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무림인의 미궁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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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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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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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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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하피

DUMMY

하피는 반인반조(伴人半鳥)라기보단 인면조(人面鳥)에 가까운 마물이었다.


물론 그냥 새가 아니라 아주 큰 새.


발톱으로 어깨를 움켜쥐면 성인 남성 하나는 그대로 하늘로 딸려 올라갈 만큼 큰 새였다.


놈들이 사는 곳은 3층 수상 정원 중에서도 서쪽의 절벽 지대.

지난번에 하유성이 해골 기사를 잡으러 들어갔던 해저 동굴과는 반대편이었다.


하유성과 체르나는 다행히 3층 중앙쯤에 떨어져 금방 방향을 잡고 나아갈 수 있었다.


문제는 세이지가 알려준 대로, 절벽까지 가는 길목에 독성이 가득한 포자나 꽃가루 등을 뿜어내는 식물이 가득한 숲이 있다는 것.


그 숲을 무려 하루 동안 걸어가야 벗어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한 건, 그 숲이야말로 하유성이 이 세계에 와서 봤던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란 점이었다.


나무는 음침하지 않게 낮은 나무부터 높은 나무까지 조화롭게 자라 있었고, 간간이 작고 붉은 열매가 열린 것도 있었다.


곳곳에 개울물이 흐르며 이끼와 버섯이 깔린 풍경은 전원적인가 하면, 조금 들어간 곳에는 거대한 아름드리나무가 태고의 숲처럼 늘어져 있었다.


하유성은 그 풍경에 감탄하면서도 자연적으로는 결코 한 데 있을 수 없는 식생,

생명의 소리가 전혀 나지 않는 기이한 고요,

무엇보다도 숨을 쉴 때마다 해독에 소모되는 내공 때문에 불쾌감을 느꼈다.


“너는 괜찮나?”

어느새 말을 놓은 하유성이 체르나에게 물었다.


“네. 두 사람분은 어렵겠지만, 저 혼자라면 마력량이 버텨줄 것 같아요.”


보통 성직자의 해독 마법(기적)은 일회성이고 해독하는 독에 따라 드는 마력량도 달라지는데, 체르나의 것은 그보다 훨씬 효율과 성능 양측 모두에서 뛰어났다.


애초에 신체에 독이 들어오는 걸 일정 시간 동안 막아내는 기적.

그것도 마력 소모 효율이 좋은 편이라, 2레벨에 불과한 체르나의 마력량으로도 하루를 버티는 게 충분히 가능했다.


“마법이 아니라 기도라면서, 왜 마력을 소모하지?”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이해?”


“네. 기도를 통해 기적을 바라는 것. 그것만으로 마력이 움직이고, 바라는 효과를 만드는 게 기적이에요. 신이 나머지를 맡아주시는 거죠. 마법사들은 아무리 간단한 기적도 그 원리를 해석할 수 없어요. 어떤 뛰어난 마법사가 와도 마찬가지로요.”


“하지만 여전히 마력을 써야 효과가 나타나긴 한다는 거군. 사람의 의지가 만드는 효과일 수도 있지 않나?”


“후후, 그 정도는 교전 해석에서 바로 배우죠. 의지로 마력을 움직이는 건 분명 가능하지만, 그건 주술이나 원시 마법의 발동 원리지, 기적과는 달라요. 의지로 마력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의지를 포기함으로써 마력이 움직이게 되는 거랄까···. 정확히는 신께 의지를 드리면 신께서 마력을 움직여 주시는 거죠.”


하유성이 듣기엔 의지를 포기한다는 쪽이 훨씬 정확한 것으로 들렸지만, 신이 실재한다는 증거는 그 밖에도 많은 모양이었으니 기적의 원리도 그런 쪽이리라 짐작하고 넘어갔다.


“그렇다면 왜 사람마다 쓰는 기적이 차이가 있는 거지? 너만 해도 남들과는 다른 해독술을 쓰고 있다면서.”


“그야 신께서 총애하는 신자, 더 신실한 신자에게 더 강력한 결과로 보답하시는 거죠. 제가 이래 봬도···. 크흠 이건 아니고. 아무튼. 그러니까 성직자는 신실하고, 순수해야 해요. 그래야 같은 마력으로도 신께서 더 좋은 결과를 보여주시죠.”


“꽤 타산적인 신이시군.”


“그게 아니에요오! 무한한 신의 사랑을 인간이 받아들일 더 순수하고 좋은 그릇이 되는 거라고요. 좋은 결과란 건 유성 씨가 이해하기 쉽게 세속인의 가치로 말해줬을 뿐이라구요!”


“알겠네. 알았어. 신의 사랑.”

체르나가 하유성을 통통 치며 말하자 하유성도 하는 수 없이 수긍했다.


정말로 그 순수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체르나에겐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긴 했다.


두 사람은 사람은커녕 마물도 살기 힘든 독성 가득한 숲을 그렇게 무난하게 넘어왔다.


어두운 숲을 나오자, 아래쪽으로는 탁 트인 물가가, 위쪽으로는 언덕 반대편으로 물가를 향해 기괴하게 깎인 절벽이 펼쳐졌다.


역시나 누가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멋진 풍경이었다.


“저기! 하피들이 있어요!”


체르나가 가리키는 방향은 절벽 꼭대기였다.


그곳엔 하피 몇 마리가 순찰이라도 하듯 주위를 돌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하유성이 눈에 마력을 집중하자 그보다 좀 더 아래, 중간쯤에 동굴이 보였다.


하피 수십 마리가 절벽을 배회하며 동굴 근처를 지키고 있는 모양새로 봐선, 동굴 안쪽에 둥지와 알이 있는 게 분명했다.


감시를 뚫고 갈 수도 없고, 가더라도 절벽을 오르든 내리든 해야 하는 상황.


“일단 오늘은 야영하면서 방법을 함께 고민해 보죠.”


체르나의 말대로 두 사람은 야영할 준비를 마치고 한 사람씩 잠에 들었다.


다행히 숲의 독기가 딱 끝나는 시점에는 별다른 마물이 나오지 않았고, 하피도 이쪽까지 올 생각은 없는 듯했다.


서로 마력이 꽤 소모되었기 때문에 체르나와 하유성은 논의해볼 새도 없이 각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하유성이 혼자 생각한 작전을 말했다.


“나 혼자 다녀오지.”


저곳에 체르나를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안 그래도 2레벨에겐 조금 버거운 3층의 마물인데, 놈들이 떼로 있고 지형까지 불리한 곳에서 그녀가 살아남는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판단.


그 판단 자체는 틀릴 게 없었지만, 맹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저희 임무가 뭔지 까먹은 거예요?”


“알을 가져오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래요! 물론 유성 씨가 잘 싸운다는 건, 몸을 쓰는데 잼병인 저도 알겠어요. 그치만 그렇게 움직이면서 알이 깨지지 않게 들고 내려오실 수 있겠어요? 누군진 모르겠지만, 이 임무의 최소 인원을 둘로 설정한 의뢰인은 정말 변태가 틀림없어요. 이렇게까지 아슬아슬하게 정말 딱 최소 두 명이 필요한 의뢰라는 걸 알고 있었을 테니까요.”


“너는 가면 죽어. 나는 하피들을 다 죽여서라도 알을 가져올 수 있지. 그러니 나 혼자 가는 게 맞다.”


“알을 든 채로 검을 휘두르면 유성 씨도 죽을 걸요···!”

맹해 보이던 체르나는 의외로 이런 문제에선 한 치도 물러나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제대로 작전 회의를 시작했다.


“차륜전을 펼치는 건 어때요? 녀석들의 범위 근처에서 씨가 마를 때까지 몇 마리씩 유인해 죽이는 거죠! 유성 씨는 제가 치료하면 되니까···.”


“안 돼. 너무 오래 걸리고, 마력이 먼저 고갈될 가능성이 크다. 하나둘씩 나온다는 보장도 없고. 수십 마리가 나와서 애워싸면 아무리 나라도 힘들다.”


멀리서 봤을 뿐이지만 하피의 전투력은 그리 낮지 않았다.


특히나 공중에서 공격했기 때문에 검사인 하유성과는 상성도 좋지 않았다.


“그럼······.”


두 사람은 딱히 숨기는 것 없이 서로가 가진 패를 내어놓았다.


하유성은 오히려 단기 전투에선 아무리 많은 하피가 와도 상대할 자신이 있었지만, 장기전은 무리였다.


이전 세계에 비하면 물론 충분했지만, 지닌 내공이 그렇게까지 많지 않았고, 설령 검기라도 써야 한다면 더욱 빨리 고갈될 게 분명했다.


체르나는 2레벨 성직자답게 실드, 회복, 해독 단 세 가지 기적만 쓸 수 있었다.


대신 해독 마법이 그랬듯 그녀가 사용하는 기적은 그녀가 받은 축복에 따라 전부 ‘지속성’을 가졌는데, 실드는 내구력이 약한 대신 깨질 때까지 수호 대상을 따라다녔고, 회복은 일정 시간 동안 자연 회복력을 높여줬다.


“···정말로 그렇게 하자구요?”


“그래. 지금으로썬 이게 최선인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 같은데···. 오히려 좋군요···! 진짜 모험 같아요.”


이런 무모한 임무를 생각 없이 하유성과 둘이 오려고 했을 때부터 느꼈지만, 체르나의 감성은 꽤나 독특했다.


어떨 때 보면 상황 판단도 잘하고, 냉철한 면도 있다.


그러나 종종 마치 모험 소설로 세상을 배운 듯한 과감함과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보인다.


모험이라면 마냥 좋고, 보이는 모든 걸 되도록 즐겁게 받아들이려는 자세.


그건 옆에 있는 하유성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만드는 순수함이었다.


두 사람은 계획대로, 이틀을 더 제자리에 있었다.


그것도 하유성의 등에 체르나가 껴안듯 매달린 채로.


“이거 좀 어색하네요···.”


“어쩔 수 없지.”


두 사람은 오히려 독이 가득한 숲을 지날 때보다 말없이 이틀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삼 일째 되는 날 아침, 하유성은 체르나를 업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다···!”

“가자구욧!!”


그리고 하유성이 경공을 펼치며, 두 사람은 언덕 위로 달리기 시작했다.


“끼루룩···?”


멀리서부터 하피 정찰병들이 알아봤지만, 그들은 막무가내로 달리는 두 사람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하진 못했다.


기껏해야 뒤늦게 달려들어 발톱으로 몇 번 긁는 정도.


하유성은 검을 휘두르지도 않았다.

그저 빨리 달리는 데 집중할 뿐.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은 언덕 꼭대기에 올랐고, 그대로 도약했다.


파아앗!!


“으아아아!!!”


“귀에 대고 소리 지르지 마라!!”


하유성은 그렇게 소리 지르며 가까스로 경공으로 허공을 박차 절벽에 붙었고, 원하는 곳에 착지, 아니 추락했다.


쾅!!!!


절벽이 떠나갈 듯한 소리와, 뭉게구름처럼 퍼지는 먼지 속에서 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으지지지지직···파아앙!!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을 감싸고 있던 수십 겹의 얇은 보호막이 단박에 깨졌다.


이틀 내내 붙어있으며 두 사람을 대상으로 체르나가 실드를 펼치고, 그걸 계속 중첩해 추락의 충격을 상쇄한 것.


체르나의 마력이 간당간당하긴 했지만, 이로써 두 사람은 하피의 둥지에 다른 하피들보다도 먼저 들어올 수 있었다.


물론 안쪽에 남아있는 하피가 몇 마리 있었지만, 하유성은 놈들을 빠르게 제거했다.


바깥에 있는 동족을 믿고 동굴 안에 있었기 때문에 공중이라는 이점을 살리지 못한 하피들은 하유성의 상대가 전혀 되지 못했다.


“어서 알을 챙겨라.”


하유성은 순식간에 둥지 안쪽을 제거하고 입구 쪽으로 향했다.


반대로 체르나는 둥지 안쪽으로 향해 허겁지겁 완충제를 가득 넣은 가방에 팔뚝만 한 하피의 알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둥지 바깥쪽엔 순식간에 일어난 혼란에서 벗어난 물경 백에 달하는 하피 떼가 공중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하유성은 동굴 끝에 서서 자세를 잡았다.


하피들 입장에선 안전하기 그지없었을 절벽 위의 동굴이, 순식간의 적을 지켜주게 된 상황.


번식으로 무리를 유지하는 하피들로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동굴 안에 있는 두 사람을 제거해야 했다.


하유성이 원하는 단기 결정전이었다.


하피들의 끼룩거리는 소리와 푸드덕거리는 날갯짓 소리가 온 사방에서 들려왔다.


그것 자체로 음공처럼 느껴질 지경.

하유성은 위축되지 않기 위해 내력을 실어 소리쳤다.


[덤벼라!!!]


쉬우우우!!!!


하유성의 외침과 함께 십여 마리의 하피들이 강하(降下)했다.


그리고 하유성의 검이 춤을 췄다.


파바바바바밧!!!


후방의 안전을 확보한 하유성은 놈들을 그야말로 난자했다.


물론 둥지와 종족의 미래를 저당잡힌 하피들도 필사적이었다.


그들은 죽어가면서도 발톱을 한 번 더 휘둘렀고, 아무리 장사라도 숫자는 어쩔 수 없었기에 하유성의 몸에는 긁힌 선들이 가득 생겨났다.


[큐어···!]


방어막을 중첩하느라 얼마 남지 않은 마력으로 뒤에서 체르나가 회복 기적을 펼쳤다.


그녀의 마법은 회복력이 올라가는 하유성의 축복과 결이 잘 맞았기에, 하유성의 몸에 있던 선들은 피를 다시 흡수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빠르게 회복됐다.


““끼에에에에엑!!!!””


다시 수십 마리가 공중에서 떨어져 내려왔고, 하유성은 이번에는 좀 더 능숙하게 앞뒤로 오가는 완급 조절을 하면서 놈들을 베어냈다.


콰드드득!!

검기가 실린 그의 검이 하피 한 마리를 아래서 위로 발톱 채 베어냈다.


다른 놈들이 죽는 사이 혼자 안쪽으로 들어가 체르나를 노리던 놈이었다.


“꽤 머리도 쓰는군.”


덕분에 하유성은 급하게 검기를 방출했을 뿐만 아니라, 꽤 뒤로 물러나기까지 했다.


꽤 여러 마리의 하피가 다시 동굴 입구를 점하고 달려들려 하고 있었다.


물론 그래도,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유성은 검을 고쳐 쥐며 웃었다.

복잡할 것 없이 그저 검을 휘두르면 되는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


뒤에서 체르나가 같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뚫어버려요. 유성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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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40화 문천 24.09.08 54 2 12쪽
39 39화 팀 24.09.07 55 4 13쪽
» 38화 하피 24.09.06 58 4 13쪽
37 37화 사무소 24.09.05 68 4 13쪽
36 36화 심부름 24.09.04 69 3 12쪽
35 35화 가치 24.09.03 77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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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화 결투 (1) 24.09.01 80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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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화 토벌(2) 24.08.20 113 4 14쪽
20 20화 토벌(1) 24.08.19 131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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