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무림인의 미궁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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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하
작품등록일 :
2024.08.0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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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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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추격(2)

DUMMY

하유성이 처음 레벨업의 징조를 느낀 건 1층에서 토르쉬를 비롯한 쥐들을 죽이고 나서였다.


그때부터 등이 살살 간지러웠고, 본능적으로 도시로 나가 나무에 간다면 레벨업을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하유성은 묵묵히 마물을 사냥했다.


그리고 마침내 3층 필드 보스 격인 해골 기사를 잡았을 때, 그의 안에서 뭔가가 거의 가득 찼음을 느꼈다.


마치 무언가가 자신을 인정한 느낌.

물론 하유성은 그게 미궁의 인정인지, 나무의 인정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곧 레벨을 올릴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고, 전투 중에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만약 플로베가 흥분해서 공격을 해댄 게 아니었다면 빈틈을 노릴 수 없었을 터.


“흥, 그래 봐야 3레벨이 아닙니까?”

플로베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한 기색을 감추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마냥 근거 없는 건 아니었다.

레벨은 절대적.

이는 미궁에 있는 개척자들의 격언이었으니까.


실제로 플로베 자신도 4레벨치고 그렇게 강한 편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3레벨의 준기사들에게 져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유망주라는 이들을 상대로도 몇 번이나 압도적으로 이겼다.


‘그랬을 터인데···!!’


“그쪽의 공격은 강하지만 단조롭소. 실력이 떨어지는 이들에겐 절대적이겠지만, 이제 내겐 보이는 구려.”

하유성이 플로베의 찌르기를 흘리며 말했다.


“역시 유성 오라버니!! 어서 끝내 버려요!”


한껏 여유를 찾은 세이지가 언제 절망에 빠졌었냐는 듯, 이젠 호들갑을 떨었다.

이제 몸에 하나둘씩 상처가 늘고 있는 건 오히려 플로베였다.


그가 간과한 건 레벨이 절대적이라는 말 속에 있는 진짜 의미.

그건 곧 레벨이 오를 때마다 성장하는 폭이 엄청나게 크다는 뜻이었다.


특히나 이미 파천이검이라는 ‘기술’이 완성되어 있는 그는 성장 폭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하유성의 심장에 자리 잡은 단전은 모든 기술의 출력을 높여주었고,

1레벨에 받은 마력 조작이라는 축복은 마력 운용의 정밀함과 안정성을 높여줬다.


다른 개척자들이 흔히 말하는 ‘패시브 스킬’ 중심으로 기연을 얻어왔기에 기술에 투자하는 이들보다 성장 폭이 클 수밖에 없는 것.


‘세 번째 축복은 뭐지···?’

한참 전투 중인데도 하유성은 아직까진 새로운 능력이 생긴 것을 느끼진 못했다.


전사의 길이 아닌 독행자의 길을 걷고 있는 탓에, 보다 직관적인 능력을 얻지 못했던 것.


“뭐, 상관없지.”


펑!

이제는 하유성의 찌르기에서도 플로베의 것과 비슷한 소리가 났다.


뱀처럼 들어오는 플로베의 찌르기에는 하유성이 주로 쓰는 환(幻)보다는 강(强)과 쾌(快)의 묘리가 더 많이 섞여 있었고, 하유성은 몇 번이나 그걸 상대하며 요령을 익힌 것.


“허, 건방진···!”

부족한 무리를 힘과 속도로 보충하려다보니 플로베는 힘이 점점 빠지는 걸 느꼈다.

이대로라면 수세에 몰리다가 질 것이란 걸 그는 직감했다.


그는 자세를 낮추고 한 번에 강하게 찌르는 척을 했다가, 뒤로 빠지며 거리를 벌렸다.


“제 별명은 사냥개입니다. 나름대로 고귀함을 기치로 삼는 기사단엔 그리 어울리지 않는 별명이죠. 왜 그런지 아십니까?”


“······.”

승기를 잡은 하유성은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죠···.”


그는 그렇게 말하며 품 안에서 약병을 꺼내어 던진 다음 칼로 부쉈다.

쨍그랑 병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칼에는 약품과 유리조각이 달라붙었다.


“독이에요! 조심하세요. 유성 씨!”

뒤에서 세이지가 외쳤다.

계속 호칭이 바뀌는 게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독을 바르니 질 것 같아서 다시 씨라고 하는 건가···?’

그는 잡념을 떨쳐내고 플로베를 보며 말했다.


“그 정도는 나도 보면 안다오. 검사 자격도 없는 자였군.”


“살아남을 자격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플로베는 다시 빠른 속도로 접근해 찌르기를 날렸다.


바뀐 게 있다면 급소를 노리던 이전의 공격과는 달리, 종아리나 팔꿈치와 같은 예상외의 부위를 노렸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공방은 심하게 복잡해졌다.


속도도 힘도 근소하게 플로베의 우위.

시간을 더 끈다면 다른 기사단의 지원까지 올 수도 있었다.


결국 마음이 급해진 하유성은 플로베의 공격을 조금 허용하고 말았다.


스슥! 플로베의 검이 하유성의 팔을 조금 베었다.


“유성 씨!!”

로엘리아가 소리쳤다. 그녀는 크게 바람의 칼날을 날리며 플로베를 잠시 떨어트렸다.


플로베는 쳐낼 수 있음에도 피하며 물러나고는 말했다.


“후후, 이렇게 된 건 미안하지만 끝입니다. 거기 발린 건 룬 베어도 쓰러트리는 맹독. 3레벨이 감당할 만한 게 아닙니다. 벌써 마비 증세가 올라오고 있겠죠.”


“······.”


하유성은 말없이 다시 달라붙어 검을 휘둘렀다.

말할 시간도 아까우니, 독이 퍼지기 전에 처리하겠단 판단.


그건 분명 옳은 판단이었지만, 방어에 집중하기 시작한 플로베를 뚫는 것도 쉽지 않았다.

···

···

···

“뭡니까! 왜 중독되지 않는 거죠?”

시간이 지나도 하유성은 똑같은 힘과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아무래도 이게 이번에 받은 축복인가 보군.”


만독불침.

물론 원리를 모르니 실제로 얼마만큼 독을 막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당장 하유성의 몸에 침투한 독은 얼마간의 마력 소모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심지어는 베인 상처마저 벌써 치료된 상황.


“치료 계열 축복이라니···. 이렇게 상황 좋게···?”


플로베의 얼굴에 절망이 어렸다.

그는 이후에도 희망을 걸고 계속 방어 태세를 유지했지만, 소용없었다.

살아있는 듯 현란하게 움직이는 하유성의 두 개의 검은 결국 벽을 뚫어냈다.


척. 오른손에 든 장검 손잡이에 플로베의 검이 걸렸다.

플로베는 검을 떼어낸 다음 다시 공격하려 했지만, 하유성은 마치 금나수를 펼치듯 따라붙으며 검을 맞댄 채 손목을 뒤틀었다.


빠드득!

손목이 뒤틀리는 고통에도 플로베는 검을 놓치지 않았다.

허나 이미 방어는 거두어진 상황.


다른 손에 있는 소검이 플로베의 오른팔 힘줄을 잘랐다.

챙그렁

마침내 플로베의 손에서 검이 떨어졌다.


“끝이오.”

하유성이 플로베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대면서 말했다.


“하하···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안 됐군요···.”


“당신은 입만 살고 명예를 모르는군.”


“살려주십시오.”

플로베는 차려입은 정장과 정중한 말투와는 달리 구질구질하게 목숨을 구걸했다.


“······.”

이렇게까지 추잡하게 굴 수 있다는 걸 예상하지 못한 하유성은 당황해 말문이 막혔다.


“저를 죽이면 기사단의 보복을 더욱 피할 수 없을 겁니다. 살려준다면 제가 책임지고 여러분들의 혐의가 없는 것으로 결론지어 보이겠습니다.”


“···당신은 정말 무인으로서의 수치심도 없소?”


“후후···아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죽으면 말도 신념도 사라집니다. 이제 제가 약자가 되었으니, 강자의 호의를 구걸하는 수밖에요. 그쪽도 평생 기사단과 척질 생각은 없지 않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에요. 다만 믿을 수 없을 뿐.”

어느새 다가온 세이지가 말했다.


애초에 기사단과는 검과 요한슨의 수급을 가져다주면서 타협을 보려고 했으니, 그녀로서는 어떻게든 처음의 목적을 이루는 편이 좋았다.


“제 품 안에 복종의 목걸이가 있습니다. 이걸 채우고 있다가 일이 잘 처리된 걸 확인하고 풀어주시죠.”


과연 그의 품 안에는 하유성이 차고 있는 것과 같은 폭탄 목걸이로 된 마도구가 존재했다.

체포한 이들을 끌고 가기 위해 들고 다니는 듯했다.


“나는 이젠 잘 모르겠군···. 알아서 하시오.”

하유성은 플로베의 검을 치우며 그의 태도에 질렸다는 듯 물러났다.


“처자식도 있는 몸인지라.”

플로베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검도 우리가 가져가겠어요. 불만 없죠?”

세이지가 플로베의 목숨을 가지고 대신 흥정했다.


플로베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전리품이 있으셔야죠.”


세 사람, 아니 이제 플로베까지 네 사람은 그대로 미궁 출구로 향했다.


“길잡이가 죽은 건 괜찮소? 복수하러 올 것 같은데.”


“후후, 본인이 죽여놓고 걱정하시는 겁니까? 길잡이는 기사단원이 아니라 고용인입니다. 사망 시 보험금도 계약 내용에 있었으니 뭐···.”


“기사단은 자기들 소속이 아니면 부품 보듯 하는 게 특징이에요. 대신 자기들 목숨값에는 아주 민감하죠. 이 자를 살려둔 건 좋은 선택이었어요.”


세이지의 말에 플로베는 “이런 아픈 곳을 찌르시는군요.”라며 능청을 떨었다.


1층에서 미궁을 탈출하기 직전, 기사단 추적대의 다른 팀원들이 쫓아왔지만, 플로베의 목숨을 저당 잡고 있다는 걸 알자, 그들은 순순히 물러났다.


“고작 4레벨인데도 꽤 대우가 좋군.”


“하하, 제가 고위 간부나 공략조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사단 내부 평판은 꽤 괜찮습니다. 우리 기사단도 꽤 괜찮은 곳이기도 하고요. 정말 들어오실 생각 없습니까, 유성 씨? 유성 씨라면 왠지 나중에 간부급까지 올라갈 것 같군요.”


간부란 6레벨 이상의 강자들을 일컬었다.


“간부도 아닌데, 우리에 대한 보복을 막아낼 수 있는 것 맞나?”


“물론입니다. 애초에 이번 사건 자체가 이득보다는 약간의 체면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으니까요. 딱 저 정도 선에서 멈출 일이었죠, 여러분께서 주신 마검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면 기사단이 마검에 현혹된 이를 막으려다 죽었다는 식으로 포장할 수 있을 겁니다.”


“애초에 그렇게 처리했으면 됐을 것을···.”


괜히 괜한 사람을 희생양 삼으려다 실패한 모습이 퍽 좋아 보이진 않았다.


네 사람은 미궁을 빠져나왔다.


플로베의 목에 걸린 폭탄 목걸이의 기폭 장치는 세이지가 가지고 있기로 했다.

남은 두 사람은 그래도 지켜줄 곳이 있었지만, 세이지는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 패 하나 정도는 더 가지고 있는 편이 나았으니까.


세이지는 아쉬워하며 다음에도 꼭 함께 일하자며 아쉬워했지만, 돈은 바로 정산했다.

유성과 로엘리아는 세이지에게서 어음을 받아 되돌아갔다.


보통 정산은 알랭 상단에 맡긴 채 해왔기에 처음으로 일에 대한 대가를 손에 쥐어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제 학센도 이겨볼 만한데···.’

하유성은 자신의 수준을 가늠해 보며 생각했다.


이전 세계의 기준으로는 아직 검기를 뽑아낼 수 있는 절정 수준에 오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번 세계에서는 마력량, 즉 내공의 양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쌓이고 있었다.


‘이제 미궁에 온 지 고작 석 달이 넘어가는 시점에 벌써 한 갑자가 넘는 마력을 모았다.’


이번에 3레벨을 돌파하면서 이전 세계에서 모았던 내공의 두 배에 가까운 마력을 갖게 된 하유성.


이 정도면 전생에서 만난 웬만한 절정 고수보다도 많은 내공이었고, 심지어 마력은 애초에 성질상 파괴력 측면에서는 더 뛰어났다.


‘이 정도면 절정 초입 정도는···이전 세계에서 날 죽음으로 몰아갔던 철흑귀(鐵黑鬼) 금만석 정도는 이길 수 있겠지.’


물론 검기를 뽑을 수 없으니 공방에서 손해는 좀 보겠지만, 단순 출력의 우위와 파천이검의 힘으로 이겨볼 만했다.


물론 설령 지금 학센을 이길 수 있더라도 당장 알랭 상단을 벗어날 순 없다.


목걸이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기 때문.


플로베와 같은 4레벨도 순순히 말을 듣게 할 정도의 구속력이 있는 게 바로 하유성이 찬 ‘종속의 목걸이’였다.


이대로라면 빚을 다 갚기 전에 무력으로 탈출한다는 하유성의 목표를 이룰 수 없을 터.


‘우선 절정의 경지에 오르고, 파천이검의 중반부 초식을 습득한다.’


원래라면 4레벨에 오른 다음 검기를 습득하려고 했지만, 이번 임무를 통해 3레벨에 오르면서 하유성은 지금도 충분히 절정경에 발을 디딜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거기까지 가면 목걸이도 어떻게 해볼 방법이 있었다.


학센의 타도와 목걸이 해제.


두 가지의 목표 중 반은 성공했다고 믿은 하유성이었지만···.


“말도 안 되는 성장이지만···. 아직은 안 된다. 애송이.”

학센은 쓰러진 하유성을 보며 말했다.


그의 검에서는 푸른 검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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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5화 가치 24.09.03 76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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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화 결투 (1) 24.09.01 79 5 13쪽
32 32화 반항 24.08.31 81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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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화 추격(2) 24.08.28 97 5 13쪽
28 28화 추격(1) 24.08.27 101 4 13쪽
27 27화 마검(4) 24.08.26 98 4 13쪽
26 26화 마검(3) 24.08.25 97 3 12쪽
25 25화 마검(2) 24.08.24 100 4 13쪽
24 24화 마검(1) 24.08.23 112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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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화 토벌(2) 24.08.20 112 4 14쪽
20 20화 토벌(1) 24.08.19 130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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