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무림인의 미궁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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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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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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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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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수련(1)

DUMMY

‘레벨 한 개 정도는 뛰어넘을 수 있다.’


하유성은 그렇게 자신해왔다.


1레벨은 뛰어넘었지만, 실제로 2레벨엔 3레벨인 휘리스를 정면에서 이겼고 3레벨 땐 플로베를 이겼으니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다만 4레벨부터는 같은 레벨 안에서도 실력 차이가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뿐.


4레벨부터는 ‘업적’이 필요한 단계다.

4레벨에 오르기 위해선 10년 정도 마물만 잡아대도 그걸 ‘업적’으로 인정받았지만, 5레벨부터는 정말로 특별히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만한 업적을 세워야 했다.


단신으로 수많은 사람을 구한다거나, 훨씬 강한 상대를 쓰러트린다거나, 계층 보스를 몇 번 이상 토벌한다든지, 아주 특별한 마도구를 구해 위상이 높아지는 등, 웬만한 운과 노력과 재능 없이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영역.


그런 게 5레벨이었기에 개척자 대다수는 4레벨에서 멈추고 안주하며 살아간다.


학센도 그런 케이스였지만, 그는 적어도 5레벨이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적이 있었다.


그만큼 몸에 거대한 마력이 쌓였고, 검술도 마나 블레이드를 뽑을 수 있는 경지에 다다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업적은 쌓을 수 없었다.

자신은 도저히 결정적인 순간에 목숨을 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학센은 그 후부터는 그냥 돈을 벌기로 마음먹었다.


목숨을 걸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많은 돈을 모으는 것만이 지금 그의 목표였다.


“아직은 3레벨 따위에게 질 수 없지. 직장이 날아간다고.”


한 번 신념을 꺾었을지언정, 그는 강했다.


“왜 여태 한 번도 검기를 보여주지 않은 거요?”


“쓸 필요가 없었으니깐. 내가 무식하게 힘으로만 밀어붙인다고 생각했지?”


“······.” 사실이었다.

하유성이 공방 중에 틈을 찾아 비집고 들어가면 학센은 늘 힘으로 그걸 떨쳐내곤 했으니까.


“할 수 있으니까 한 것뿐이다. 굳이 같은 수준에서 싸워줄 필요 없지.”


하유성은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 인상을 심어주고, 언젠가 결정적인 순간에 써먹으려고 아껴두었다면 큰 낭패를 보았을 테니까.


“어째서 보여준 것이오?”


“흥, 네까짓 것. 이기려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어. 탈출 시도 따위 꿈도 꾸지 말도록.”


3레벨에 올라 자신감을 얻은 자신을 한 번 눌러주기 위해서 숨겨둔 수를 꺼냈다는 걸 하유성은 깨달았다.


“···알겠소.”


“새로 얻은 검은 꽤 쓸만한 것 같군. 감정을 한 번 하러 가봐라.”


학센이 해골 기사가 된 요한슨을 죽이고 얻은 검을 보며 말했다.


매혹적인 검은빛을 은은하게 내는 검은 학센의 투핸디드소드에 어린 검기를 마주 상대하고도 멀쩡했다.


“감정?”


“그래. 미궁에서 얻은 무구는 숨겨진 마법이 걸려있는 경우가 많거든.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물건이니, 분명 뭐라도 있을 거다.”


“고맙소.”


“뭘, 한동안은 자유롭게 보내도 된다. 벌써 3레벨이라니, 다시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군···. 알랭 님도 기뻐하셨으니 웬만한 자유행동은 묵인하실 거야. 가끔 상단을 위한 행사가 있을 때 부르마.”


“···알겠소.”


3레벨이 된 하유성은 본격적으로 상단에서 기르는 인재로 홍보되어 얼굴도장을 찍으러 다녀야 했다.


하유성으로선 내키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동안 오른 경지를 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을 벌은 걸로 만족해야겠군···.’


그는 일단 학센의 말대로 감정소에 가서 검을 감정받았다.


감정소는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마탑의 1층에 있었다.

마탑의 사업체 중 하나로, 쏠쏠한 수익을 챙겨주는 사업이라던가.

유리와 같은 뭔가로 이루어진 건물은 밖에서는 안이 안 보이고, 안에서는 밖이 보이는 성질을 띄고 있었다.


“감정 끝났습니다.”


“벌써 다 됐소?”


정보 길드 때와 비슷한 창구에 있는 직원은 금방 자리에서 감정을 끝냈다.

하나가 발전하니 다른 곳도 발전하는 듯, 이 세계의 접객은 어딘가 하나같이 고급지면서 효율적인 면이 있다고 하유성은 생각했다.


“네. 맡겨주신 검에 걸린 마법 몇 개를 파악해 냈습니다. 정말 좋은 검이네요. 축하드립니다.”


직원이 사무적으로 웃으면서 말했다.


“고맙소.”


“별말씀을요. 검에 걸린 마법은 자동 수복 마법, 파괴 방지 마법, 약한 수준의 저주 방어 마법, 그리고 실드 생성 마법입니다.”


“저주? 실드?”


“저주는 대략 2~3레벨까지 방어될 것으로 보이며, 실드는 폼멜 부분의 조각에 마력 주입 시 하루에 한 번 갑옷 모양의 방어막이 형성됩니다.”


“갑옷이라니···혹 부작용은 없소···?”


“딱히 발견된 부작용은 없습니다. 부분 생성이 안 되기 때문에 마력 효율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란 게 흠이라면 흠일까요···?”

직원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유성은 요한슨의 몸이 해골 기사의 갑옷으로 뒤덮이는 모습을 기억했다.

괜히 자신도 그런 저주가 걸리는 건 아닌지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심지어 저주 방어 마법까지 걸려있다고 하니 그로서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웬만하면 안 써야겠군.’


애초에 되도록 검술 이외의 수법은 쓰지 않으려고 했던 하유성이니, 그는 일단 굳이 실드는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 정도 검이면 5레벨이 되기 전까지는 써도 될 거라는 말을 끝으로 하유성은 값을 지불하고 나왔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한 갑자의 마력을 바탕으로 검술을 진일보해야 할 때.


‘원래 세계에서 검기를 쓸 수 없는 건 내공의 부족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내공이 충분한 데도 아직 검기는 발현되지 않았다.


하유성은 수련장으로 돌아가 이미 형(形)만을 연습해 두었던 파천이검의 중반부 초식을 펼치려 해봤다.


중반부의 초식은 다시 네 개.

제 오 식 사천(詐天)

제 육 식 문천(紊天)

제 칠 식 망천(忘天)

제 팔 식 고천(刳天)


그러나 다섯 번째 초식인 사천부터 검기로 허공에 빛을 그려내야 하는 바람에 하유성의 연습은 그저 실전성 없이 허공에 칼을 휘적거리는 모양새가 됐다.


‘내력을 많이 밀어넣는 것만으로는 형성되지 않는다.’


물론 그런 식으로 되는 게 검기라면 영약만 많이 먹으면 누구나 절정 고수일 터였으니, 그게 정답이 아니란 건 하유성도 알고 있었다.


일주일이 흘렀다.


답답한 마음에 검이 터져라 마력을 부어 넣어 보기도 했지만, 마력은 손끝에만 머물 뿐 검에 흘러 들어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마력을 촘촘하게 직조해 검에 불어 넣어 본다.’

이 방법은 이 세계에 와서 마법이란 걸 보면서 착안한 것이었다.


원래라면 이렇게까지 세밀한 운용은 할 수 없었지만, 마력 조작 능력을 얻고, 마력을 볼 수 있는 눈을 얻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


하유성은 마력의 선을 육각형으로 이어 붙여 더욱더 단단하고 파괴적인 힘으로 기를 운용했다.


그러자 마치 마법이 외부에 발현되듯, 마력이 조금 검에 흘러들어가긴 했다.


허나 힘을 조금만 풀자, 마력은 다시 하유성의 몸 속으로 돌아왔고, 검기가 검에 머문 상태에도 마치 신체처럼 조금 단단해지기만 할 뿐, 검기가 발현되지 않았다.


‘이걸 전투 중에 유지하는 것도 무리다.’


만약 이런 게 절정 고수에 이르는 길이라면 검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내력으로 실뜨기나 연습하는 편이 나을 터였다.


물론 그런 자질이 아직 하유성에게 없는 것일 수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걸어온 검술의 길과는 아주 다르다는 자신의 감을 믿기로 하고 넘어갔다.


다시 며칠이 흘렀다.


‘남은 건 이제 무에 대한 이해와 경험의 영역.’


이를테면 왜 검기의 성질이 사람이나 무공마다 다른지, 주먹이나 창 심지어 화살에까지 기가 깃드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이었다.


‘물론 머리로 생각하고 이해한다고 검기가 나오는 것이면 이미 검사가 아니라 학사들이 기를 줄줄 뿜어댔겠지만···.’


어쩐지 한 발짝만 남은 것 같은 느낌에 하유성은 머리가 간질간질했다.

그는 검을 쥔 채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들어갔다.


‘다른 모든 기··· 검, 권, 도, 부, 궁 어째서 절정 고수들은 자기가 쓰는 무기에만 기를 실을 수 있는 거지?’


물론 더 고수가 되면 검기를 쓰는 이가 권이나 각, 장에 기를 싣는 일도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절정 고수들은 처음엔 자신에게 가장 잘 익은 한 가지 방식으로만 기를 뽑아낼 수 있었다.


거기서 유추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하나는 기를 발현하는 일이 병장기에 맞춰져 있거나 하는 식으로 특별히 정해진 요령은 없을 거라는 것.

다른 하나는 기가 신체 외부로 나가서 형태를 유지하는 데에는 뭔가 특별한 조건이 있다는 것이었다.


또 며칠이 흘렀다.


‘외부···. 왜 기는 신체를 떠나지 않지?’


당연한 얘기지만 내공과 마력은 몸에 쌓인다.


이리저리 신체를 강화하는 데 내공을 사용해도, 단전이 깨지지 않는 이상 내공의 총량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흔히들 내공이나 마력이 고갈됐다고 하는 건, 내공이 육체 안에는 있지만, 더는 움직일 수 없는 상태를 일컫는 것.


몸 안에서 돌리다 보면 기의 성질이 바뀌어 더는 운용할 수가 없을 때를 말했다.


‘그렇다면 검기나, 심지어 화살에 두르는 기는 밖으로 나가서 사라지는가?’


그럴 리가 없었다.

검기를 발현할 때마다 내공의 총량이 줄어든다면, 싸움을 일삼는 흑도의 절정 고수들은 진작에 내공이 사라진 폐인이 되었을 터.


‘어쩌면 검기는 내력의 덩어리가 아니라 내력을 운용하며 만드는 하나의 현상일지도···.’


여기까지 생각하자 하유성은 머리가 터질 듯 복잡해졌다.


‘이럴 때 스승이 있었다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걸 텐데···.’


하유성은 학센을 비롯한 고수에게 찾아가 물음을 청할지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그가 검술을 수련한 지도 거의 삼십 년이었다.

절정 고수가 된다는 건 그 시간 동안 계속 꿈꿔왔던 일.


지금까지는 내공이 부족해서 불가능하다고만 여겼지만, 상황이 달라진 지금은 꼭 자신의 힘으로 이뤄내고 싶었다.


“칭얼대지 말자. 다시 처음부터 반복이다.”


하유성은 두 자루의 검을 들고 첫 번째 초식인 천원지살부터 다시 펼쳐냈다.


막고, 찌르고, 흘리고, 베고, 피하고, 쳐내고, 거리를 벌리고, 연격(聯擊)을 가한다.


전반부의 네 초식은 이제 숨 쉬듯 부드럽게 사용할 수 있다.


시프노스의 가르침을 따라 초식 안에 있는 이치도 예리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내력은 초식에 필요한 경로를 따라 물처럼 막힘없이 흘렀으며, 육체는 어떤 상황에서도 필요한 초식을 사용할 수 있도록 유연해졌다.


그의 초식이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점점 더 빨라졌다.


‘남은 건 무엇인가?’


후우우우웅―후우우우웅―


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수련장에 울려 퍼졌다.


‘더 빠르고, 더 강하게 휘두르면 되나?’


하유성은 답답한 마음에 더욱 검을 한계 이상으로 강맹하게 휘둘렀다.


그러자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검이 점점 무겁게 느껴졌다.


‘왜 몸은 아프고, 검은 무겁지?’


왜 검은 아프지 않은가.


말도 안 되는 물음이었지만 하유성은 처음으로 그런 생각에 다다랐다.


울분에 가득 찬 마음으로 하유성은 검이 자기 몸처럼 아프길 바랐다.


‘검을 몸처럼, 몸을 검처럼 여긴다면 검과 근육이 다를 게 무엇인가?’


슈우우욱!!

무리한 움직임에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아직도 검을 수단이나 물건으로 여기고 있는가?’


그렇지 않았다.

평생을 검을 위해 살았고, 검만을 바라보며 살았다.

검을 휘두르는 것만이 즐거움이었으며, 그의 희로애락은 전부 검에 관한 것이었다.


검이란 하유성에게 눈앞에 있고, 손에 쥐고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마검을 얻든 보검을 얻든, 하유성에게 검은 단 한 가지.


삶, 그 자체였다.


그 사실을 깨닫자, 하유성의 몸과 검의 경계가 흐릿해졌다.


신체가 하나의 검처럼 된다는 완벽한 신검합일(身劍合一)과는 달랐다.


그보다는 검이 그의 신체의 일부가 된 것.


쉬이이잇!!


마침내 공기가 완벽히 갈라지고, 파괴된 공간 사이에 다시 천천히 바람이 들어왔다.


하유성은 푸른 기운이 넘실거리는 두 자루의 검을 잔뜩 붉어진 얼굴로 바라봤다.


“드디어···.”


절정 고수의 상징.

검기(劍氣)가 마침내 하유성의 손안에서 꽃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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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화 마검(1) 24.08.23 112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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