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무림인의 미궁견문록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슬하
작품등록일 :
2024.08.01 11:15
최근연재일 :
2024.09.13 22:41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5,768
추천수 :
216
글자수 :
267,889

작성
24.08.27 12:15
조회
100
추천
4
글자
13쪽

28화 추격(1)

DUMMY

세 사람이 기사단의 추격대를 마주한 건, 2층에서 1층으로 올라가는 포탈 앞에서였다.


“분명 발각하기 힘든 길로 왔는데··· 어떻게 한 거지?”

세이지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미궁을 오갈 때 떨어지는 위치는 무작위.

떨어진 다음 어떤 길을 통해 어떤 포탈로 갈지 알아차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미궁 안의 정보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코디네이터가 있는 파티를 추격하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


“길잡이가 워낙 뛰어나니까, 오히려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미궁까지 쫓아온 기사단의 팀장, 플로베가 대답했다.

그는 미궁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포탈을 틀어막는 식의 추격을 시작하는 게 아닌, 천천히 세 사람의 흔적을 쫓았다.


그렇게 해서 발견한 건 1층에서 필드 보스 토르쉬의 영역을 뚫으며 지나간 흔적과 2층에서 지하 동굴을 지나간 흔적.


플로베는 바로 3층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 흔적들을 통해 세이지가 어떤 루트를 짤지를 추론했다.


그다음에는 세 사람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기 전에 동굴은 입구 몇 개를 무너뜨려 봉쇄했으며, 애초에 초원은 시야가 트여있기에 세이지를 믿고 고려하지 않았다.


남은 건 숲 지형에 있는 포탈 중에, 가장 은밀한 방법으로 도달할 수 있는 곧을 추린 것.


코디네이터만큼이나 미궁 안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고, 추격 대상의 능력과 심리까지 고려할 수 있는 사람만 세울 수 있는 작전이었다.


“뭐, 어차피 상관없어요. 우린 이미 누명을 벗었으니까. 자 여기 증거예요.”


세이지는 그렇게 말하며 챙겨온 요한슨의 수급과 마검을 꺼내 내려놓았다.


“그쪽이 무능하게 생사람 잡으려고 하는 동안, 우리가 진범을 잡았어요.”


“흠 그렇군요. 역시 무슨 연결고리가 있었나 봅니다? 상황이 잘 안 풀리니 토사구팽이라···무서운 아가씨군요.”

플로베는 무섭도록 빠르게 진상을 추론했다.

사실 유도신문이기도 했고, 진상 따위는 어찌 되든 상관없었기에 질러보는 말이었지만, 세이지는 그의 추론에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소리예요! 쓸데없는 말 말고, 우릴 보내주기나 하세요. 필요한 건 다 되찾았잖아.”


플로베는 수급과 검을 수거하도록 명령하면서, 느긋한 태도로 말했다.


“뭐···도둑맞은 값은 받았지만, 피 값과 명예 값이 남았습니다.”


“뭐? 니들끼리 죽이다가 죽어난 걸 왜 우리에게 따져?”


“기사단은 서로 죽인 적 따위 없습니다. 그랬어야 하고, 그렇게 알려져야 하죠. 더군다나 기사단의 추격대가 고작 2레벨의 검사에게 졌다는 말을 들어서야 하겠습니까?”


결국 플로베는 진상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의 입을 막고, 기사단이 패했다는 사실조차 가릴 것이란 말이었다.


“그런 억지가···!!”


챙!!

따지는 세이지에게 부지불식간에 플로베의 레이피어가 뱀처럼 쏘아졌다.


가까스로 그의 검을 막아낸 건, 미리 준비하고 있던 하유성이었다.


“물러서시오.”


“이런···이건 말도 안 돼···.”

세이지 모르디엔이 절망에 차 중얼거렸다.


상대는 4레벨의 기사단 팀장 플로베 한 명과, 그를 수행하는 길잡이 한 명.


세 사람은 몰랐지만, 다른 포탈에는 무려 세 명의 3레벨 준기사들이 입구를 막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그들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플로베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포탈로 온 것이었다.


하지만 다시 말하면 플로베가 3레벨 세 사람 정도의 무력은 충분히 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흐음, 역시 당신은 규격 외군요.”


하유성은 놀랍게도 그런 플로베와 어느 정도 대등하게 검격을 나누고 있었다.


사실 대등한 것은 아니고, 플로베가 장난처럼 쏘아대는 공격을 힘겹게나마 전부 막아내고 있을 뿐이었지만.


하유성이 4레벨의 힘과 속도에 어느 정도 익숙할 수 있었던 건 학센과의 대련 덕이었다.


‘내공도 충분하리만치 쌓였다.’


하유성의 몸에 쌓인 마력은 어느새 전생의 경지를 훌쩍 넘어, 한 갑자에 다다르고 있었다.

마물을 많이 죽인 것도 한몫했지만, 미궁 안에서 토납법을 운용하면 자연적인 기를 받아들이는 것보다도 더 많은 마력을 쌓을 수 있었기 때문.


물론 그럼에도 4레벨인 플로베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양이었다.

하유성은 쌓은 마력을 혈도를 따라 효율적으로 움직이며 가까스로 상대가 가능한 출력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쉬이이잇!

거기에 로엘리아가 가끔 타이밍 좋게 바람의 칼날을 만들어 날리는 공격까지.


“저 아인종 아가씨도 전투 센스가 아주 좋군요?”


보통은 끼어들기도 힘든 수준급 검사끼리의 전투에 시기적절하게 마법을 쏘는 건 웬만한 마법사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펑!

여전히 대포알 같은 플로베의 찌르기가 하유성의 뺨 끝을 스쳤다.

이미 그의 몸에는 그와 비슷한 상처가 수두룩했고, 피가 조금씩 많이 스며나오고 있었다.


하유성은 양손에 든 검으로 그의 공격을 가까스로 흘려낸 뒤, 발차기로 거리를 벌렸다.


걷어찬 건 하유성이었지만, 밀려난 것도 그였다.

플로베의 단련된 몸은 2레벨의 힘 정도로는 밀려나지 않았다.


물론 그걸 예상하고 거리를 벌린 하유성은 다시 검을 들고 후속타를 대비했다.


“······?”


그러나 예상했던 후속 공격은 날아오지 않았다.

플로베는 가만히 서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쪽. 기사단에 들어올 생각 없습니까?”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요?”


“칼을 대보니 아까워서 그렇습니다. 만약 기사단에 들어온다고 약속한다면 제가 책임지고 전부 없던 일로 해주지요. 전폭적인 지원 또한 아끼지 않고. 알랭 상단의 노예라고 했죠? 빚도 전부 갚아줄 테니, 어떻습니까?”


“···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소.”


“왜죠? 그쪽이 손해볼 건 없을 텐데. 솔직히 여기서 당신을 찍어 누르고 다 죽이고 가는 건 쉬운 일입니다. 그저 그것보다는 당신 하나를 영입하는 편이 더 이득이라는 계산이 서서 해주는 말이죠.”


“‘이번 건’에 있어 나는 죄를 지은 게 없소. 그러니 없던 일로 해준다는 건 호의가 아니지. 빚도 마찬가지. 금액을 채우면 사라지는 족쇄에서, 영영 풀 수 없는 족쇄를 차는 게 이득일 리가 있소?”


“허, 그건 다 당신이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 때 얘기지. 저 두 사람의 목숨값은 계산하지 않습니까?”


“진 적 없는 빚을 갚을 순 없소.”


“원래 강자는 진 적 없는 빚도 지게 할 수 있는 법입니다. 약자는 강자의 호의로 살아있을 뿐이니까.”


플로베가 말하는 건 약육강식.

하유성에게도 아주 익숙하지 않은 태도는 아니었다.

그가 살아온 강호 또한 약육강식의 논리가 강하게 적용되는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생애에, 하유성은 약자로 살 생각이 없었다.


“설령 그쪽 말이 맞더라도 빚과 호의는 다른 것이오. 천박한 사람만이 그 둘을 헷갈리지.”


자신이 정당하게 진 빚을 호의라고 생각해 버리는 사람, 자신이 호의를 베푼 걸 빚을 지웠다고 생각하는 사람 모두 하유성에겐 천박한 짓일 뿐이었다.


“···입은 살았군요. 허나 죽으면 말도 신념도 사라지는 법. 신념을 가지고 죽는 이보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이가 더 현명한 법이지요.”


“그건 당신 신념이 나약하고 천박한 것이라 그런 것이지.”


이전 세계에서 하유성은 고작 국숫집 노야 때문에 목숨을 던졌다.

그는 설령 그때 죽었을지라도 후회하지 않았다.

필요한 일을 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흠, 권위가 아니라 명예를 좇다 죽을 녀석이었나. 차라리 제가 아니라 티아손 녀석의 눈에 띄는 게 좋았을 것을···. 마지막으로 묻죠. 정말 기사단에 들어올 생각 없습니까?”


“없소.”


“그래요. 그럼 죽이는 수밖에.”


플로베는 더 말하지 않고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이제 봐줄 이유가 사라졌다는 듯, 전보다 훨씬 거세진 공격이었다.


“으아아···유성 오라버니. 우리 의견도 좀 물어봐 줄 수 있는 것 아니었을까요···?”


세이지가 뒤에서 절망하면서 말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름대로 저쪽 길잡이가 허튼짓을 못하도록 단검과 호신용 마도구를 들고 견제하고 있었다.


“인질이 될 순 없죠.”

로엘리아도 여전히 시기적절하게 마법을 펼치며 말했다.


쉬이익!

플로베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하유성은 얼추 그의 속도에 적응이 돼서, 이제는 꽤 잘 피해냈지만 여전히 유효타를 먹일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이미 입은 상처에서 계속 피가 흐르며 체력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


그럼에도 그는 버티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저자의 검술은 그렇게까지 복잡한 무리를 담고 있진 않다.’


하유성이 이곳에 와서 도저히 파악할 수 없던 대상은 단둘. 아리아라는 창사와 시프노스뿐이었다.


물론 플로베의 칼도 날카롭고 효율적인 동선을 그렸지만, 솔직히 몇몇 이능으로 인한 보정과 압도적인 마력량으로 찍어 누르는 것 말고는 특별할 게 없었다.


하유성의 짐작대로 플로베가 연신 난사하고 있는 뱀처럼 휘는 찌르기는 축복으로 얻은 기술이었고, 그는 약점 포착과 근력 강화 등의 나머지 보조 이능을 가지고 전투에 써먹고 있었다.


그가 주로 익힌 건 추적술과 적의 심리를 읽는 능력.

기사단의 추적조로 생활하면서 기사단의 적을 추적해 사냥하며 레벨을 올린 그는, 순수하게 검술을 연마하진 못했다.


덕분에 다른 4레벨 기사들이 쓰곤 하는 마나블레이드도 쓰지 못하는 상황.


아무리 그래도 타고난 센스와 철저한 상황 판단 능력 덕에 그보다 아래 경지인 사람에게 진 적은 없었는데, 하유성에겐 그의 장점이 거의 상쇄됐다.


무(武)에 대한 깨달음이 뒤처지고 있는 것.


은연중에 그걸 느낀 플로베는 불쾌감이 치솟았고, 더욱 격렬하게 하유성을 몰아붙였다.


쉬이익! 쾅! 쾅!

하유성의 몸에 생채기들이 점점 더 늘어났다.


검을 막아도 풍압이 살갗을 베어냈고,

바닥으로 흘려도 땅이 부서지며 파편이 튀었다.


그러나 그 불리한 대치 중에서도 하유성은 단 한 수만 바라보며 전투를 이끌고 있었다.


챙! 검과 검이 부딪히고, 하유성은 보법을 밟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 수법은 아까 많이 봤군요.”


플로베는 곧바로 따라붙었지만, 하유성은 원래 지켜오던 간격보다 더욱 멀리 옆으로 빠지며 플로베를 유인했다.


그가 빠진 곳은 로엘리아와 세이지와는 멀어지고, 플로베가 데려온 길잡이 한 명 하고는 더 가까워지는 방향.


하유성은 그를 향해 칼을 날렸다.


적극적으로 전투에 참여하지 않아서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도 얼추 2레벨은 되어 보였지만··· 같은 2레벨이, 하물며 검사도 아닌 보조 인력이 하유성의 검을 받을 순 없었다.


푹···!

“컥···. 왜 내가···.”

그는 목에 단검이 꽂힌 채로 절명했다.


“···사람을 줄이면 유리할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갑작스러운 공격에 플로베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물론 그런 건 아니었다. 죽은 길잡이는 애초에 전투에서 빠져 있었고, 그를 견제하던 세이지가 돌아온다고 도움이 될 것도 아니었으니까.


“기사단에 들어올 사람은 아니었지만···. 역시 핏값은 받아야겠죠. 제 이름을 걸고, 당신들은 여기서 죽습니다.”


“흥, 애초에 살려줄 생각은 있었소?”

하유성은 노림수가 통하지 않은 건가 불안했지만, 일단 시간을 끌어보려 말을 걸었다.


“글쎄요. 당신이 시간을 끄는 사이 뿔뿔이 흩어졌다면 한 명쯤은 살았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가 기세를 다시 폭발시켰다.


‘···끝인가.’


그리고 그때, 부드러운 초록빛이 하유성의 몸을 감쌌다.


하유성의 몸에 상처들이 치료되면서, 등에는 좀 더 큰 문신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이 빛은···!! 레벨업?”


툭.

플로베가 당황해 검을 휘둘렀지만, 그의 검은 이전과 달리 손쉽게 궤도가 틀어졌다.


“자연 레벨업이라고?! 말도 안 돼!”


“후, 성공했나.”


플로베도, 세이지와 로엘리아도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하유성을 바라봤다.


그의 몸에선 이전과는 다르게, 가까이 가기만 해도 베일 것 같은 기세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하유성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제 2차전이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어떤 무림인의 미궁견문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5 45화 보상 24.09.13 29 4 13쪽
44 44화 의뢰(4) +2 24.09.12 36 4 13쪽
43 43화 의뢰(3) 24.09.11 43 3 13쪽
42 42화 의뢰(2) 24.09.10 47 3 12쪽
41 41화 의뢰(1) 24.09.09 53 2 15쪽
40 40화 문천 24.09.08 53 2 12쪽
39 39화 팀 24.09.07 54 4 13쪽
38 38화 하피 24.09.06 57 4 13쪽
37 37화 사무소 24.09.05 67 4 13쪽
36 36화 심부름 24.09.04 68 3 12쪽
35 35화 가치 24.09.03 76 5 13쪽
34 34화 결투 (2) 24.09.02 72 5 12쪽
33 33화 결투 (1) 24.09.01 79 5 13쪽
32 32화 반항 24.08.31 81 3 13쪽
31 31화 낙차 24.08.30 81 3 14쪽
30 30화 수련(1) 24.08.29 85 4 13쪽
29 29화 추격(2) 24.08.28 96 5 13쪽
» 28화 추격(1) 24.08.27 100 4 13쪽
27 27화 마검(4) 24.08.26 98 4 13쪽
26 26화 마검(3) 24.08.25 97 3 12쪽
25 25화 마검(2) 24.08.24 100 4 13쪽
24 24화 마검(1) 24.08.23 112 4 13쪽
23 23화 정산 +2 24.08.22 111 4 13쪽
22 22화 횡재 24.08.21 111 4 14쪽
21 21화 토벌(2) 24.08.20 112 4 14쪽
20 20화 토벌(1) 24.08.19 130 4 14쪽
19 19화 정보 길드 24.08.18 125 5 13쪽
18 18화 스승님···? (2) 24.08.17 137 4 14쪽
17 17화 스승님···? (1) 24.08.16 135 4 13쪽
16 16화 선의 +2 24.08.15 136 6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