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무림인의 미궁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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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하
작품등록일 :
2024.08.0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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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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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5화 마검(2)

DUMMY

“그게 그렇게 쉬울까요? 우린 노예 신분인걸요.”


로엘리아가 말했다.

그녀의 의견은 타당했다.


아무리 상당한 자유를 보장받았을지라도 노예는 노예.

제멋대로 미궁으로 들어간다면 목에 있는 폭탄 목걸이가 터질 게 뻔했다.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사실 꽤 가능성이 있죠. 일단 지명 의뢰란 게 있거든요.”


“지명 의뢰?”


세이지 모르디엔은 대답하지 않고 은신처에 있는 서랍에서 척 봐도 고급스러운 종이를 꺼내 엄청난 속도로 무언가를 적어냈다.

그리고 손에 낀 반지에 인주를 묻혀 마지막 서명에 도장을 찍었다.


“자 됐다. 이건 제가 유성 씨에게 임무를 맡기고 싶다는 내용이 담긴 지명 의뢰서에요. 이걸 상단에 가지고 가서 그쪽이 수락하면 정식 의뢰 계약이 이루어지는 거죠. 보수는 2레벨 임무치고 섭섭지 않게 설정했으니 받지 않을 이유는 없을 거예요.”


모르디엔은 계약 내용을 두 사람에게 보여줬다.

임무 내용은 미궁 3층의 어떤 지역까지 자신을 호위한 채로 다녀오는 것.

언뜻 계산해 보기에도 보수가 꽤 괜찮았다.


“뭐, 아득바득 일하며 모은 돈이긴 한데, 이럴 때 써야죠. 로엘리아 님도 저를 도와주실 생각이 있으실까요? 사례는 정확하게 하겠습니다.”

세이지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인간들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로엘리아는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임무에 다녀온 지도 얼마 되지도 않았고, 이제 막 2레벨에 올라 새로운 축복을 다루는 연습이 필요하기도 했다.


“나 혼자 다녀와도 괜찮소. 검을 든 궁수를 잡는 일이 그렇게까지 어려울 것 같지는 않군.”


“요한슨은 3레벨이에요. 아까처럼 레벨이 더 높은 기사를 때려잡는 유성 씨가 이상한 거라구요···. 그래도 이건 자칫하면 기사단과 척을 질 수도 있고, 미궁에서 기사단의 추격자들을 만나 낭패를 볼 수도 있는 일. 저는 사실상 전력 외니, 유성 씨 혼자서는 힘드실 수도 있어요. 물론 저는 염치 불고하고 부탁을 드리는 입장이라, 거절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만.”


“됐어요. 저도 같이 갈게요. 혼자만 또 경험치를 쌓게 할 수는 없죠.”


“······?”


하유성은 의문을 표했지만, 로엘리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따.

모르디엔은 감사를 표하며 순식간에 하유성의 것과 똑같이 계약서를 작성했고, 로엘리아가 그것을 받아 들었다.


“이제 문제는 구체적인 작전이군.”

하유성이 말했다.


미궁은 사람 하나를 찾기엔 넓다.

중간에 위험한 함정도 많고, 아직 하유성이나 로엘리아가 만나본 적은 없지만, 계층 보스라는 규격 외의 마물도 존재했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기사단의 추격에 잡히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까지 붙었으니, 무턱대고 요한슨을 찾으러 가기엔 임무의 난도가 너무 높았다.


“그건 걱정 마세요. 저는 나름 알아주는 코디네이터니까. 미궁 속 정보는 빠삭하다구요!”


세이지는 즉석에서 지도를 펼쳐 미궁 어디에 떨어지더라도 위험한 마물과 추격을 피할 수 있도록 루트를 짜기 시작했다.


안전한 큰 줄기가 있고, 그 줄기를 따라가기 위한 루트를 여러개 준비하는 식.


“놈은 어떻게 찾을 거지?”


“숨어있을 만한 장소를 알아요. 예전에 그가 맡았던 3층 임무에서 꽤 특별한 장소가 있었거든요.”


세이지는 미궁 3층 지도 중 바다와 해안가가 만나는 지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기엔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이쪽 해변이 아니라 여기 언덕에서 숨겨진 장소를 통해 들어가면 이곳으로 이어지는 해저 동굴이 있어요. 마물이 조금 있긴 하지만, 별로 위험한 놈들도 아니고 특별히 얻을 것도 없어서 아무도 모를만한 곳이죠.”


“저런 곳은 어떻게 아는 거요?”


“그때 임무가 이 언덕 주변에 있는 물의 정령 군락을 토벌하는 거였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커서 도망치다가 발견한 곳이라 했던가···. 아무튼 지금은 그 정령들도 다 토벌됐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걸로 알아요.”


“숨어있기 딱 좋은 곳이다 이거군.”


“그렇죠.”


“그럼 일단 임무 계약을 하고 오겠소.”


“두 분이 다시 이곳으로 올 필요는 없어요. 신호해 주시면 제가 미궁 입구까지 은밀히 가겠습니다.”


“잠깐, 혹시 기사단이 벌써 상단에 가서 우리를 내놓으라고 했으면 어쩌죠?”

로엘리아가 물었다. 나름대로 타당한 의문이었지만, 모르디엔은 이미 그런 경우의 수까지도 생각해 둔 듯 했다.


“놈들이 이걸 단체 간의 알력 다툼으로 만들 가능성은 희박해요. 사람들이 알수록 체면이 떨어지니까요. 아마 사람을 보내더라도 두 분이 상단 바깥에 혼자 있는 틈을 노리겠죠. 아니면 미궁이 제일 좋고.”


“어떻게든 미궁까지는 들어갈 수 있을 확률이 높단 거군.”


“그래요. 들어가기만 하면 제가 짠 루트로 이동하면 되구요.”


어딘지 시원시원할 것 같은 외모와는 달리, 세이지는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며 움직이는 유형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으면 개척자도 아니면서 미궁 임무를 코디네이팅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터였다.


두 사람은 다시 은밀하게 바깥으로 나가, 최대한 빠르게 각자의 저택으로 들어갔다.


“뭐야 벌써 지정 임무를 받았다고? 역시 난 놈이네, 난 놈이야. 평생 한 번도 지정 임무를 받지 못하는 놈들도 수두룩하다고.”

학센이 감탄하며 계약서를 손에 들고 팔랑거렸다.


“그래서, 임무를 수락해도 괜찮겠소? 바로 출발해야 할 것 같은데.”


“뭐, 너만 준비되어 있으면 그렇게 해라. 내용도 문제 될 건 없고, 완수금이 무려 10만 프라하라니. 봉 잡았다고 생각하면서 극진히 모시도록. 괜히 클레임 걸려서 환불 요청이라도 들어오면 곤란해.”


“알았소.”


하유성은 미궁에 들어갈 채비를 하고 바로 로엘리아와 합류했다.


그녀는 미궁에 다녀온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으니 안 된다고 할 만도 했는데, 벌써 2레벨이 되었다고 하니 신나서 허락해 줬다고 했다.


두 사람은 미리 약속한 대로 정해진 위치에서 거울을 들고 세이지가 숨어있는 건물 창문을 향해 태양 빛을 반사했다.

이러면 꽤 멀리서도 표식을 보낼 수 있었다.


정해진 대로 세 번씩 끊어가며 빛을 반사하자,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커튼이 세 번 펄럭이며 쳐졌다.


하유성과 로엘리아는 다시 은밀히 미궁 입구까지 움직였고, 접선 장소에서 세이지를 만났다.


이제 남은 건 입구까지 달리는 것.


세 사람은 태연한 척하며 인파에 섞여 들어가며 이동하려고 했다.


“저기다! 모르디엔과 낙오자 연놈들!”


그러나 저쪽도 과연 미궁 도시 최대의 세력.

대로에 나오자마자 이쪽을 알아봤고, 바로 추격대가 붙었다.


“달리시오.”


세 사람은 뛰기 시작했다.

빠른 건 단연 하유성, 그러나 로엘리아도 가벼운 몸놀림으로 꽤 잘 따라붙었다.


문제는 마력이 없는 세이지였는데, 최소 3레벨으로 이루어진 기사단의 추격대를 따돌리기엔 역부족이었고, 심지어 점점 더 강한 이들의 기세가 하유성의 기감에 걸렸다.


“이리 오시오.”

하유성은 냅다 세이지를 안아 들었다.


“꺄아악!”

이미 들켰기에 실컷 소리까지 지르면서, 세이지는 하유성의 품에 안긴 채 실려 갔다.


“잡아라! 비켜!”


“···재밌는 상황은 아닌데.”

로엘리아가 중얼거렸다.


미궁 포탈까지 남은 건 약 200다르크(200m)

기사단은 사람들을 밀쳐대며 달려오고 있었다.


다행인 건 최초 발각 지점에서 거리가 좀 있었고, 행인은 미궁 입구 근처로 갈수록 뜸해졌기에 속도를 내기가 더 쉽다는 점.


덕분에 검사에게는 힘과 속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레벨에서는 밀려도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뒤쪽에서, 무서운 속도로 거리를 좁히고 있는 한 사내였다.


아마 3레벨이 아닐 게 분명한, 가벼운 몸놀림과 엄청난 속도.

검사임에도 정장을 입고 콧수염을 기른 중년의 남자였다.


‘이대로라면 저 사내에게 따라잡힐 게 분명하다.’


하유성은 그쪽을 경계하며 달리면서 속도를 가늠했다.


이대로라면 포탈의 코앞에서 따라잡힐 게 뻔했다.


만약 재수 없게 옷깃이라도 잡힌 채로 포탈을 넘어가면 저 남자와 같은 지역에 떨어지게 될 터.


하유성은 마지막 30다르크를 남기고, 로엘리아에게 세이지를 떠넘겼다.


“이것! 포탈 바로 앞에서 기다려 주시오.”


“끄아악! 짐짝처럼 던지다니!”


슈우웅

로엘리아는 고개만 끄덕이며 바람 마법으로 세이지를 받았다.

세이지도 의외로 바람 마법에 금방 적응하면서 계속 앞으로 달렸다.


그리고 하유성은 일부러 속도를 늦췄다.

포탈이 얼마 남지 않은 곳에서, 하유성은 마침내 남자에게 따라잡혔다.


“흠 동료를 보내기 위해 남은 건가요?”


하유성이 검을 빼 들고 남자를 막아서자, 그는 여유로운 얼굴로 손잡이에 얇은 십자가 문양이 달린 레이피어를 꺼냈다.


“뭘 하려는 지 모르겠지만, 저 둘만으로는 해내기 힘들 텐데요. 혹시 저를 제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그는 여유롭고 느끼한 어투로 말했다.


하유성은 몰랐지만, 그의 이름은 플로베, 통칭 사냥개 플로베였다.

그는 집요하기로 소문난 기사단 추격대의 팀장이자 4레벨의 검사.


“기사도 종류가 꽤 다양하구려.”


갑옷이 아닌 정장을 입고, 세검을 든 기사는 하유성이 처음 보는 형태의 착장이었다.

하유성은 이 와중에도 새로운 형태의 적을 상대한다는 것에 내심 기뻐하고 있었다.


“···? 갑자기 무슨 소린진 모르겠습니다만, 뭐 좋죠. 어차피 당신과 접촉하지 않으면 저들도 미궁에 들어가지 못할 테니까. 저는 그쪽을 완벽히 제압해 드리죠.”


로엘리아와 세이지는 포탈 바로 앞에서 불안한 얼굴로 하유성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플로베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팔을 쭉 앞으로 치켜들며 검 끝으로 하유성을 가리켰다.


퍼버벙!


순식간에 세 번의 찌르기가 하유성의 몸에 구멍을 뚫을 기세로 날아왔다.


미처 반응하기 힘들 정도로 폭발적인 속도.


하유성은 가까스로 두 개는 막고, 한 개는 옆구리를 스치며 피해냈다.


“호오, 2레벨이라고 들었는데, 이걸 막았단 말입니까? 이런, 죽지 않게 하는 건 어려운데.”


“보법이 특이하시구려.”


하유성은 금방 그 엄청난 속도의 원인을 알아냈다.

무릎을 깊게 구부린 자세와, 활처럼 쏘아지듯 튕겨 나가는 스텝.


“보는 눈도 있으시군요. 이거 이거, 적으로 두기엔 아까운 사내군요.”

상대가 직선적인 속도에 자신이 있다는 걸 알고, 양옆으로 움직이는 하유성을 보고 플로베가 말했다.


그러나 짧은 공방은 거기서 끝났다.


플로베의 부하, 기사단의 추격조들이 도착해 하유성을 둘러싼 것.


“뭐 일은 일이니, 장난은 여기까지입니다. 얌전히 투항하세요.”


“내가 기다린 게 이거라서.”


파아앙!!


이번에는 하유성이 플로베에게 달려들었다.


꽤 빠른 속도였지만, 플로베에겐 역부족.

그는 쉽게 하유성의 검을 막아냈다.


그러나 그게 하유성이 노림수.


그는 막힌 검과 함께 다른 한쪽 검으로 플로베의 검을 쳐내며 초식을 전개했다.

파천이검(破天二劍)

제 삼 식(第 三 式)

천룡휘보(天龍撝步)


채재재재재재재쟁!!


하유성을 둘러싼 기사단원들의 검을 타고, 하유성이 순식간에 어지러운 궤도로 움직였다.


다들 어느 정도 실력자였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은 반사적으로 충분한 힘을 실어 하유성이 휘두른 검을 힘을 주며 막았고, 그 힘을 이용해 하유성은 다시 도약했다.


각도를 조금씩만 비틀어가며 계속 상대의 힘을 더해 가속하는 하유성.


복잡하게 얽힌 실처럼 움직이던 그는 마침내 최고 속력에 다다랐을 때 포탈을 향해 대포처럼 쏘아졌다.


쉬이이잇!


“이런···!”


플로베는 당황해 곧바로 쫓으려 했지만, 최고 속력에 다다른 하유성은 그의 속도로도 역부족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어지럽게 움직이는 하유성을 요격하기 위해 스텝도 꼬여있던 상황.


남은 두 사람과 부딪히듯 접촉하며 포탈로 들어가는 하유성을 보며, 플로베는 허탈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탐난단 말이죠.”


“팀장님! 놓쳤습니다. 본단에 보고하고 다음 지령을 기다릴까요?”

한 기사단원이 다가와 플로베에 말했다.


“놓치다니요? 저흰 놓치지 않았습니다. 미궁 안에서 놈들의 의도를 파악하고 잡아가기로 작전을 바꾼 것뿐이죠.”


“엇···. 네. 알겠습니다!”


“알겠으면 빨리 들어갈 준비를 하세요. 삼십 분 드리겠습니다.”


도시 속 추적을 맡은 그의 팀원들은 졸지에 정신없이 미궁 탐사를 위한 채비를 해야 했다.

플로베는 꼿꼿한 자세로 포탈 앞에 서서 콧수염을 어루만졌다.


그저 몸만 있으면, 다른 건 아무것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후후···. 놓치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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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40화 문천 24.09.08 53 2 12쪽
39 39화 팀 24.09.07 55 4 13쪽
38 38화 하피 24.09.06 57 4 13쪽
37 37화 사무소 24.09.05 68 4 13쪽
36 36화 심부름 24.09.04 69 3 12쪽
35 35화 가치 24.09.03 77 5 13쪽
34 34화 결투 (2) 24.09.02 72 5 12쪽
33 33화 결투 (1) 24.09.01 80 5 13쪽
32 32화 반항 24.08.31 82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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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화 수련(1) 24.08.29 85 4 13쪽
29 29화 추격(2) 24.08.28 97 5 13쪽
28 28화 추격(1) 24.08.27 101 4 13쪽
27 27화 마검(4) 24.08.26 98 4 13쪽
26 26화 마검(3) 24.08.25 98 3 12쪽
» 25화 마검(2) 24.08.24 101 4 13쪽
24 24화 마검(1) 24.08.23 112 4 13쪽
23 23화 정산 +2 24.08.22 112 4 13쪽
22 22화 횡재 24.08.21 111 4 14쪽
21 21화 토벌(2) 24.08.20 112 4 14쪽
20 20화 토벌(1) 24.08.19 131 4 14쪽
19 19화 정보 길드 24.08.18 125 5 13쪽
18 18화 스승님···? (2) 24.08.17 137 4 14쪽
17 17화 스승님···? (1) 24.08.16 136 4 13쪽
16 16화 선의 +2 24.08.15 136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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