제조법부터, 판매 루트나 시설을 운영에 관한 사안, 앞으로의 계획들까지.


그 밖에도 수십 권의 책이 자필로 정리되어 있었다.


평생 하나만을 목표로 두고 살아온 악인.

그게 바로 이름도 모를 붉은 보석의 마법사였다.


‘미친놈이군.’


무엇이 그를 이토록 집념에 가득 차게 했을까.


책장 한 켠에 길게 늘어져 있는 일기를 보면 알 수 있으리란 생각이 하유성의 머리를 스쳤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궁금하진 않았다.


악인의 사연 같은 건 구질구질한 변명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럼에도 하유성은 놈의 집무실 안, 가장 잘 보관되어 있는 단 한 권의 책에서 그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필체를 보아하니 이 방에서 유일하게 그의 손으로 쓰지 않은 책.


그 책은 보존 마법이 걸려있었음에도 혼자 엄청나게 오래된 티가 났다.


[원소 마법의 비의(秘意) : (아르카나)]


하유성은 무심결에 책을 펼쳐 훑어봤지만, 그가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대신에 책 사이사이에 따로 종이에 적은 메모가 수도 없이 끼워져 있었는데, 그 메모들로 봐선 예사 책이 아닌 것 같았다.


‘이 책은 기존 원소 마법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꿀 것이다.’


‘마탑의 고루한 늙다리들은 평생 떠올릴 수 없는 마법이다.’


‘이것만 제대로 익힌다면 누구도 나를 상대할 수 없을 것이다.’


초중반부에 적힌 메모는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그러나 후반으로 넘어가자 조금 다른 결의 메모들로 가득 찼다.


‘빌어먹을. 재능이 없는 놈 따윈 마법엔 눈도 돌리지 말란 건가?’


‘결국 나는 단 한 개의 마법을 쪼개고 쪼개 일곱 개로 만들어 그 파편을 배우는 데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든 이걸 이해해 줄 사람을 찾고 싶다. 그러나 넘겨주긴 싫다. 나는 이대로 영영 오르지 못할 산 중턱에서 죽을 것이다.’


아무래도 하유성이 색깔 놀이라고 비웃었던 것은 이 마도서에 있는 내용을 쪼개어 배운 이들인 듯했다.


하유성은 애초에 마법에는 의지할 생각도 없고, 이해할 생각도 없었으니 일단 그걸 품에 넣고 가져가기만 했다.


나머지 자료들은 기사단에서 처리해 줄 터.


하유성은 도시로 돌아갔다.


이미 저잣거리에는 아리아와 하유성이 도시에 약물을 공급하던 거대 범죄 조직을 처단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원래 베르트랑 백작의 연회 사건과 알랭 저택 탈출로 ‘자유를 쫓는 낙오자’라며 실력 있는 개척자들 사이에서 이름을 날리던 하유성의 명성은 이제 아리아 같은 거물들과 같이 언급되며 더욱 높아졌다.



고레벨 개척자들 사이에선 눈여겨볼 신인을 넘어서, 다음 세대의 주역이라고까지 평가받고 있었으니, 저레벨 개척자들 사이에선 선망의 대상이 되는 건 당연했다.


물론 그조차도 아리아의 명성에 비하면 조족지혈.

그녀는 그야말로 한 세력을 만들어도 될 만큼의 열성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수려한 외모, 도시의 온갖 기록을 갈아치우는 실력, 그에 맞는 수많은 업적까지.


그녀야말로 차후 초인의 자리에 올라 미궁의 심연을 한 층 더 밝혀줄 인재라는 말이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정식으로 집무실에 부른 기사단장, 용검 로버트 지크프리트는 커져 버린 사태에 어떤 보상을 해주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우선 일을 훌륭하게 마무리지어 줘서 고맙네. 마탑이 연관되진 않았지만, 생각보다도 더 큰 문제였어.”


“마탑 공장 측 폐기 업자도 연루되어 있었소.”


“알고 있네. 하지만 그는 범죄 단체에서 심어둔 간자로 처리됐지. 마탑도 피해자로 기록될 것이네.”


“우리가 죽인 이들은?”


“그들이야 천인공노할 악인으로 기록되겠지. 이미 신원도 거의 파악이 됐네. 한때 나름 촉망받는 마법사였지만, 4레벨의 한계에 부딪혀버린 패배자들이더군.”

용검의 가혹한 평가는 사실이었다.


“피해자들은 책임져 주시는 것이오?”


“그럼. 그들에 대한 확실한 책임을 지는 대신, 기사단과 공조했다고 발표하는 게 조건이었으니까.”


아리아가 기사단과 협상한 내용은 공(公)을 나눠주겠단 것이었다.


실제로 아리아와 하유성 외에 이 사건에 가장 큰 이득을 본 건 그들과 함께 수사하며, 두 사람을 지원했다고 알려진 기사단이었다.


“알았으니까 보상이나 줘. 이 정도면 은혜를 갚고도 거스름돈을 받아야겠어.”


놀랍게도 아리아는 로버트 앞에선 멀쩡하게 말했다.


“그래. 의뢰를 했으면 보상을 줘야지. 원하는 걸 말해보려무나.”


“실타래. 가지고 있지?”


“······그건 불가능해. 보상으로 줄 수 있는 게 아니야.”

로버트의 얼굴이 굳었다.


그러나 아리아는 그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 조건을 조정했다.

“대여라도 해줘.”


“너흰 아직 역부족이다. 적어도 너까지는 6레벨이 되어야 도전할 수 있지.”


“사부.”


“······넌 이제 내 제자가 아니다.”

놀랍게도 아리아와 로버트는 이전에 사제 관계였던 듯했다.


“그걸 도전하지 않으면 난 6레벨에 오를 수 없어. 알잖아? 당장 가겠단 건 아냐. 충분히 준비할게.”

아리아의 단호한 태도에 결국 로버트는 뜻을 굽혔다.


“······알겠다. 휴, 파문한 제자 녀석이 바라는 것도 많군.”


“고마워.”


잠깐 다른 면을 드러냈던 아리아는 금방 다시 무감각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하유성은 둘 사이에 복잡한 인연이 있단 걸 짐작할 수 있었지만, 물어볼 수도 없고 알려주지도 않을 것이란 걸 알았다.


“그래서, 이제 논공행상을 마무리하지. 자넨 무엇을 바라나?”


“적당한 돈이면 족합니다.”


하유성은 무기든 기술이든 딱히 바라는 게 없었다.

그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검술의 완성이고, 나머지는 부차적인 것들이었으니까.

그나마 돈이라면 이 세계에 와서 꼭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으니 그는 돈으로 보상을 달라고 했다.


“돈이야 얼마든지 주겠다마는···. 그래도 지금 거의 차기 영웅 취급을 받는 자네를 고작 돈 몇 푼 쥐여 주고 보낼 수는 없지. 어디 보자···. 3레벨에 검을 몸처럼 다룰 수 있는 경지군. 내 지금 자네에게 딱 맞는 비급을 주겠네.”


“필요 없습니다. 제 검술 이외에 다른 걸 배울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도 이 세계에서 최강자 중 하나인 로버트가 비급을 준다는 데도 하유성은 단칼에 거절했다.

당연하지만 하유성은 그만큼이나 자신의 검술에 건 기대와 인생이 컸다.


“뭐···이건 딱히 다른 검술이라고 할만한 게 아니네. 나도 예전에 곁가지로 배웠던 거고, 소질이 있는 놈이라면 누구에게나 보여주고 있지.”


로버트는 본인의 집무실 서랍 안쪽을 뒤적이더니, 낡은 책 한 권을 꺼냈다.


[검기를 날리는 법]

비급이라기엔 거의 저급하리만큼 직설적이고 투박한 제목.


그러나 로버트의 말대로 지금 하유성이 제일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주제에 관한 책이었다.


파천이검에서 시프노스의 책, 마법서와 로버트가 준 비급까지.


하유성은 자신이 책에 관한 복은 어지간히 좋은가보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말

추석 연휴(9.14~9.18) 휴재입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글을 따라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재정비 후에 더욱 재밌는 이야기를 준비해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두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어떤 무림인의 미궁견문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45화 보상 24.09.13 34 4 13쪽
44 44화 의뢰(4) +2 24.09.12 38 4 13쪽
43 43화 의뢰(3) 24.09.11 44 3 13쪽
42 42화 의뢰(2) 24.09.10 48 3 12쪽
41 41화 의뢰(1) 24.09.09 54 2 15쪽
40 40화 문천 24.09.08 55 2 12쪽
39 39화 팀 24.09.07 56 4 13쪽
38 38화 하피 24.09.06 58 4 13쪽
37 37화 사무소 24.09.05 69 4 13쪽
36 36화 심부름 24.09.04 69 3 12쪽
35 35화 가치 24.09.03 77 5 13쪽
34 34화 결투 (2) 24.09.02 73 5 12쪽
33 33화 결투 (1) 24.09.01 80 5 13쪽
32 32화 반항 24.08.31 82 3 13쪽
31 31화 낙차 24.08.30 82 3 14쪽
30 30화 수련(1) 24.08.29 86 4 13쪽
29 29화 추격(2) 24.08.28 97 5 13쪽
28 28화 추격(1) 24.08.27 101 4 13쪽
27 27화 마검(4) 24.08.26 99 4 13쪽
26 26화 마검(3) 24.08.25 98 3 12쪽
25 25화 마검(2) 24.08.24 102 4 13쪽
24 24화 마검(1) 24.08.23 113 4 13쪽
23 23화 정산 +2 24.08.22 112 4 13쪽
22 22화 횡재 24.08.21 111 4 14쪽
21 21화 토벌(2) 24.08.20 114 4 14쪽
20 20화 토벌(1) 24.08.19 132 4 14쪽
19 19화 정보 길드 24.08.18 126 5 13쪽
18 18화 스승님···? (2) 24.08.17 138 4 14쪽
17 17화 스승님···? (1) 24.08.16 136 4 13쪽
16 16화 선의 +2 24.08.15 138 6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