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무림인의 미궁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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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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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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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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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5화 가치

DUMMY

렌은 하유성을 기사단의 회복 시설로 데려와 치료했다.


큰 무리 없이 이긴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 훨씬 강한 힘을 가진 학센을 상대로 치른 일전이었다.


일격 일격을 막을 때마다 피해가 쌓인 하유성의 내부는 거의 진탕이 되어 있었다.


울컥울컥 입에서 피를 흘리는 하유성.


“미련하긴. 이런 꼴인 주제에 도움을 안 받겠다고 한 거야?”


렌이 개인 소유의 포션 하나를 부어주면서 말했다.


기사단의 것은 받지 않겠다고 한사코 거절하는 하유성 때문에, 그녀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호의라는 걸 계속 강조해야만 했다.


“치료는 고맙소. 빚을 갚고 싶은데, 혹 내가 개인적으로 도울 일 같은 게 있겠소?”


“흥, 너 정도는 나한테 아직 아무 도움이 안돼. 좀 더 강해져서 와라.”


렌이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그렇게 하겠소.”


“그래도 뭐···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진 않네. 미궁의 시련만 견딘다면 말이야.”


“미궁의 시련?”


“뭐 검증된 얘긴 아닌데, 재능이 뛰어난 개척자는 미궁이 좀 더 빨리 성장시키기 위해 더 큰 시련을 준다는 말이 있거든. 사실 빨리 레벨을 올린 사람들은 더 큰 위기에 처한 사람들일 테니까 결과론에 불과한 거일 수도 있지만···우리 개척자들은 이런 미신을 많이 믿지.”


“그렇구려. 시련이든 뭐든, 금방 강해져서 빚을 갚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소.”


“빚을 얼마나 지기 싫어하는 거야? 천천히 몸이나 챙겨.”


“후후, 그쪽이 한 번 노예로 지내다 벗어나 보시오. 아주 후련하지만··· 여전히 조금 불안하구려.”


“그래. 그래도 웃으니까 보기 좋네. 그놈의 자유, 한번 만끽하는 모습 보여달라고.”

렌이 은발은안을 반짝이며 웃었다.


렌은 시프노스와 같은 규격 외의 강자를 제외하면 하유성이 겪어본 이들 중 가장 강한 개척자.


그런 사람이 이토록 호방하고 명예로운 성격이라는 데 하유성은 꽤 기분이 괜찮았다.


‘그럼 앞으로는···.’


마침내 염원하던 자유를 얻었다.


그 다음은 혼자 살아가기 위한 방편을 마련해야 할 때.


먹고 자고 입는 것까지 돈이 안 드는 게 없을 터였다.


물론 그럼에도 하유성은 기분이 좋았다.


폭탄 목걸이를 자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부터, 매일 매일이 고민이었기 때문.


끊고 도망갈지, 당당하게 끊을 수 있도록 힘을 더 기를지, 아니면 솔직히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것 같았기에 돈을 벌어다 줄까도 생각했었다.


결과적으론 숨지도 않고, 생각한 것만큼 충분히 힘을 쌓지도 않은 채로 운 좋게 해결되었기에, 생각보다도 더 빨리 자유의 몸이 되었다.


하유성이 다음 행선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렌의 앞으로 기사단원 한 명이 급히 달려와 경례를 하고 보고했다.


“큰일입니다! 지금 정문에 순찰대장이···!!”


“뭐?! 그가 왜?”

렌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순찰대장은 기사단장 급이 아니면 상대할 수 없는 초거물. 그러나 기사단장인 로버트는 공무로 바빠 어디에 있는 지 몰랐고, 설상가상으로 기사단 내부에 남은 간부도 몇 없는 상황이었다.


눈앞에서 보고하는 중인 기사가 자신에게 온 것도 다른 간부들이 부재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내놓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유성이라는 신참 개척잔데 왜 우리 기사단에서 찾는 지는······?”


보고하던 기사는 말을 하다 말고 하유성을 바라보더니, 머리가 정지한 것처럼 말을 멈췄다.


“아, 내가 그분과는 일면식이 있소.”


“렌 님이 이자를 납치한 거였습니까?!”


“납치라니!! 그런 거 아니야!”


“아무래도 가봐야겠소.”


“···같이 가자. 진짜 납치라도 한 줄 알고 있으면 어떡해.”


그들은 시프노스가 기다리고 있다는 정문 쪽 연무장으로 향했다.


한 집단의 수장이자 최강의 개척자 중 하나라는 말이 과연 허언이 아니었는지, 그가 왔다는 사실 하나로 기사단 전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솔직히 직접 와서 구해줄 정도의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하유성은 왜 그가 자신을 데리러 왔는지 사실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자신이야 그를 내심 스승으로 여기기로 마음먹었지만, 그가 하유성에게 얼마만큼의 호의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가르침에 후하다는 말도 들었고, 그때는 딱히 낙오자나 노예라는 신분에 신경쓰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자유가 되자마자 나를···?’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을 던지는 사이, 하유성은 시프노스를 마주했다.

그의 옆에는 행크도 있었다.


“왔구나. 애송이. 큰 일을 했다지.”


“큰 일이라니 당치 않소. 나를 위한 일이었을 뿐.”


“흥 그게 바로 큰 일이다. 뒤집을 수 없으리라 여겼던 걸 뒤집은 거니까.”


“그나저나 예까진 무슨 일이십니까? 저는 기사단에 억류되어 있는 게 아니니, 혹 저를 걱정하신 거라면 정말 감사합니다만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유성이 나서서 오해의 소지를 차단했다.


“맞습니다. 저희는 유성 씨를 보호하고 치료했습니다···.”


렌 지크프리트는 대화에 어떻게 끼어들어야 할지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기사단이 순찰대보다 밀리는 게 아니었으니 기세를 잃지는 않아야 하지만, 그러기엔 또 상대의 격이 높아서 오는 혼란이었다.


쾌활하고 호탕해 보이는 그녀였는데, 그녀보다도 더 한 강자를 만나니 그녀도 위축되긴 하나보다 하고 하유성은 생각했다.


“하하, 저희 스승님계서는 그런 이유로 오신 게 아닙니다. 렌 님. 그저 제가 유성 씨 소식을 알려드렸더니 일단 얼굴 한 번 봐야겠다고 오신 거라서요.”


행크가 대신 대답했다.

시프노스는 렌이나 행크가 뭐라하건 신경쓰지 않고 하유성의 몸 이곳저곳을 툭툭 두드려봤다.


“가르쳐준 대로 잘 수련했구나. 책도 도움이 된 듯하고.”


하유성은 왠지 모르게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무예를 제대로 가르쳐준, 내심 스승으로 여기고 있던 이가 자신의 성과를 칭찬해 줬기 때문이었다.


“···네. 정말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은혜에 감사합니다.”


그런 칭찬은 하유성이 이전 세계에서도 이번 세계에서도 받아본 적 없는 것이었다.


“이제 뭐 할 생각이냐?”


“한동안은 그저 자유롭게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삶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야 하유성은 돈이니 뭐니 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자기가 진짜 하고 싶었던 게 뭔지 확실히 알게 됐다.


의식주를 마련하고 돈을 버는 것은 수단.


결국 자신이 바라는 건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공간과, 그런 삶 그 자체였다.


“그래. 열심히 해라.”


시프노스는 그렇게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십니까···?”

렌이 당황해 물었다.

그녀는 당연히 시프노스 정도의 인물이 움직였다는 건 뭔가 요구를 한다거나 협박한다거나 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대로 시프노스가 떠난다 하니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물론 그건 하유성도 비슷했다.


“정말 저를 구해주러 오셨던 겁니까?”


“기사단이 지들 목표에 필요한 거면 막무가내로 굴긴 하지만, 너를 잡아갈 리가 있겠느냐 이놈아. 가끔 운동하러 오란 말 하려고 들렀다. 간다!”


시프노스는 그렇게 말하고 정말 사라져 버렸다.


“아니 스승님!! 저만 남기고 가시면···.”


행크는 졸지에 혼자 남아 렌을 비롯한 기사단원들의 시선을 홀로 받아내야만 했다···.


##


“사실 스승님이 오신 건 자유가 된 너를 기사단에 뺏기기 전에 순찰대에 집어넣기 위함이었어.”


하유성과 함께 기사단을 빠져나와 들른 주점에서, 행크가 말했다.


“근데 왜 한 번 권하지도 않은 것이오?”


“내가 그분 뜻을 어떻게 다 알겠어? 검이나 휘두르며 혼자 살고 싶단 네 대답이 맘에 들었나 보지.”


“···다음에 꼭 감사 인사를 하러 찾아뵙겠소.”


“흠. 온다고 막 만날 수 있는 분은 아니다만. 그래라. 순찰대에 들어오면 더 좋고.”


“순찰대도 목표가 있소?”


기사단의 목표인 미궁의 완전 공략은 하유성이 딱히 공감하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그에게 미궁은 전투 경험을 쌓을 수도 있고, 없던 내공도 준 곳이었으니까.


그래도 단체별로 어떤 목표와 가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 순찰대에도 어떤 목표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예전에 잠깐 말했는데, 뭐 이종족의 권익 신장이니 뭐니 했던 것. 기억나?”


“기억하오.”


처음 행크와 드웨인 파티에서 만났을 때 그가 로엘리아에게 순찰대 가입을 권유하며 했던 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행크도 그때부터 참 순찰대 열렬하게 지지하고 있었다.


“순찰대의 모토는 물론 그것도 맞지만, 사실 그것보다도 더욱 큰 가치야.”


“더욱 큰 가치? 노예 해방 같은 것이오?”


“그것까지 포함해서. ‘안전하고 평등한 사회’.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게 시프노스 님과 우리 순찰대의 최종 목표지.”


“그게 가능한 일이오?”

중원에서 살다 온 하유성에게도 그건 너무 이상적으로만 보이는 얘기였다.


세상은 힘이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나뉠 수밖에 없었고, 돈과 명예와 권력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으며, 욕망에는 제어할 수 없는 불길과도 같은 속성이 있다.


깊게 방법을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 안에서 결코 평등은 있을 수 없다는 게 하유성의 상식이었다.


“힘들지. 어쩌면 우리 대에 불가능한 목표일 거고. 그래도 누군가는 계속 그런 말을 해야 바뀌는 게 있으니까.”


“···그렇구려.”


“네가 연회장에서 했던 일, 그리고 곧바로 노예 신분을 벗어던진 일 때문에 너는 지금 자유와 해방의 상징 같은 게 돼버렸어. 우리 순찰대로서는 탐날 수밖에 없는 존재지.”


“나는 그런 것까지는 관심 없소···.”


어쩐지 민망한 투로 하유성이 말했다.


그가 바란 건 자신의 자유와 그를 위한 힘이었지, 타인의 자유나 해방 같은 게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자유와 해방을 바란다면 개인의 힘을 쌓아야지 상징 같은 걸 가져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래. 네 대답에서 시프노스 님도 그걸 안 거지. 솔직히 어중간한 마음으로 들어오면 안 된다는 건 기사단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니까.”


“그렇구려···.”


나름대로 스승으로 여기고 있는 시프노스가 실망했을 것 같아 하유성은 기분이 찜찜했다.

물론 그렇다고 신념이 바뀌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나 살기도 버겁소.”


“하하, 부담 느끼지 않아도 돼. 네 탓도 아니고 우리가 뭐 엄청 기대한 것도 아니니깐. 마지막에 스승님이 가끔 운동하러 오란 말까지 하셨잖아. 신념이야 어쨌건 좋은 관계로 남자는 말씀이지. 그분은 그 정도로 실망하시는 분이 아니야. 그랬다면 우리 순찰대는 있지도 않았겠지.”


왠지 변명 같은 말을 하는 하유성을 행크는 안심시켰다.


“언젠가···.”


하유성은 말끝을 흐렸다.

‘언젠가 자유롭게 검을 휘두르다가, 파천이검을 충분히 대성한다면···.’


그때가 되면 다른 가치를 찾아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또한 변명 같았기에 하유성은 뒷말을 삼켰다.


“그래서, 이젠 어디서 어떻게 지낼 생각이야?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알레프가 집값이 싼 편은 아닌데···.”


“······.”


“설마 아무런 준비도 생각도 없이 나온 거야?”


그랬다.

다행히 하유성이 벌어온 돈이 하유성을 위해 쓰인 무기값이나 임무 준비금보다는 훨씬 많아서 빚진 건 없었지만, 그렇다고 남는 돈을 거슬러 받은 것도 아니다.


하유성은 당연히 무일푼이었고, 집값이나 물가는커녕, 어떻게 어디서 혼자 임무를 받아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검 한 자루랑 몸뚱이만 있으면 상관없소.”


“아니 그래. 유성 씨 실력이면 분명 돈이야 잘 벌긴 하겠지만···.”


복잡한 표정으로 하유성을 바라보던 행크는, “어쩔 수 없지···.”라고 중얼거리며 하유성이 당장 숙식을 해결하며 일거리까지 얻을 수 있는 곳들과, 프리랜서 개척자가 살아가는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거기에 고마움을 느끼며, 하유성은 생각했다.


‘역시 검 한 자루만 있으면 어떻게든 되는군.’


무계획한 인간의 사고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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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화 팀 24.09.07 54 4 13쪽
38 38화 하피 24.09.06 57 4 13쪽
37 37화 사무소 24.09.05 68 4 13쪽
36 36화 심부름 24.09.04 68 3 12쪽
» 35화 가치 24.09.03 77 5 13쪽
34 34화 결투 (2) 24.09.02 72 5 12쪽
33 33화 결투 (1) 24.09.01 79 5 13쪽
32 32화 반항 24.08.31 81 3 13쪽
31 31화 낙차 24.08.30 81 3 14쪽
30 30화 수련(1) 24.08.29 85 4 13쪽
29 29화 추격(2) 24.08.28 97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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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화 마검(3) 24.08.25 9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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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화 마검(1) 24.08.23 112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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